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에 한 권에 책을 읽고 적었던 글
한 권의 책을 오랜 시간에 걸쳐 읽는 동안, 줄곧 네가 떠올랐어. 책 속에서는 우리를 닮은 두 연인이 서로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데, 그때마다 네 이름이 내게 사무쳐서 한참을 울었다는 걸 너는 모르겠지?
서로 사랑을 하면서도, 나는 우리 관계가 마디 틈 사이로 흘러나가는 한 줌의 모래 같다고 은연중에 알고 있었나 봐. 그래서 너를 알아가고 만나던 동안, 나는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너를 탐했던 것 같아.
별말 없이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던 네가 익숙해질 즈음에, 우리가 이젠 서로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렸다는 게 참 마음이 아팠어.
내가 너를 알기 전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또 겨울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더라. 너와 함께가 아닌 홀로 보내온 계절들이 이리도 다르던가? 그런 생각이 도저히 멈추지 않던데, 너도 그랬을까?
우리 사이의 시차는 점점 더 커져만 가는데, 너의 마음 한편에 날 위한 자리가 있을 거라는 헛된 희망에 나는 이 지긋지긋한 진창 속에서 너의 이름을 지우지 못했어. 맹목적으로 네가 언젠가 다시 내게 올 거라고 믿었어. 마치 이게 우리의 진짜 끝이 아니라고, 우리가 언젠가는 다시 사랑에 빠질 거라고 착각하며.
나만큼 너의 마음에도 구멍이 나서 허전했을까 싶어서, 네가 내 곁에 없음에도 그 구멍 사이로 너를 향한 감정이 새어 나와 먹먹해지던 날들이 계속됐어. 그리고, 살결이 시려 두 팔로 온몸을 비벼도 아침 해가 뜨지 않는 밤들을 셀 수 없이 보냈지.
그런 탓인지 내 심장은 아직도 네 이름 석 자만 떠올려도 쿵쿵하고 둔탁하게 바닥을 치는 소리를 내.
여기 이 책 속의 여자 주인공은 죽은 연인을 먹어. 그를 영원히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잃어가면서도 멈추지 않아. 네가 나를 갉아먹으면, 나는 네 안에서 영원히 피어날 거라고 믿었던 나와 참 닮았지.
그런 사랑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이런 걸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단지 남일 뿐이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