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당평전 1/4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燒酒를 마신다
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힌당나귀 타고
산곬로 가쟈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곬로 가 마가리에 살쟈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힌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샤갈의 마을에 눈이 나린다. 하염없이 푹푹 나린다. 백석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맨 앞줄에 나와 서있는 시,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를 생각한다. 수많은 은유와 서정의 결정이 흰 눈송이로 수북이 쌓여가는 시를 생각한다. 무엇으로부터 어떤 것들이 그를 덮쳐왔는지 가난한 화자는 고독하고 쓸쓸하다. 현실에서 손이 닿지 않아 상처로 남을 이국적인 나타샤를, 그리운 꿈 너머의 사랑과 위안을 찾아 헤매는 밤, 좀처럼 헤치고 나갈 수 없는 순결하고도 고난 같은 눈이 쌓인다. 푹푹 쌓인다. 그 밤의 눈은 외로운 화자를, 오지 않는 나타샤를, 가고 싶은 세계와 갈라놓기도 하는 구부정한 현실을 자꾸만 부각하고 강화하는 중의적 의미를 가진다. 그렇게 혼자서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시며 외로운 염원을 한숨 속에 그려낸다. 그 희디흰 고난 속을 다시 순수하고 희망의 털색을 두른 흰 당나귀를 타고 그리운 나타샤와 함께 삿된 세상을 벗어나 이상향으로 가고자 하는 것이다. 뱁새가 우는 산골에서 오막살이도 좋다는 것이다. 화자는 눈과 당나귀와 나타샤를 반복해 이야기함으로써 시구의 운율을 완성하고 의미에의 무게를 쌓이게 하고 있다.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닌 순수한 세상으로의 갈증 같은 항변이다. 아름다운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는데 오지는 않아서 그 밤에 혹여 눈 같은 사랑이 온다면 당나귀도 좋아서 소리 내며 울 것이라는 속절없는 감정이입을 마지막으로 그의 함박눈 같은 서정이 짙은 여운을 남긴다. 조금의 자기 합리화는 섞여있지만 백석 특유의 낭만과 흙내 나는 서정이 나타샤를 기다리고 기다리며 밤이 깊어 간다.
가난한 시인들의 시어에 없는 의미란 없다. 낱말 하나 말씨하나 받침 하나에도 마음과 의미가 깃들기를 바라며 온밤을 지새워 쓰고 지우고 고친다. 어쩌면 백석도 그렇게 시를 썼을 것이다.
그해 겨울, 바람이 몹시 매서웠다. 겨울다웠다. 언젠가의 한 계절, 오직 백석을 생각하고 그의 시만을 좇아가며 지난하고 오롯했던 생의 경로를 따라가는 동안 춥고도 따뜻하고 안온하기도 했던 그 겨울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음식은 제철에 먹어야 제맛을 느끼는 법이라는데, 만약 시에도 제철이라는 것이 있다면 겨울에 가장 어울리는 제철 시는 아마도 백석白石이 아닐까 싶다. 우리 근대 문학사에서 가장 두드러진 시인을 이야기할 때 흔히 잊었던 사랑을 찾아낸 것처럼 북소월 남목월이라는 말로 함축되기도 하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개인적 열망을 보태 진심을 말한다면 소월은 백석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백석을 처음 만난 건 그와 그의 문학이 해금된 이후였다. 생활고와 이념과 학업의 희비 교차점 근처에서 분주한 마음이 온종일 뛰어다니는 동안 나의 문학은 황폐해져 갔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황폐해져 갔다기보다는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에 대해 시큰둥한 채로 냉막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공사장의 차디찬 컨테이너는 석유난로 외에는 난방이 전혀 되지 않았고 스티로폼은 택도 없이 얇았으니까. 또 일당을 두 배를 준다는 말에 야간방범까지 서고 나면 겨우 서너 시간을 자고 일어나 새벽부터 날몸으로 벽돌이나 모래등짐을 져야 했으니까.
그러한 겨울 무렵 우여곡절의 끝에 처음 만났던 백석이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그의 시세계는 내게 문학적 충격이기도 했거니와 쓸쓸하고 둔탁했으며 슬프고도 생경스러워서 긴 한숨 같은 것이 먼저 나오는 바람에 할 말을 쉬이 고를 수가 없기도 했던 것이다. 내가 가질 수 없는 언어를 가진 그에게 몹시 심한 질투가 생겼다가 엄두도 나지 않는 해일 같은 감탄이 일었다가 마침내는 본능처럼 애써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부글부글 치솟아 한동안 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다. 맙소사, 의식적으로 잊고 산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잊고 싶은 꼭 그만큼 내내 잊지 못하고 사는 거다. 어떤 실패한 연애쟁이가 작업의 반전으로 대미를 장식하고자 나는 매일 아침마다 너를 잊는다는 멘트를 날리던 영화 대사의 역설적 아이러니와도 같이 백석의 뚜렷한 흔적은 이미 내 안에 깊이 새겨진 후였다. 그리고 다시, 시절이 가고 나이가 들면서 백석에 대해 마음먹고 제대로 된 질투를 해보리라 입술을 깨물었고 다시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나만의 원고지를 향한 연필을 얌전히 깎고 있지만, 가질 수 없던 거대한 것들에 대한 상처와 눈물과 좌절을 견딜 만큼의 적당량으로 환산하여 부적처럼 지니고 산다.
