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가 흩날려 대지와 닿고 있던 모든 것이 진흙탕이 되고 있다.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진눈깨비가 흐리멍덩한 나와 닮은 듯하다. 진눈깨비에 더럽혀진 바퀴 달린 자동차가 지나갈 적마다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며 차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머리에 상처를 가리기 위해 벙거지 모자를 둘러 쓰고 진눈깨비에 더럽혀진 신발을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피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머리를 꿰매기 위해 머리카락을 바리깡으로 잘라냈던 나의 뒤통수는 추수를 앞둔 논자락에 콤바인이 첫 수확을 위해 들판을 한 줄 가로지른 모습과 흡사했고, 두 달의 병원생활동안 내 몰골은 초췌하기 이를 때 없었던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예전의 나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김진만 집주인과 아버지의 극적인 합의가 감격스러워서 인지, 시세에 안 맞는 합의가 나중에 화근이 될 것이 염려스러워서인지, 인자한 김진만 집주인은 2년 동안 월세 없이 이 집에서 내가 살 수 있도록 친절하게 갱신계약서를 들고 와 나에게 내밀었었다. 어차피 아버지가 짓이기고 뭉개어서 하게 된 합의사건 이후로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버지가 뭉갠 내 자존심을 내세우기에는 이미 늦은 것이다. 가슴 한편에 찝찝함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2년 동안 딸과 함께 지낼 수 있을 품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만 이었다. 집의 살림살이들은 내가 지내던 두 달 전보다 모든 것이 말끔했다. 3개월치의 월세 때문에 난리를 피웠던 김진만 씨가 사람을 써서 모든 집기며, 살림살이들을 반짝반짝 빛나도록 돈을 쓴 것을 보니 어지간히 겁을 집어먹은 것은 확실해 보였다.
사실 나 고영미는 지금은 정말이지 자존심을 세울 그런 한가한 시기가 아니었다. 18살에 집을 뛰쳐나와 21살에 딸아이를 낳고, 술만 먹으면 폭언과 폭력을 일삼던 남편을 벗어나기 위해 무일푼으로 딸아이 하나 둘러메고 나와 모질게 버텨온 시절이 26년째다. 가방끈 짧고, 아이까지 딸린 젊은 여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많지 않았다. 식당의 허드렛일, 청소 등등의 일이라도 주어지는 것이 나는 감사할 따름이었다. 근근이 딸아이의 대학 학비와 생활비 등을 채울 수 있었던 이런 일들조차도 남편의 폭력으로 다쳤던 허리병이 다시 도지면서 3개월치의 월세도 낼 수 없을 정도의 형편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내 찢긴 머리가 5백만 원의 현금과 2년 치의 월세를 대신했으니, 내 알량한 자존심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정신이 없다. 아니 어쩌면 알량한 자존심은 더 이상 재활용이 안 되는 쓰레기 봉지에 던져버려야 할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버리지 못한 걸까? 꺼질 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 촛불처럼 가까스로 버티고 있는 궁색한 살림 중에도 장롱에 던져 놓은 돈 5백만 원을 3개월째 건들지 않은 것을 보니. 소진된 몸덩어리에서 흘러나온 돈을 물건 따위로 소진해 버리면 얼마 되지 않는 삶에 대한 한 줌 정도의 결심도 고갈되어 전부 증발해 버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평생 만져보지 못한 이 5백만 원은 어떻게 쓰는 것일까? 새가슴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별 것이 없었다.
