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 1편 <백색 궁전>
쾌속정이 35분 정도 운항했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 앞에 뭔가가 있었다. 광활한 바다 위에 뭔가가 떠있었다.
“응?”
배를 운전하던 최운성이 두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미소를 지었다. 한 손을 들더니 크게 외쳤다. 엔진 소리가 커서 크게 외쳐야 했다.
“무혁아! 저기에 섬이 보인다.”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듣고 두 눈을 크게 떴다. 앞에 있는 물체를 확인하고 그도 큰소리로 답했다.
“저 섬은 매향 남도입니다. 남도에서 조금만 더 가면 북도입니다. 제대로 찾아왔습니다.”
“알았어! 조금만 더 가자!”
최운성이 큰소리로 화답했다.
쾌속정이 속도를 더했다. 그렇게 남도를 가로질러 북쪽으로 향했다. 15분 정도 더 가자, 다른 섬이 보였다. 바로 임무혁의 고향 매향 북도였다.
“형! 저기에 섬이 보여!”
이민우가 섬을 발견하고 크게 외쳤다.
“왔구나!”
임무혁이 고향 섬을 보고 입을 크게 벌렸다. 참 오랜만에 찾은 고향 섬이었다.
그는 어릴 적에 매향 북도를 떠났다. 그 이후로 고향 섬에 간 적이 없었다. 그의 눈빛에 커다란 슬픔이 감돌기 시작했다.
매향 북도는 참사의 현장이었다. 비참함이 가득한 곳이었다. 22년 전 참사 이후로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고 말았다. 쓸쓸하고 가슴 아픈 폐허였다.
“형. 다 왔다!”
이민우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동생이 신이 나 보였다. 참사의 증거를 찾을 수 있다는 생각에 뜰 든 거 같았다. 그 증거로 백궁을 쳐야 했다.
“왔구나.”
이정길이 매향 북도를 보고 몸을 떨었다. 그곳에 그가 감춘 테이프가 있었다. 증거는 캠코더용 6mm 테이프 세 개였다. 테이프에 그날의 참사가 담겨있었다.
잠시 후 배가 낡고 오래된 선착장에 진입했다. 이젠 선착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무척 낡고 헐었다.
다른 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주인 잃은 배들이 태풍에 휩쓸려 먼바다로 흘러간 거 같았다.
쾌속정이 선착장에 정박했다. 배에서 사람들이 내렸다. 임무혁, 이민우, 최운성, 이정길이 걸음을 옮겼다.
“으으으! 좀 춥네.”
이민우가 몸을 떨며 말했다.
그럴만했다. 지금은 하루 중 가장 한기가 강한 새벽 3시였다. 설상가상으로 바다에서 강한 바람도 불어왔다. 세찬 바람에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이민우가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와 여기는 바람도 정말 세네!”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이며 답했다.
“그래, 여기는 원래 바람이 센 곳이야. 좀 걸어가면 바람이 잠잠해질 거야. 어서 가자. 이곳은 내 고향이야.
내가 길을 안내할게. 대참사 이후로 사람들이 다 떠났으니 바뀐 게 없을 거야.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일 거야.”
임무혁이 말을 마치고 앞장섰다. 그 뒤를 셋이 따랐다.
섬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들리는 발소리였다.
임무혁이 그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기억에 따라 길을 찾았다.
선착장 근처에 마을 길이 있었다. 마을 길은 차 한 대가 다닐 정도로 좁았다. 그 길이 섬을 가로질렀다.
마을 길의 옆은 수풀이었다. 예전에도 수풀이 무성했다. 지금은 수풀이 무성한 정도가 아니었다. 잡초가 아주 길게 자라서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정글 같았다.
임무혁이 잡초가 무성한 마을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세월이 흘러서 여기도 많이 변했구나. 사람의 흔적이 사라졌어.’
임무혁은 잡초가 무성한 마을 길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가 고개를 떨구었다.
10분의 시간이 지났다.
이장댁에 점점 가까워졌다. 이장댁은 마을 한가운데에 있었다.
“휴유~!”
