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드너는 처음이라.
사람들이 왜 장미를 꽃의 여왕이라고 부르는지.
나랑 사는 남자는 감탄에 인색한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감성의 소유자다.
예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식물을 들이는 내게, 매번 정신 좀 차리라며 화를 낸다.
그런 이 남자를 항복시킨 유일한 식물이 장미다.
장미는 서서히 젖어들듯 남편을 홀렸다.
처음엔 내 등쌀에 못 이겨 아치와 오벨리스크를 세우던 이 남자!
몇 년 후 정원에 심은 장미가 자리를 잡고 점점 더 예뻐지자, 더 이상 장미에 반했다는 사실을 숨기지 못한다. 급기야 꽃 중에 장미가 최고라며, 대놓고 장미가 피기를 기다린다.
봄을 맞아 정원 여기저기 녀석들이 내미는 발그레한 새순들. 성급한 애들은 보석처럼 영롱한 연둣빛의 보들보들한 작고 귀여운 잎을 이미 자랑 중이다. 어린잎의 변화를 매일 지켜보는 재미가 꽃보는 재미에 못지않다.
어떤 품종의 장미들은 1년 내내 하도 쉼 없이 꽃을 피워대서 '노동장미'라는 별명이 붙었다.
꽃이 시들면 꽃봉오리 기준으로, 아래 이파리 3개를 포함해서 한 뼘 정도 길이로 꽃대를 잘라주면, 대략 45일마다 새로 꽃을 피운다. 태반의 꽃과 나무가 1년에 딱 한 번 꽃을 보여 주는 걸 고려하면 그야말로 최고의 가성비가 아닐 수 없다.
유레카!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누가 누가 일 년 내내 소담한 꽃을 계속 피우는가?'에 혈안이 되어 온갖 장미를 수소문해서 사들이기 시작했다. 정원지기 6년 차. 급기야 백여주 가까운 장미를 들이고 말았다.
백 평 정도의 정원,
가운데 공간은 남편의 로망이었던 잔디를 깔았으므로, 잔디 주위를 빙 두른 기다란 공간아 내 관할 영역이다.
너무 배게 심었다며 잔소리하는 남편 말을 귓등으로 무시하고 올해도 여섯 주나 장미를 질렀다. 공간이 부족하면 남편이 사랑해 마지않는 잔디를 몰래 뜯어내고, 뻐꾸기가 알을 낳듯 살짝 심어버리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쯤 되면 나를 훌륭한 가드너로 착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장미 죽여주는 여자였다.
귀촌 첫 봄.
양재동에 달려가 네 그루의 덩굴 장미를 사다 심었다. 분명 우리 집에 올 때는 새파랗게 물오른, 통통하고 건강한 줄기를 자랑했는데, 정원에 심자마자 곧 시름시름 앓더니 빈사 상태에 빠졌다.
그리고 다음 해 봄,
두 주가 별나라로 갔다( 남은 두 그루 중 한 그루도 '좋은 자리를 찾아준다'라며 뽑고 심기를 반복하는 나 때문에 작년에야 겨우 젓가락처럼 가느다란 줄기를 내고 생존 중이다).
아파트에서 여러 해 식물을 키우며 나름 식물에 대해 잘 안다고 자만했던 나는, 장미를 죽이고 심각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할 수 없이 회원 가입이 귀찮아서 미뤘던, 장미에 진심인 사람들이 모인 카페에 입문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들의 집단지성 덕분에 겨우 장미 똥손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입 후유증은 심각했다.
' 이곳이 싸고 건강해요'라는 추천과 장미의 미모 자랑이 미덕인 곳에 발을 디뎠다가 장미 중독자가 됐다.
장미를 죽이고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그들은 말한다.
"장미는 잘 키우기도 어렵지만 죽이기도 어려운 식물입니다."
까다롭지만, 반대로 생존력 또한 좋은 식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동호인끼리 비결을 공유해야 할 만큼 장미 키우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가끔은 이것들이 자신들의 미모를 무기로 인간을 쥐락펴락하며 수발을 들게 만드는 적전을 쓴다는 생각이 든다. 주객전도! 가드너를 길들여 자신을 떠받들게 만드는, 건방진 식물이다.
