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 유강인 01_프롤로그_행운 빌라 살인 사건

탐정 유강인 01편 <행운 빌라 살인 사건>

by woodolee

서울시 가운산동 행운 빌라.


이름 그대로 행운이 가득한 빌라였다. 빌라는 위치가 참 좋았다. 10분만 걸어가면 지하철 5호선 ‘가운산역’에 갈 수 있었고 족발로 유명한 ‘가운산 전통시장’에도 갈 수 있었다.


1988년 11월 5일


그날은 역사적인 날이었다.

행운 빌라 101호에 첫 번째 입주민이 달착륙 같은 첫발을 내디뎠다. 첫 번째 행운의 주인공은 ‘가운산 1000원 김밥집’을 운영하는 40대 부부였다.

한 사람이 꿈을 이른 후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렇게 행운 빌라의 첫 단추가 끼워졌다. 이후 행운 빌라의 역사는 한마디로 파란만장했다. 행운과 비극이 엇갈리며 사람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12년 뒤

2000년 9월 01일

새벽 2시 행운 빌라


늦은 밤이었다. 찬 기운이 스멀스멀 모여들었다. 강풍도 쌩쌩 불었다. 거센 바람에 빌라 창문이 연신 덜그럭거렸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참 을씨년스러웠다. 거리를 떠돌던 길고양이들도 겁을 먹었는지 자취를 감췄다.

강풍이 불자, 짙은 먹구름이 몰려와 밤하늘을 뒤덮었다. 마치 검은 장막을 드리운 거 같았다.


“에험!”


어디선가 부스럭거리며 헛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행운 빌라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한 남자가 안방에서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는 301호 주인이었다.


- 행운 빌라 301호 거주자 강후식 -


강후식은 40대 후반 남자였다. 매우 마른 체격이었다. 가느스름한 얼굴에 이마가 좁았고 움푹 파인 볼에 광대뼈가 도드라졌다. 이목구비 중 코만 컸고 눈썹은 희미했다. 피부는 갈색톤이었다. 강한 햇볕에 그을린 거 같았다.

그 옆에 부인과 어린 아들이 있었다. 두툼한 요 위에 두꺼운 이불을 덮고 쿨쿨 자고 있었다. 둘 다 도둑이 업어가고 모를 정도로 곤히 잠들었다.

“음~!”

강후식이 부인과 어린 아들의 얼굴을 내려다봤다. 둘이 사랑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정색하고 중얼거렸다.

“집중해야 해!”

강후식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렇게 정신 차렸다.

차가운 공기가 스멀스멀 방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새벽녘 한기였다.

강후식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위에 소름이 돋았지만, 수행에만 집중했다.

10분의 시간이 흘러갔다.

강후식이 지그시 눈을 감고 앉아만 있었다. 그러다 뭔가를 나지막하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아우리 상 앙캉 앙 수라 …… 나우리 …… 마수라.”

이상한 말들이 강후식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딱 들어도 우리말이 아니었다. 동남아 말이나 신비로운 주문을 읊조리는 거 같았다.

한동안 뭔가를 읊조리던 강후식이 입을 딱 닫았다. 뭔가가 생각이 나지 않는 듯 인상을 팍 썼다. 짜증이 난 듯 거칠게 말을 내뱉었다.

“아이 씨! 기억이 안 나네. 그다음에 뭐였더라?”

강후식이 계속 혼잣말했다.

“이런, 어쩔 수 없네. 다시 봐야겠어. 요즘 들어 기억력이 좀 떨어지는 거 같아. 이걸 빨리 외워야 하는데 …….”

강후식이 품에서 작은 책을 꺼냈다. 책을 든 손을 미세하게 떨었다. 뭔가가 불안한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안방에는 셋만 있었다. 강후식과 세상 모르게 쿨쿨 자는 아내와 어린 아들밖에 없었다.

“아이, 이러지 마!”

그때,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건 잠꼬대였다. 건넛방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장성한 딸이 곤히 자면서 자기도 모르게 내뱉는 소리였다.

집 안은 매우 조용했다. 건넛방 잠꼬대까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젠장!”

강후식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책을 탁 펼쳤다. 천천히 페이지를 넘기며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눈동자가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눈빛도 반짝거렸다. 한 글자도 놓치지 않으려는 거 같았다.

5분 후, 강후식이 책을 덮고 자세를 고쳐잡았다. 이내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러갔다.

“으으으~!”

강후식이 피곤해 보였다. 눈이 서서히 감기더니 폭포수처럼 고개가 떨어졌다.

“아이고, 이제 자야겠네. … 밤이 너무 늦었어. 아함~!”