신문지에 싸고, 봉지로 몇 번 더 뒤집어 씌운 5백만 원을 들고 눈발 날리는 길을 걸어 집 앞에 새로 생긴 은행을 방문했다. 은행답지 않게 작고, 아담한 모양이다. 점포가 너무 작아 간판조차도 눈에 띄지 않지만 도로변으로 돌출한 ATM기기가 이곳에 은행이 있다고 광고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작고 아담했지만 세련된 인테리어 덕분인지 나름 질서가 있어 보였고, 직원들 또한 많지 않았다. 내 삶에 은행은 무서운 곳이었고,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곳이었다. 딸아이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대학등록금을 준비하는 것이 365일 잠을 자지 않고 의식이 깨어 있는 동안에는 항상 내 인생 최대의 숙제였다. 염치 무릅쓰고 친정엄마, 언니에게 돈 백만 원씩을 빌리던 것도 횟수가 늘어나자 더는 손을 벌리기 힘들었고, 그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든 곳이 은행이란 곳이었다. 평소엔 공과금 납부나 푼돈이나 찾으러 다니는 곳이었지, 돈을 빌고자 은행에 발을 들인 것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허드렛일을 하면서도 내 몸뚱이로 내가 벌은 돈으로 살면서 좋은 음식 조금 못 먹고, 좋은 옷 못 입으며 살아왔지만, 누군가 나에게 지지리 궁상이라고 크게 떠벌리며 나에게 모욕감을 준 일은 없기에 그래도 이만하면 됐다는 안도감으로 살아왔었다. 없는 대로 살아왔지, 없는 사람의 설움을 공개적으로 면박을 준 곳은 은행이란 무서운 곳이었다. 그때 내가 찾아간 은행은 하나 같이 정답을 정해 놓고 이유만 다를 뿐이었다. 딸아이의 등록금 대출을 못해주는 이유는 담보가 없어서, 내가 카드론을 많이 써서, 내가 일용직이라서, 내가 자가가 아니라서 등. 내게서 찾을 수 있는 갖은 약점들은 모조리 뽑아놓고 나를 면박주기 일쑤였다. 그런 면박을 열군 데 넘는 곳에서 당하다 보니 은행은 내게 무섭고, 잔인한 곳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들고 있던 57번 번호표를 호출하는 창구로 다가가니 큰 눈의 호리호리한 아가씨가 나를 맞이한다. 오른쪽 한 구석에 한미소 과장이라고 적인 명패가 놓여 있다. 서글서글한 큰 눈에 얼굴에 걸려 있는 눈, 코, 입의 모든 것을 한데 어울려 만들고 있는 예쁜 미소만큼 이나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표정과 말투, 심지어 손짓까지도 세심해 보였던 한미소 과장은 과장되지 않을 정도의 친절과, 오해하지 않을 정도의 미소로 그녀의 이름이 한미소라는 것을 각인시켜주고 있는 듯했다. 그녀는 업무를 보면서도 초췌한 내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이런저런 말들을 건네고 있었다. 으레 인사차 건네는 말이라 여기고 빨리 은행업무나 끝내 달라는 표정으로 무언의 다그침을 건네고 있었다. 5백만 원이 든 개설된 통장을 건네받고 누가 뒤쫓아 오기라도 하는 듯이 얼른 은행을 빠져나왔다. 그때 정말로 뒤에서 누군가가 뒤쫓아 오고 있었다. 좀 전에 봤던 한미소 과장이다. 눈이 오는 도로까지 쫓아 나와 그녀가 내 손에 들려준 것은 프라이팬이었다. 단지 프라이팬이었을 뿐이었다. 단지 그녀가 눈 내리는 도로까지 쫓아왔을 뿐이었다. 특별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오래돼 가슴 저 밑에서 치밀고 올라오지 못했던 차가운 무엇들이 조금씩 녹아내려 가슴에 훈김을 불어넣고 있었다. 다음에 꼭 다시 찾아와 달라고 두 손을 꼭 잡고 서글서글한 눈으로 말하며 돌아 서는 그녀의 뒷모습이 사랑스럽기까지 했다.