백석, 분단 이후 월북시인으로 분류되어 그의 작품을 비롯한 모든 문학적 가치평가가 재판도 없이 결박당하고 찬연한 천재성과 함께 감금되고 매몰된 사람. 시대적 혼돈의 철조망을 몸에 두르고 살다 간 사람이 바로 백석이다. 사실 백석은 그의 생애와 작품으로 반추할 때 구체적인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가졌다거나, 사회주의 체제를 선호하고 택할 만한 어떤 징후도 필연성도 없었다. 단지 시를 써야만 하는 정맥을 지니고 태어났으며 그 태생적 피돌기로 시를 썼을 뿐인데 어느새 서늘하고 쓸쓸한 유성으로 스러져 갔다. 평안북도가 자신의 고향이라는 것과 해방 이후 만주에서 돌아와 줄곧 고향의 가족들과 기거해 왔다는 사실로 비추어 짐작하자면 분단이니 사상이니 하는 것들에 앞서 그는 태어났던 곳이자 익숙하고 정겨운 고향에 자연스레 남은 것뿐일 텐데, 우리 허튼 시절과 각진 시선들은 백석이 북을 선택한 시인이라며 오랜 세월 대못을 박고 주홍글씨를 달아 봉인을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 보고 싶은 만큼만 보이고, 듣고 싶은 만큼만 듣기도 한다. 물론 세상의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그렇고 나도 얼마간은 그렇다. 버려졌던 들판에 찾아오는 봄들은 공평한 것인지 아니면 미안함 때문에 성급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80년대 후반에서야 해금된 시인 백석에 대한 문단의 반응은 뜨거웠다. 문학적 천재성에 대한 찬사가 줄을 이었고 시세계를 향해서는 찬양에 가까웠다. 김윤식은 우리 문학의 북극성이라 감탄했고 김현은 한국시가 낳은 가장 아름다운 시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가장 한국적인 시라고 말한 유종호도 다름 아니다. 한때 재고의 가치가 없던 빨갱이 좌파 월북시인을 향한 민망한 사랑의 고백이 계속 이어졌다. 그때부터 우리 문단의 시인들은 백석의 첫 번째 시집인 ‘사슴’을 한국 문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시집들 중 하나로 주저하지 않고 언급한다. 거리에는 백석과 관련된 연구서와 한껏 고무된 연모서들이 순례길에 오른 행렬처럼 잔뜩 쏟아져 나왔다.
이토록 슬픈 새벽처럼 빛나는 시인이 우리도 모르게 있었던가. 김수영과 신동엽과 기형도 이후 다시 나는 서정성을 등에 지고 사는 천형의 본능처럼 열렬한 짝사랑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고백을 준비하는 사이 오랜 세월이 무심히 흘렀다.
한동안 조명하게 될 백석에 대한 나의 견해는 결론적으로 지금껏 펼친 구라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고 자란 고향을 배경으로 옛이야기 같은 깊은 장맛을 풍기는 향토어가 나봇기고, 이에 더불어 외롭고 높고 쓸쓸한 생애와 작품들은 이 땅에서 그를 가장 순수한 서정시인 중 하나라 할만하니 말이다. 미리 고백을 하자면 백석에 대한 몇 편의 글을 준비하는 것은 바야흐로 오랜 짝사랑의 증거이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시어와 세계에 대한 질투 어린 투정과 깊고 슬픈 절망이 어우러진, 눈물 흥건한 연서에 다름 아닐 것이다. 옛적에 민초들의 험난하고 칼칼진 생활과 풍경을 시에 고스란히 녹여낸 뜨신 아랫목 같은 예인이 있었으니 겨냥하지 않았음에도 얼굴 붉어지던 외래적인 시풍들과 관념적이고 공허한 동시대의 시들을 부끄럽게 했던 사람. 조금 보태자면,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보다 고독하고 서정적이며 자유롭고 아름다운, 무엇보다 봉놋방처럼 서민적이고 고조곤하고 뜨끈한 언어였던 사람, 백석. 그가 어떤 숨겨운 생애를 살다 갔는지, 어떻게 시를 쓰고 어떤 연애를 했는지 조용히 잰걸음으로 따라가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