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해 갑니다. 밤이 깊어가고 상념도 따라 짙어가니 내 한숨의 동혈은 예상보다 길고 깊어 어느새 가슴 저 밑바닥을 한바탕 휘감고 돕니다. 그저 살기 바빠서 무엇 하나 반듯하게 해낸 것도 없이 또 여기 왔네요. 남아있는 마지막 달력을 바라보며 잠시 서글픈 것도 같은 심정의 와류는 약간의 서늘한 냉기마저 내뿜고 있는 듯합니다. 허한 마음에 위무라도 할 겸 생각해 냈다는 것이 고작 담배입니다. 허전한 겨울밤의 심로를 닮은 푸른 연기는 나의 자화상이자 청사진인 듯 기억도 하지 못할 인상을 찌푸리며 모작모작 허공에 흩어집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괜찮습니다. 담배가 위악적이기만 하다는 것은 약간의 억지라는 억지가 지금 잠시 드는군요. 굳이 말을 하자면 불청객처럼 은근슬쩍 담을 타고 넘어온 허기와 울적한 심사가 조금이나마 푸르스름하게 희석되기 때문이라고 해두지요. 어느 날 산책을 하다가 땟구정물 하나 없는 얕은 개울에서 묵묵히 살이를 유영하는 작은 물고기를 본 적이 있어요, 속살의 결들과 비척한 내장과 앙상한 뼈마디, 볼품없는 잔가시 하나까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나신으로 말입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물고기는 비 내리고 바람 불던 어느 개여울 같은 곳도 거슬러 지나왔을 것을 생각합니다. 그 허름하고 가난한 모습이 잔가시 하나의 내력이며 찔리고 멍든 상처마저 전부 보이는 것만 같아서 혹여 내 삶도 저럴 수 있을까 싶어 한참을 들여다보았지요. 만일 나도 이처럼 내 속에 있는 것들을 뒤집어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하루하루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어떤 날은 잔가시 같은 몇 마디 말로 누군가의 선의에 흠집을 남긴 적도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날은 독이 오른 삿대질로 누군가의 마음이 덧나고 심지어 흉터로 남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걸음마다 자국을 남기던 애욕의 꼬리짓을 등 뒤로 남겨둔 채 혼자서 그래, 그럴듯했어 하던 뻔뻔한 날들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또 한해 지나갑니다. 당신은 어떠셨는지요. 잘 살았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을 해봅니다. 나의 한 해가 서운하지는 않습니다.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도 참 좋습니다. 정말 서운한 것이 없었느냐고 당신이 콕 집어 물으시면 나는 묵비권을 행사하겠어요. 당신과의 관계가, 생의 좌표와 교직들이 마음처럼 흘러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변명도 그만두겠습니다. 우리들 살이의 반듯한 매뉴얼이 지금 이 시간에도 필요하다는 건 분명 가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니까요. 일전에 내가 그랬지요? 사랑은 어쩌면 지독한 자기애나 결핍의 반증일지도 모른다고. 다만 사랑뿐이겠습니까. 나와 당신을 건너가는 모든 것들이 다 그렇겠지요. 그래서 우리는 삼백예순 날을 꼬박 날몸으로 감당하며 식지 않는 섭씨 36.5도의 체온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주문을 걸어봅니다. 괜찮다, 괜찮다. 지나온 한 해의 소작이 미흡해서는 아닙니다. 내년이 형편없으리라는 불편한 예측 때문도 아닙니다. 다만 애꿎은 세상 탓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닌 것이라고, 남아있을지도 모르는 사랑과 희망의 맛처럼 달달한 것에 대한 최면 같은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돌아보면 심심한 날들도 있었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순간이나 분이 들불처럼 일어날 때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보내야 할 시간. 우리들은 해마다 그렇게 아쉬운 것들이 쌓여가는 것을 낮춰보려고 조금 늦었다고 생각될 때라도 마음이 무엇에 홀린 것처럼 다시 일어서고 시작할 채비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낡은 연장을 집어드는 것이 아니겠어요. 괜찮아, 괜찮아도 괜찮아. 정말 애썼다고 전해오는 위로의 토닥토닥, 우리 받을 자격 있지 않겠어요. 그래요. 당신 덕분에 한해 잘 살았습니다. 당신과의 거리, 시속 5킬로미터로 건너갑니다. 새해에는 겉과 속 아프지도 않고 덧나는 건 없을 거라고 밀교인 듯 골방에 앉아 나지막이, 오직 호의로 가득한 순하고 착한 술법을 걸어봅니다. 여기서 인사할게요.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뉴 이어.
https://youtu.be/g8UmqvOqB1A?si=gOVqUoED5Xb6hAT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