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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은 달지 않아.

by 윤슬

어렸을 적에는 그저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가 즐거웠어. 나에게는 그게 그냥 하나의 이벤트, 놀이로밖에 느껴지지 않았거든. 난 그저 여느 아이들이 그랬듯이 달달한 간식을 적당한 명분으로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 퍽이나 즐거웠을 뿐, 그 이상의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지.


시간이 지나고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는 그런 기념일 따위, 초콜릿이나 사탕을 팔아먹으려는 장사꾼들의 상술이라며 비웃고, 무시했었지. 그때는 그런 무신경한 태도가 멋있어 보이고, 또 그런 것들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티를 내고 싶었던 걸지도 몰라. 나는 내 나이에 비해 성숙해 보이고 싶었고, 그만큼 더 어린애 티를 냈었던 거겠지.


또 시간이 흘렀어. 지금을 맞았지. 지금은 어떤가, 생각해 보았어. 어쩌면 그 상술이 지금은, 조금 고마워진 것 같기도 해. 선물이라는 것이 단지 물건을 주고받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기 때문인지, 그들이 팔았던 것은 약간의 간식거리가 아닌 상대방에게 말을 걸 기회와 명분, 그리고 발돋움을 도와주는 작은 용기가 아닐까 지금은 생각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무리 상술이라도 초콜릿값이면 싼 걸지도 몰라.


표면적으로 우리는 초콜릿을 사고 또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가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조금 다른 것 같아. 몹시 단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런 간식거리로 하루 종일 기대와 실망, 기쁨과 슬픔에 마음 졸이는 걸 이해하긴 힘들지. 그러니까 우리는 마음을 받는 거야. 나에게 이것을 건네주기까지 그 사람이 느꼈던 모든 감정들과 시간들을 받는 거야. 무엇을 좋아할지 고민하고, 받고 싫어하지는 않을지 걱정하고, 시간을 들여서 선물을 고르고, 좋아해 주면 좋겠다며 다시 기대하고, 말을 걸 타이밍을 노리고... 그 모든 감정들, 그 모든 시간들을 우리는 초콜릿이라는 달콤 씁쓸한 맛 속에 숨기고 건네지. 부디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그 초콜릿이 혀 위에서 사르르 녹아내릴 때, 그 안에 꼭꼭 눌러 담았던 기대과 걱정들이, 조금이라도 느껴지기를 바라면서 주는 거야. 그러니 초콜릿은 달지 않아. 아직 초콜릿이 달지 않은 누군가는 부디 그 단맛을 알 수 있기를, 초콜릿의 단맛에 미소 짓는 누군가는 그 달콤함에 익숙해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만 글을 마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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