임무혁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아픈 기억이 그의 가슴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22년 전 참사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날 어머니, 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었다. 잔칫집인 이장댁에 간다며 기뻐했다. 그렇게 집을 나섰다.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버지, 어머니!’
임무혁이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했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만 있다면 두 분에게 달려가 말하고 싶었다.
막걸리와 콜라를 먹지 말라고 다급하게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부모님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임무혁이 슬픔을 삼키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그러다 두 눈을 번쩍 떴다. 두 눈에 힘을 주었다. 저 앞에 뭔가가 보였다.
“저건!”
임무혁이 이를 악물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폭풍 질주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민우가 외쳤다.
“형! 어디가?”
최운성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이장댁에 가까워진 모양이군. 무혁이가 저렇게 서두르는 걸 보니 ….”
최운성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걷는 이정길을 바라봤다. 그러자 이정길이 급히 말했다.
“맞아, 이제. 다 왔어. 감나무 옆에 이장댁이 있어.”
“그렇군.”
최운성이 말을 마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도 22년 전 참사 현장에 있었다. 그곳에서 이순경과 김경장이 내민 술을 먹을 뻔했다.
그도 그 술을 먹었다면 저승행이었다. 다행히 이상함을 느끼고 술을 먹지 않아서 살 수 있었다.
그렇게 목숨을 건졌지만, 그에게도 커다란 불행이 닥쳐왔다. 남궁철이 휘두른 칼에 맞아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그래서 22년 동안 절름발이로 살아왔다. 그가 한 손으로 저는 다리를 꽉 잡았다.
정신없이 내달리던 임무혁이 걸음을 멈췄다. 그건 오솔길이었다. 오솔길을 따라 쭉 가면 이장댁이었다.
저 앞에 커다란 감나무가 보였다. 22년 전 감나무가 아직도 이장댁 앞에 있었다. 감나무는 여전했다. 변한 게 없는 거 같았다.
임무혁이 그 자리에 서서 오솔길을 살폈다. 이곳은 악몽과 같은 곳이었다. 그와 동생이 쓰러진 곳이었다.
이장 부인인 영희 엄마가 준 콜라를 먹고 둘이 실신했었다. 이곳도 감나무처럼 예전과 다름이 없었다.
“주리야!”
임무혁이 감옥에 갇혀있는 동생을 생각했다. 동생은 구치소에 들어갔다. 적의 손아귀에 있었다.
백궁이 동생을 해칠 것만 같았다. 동생을 어떻게든 구출해야 했다.
그래서 참사의 증거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는 증거를 협상 카드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다 왔군.”
임무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쓰라린 과거의 기억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3분 후 임무혁이 이장댁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장댁은 한마디로 처참했다. 모든 게 허물어졌다.
22년 전에는 야트막한 담이 집 주변에 있었다. 튼튼했던 담이었지만,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무너지고 말았다.
인간이 만든 인공물은 자연의 흐름을 이길 수 없었다. 이장댁도 마찬가지였다. 튼튼한 기와집이었지만. 지금은 폐허였다. 곧 무너질 것만 같았다.
임무혁이 마당으로 들어갔다. 넓은 마당이었다. 마당은 잡초가 무성했다.
22년 전 이 마당에서 마을 사람들이 동네잔치를 벌였다. 화초 재배로 큰 이득을 얻었다면 기뻐했다.
그들은 앞으로 닥칠 비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렇게 기쁜 마음으로 술과 음료를 마시다가 모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백궁이 32명을 가차 없이 버렸다.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들의 목숨을 거뒀다.
“으으으~!”
매향 북도 참사 생존자, 임무혁이 커다란 슬픔을 참을 수 없었다. 커다란 슬픔에 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잠시 후 이민우, 최운성, 이정길이 이장댁에 도착했다. 셋이 잠시 폐허가 된 이장댁을 살폈다.
임무혁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괴로워하고 있었다. 22년 전 비극이 되살아나 그의 어깨를 천근만근 짓눌렀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이민우가 입을 열었다. 일부러 씩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형! 이제 증거를 찾자! 반드시 복수해야 해! 그래야 형 부모님이 두 눈을 감지. 어서 움직이자! 지금은 슬퍼할 때가 아니야.”