딸아이 둘러업고 지내온 지난 세월이 그랬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삶은 무미건조했고, 생사를 건 삶의 전쟁터에서 남의 호의를 받은 적도 없었거니와 나 또한 남에게 베푸는 호의 따위는 사치에 불과했다. 따뜻함이 그립고 간절한 날엔 삶의 외줄 타기를 타고 있던 내 마음이 무너질까 두려워 그 맘을 돌리고, 돌리어 제 자리에 간신히 되돌려 놓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랬기에 한미소 과장의 별것 아닌 눈빛과 따뜻한 손과 손에 들린 프라이팬이 가슴 시리도록 정겨웠다. 이젠 취업을 위해 마냥 바빠 대화 한번 하기도 어려운 딸아이, 둘째 딸이라면 고개를 뒤 흔드는 친정부모님, 내 전화만 울려도 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언니. 발가 벗겨진 마음 하나 어디 둘 곳 없는 내 처지가 감정을 극대화했으리라 자조하며 쓴웃음을 짓게 된다.
다음날도 정겨운 한미소 과장이 보고 싶어 진다. 그녀를 생각하자니 예전에 잃었던 미소가 얼굴에 절로 번져나간다. 요구르트 몇 줄을 사들고 그녀를 다시 찾았다. 하얀 원피스에 회색 카디건을 입은 그녀의 옷태가 그녀의 미소와 잘 맞아떨어져 보였다. 내 손에 걸려있는 요구르트가 들어있는 까만 봉지가 그녀 앞에서 궁색하기 이를 데 없이 보인다. 까만 봉지가 맘에 걸린다. 그런 내 마음도 꽤 뚫었는지 그녀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내 두 손을 꼭 잡고 몇 번이고 감사함을 표하며 나를 응접실로 이끈다. 꽤나 돈이 많은 사람들이나 드나들었을 만한 고급스러운 상담실에서 그녀는 내게 검지만, 속은 검지 않은 커피를 내민다. 커피 한잔의 여유 속에서 그녀와 꽤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말을 떠들어 대고 있는 이는 한미소 과장이 아닌 나였음을 보고 새삼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원래도 말수가 많지 않던 내가, 퇴원 이후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 입을 뻥긋해볼 기회조차 없어서 더 말수가 없어진 내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모습에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는 올해 37살의 아직은 미혼인 여성이었고, 47세인 내가 자기 보다 한두 살 위인 서른여덟 혹은 서른아홉으로 봤다는 눈에 보이는 기분 좋은 거짓말을 했다. 나도 거짓 아닌 거짓을 말하고 싶었다. 그녀의 미소 덕분에 어제 하루 종일 가슴이 따뜻했고, 그녀를 보기 위해 오늘 다시 들르게 됐노라고 말이다. 그녀의 까르르 웃음소리는 듣는 이에게 정겨움을 더해주었다. 그녀는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며 내 손을 놓지 않았고, 백수인 아줌마한테 잘 부탁드릴 일이 무엇이냐며 난 손사래를 치기 바빴다. 그때 초승달 같던 그녀의 눈이 자로 그린 듯이 큰 원을 그리며 정색하기보다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표정으로 확 바뀌었다.
"고영미 고객님! 지금 방금 백수라고 하셨어요? 진짜 백수세요?"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인지, 소스라치게 놀라 기쁜 표정인지 모를 표정을 하고 그녀는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역시 은행직원이었던가. 딸아이 대학등록금을 빌고자 다니던 은행에서는 무직 또는 일용직은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된 연유도, 사연도 필요치 않았다. 돈 한 푼도 빌려줄 수 없는 투명인간 비슷하게 취급해도 괜찮을 그런 부류의 사람들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었다. 한미소 과장도 당연히 은행직원인 것을 그녀의 상냥함 덕분에 잠시 잊고서 백수란 말을 꺼낸 나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고영미 고객님! 저희 지점이 신설지점이라 아직 청원경찰분이 안 계신데, 이곳에서 함께 일해보시지 않으실래요?"
