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눈동자 1편 <백색 궁전>
짙은 어둠이 더욱 절정에 달했다.
감나무 앞, 이장댁이 고요 속에 잠겼다.
임무혁과 이민우, 최운성은 이장댁 주방에 있었다. 이정길은 마당 감나무에 묶여있었다.
셋은 참사의 증거를 찾았다. 이정길은 감나무에 묶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찬 바람이 불어왔다. 감나무 잎들이 마구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이정길이 두 귀를 쫑긋했다. 뭔가를 기다리는 거 같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눈이 점점 커졌다. 양 입술에 침을 잔뜩 묻히고 침을 꿀컥 삼켰다.
바로 그때!
콰아앙!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그건 엄청난 폭발음이었다. 폭탄 하나가 이장댁에 떨어진 거 같았다. 폭발음과 함께 기와지붕이 하늘로 치솟았다. 커다란 구명이 지붕에 생겼다.
이윽고 집이 마구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오래된 집이라 폭발의 충격을 이기지 못했다. 지붕에서 먼지가 일더니 그대로 폭삭 주저앉고 말았다.
쿵!
다시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먼지가 마구 일었다. 뽀얀 먼지가 사방을 뒤덮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정길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야아~!”
이정길이 크게 소리 질렀다. 그렇게 넘치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가 크게 외쳤다.
“하하하! 이놈들아 맛이 어떠냐? 내가 그냥 죽을 줄 알았냐? 하하하!”
이정길이 몸을 마구 흔들어댔다. 그렇게 밧줄을 풀려고 애썼다. 하지만 밧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이런 젠장!”
이정길이 인상을 팍 썼다. 그가 다시 용을 썼다. 어떻게든 밧줄을 풀고 싶은 거 같았다. 그렇게 한동안 난리를 쳤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이정길의 이마에서 커다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가 급히 중얼거렸다.
“이, 이대로 굶어 죽을 수 없어! 어떻게든 줄을 풀어야 해! 어떻게든!”
이정길이 다시 힘을 모았다. 그가 힘을 주려고 할 때 밧줄이 스르륵 풀렸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정길이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발밑에 밧줄이 떨어져 있었다.
참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던 이정길이 씩 웃었다. 그가 크게 말했다.
“풀리면 된 거지 뭐! 하하하!”
이정길이 양손으로 팔뚝을 어루만졌다. 한동안 꽉 묶여있어서 팔뚝이 아픈 거 같았다.
그렇게 잠시 팔뚝을 어루만지던 이정길이 씩 웃었다. 뒤에 있는 감나무를 바라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흐흐흐! 역시 감나무야. 실은 여기에 숨겼는데 말이야.”
이정길이 오른손으로 감나무 기둥을 쓰다듬었다. 이제 됐다는 표정을 짓고 사방을 둘러봤다.
앞에 폭삭 주저앉은 집이 있었고 다른 곳은 짙은 어둠 속에 깔려 있었다.
“이제 가자.”
이정길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이장댁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때
갑자기 차디찬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디 가려고? 이정길 아저씨!”
“뭐, 뭐?”
이정길이 그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감나무 뒤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감나무 뒤에서 검은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이민우였다. 이민우 뒤에 임무혁과 최운성이 있었다.
셋이 이정길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헉!”
셋을 확인한 이정길이 깜짝 놀랐다. 폭삭 무너진 이장댁과 함께 죽어야 할 셋이 멀쩡히 살아있었다.
최운성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이순경, 우리가 네 얕은꾀에 당할 줄 알았냐?”
임무혁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이순경 저자가 우리를 아주 무시했습니다. 그 대가를 치르게 해줘야 합니다.”
“안돼!”
이정길이 크게 소리 질렀다. 그가 뒤로 돌았다. 황급히 도망치려고 했다.
그때 우악스러운 손아귀가 이정길의 목덜미를 꽉 잡았다. 이민우의 손길이었다. 뒤이어 커다란 타격음이 들렸다.