그 소리를 듣고 임무혁이 고개를 들었다. 힘을 얻었는지 축 늘어트렸던 어깨를 폈다. 그가 힘을 내어 말했다.
“그래, 어서 찾자! 증거를! 지금 슬퍼할 때가 아니야!”
“그렇지!”
최운성이 힘주어 말했다. 그가 이정길에게 말했다.
“이순경, 증거는 어디에 있지? 어서 사실대로 말해! 허튼짓하면 이곳이 네 무덤이 될 거다.”
이정길이 대답 대신 이장댁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10초 후 입을 열었다. 힘이 없는 목소리였다.
“운성아, 증거는 집 안에 있어. 부엌으로 들어가. 부엌에 큰 쇠로 만든 상자가 있을 거야.
그 상자를 열어. 상자 안에 테이프 3개가 있어. 그런데 상자 뚜껑이 꽤 무거워. 강철로 만든 상자야. 셋이 같이 들어야 해.”
“오, 그래, 알았다. 튼튼한 곳에 보관했구나.”
최운성이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걸음을 옮겼다. 임무혁와 이민우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무혁아, 민우아. 부엌으로 들어가자, 부엌에 쇠로 만든 상자가 있어. 그 상자 안에 증거인 테이프 3개가 있어.”
“알겠습니다.”
이민우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가 입맛을 다셨다. 이제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
“흐흐흐!”
잠시 웃음을 흘리던 이민우가 이정길에게 걸어와 말했다.
“이순경 아저씨. 여기 감나무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우리가 나올 때까지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야 해요.”
이민우가 말을 마치고 허리춤에서 밧줄을 꺼냈다. 감나무 기둥에 이정길을 꽁꽁 묶고 두 손을 탁탁 털었다.
“이제 됐다.”
이민우가 임무혁과 최운성을 향해 걸어갔다. 그가 크게 외쳤다.
“갑시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
셋이 걸음을 옮겼다. 마당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다. 이민우가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끼익! 하며 문이 열렸다. 22년 동안 방치된 이장댁 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오랫동안 방치된 집답게 집 안이 엉망진창이었다. 거미줄과 먼지 천지였다.
“너무 어두워. 랜턴을 켜야겠어.”
최운성이 말을 마치고 품에서 랜턴을 꺼냈다. 랜턴으로 집을 비췄다.
“어서 주방을 찾아야 해요.”
이민우의 말에 최운성이 랜턴으로 집 안 곳곳을 비췄다. 불빛이 우측으로 향했을 때 낡은 싱크대가 보였다.
싱크대를 보고 이민우가 크게 외쳤다.
“아저씨, 저기에요! 주방이 저기에 있어요.”
“그렇구나, 저기가 주방이구나. 어서 가자.”
드디어 주방을 발견했다.
임무혁이 긴장감을 느꼈다. 그곳에 22년 전 참사를 기록한 증거, 테이프 3개가 있었다.
셋이 걸음을 옮겼다. 거실을 가로질러 오른쪽 구석에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삐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닥이 약해서 무너져내릴 거 같았다.
이민우가 주방 앞에서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긴장감을 뱉어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방으로 들어간 이민우가 뭔가를 발견하고 크게 외쳤다.
“사, 상자!”
이정길의 말대로 커다란 상자가 있었다. 강철로 만든 대형 상자였다. 폭과 너비가 족히 1m는 되어 보였다.
“상자가 있어요. 엄청나게 큰 상자에요.”
임무혁과 최운성도 상자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열죠. 흐흐흐!”
이민우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임무혁이 커다란 상자를 보고 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최운성도 마찬가지였다.
캠코더용 6mm 테이프는 아주 작은 물건이었다. 그런 물건을 이곳에 보관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았다.
임무혁과 최운성이 서로 쳐다봤다. 심상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편 집 바깥에는 꽁꽁 묶인 이정길이 이장댁을 무섭게 노려봤다.
눈빛이 깊은 어둠 속에서 빛났다. 무언가를 노리는 게 분명했다. 하이에나의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