하지만 어쩌랴? 장미의 매력에 빠지면 개미지옥처럼 헤어날 수 없다.
처음 덩굴장미를 사들이고, 잘 키우겠다는 열망에 불타 며칠간 폭풍 검색을 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장미가 해를 좋아하고, 비료를 좋아하고, 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돌아보니 완전히 맞는 말이다.
오호!
그쯤이야.
그러나 잘 키우겠다는 열망을 활활 불태우던 나는 '장미가 좋아한다'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급기야 내 멋대로 정보를 해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일.
너무 열심히 장미에 달려가 내 방식대로 사랑을 퍼붓기 시작한다.
나는 진심으로 그때의 내 행동을 사랑이라고 믿었다.
장미에 가장 흔히 생기는 병 중 하나가 사진에 보이는 흑반병이다.
어떤 품종은 흑반병을 모를 만큼 건강하지만, 어떤 품종은 유독 그 병을 달고 산다. 이런 애가 나처럼 잘못된 행동을 일삼는 가드너를 만나면 그야말로 수습 불가다.
화분과 달리 정원은 자주 물을 주지 않아도 흙이 잘 마르지 않는다. 흙 속이 마르지 않는 한 매일 물을 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드디어 정원이 생겼다며 어깨에 뽕이 한참 들어간 나는 겉멋이 들었다.
아침마다 호스를 붙잡고 드라마 주인공 흉내를 냈다. 심지어 잎까지 깔끔하게 씻어준다며 줄기. 꽃. 뿌리를 가리지 않고 거침없이 위에서 물줄기를 쫙쫙 뿌렸다.
그게 흙 속에 사는, 흑반병을 일으키는 원인균을 장미 잎으로 튀어 오르게 해서, 병을 부르는 자살 행위라는 걸 몰랐다.
결국 네 주의 장미가 모조리 흑반병으로 시름 앓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5월은 장미의 계절이라며 애처롭게 몇 송이씩 꽃을 피웠다. 그러나 얼룩덜룩 검게 변한 잎은 너덜너덜! 남들은 검푸른 잎을 자랑하는 오뉴월에 얘들만 잎을 우수수 떨구고 앙상한 뼈 장미가 돼버렸다.
물 줄 때, 잎에 흙이 튀어 오르지 않도록 뿌리에서 30cm 정도 잎과 가느다란 줄기들을 깨끗하게 제거해야 한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특히 흑반병에 잘 걸리는 장미들이 위험한 시기는 습도가 높은 장마철이다. 봄 개화를 끝나고 나면 미리미리 잎과 줄기를 솎아서 통풍에 신경 써야 한다.
호되게 몇 해를 흑반에 당한 이후 이제는 장마철이 다가오면 나만의 비법을 추가한다.
빗물이 덜 튀어 오를 것 같아서 뿌리 쪽에 모래를 깔아준다. 신기하게 흑반병이 거의 사라졌다.
돌아보면 가장 하지 말아야 했을, 장미를 죽이는 최악의 치명적인 행동이었다.
비료를 많이 줄수록 좋은 줄 알았다. 욕심 많은 나는 주변 흙이 보이지 않을 만큼 뿌리 주변에 듬뿍듬뿍 비료를 퍼부었다. 심지어 장미가 시름시름할 때마다 "왜? 또 배고파?"라고 물으면서 비료를 퍼부었다.
먹지도 못하는 환자에게 강제로 멱살을 잡고 입을 벌려 음식을 들이부은 꼴이다.
급기야 장미 줄기가 검게 변하더니 썩어가기 시작했다.
줄기 넷이 셋으로, 셋이 둘로. 둘이 하나로 줄어들었다.
이제 비료 과다가 얼마나 무서운지 알게 된 나는, 봄이 되면 조심스럽게 뿌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비료를 몇 주먹씩 놓아준다.