퍽!
“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이정길이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그는 이민우의 매서운 주먹에 머리가 울렸고 턱이 깨질 듯 아팠다.
이민우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너는 더 맞아야 해! 100대는 더 맞아야 해!”
이민우가 말을 마치고 오른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최운성이 급히 말했다.
“민우야, 그만 때려! 이만하면 됐다.”
이민우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가 말했다.
“이제 시작입니다. 저를 말리지 마세요. 저놈 때문에 우리 모두 죽을 뻔했습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놈입니다.”
최운성이 한 손으로 감나무를 가리키고 말했다.
“이순경이 분명 말했어. 감나무 아래에 증거가 있다고 … 증거를 묻은 자가 땅을 파야 해. 이제, 그만 때려.”
이민우가 그 말을 듣고 잘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정길은 감나무 아래 땅을 파야 했다. 화풀이는 증거를 찾은 후에 해도 상관이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무혁이 최운성에게 말했다.
“아저씨, 배로 가서 삽을 가지고 올게요.”
“그래, 빨리 와. … 테이프도 여기에서 확인하자. 캠코더도 갖고 와.”
“알겠습니다.”
임무혁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쾌속정으로 향했다.
배신의 달인 이정길이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에서 도망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디에도 도망칠 데가 없었다.
실실 웃던 이민우가 이정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살벌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순경 아저씨, 땅을 잘 파면 때리지 않을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정길이 급히 답했다.
“네, 정말 열심히 땅을 파겠습니다. 믿어주세요. 몸이 부서져라, 땅을 파겠습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이민우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잠시 후 임무혁이 캠코더와 삽 두 자루를 들고 이장댁으로 돌아왔다. 이제 감나무 아래 땅을 파야 했다. 그 일은 이정길 몫이었다.
이정길이 삽 한 자루를 들었다. 자기 말대로 땅을 열심히 파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는 이민우가 있었다.
이민우는 다른 사람과 달리 용서가 없었다. 이민우 앞이라 더 열심히 일해야 했다.
5분의 시간이 흘렀다.
열심히 땅을 파던 이정길이 소매로 땀을 닦았다.
그 모습을 보고 이민우가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순경 아저씨. 쉬지 말고 계속해요. 지금 쉴 때가 아닙니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땀이 눈에 들어가서 ….”
이정길이 다시 삽을 들고 열심히 땅을 팠다.
10분 후, 땅을 1m 정도 팠을 때 이정길이 움찔했다. 그가 두 손으로 흙을 파헤쳤다. 잠시 후 한 상자를 들어 올렸다.
그건 철로 만든 작은 상자였다. 비타민 상자 크기였다.
상자 크기를 보고 최운성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그렇지, 6m 테이프는 손바닥 반 정도 크기인데 저 상자가 딱 맞지. 주방에 있는 상자는 너무나 컸어.
… 이순경 하나 물어보자. 왜 커다란 상자에다 폭탄을 설치했지?”
이정길이 숨을 헐떡이며 답했다. 삽질을 장시간 해서 녹초가 된 거 같았다.
“그, 그게 큰 상자를 열려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잖아. 상자를 여는 놈들을 한 방에 날려버리려고 했지.”
“그렇구나. 역시 잔머리를 잘 쓰는군.”
최운성이 고개를 끄떡였다. 옛 친구의 잔머리를 인정했다.
드디어 증거가 담긴 상자가 세상에 나왔다.
임무혁이 이정길이 든 상자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상자 안에 증거가 있다면 그건 무척 중요한 물건이었다.
구속된 동생을 구할 수 있었고 백궁을 칠 수도 있었다.
임무혁이 낮으면서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순경! 어서 상자를 열어. 내가 직접 열어. 그래야 허튼짓을 하지 않겠지.”
이정길이 급히 답했다.
“아, 알았습니다. 이 상자는 그냥 평범한 상자에요. 폭탄 같은 건 없어요.”