강후식이 크게 하품했다. 손에 든 책을 품에 고이 넣고 아내 옆에 누웠다. 곧 처자식처럼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잠시 후 딸의 잠꼬대와 아버지가 코 고는 소리가 협주곡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



새벽 4시


밤이 더욱 깊어졌다. 이젠 깊어질 때로 깊어진 밤이 그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한 그림자가 행운 빌라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그 그림자는 불길했다.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썼다. 그림자의 발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발소리였다. 거칠고 무서운 소리가 지상에 울렸다.

잠시 후 그 소리가 그쳤다. 검은 그림자가 행운 빌라 앞에 섰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위에 방범용 CCTV가 있었다.

“흐흐흐!”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CCTV 아래를 쓱 지나갔다. 공동 출입구 앞에 섰다.

검은 그림자가 한 손을 들었다. 손을 품에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건 반짝이는 물체, 핸드폰이었다.

검은 그림자가 어딘가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답신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삑!


2분 후 답신이 왔다.

“흐흐흐!”

문자를 확인한 검은 그림자가 빌라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15분 후 또 다른 검은 그림자가 행운 빌라로 다가왔다. 그림자의 실루엣은 앞선 실루엣과 자못 달랐다. 딱 봐도 중년 여인이었다. 파마머리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그녀는 행운 빌라 402호 입주민이었다.


- 행운 빌라 402호 거주자 라미경 -


라미경은 40대 초반 여자였다. 작은 키에 통통했다. 둥글둥글한 얼굴에 머리가 길었다. 곱슬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왔다. 이목구비는 또렷했다. 진한 색조 화장 덕분이었다.

그녀는 24시간 해장국집 주방 보조였다. 고된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이제 다 왔네. 빨리 가야지.”

라미경이 혼잣말하며 걸음을 재촉했다.

잠시 후 발소리가 그쳤다.

라미경이 행운 빌라 앞에 서서 빌라를 쭉 살폈다. 희미한 가로등 불이 빌라 앞을 비췄다.

침묵이 흘러내렸다.

라미경이 양 입술에 침을 덕지덕지 묻혔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공동 출입구로 향했다. 출입구 안으로 한 발을 들여놓았을 때, 갑자기 멈칫했다.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폈다.

중년 여인의 눈망울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순간, 긴장감이 흘러내렸다.

“음!”

어둠 속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라미경이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걸음을 옮겼다.

빌라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자, 센서 등이 켜졌다. 불은 밝지 않았다. 사방을 분별할 정도였다.

여자 발소리가 계속 들렸다.

라미경이 한발 한발 계단을 올라갔다.

“아이고! 힘들다!”

라미경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집은 4층이었다. 집으로 가려면 아직 멀었다. 앞으로 수십 개의 계단을 더 올라야 했다.

라미경이 손잡이를 꼭 잡고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그렇게 2층을 지나 3층에 다다랐다.

3층에 오르자, 센서 등이 켜졌다. 다른 층과 달리 유달리 빛이 약했다. 그래서 무척 어두컴컴했다.

라미경이 3층 복도를 지나 4층 계단에 한 발을 올려놨다. 그때!

“으윽!”

무슨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사람의 비명 같았다. 소름 끼치는!

“어?”

갑자기 들리는 소리에 라미경이 걸음을 멈췄다. 긴장한 듯 침을 꿀컥 삼키고 사방을 살폈다.

고요 속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라미경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어둠 속에서 흰자가 번들거렸다.

“문, 문이 열렸네? 웬일이지?”

라미경이 깜짝 놀랐다. 301호 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소리가 301호에서 난 거 같은데 ….’

라미경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내 호기심을 참을 수 없는지 301호로 향했다.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라미경이 301호 현관문 앞에 섰다.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문손잡이를 꽉 잡았다.

끼익! 하며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문이 열렸어요.”

라미경이 나지막하게 말하고 현관문을 반쯤 열었다.

집안은 꽤 어두웠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툭! 하며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응?”

라미경이 두 눈을 더욱 크게 떴다.

그때! 뭔가가 보였다.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아, 아이고! 이게 뭐야?”

라미경이 깜짝 놀란 나머지 현관문을 활짝 열어버렸다.

거실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커다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손에 뭔가를 쥐고 있었다. 날카로운 게 칼처럼 보였다.

날카로운 물체에서 뭔가가 뚝뚝 떨어졌다. 발밑에 검은 액체가 흥건했다.

손전등이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빛이 라미경의 얼굴로 향했다.

“헉!”

라미경의 두 눈이 보름달처럼 커졌다. 곧이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아악!”

커다란 비명이었다!