이건 자연에 의한 것이지만, 미리 제대로 살피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장미를 심은 그해 겨울은 하필 기록적인 한파였다.
장미는 생각보다 추위에 강한 식물이다.
정작 장미가 무서워하는 건 추위보다 쉼 없이 쌩쌩 불어대는 차가운 바람이다.
한겨울에 양지바른 곳에서 찬 바람을 막아주는 옹벽에 살짝 기대서 살아가는 장미들이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이유다.
찬바람은 치명적이다.
장미 가지를 말라 죽인다.
심지어 귀촌지인 양양은 바람이 드세기로 악명 높다.
첫해라 아직 깊게 뿌리도 제대로 못 내렸는데, 그 애들은 그 세찬 바람을 온몸에 두들겨 맞았다.
게다가 당시는 큰 정원수들이 자리를 잡지 못해서 바람 한 조각 가려 줄 나무 하나 없는 허허 벌펀이었다.
따뜻한 남녘이 아니라면, 겨울에는 부직포나 마대 등 월동 장비로 장미 줄기를 대충이라도 감싸서 찬바람으로부터 보호하는 게 좋다.
그러나 초겨울마다 콧물을 흘리며, 월동에 매달리다 보니 남편과 내가 이 많은 녀석들을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지난겨울은 '살 놈은 살고 죽을 놈은 죽는다'는 심정으로 장미를 감싸는 대신 뿌리가 얼지 않도록 주위에 두툼하게 흙을 부어주는 정도로 타협했다. 다행히 올겨울은 추위도 바람도 심하지 않은 편이어서 잘 넘어갔다.
장미는 심고 나서 3년이 넘어가면 깊게 뿌리를 내리며 안정화된다.
그간의 노고에 보답하듯 그야말로 황홀한 꽃 폭탄을 투하하기 시작한다.
그런대로 장미를 잘 키우게 되면서, 가끔 첫해에 떠나보낸 장미를 떠올리며 미안해한다.
그때는 몰랐다.
낯선 곳에서 뿌리도 제대로 못 내린 아이에게, 어서 빨리 많은 꽃을 주렁주렁 달라며 매일 들이대는 내가 장미는 얼마나 두려웠을까?
마구 비료를 뿌려대고, 온몸에 물줄기 쏴대는 내게 '그만 좀 하라고, 이러다 죽는다'라고 신호를 보냈 지만 나는 그걸 알아채지 못했다.
도망칠수도 없었던 그 애들이 처참한 몰골로 떠나고 나서야, 나는 잘못을 깨달았다.
오래오래 정원에서 잘 지내고 싶었던 장미와 나와의 관계는 내 욕심으로 가슴 아프게 끝났다.
그때 장미들이 내게 원했던 건 적당한 무관심이었다.
이제는 안다.
식물애호가인 식집사(식물 집사)에게 가장 필요한 미덕은 식물과 적당한 거리두기라는 걸.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낼 때만 가까이 다가가기.
원하는 것만 슬쩍주고, 뒤로 물러나 다정한 눈으로 자기답게 사는 모습 지켜봐 주기.
식물마다 식집사에게 원하는 거리가 모두 달라서다.
어떤 애들은 자주 손길을 원하고, 어떤 애들은 심은 것으로 족하니까 더 이상 자신에게 괸심두지 말라고 한다.
어디까지 다가가고, 어디서 멈춰야 할지 알아체는 건 식집사의 가장 큰 숙제다. 여전히 마음을 모르는 식물들이 많다.
무수한 식물을 들이고 떠나보내면서 깨달았다.
차라라 잘 모를때는 살짝 무관심한 척, 한 발 떨어져서 시간을 두고 조용히 지켜보는 게 낫다.
그렇게 내가 그 애들의 경계를 함부로 넘지 않고 거리를 두었던 식물들이 대체로 정원에 잘 자리 잡고 건강하게 잘 살아간다.
자식과 부모,형제, 부부, 애인, 친구,동료와 이웃...
사람과의 관계 맺기나 식물과의 관계 맺기나 결국은 같구나.
오늘도 정원을 가꾸며 부족했던 나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