“그럼, 어서 열어!”
임무혁이 크게 외쳤다. 추상같은 호령이었다. 이에 이정길이 급히 상자를 열었다.
뚜껑이 열리자, 오랫동안 땅속에 봉인됐던 증거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임무혁, 이민우, 최운성이 상자 안 증거를 확인했다. 이정길의 말대로 6m 테이프 세 개였다. 이정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민우가 테이프 세 개를 보고 군침을 삼켰다. 그가 급히 말했다.
“그럼, 어서 확인해보자! 캠코더에 테이프를 넣어!”
“그래, 그래. 어서 영상을 확인하자.”
최운성이 맞장구쳤다.
임무혁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가 테이프 하나를 꺼냈다. 테이프를 캠코더에 넣고 전원 스위치를 올렸다. 액정 올리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22년 전에 녹화된 영상이 플레이됐다, 액정으로 그 모습이 드러났고 스피커로 그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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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댁 마당에 많은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그들 모두 입에 거품을 물었다. 많은 이들이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간혹 산 자들은 목을 잡고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그 참담한 현장에 여러 사람이 서 있었다. 그들은 모두 멀쩡했다. 그런데 어떤 구호 조치도 하지 않았다. 마치 쓰러진 사람들이 모두 죽기를 바라는 거 같았다.
“아이고 다리를 다쳤어요. 어서 치료해야 해요!”
머리가 훤한 남자가 말했다. 그는 남궁철이었다. 남궁철은 22년 전 이장댁 마당에서 최운성의 다리를 찔렀다.
최운성도 이에 지지않고 남궁철의 다리를 찔렀다. 그렇게 피장파장이었다.
남궁철이 한 다리를 절뚝거렸다. 한 젊은이가 그를 부축했다.
“칠칠맞은 놈!”
거친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이장댁 주인 전해식의 목소리였다. 전해식 이장이 옆에 있는 김덕기 경장에게 말했다.
“도망간 순경은 누구죠?”
김경장이 쩔쩔매며 답했다.
“그자는 최운성 순경입니다.”
전이장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최운성 순경이라는 자를 반드시 잡아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놈을 수배하겠습니다.”
전해식 이장이 잠시 사방을 둘러봤다.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제 VIP께서 오실 겁니다. VIP 매향 북도 방문은 철저한 비밀입니다.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명심하세요.
이를 발설하는 자는 죽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사람들이 크게 외쳤다. 그들은 모두 백궁 조직원들이었다.
잠시 후 일련의 사람들이 이장댁에 도착했다.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사람을 호위했다.
그 사람은 네이비색 정장을 입은 40대 남자였다. 키가 크고 매우 말랐다. 무척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쭉 찢어진 눈매에 매부리코였다. 입술도 아주 가늘었다.
전해식 이장이 네이비색 정장을 입은 남자에게 달려갔다. 그가 고개를 푹 숙이고 인사했다.
“부시장님, 전해식 이장입니다.”
“그렇군요. 이장님, 일은 잘 처리했나요?”
전이장이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타깃 중 한 명이 도망쳤습니다. 그자를 현재 추적 중입니다.”
“뭐라고?”
부시장이 발끈했다. 그가 한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전해식 이장이 두 눈을 꼭 감았다.
철썩!
따귀 맞는 소리가 들렸다.
부시장이 매서운 따귀를 때리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장님. 제가 성질이 좀 급해서 … 반드시 도망친 타깃을 잡으세요.”
“알겠습니다. 반드시 잡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전해식 이장이 한 손으로 붉게 물든 뺨을 어루만지며 답했다.
부시장이 걸음을 옮겼다. 그가 쓰러진 수많은 사람을 보며 말했다.
“우리 일은 그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방해하는 자는 모두 죽음이다. 그리고 배신자도 마찬가지다. 백색 궁전은 영원할 것이다!”
부시장이 말을 마치고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는 조롱이었다. 32명의 시신 앞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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