라고 흐트러짐 하나 없이 기대에 찬 얼굴로 나를 빤히 응시하며 말하고 있었다. 이제까지 식당과 공장 등에서 허드렛일만 했을 뿐 무슨 무술 단증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아직 상처가 덜 여문 뒤통수에는 도로 난 머리가 듬성듬성 보기 흉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도저히 안될 것 같다는 나에게 한미소 과장은 무술 유단자가 아니어도 괜찮으며, 아직 자리잡지 못한 머리는 상사에게 사정을 말하고 헤어밴드로 위장을 하면 된다며 나를 재촉했다. 사실 일할 수만 있다면 나에게는 더 없는 기회였다. 허리병이 도져서 식당일과 같은 육체적인 노동은 이젠 생각도 못하는 판에 이런 좋은 기회도 없었던 것이었다. 망설이는 내 마음을 다 읽었던 것인지 한미소 과장은 나만 결정을 하면 내일이라도 당장 지점장님 면접을 준비하겠다며 나의 결정을 서둘러 재촉했다.
"왠지 염치없는 것 같지만, 할 수 있다면 한번 해보고는 싶네요."
내 대답을 들은 한미소 과장은 뛸 뜻이 기뻐하며 내 두 손을 꼭 잡고 흔들어댔다. 그녀를 보는 나의 마음은 고마움을 넘어 신비로움마저 돌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돈을 버는 목적의 직업에 더해 평소에도 곁에서 그녀를 계속 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청원경찰이란 일에 더욱 매달리고 싶어졌다. 그 정도로 내게 그녀는 특별해지고 있었다. 다만, 나보다 10살 어린 한미소 과장의 철없음이 이뤄낸 발상일 뿐, 그녀의 상사들은 나를 본 순간 분명 퇴짜를 놀 것임이 분명했다. 잠시만의 설렘이었다 하더라도 소중한 시간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내게 다음날 10시까지 사무실로 와달라고 말했다. 철부지 그녀가 굳이 면접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안 보아도 보이는 결과에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누군가가 나를 도와주고 있다는 가슴 따뜻한 생경한 무엇은 나를 들뜨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결과야 뻔하겠지만 한미소 과장의 면이 떨어지는 행동은 안 될 일이었다. 많지도 않은 옷들 중에 고르고 골라 최대한 점잖을 뺄 수 있는 진회색의 원피스를 걸쳐 입고 딸아이의 까만 구두를 신고 은행 청원경찰 면접을 볼 수 있었다. 살면서 정장차림의 면접은 처음이었다. 나름 떨리는 긴장감이 말문을 막히게 하기도 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내게 이 정도의 긴장쯤은 오히려 수월했다. 말 그대로 솔직, 담백하게 나에 관한 많은 것을 풀어놨고, 내 면접을 봤던 상사 두 분도 그리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어쩌면 뻔한 결과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 마저 갖게 하는 분위기였다. 면접이 끝나고 상담실에 앉아 있던 내게 한미소 과장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다가와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47살 먹은 무경력의 여자를, 게다가 아직 상처가 아물지 못해 듬성듬성한 뒷머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를 청원경찰로 뽑아줄 은행은 아직 없는 것일 것이다. 순간 내 기대가 분수에 맞지 않게 부풀려진 탓이었을 것이다. 뭐라 말하지 않고 뾰루뚱해 있던 한미소 과장은 '나한테 속았지?'라는 표정으로 두 손을 짠~하고 펴 들어 보이며 내 손을 잡고 흔들어댔다~!
"짜잔~~ 제 말을 듣길 잘했죠?! 이젠 고영미 주임님은 우리와 같이 일하게 될 청원경찰이시랍니다~~!"
어안이 벙벙했다. 남들 눈에 청원경찰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내게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것이 현실로 이뤄진 마법 같은 것이었다. 뛸뜻이 기뻐하며 말하는 그녀의 상큼한 자태는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와 같았다. 거칠게 말라 고목 같던 나의 인생에 새파란 초록순이 조화롭지 못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잔인하고, 무서웠던 은행이 나의 일터가 되리라고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나에게 행운처럼 다가온 이곳의 명칭은 은행이 아니다. 나에게는 정겨운 돈방, 수상한 돈방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딸아이가 기분이 너무 좋아 보인다며 무슨 복권에라도 당첨됐느냐고 물어본다. 그랬다. 복권에 당첨된 기분이다. 딸아이에게 조심스레 자랑을 해본다.
"사랑하는 딸아~! 엄마는 이젠 돈방 지킴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