섬뜩한 비명이 마을 전체에 울려 퍼졌다.

잠시 후 다른 소리도 들렸다. 계단을 급하게 내려가는 소리였다. 쿵쾅! 거리는 소리가 빌라에 울려 퍼졌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공동 출입구를 향해 내달렸다.

큰 소리가 들리자, 빌라 각 세대에 불이 들어왔다.

“이, 이게 무슨 소리지?”

“비명 같은데 ….”

빌라 입주민들이 웅성거렸다. 그 소리가 점점 커졌다.

한 집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그 집은 부동산이었다. 행운 빌라 맞은편이었다.

부동산 출입문이 끼익! 하며 열렸다. 세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셋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을 때

후다닥! 소리가 크게 들렸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공동 출입구에서 뛰어나왔다.

“뭐야? 저놈! 잡아라!”

한 사람이 고함을 질렀다. 그가 괴한을 잡으러 뛰어갔다.

“이, 이게 무슨 일이지?”

“저 뛰어가는 놈은 누구야?”

“도둑인가?”

남은 두 명이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그렇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 악!”

소름 끼치는 비명이 또다시 울려 퍼졌다.

두 번째로 들리는 비명에 마을 사람들이 더는 참지 못하고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잠옷 바람으로 행운 빌라로 달려갔다.

곧이어 비명과 통곡이 행운 빌라에서 연거푸 들렸다.

빌라 앞에서 라미경이 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했다.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 어르신이 앞으로 나왔다. 두려움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라미경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무슨 일이 있는 게요? 혹, 도둑이 들었소?”

라미경은 계속 바들바들 떨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마을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영문을 알 수 없어서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으으으~”

라미경이 신음을 내뱉었다. 커다란 심적 충격을 토해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3, 301호에 …”

“301호라고요? 거기는 강선생 댁인데.”

라미경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녀가 침을 꿀컥 삼키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할 때, 빌라 1층 센서 등이 팟! 하며 켜졌다.

입주민 대여섯 명이 공동 출입구에서 뛰어나왔다.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봤다. 그들의 얼굴이 도화지처럼 새하얬다. 마치 못 볼 걸 본 거 같았다. 라미경처럼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벌벌 떨기만 했다.

“큰일이 났구나!”

“맞아요! 그런 거 같아요.”

“대체 무슨 일이지?”

마을 사람들이 직감했다. 행운 빌라에 큰일이 났다는 것을 모두 알아챘다. 하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벌벌 떨고 있는 입주민들을 보고 선뜻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행운 빌라 앞에 당혹감이 감돌았을 때

꺼졌던 1층 센서 등이 다시 켜졌다. 공동 출입구에서 20대 초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헐렁한 잠옷 차림이었다.

“어~! 피가!”

마을 사람 중 하나가 크게 외쳤다.

잠옷 차림 젊은 여자는 피범벅이었다. 그녀가 한 손을 들었다. 손도 붉은색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무척 떨리는 목소리였다.

“아, 아버지가 ….”

젊은 여자가 말을 잇지 못했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선애야!”

“강선애!”

젊은 여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몇몇 사람이 그녀를 부축하러 달려갔다.

그때 행운 빌라 주민 하나가 크게 소리쳤다.

“3, 301호 사람들이 주, 죽었어요!”

“뭐라고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괴로운 침묵이 흘러내렸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 귀를 의심했다. ‘사, 살인 사건이라니!’

평온했던 마을에 갑자기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



앵 앵!


저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가 신고한 모양이다. 순찰차도 보였다.

구급차가 행운 빌라 앞에 도착했다. 구급 대원들이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젊은 여자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다. 이에 들것을 들고 그녀에게 달려갔다.

순찰차도 도착했다.

경찰 둘이 차에서 내렸다. 마을 주민들이 경찰에 달려가 큰일이 났다고 호소했다.

“알겠습니다. 현장을 확인하겠습니다.”

경찰 둘이 빌라 안으로 들어갔다.

쿵쿵!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 둘이 301호 현관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현관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거실이 훤히 보였다.

“자, 들어가자고!”

경찰 둘이 301호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과 안방, 건넛방을 돌아다니며 사태를 파악했다.

잠시 후 경찰 둘이 빌라 밖으로 나왔다. 둘 다 이마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경찰 하나가 순찰차로 돌아가 본부에 무전을 날렸다.

“5호 차량입니다. 가운산동 행운 빌라 301호에 … 일가족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무척 처참한 상황입니다.”

경찰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모두 돌처럼 굳어버렸다.


그렇게 행운 빌라에 처참한 비극이 일어났다.


행운 빌라에 깃들여 있던 ‘행운’이 이날부터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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