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저 멀리에 신우 집이 보였다.
싸릿대로 울타리를 친 아담한 초가집이었다.
울타리 안에 키가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심은 나무였다. 고인이 된 신우 할아버지가 스물다섯 살 때 심은 나무였다.
느티나무는 신우 집안의 역사와 같았다. 오랜 세월 햇빛과 양분을 먹으며 아주 잘 자랐다.
한 아름 굵은 기둥이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솟구쳤고 기둥에서 솟아난 큰 가지들은 사방으로 쭉쭉 뻗었다.
작은 가지에서는 어린잎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냈다.
잎들 사이로는, 봄바람 새색시 같은 꽃들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참 보기 좋은 나무였다. 느티나무는 이렇게 보기 좋을 뿐만 아니라. 쓸모도 꽤 있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는 피서지였다. 나무 아래 있으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땀을 식혔고, 따가운 햇빛을 막아주는 그늘이 되었다.
잎이 다 떨어지는 한겨울에는 제법 운치가 있었다. 가지에 소복이 눈이 쌓이면, 하얀 옷을 입은 선비가 시를 읊을 법했다.
신우 아빠와 할아버지가 글을 알았다면 벌써 여러 편의 시를 지었을 거 같았다.
느티나무는 집안의 역사이자, 보물 같은 존재였다. 이 느티나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집주인인 신우 아빠였다.
느티나무는 아빠의 사랑을 잘 아는 듯, 고된 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그를 제일 먼저 맞아주었다.
바깥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아빠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었다. 느티나무를 보며 항상 인사했다.
“오늘도 느티나무가 잘 있구나.”
그리고 그 아래에 머물면 과거를 회상하는 듯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나무 기둥에 살포시 손을 대고 가볍게 두드리며 오늘 하루 무사함을 감사했다.
간혹가다, 아빠가 나무 밑에서 너무 오래 머물면, 신우가 쪼르르 아빠에게 달려갔다. 이 나무가 왜 그리 좋냐고 따져 물었다.
“아빠 나무에 꿀단지가 있어요?”
“…….”
그럴 때면 늘 그렇듯, 아빠는 별다른 말 없이 웃곤 했다.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듯 눈빛이 아련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른인 촌장이 두 손에 커다란 봉지와 장기판, 장기알을 들고 신우 집을 찾아왔다.
“촌장님, 오셨어요.”
“제수씨 안녕하세요. 동생은 집에 있죠?”
촌장은 깍듯이 인사하는 엄마에게 커다란 봉지를 건네고, 아빠를 찾았다.
“아이고, 형님!”
아빠가 촌장을 보고 반가운 나머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촌장이 한 손으로 버드나무를 가리키더니, 이 밑에서 장기를 두자며 아빠를 졸라대기 시작했다.
“동생, 버드나무 아래에서 시원하게 장기 한판 두자고! 여기에서 두면 내가 백전백승이야.”
“아이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바람이 차요.”
아빠는 바람이 차다며 만류했지만, 촌장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렇게 둘이 느티나무 아래에 돗자리를 깔고 장기 놀이를 시작했다.
엄마는 부뚜막에서 술상을 차리고 저녁밥을 지었다. 엄마가 앞치마로 손을 닦고 신우를 불렀다.
“아들! 술상을 촌장 어른과 아빠께 갖다 드리렴.”
엄마의 낭랑한 목소리에 방에서 뒹굴던 신우가 벌떡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엎어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엄마, 조심할게요!”
신우가 술상을 받고 조심스럽게 느티나무로 향했다.
“어이 동생! 이 나무도 참 많이 자랐구먼!”
촌장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요. 형님! 돌아가신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심은 나무니 … 세월이 많이 흘렀죠.”
“그렇지! 세월이 참 빠르네. 춘부장 어른이 생각나는구먼. 자네 걱정 많이 하셨는데. … 그건 그렇고, 장일세!”
촌장의 포와 차가 아빠의 왕을 꼼작 못하게 포위했다. 도망갈 데가 없었다. 외통수였다.
“어?! 이런!”
아빠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빠가 잠시 장기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멋쩍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형님! 한 수 무르지요.”
“뭔 소리야! 아니 될 말일세. 승부의 세계에 무르기라니. 그런 것이 어디에 있나. 벌주 받아야지.”
“헤헤헤!”
술상을 들고 아빠 옆에 서 있던 신우가 배시시 웃었다. 아빠와 촌장 어른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웃음이 절로 나왔다.
“아, 신우가 왔구나! 그사이에 많이 컸네. 술상도 들고 왔네. 힘들었겠구나. 어서 바닥에 놓으렴.”
촌장이 신우를 반갑게 맞이했다.
신우가 술상을 바닥에 살포시 내려놓자, 촌장이 신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우야. 내가 엄마한테 사이다를 건넸어, 이따 밥 먹고 달라고 해.”
“사, 사이다요!”
사이다라는 말에 신우의 두 눈이 쟁반처럼 커졌다.
신우가 입을 쩍 벌렸다.
그는 달고 톡 쏘는 사이다를 한번 맛본 후 온몸이 짜릿함을 느꼈다. 그 맛을 잊을 수 없었다. 이에 냅다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사이다 주세요! 얼른요!”
두 눈을 대문짝만하게 크게 뜨고 엄마에게 달려가는 신우를 보고 아빠와 촌장이 웃음보를 터트렸다.
“하하하!”
“아이고, 귀여워라!”
부뚜막에 들어간 신우가 급히 말했다.
“엄마! 사이다요!”
“뭐? … 지금은 안돼.”
엄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밥 먹은 다음에 먹어야 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이. 지금 주세요!”
엄마 말이 들리지 않는 듯 신우가 계속 졸라댔다.
“이놈이!”
엄마의 미간이 점점 좁아졌다. 떼를 쓰는 신우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너 엄마 말 안 들으면 맴매한다.”
“앗! 아니, 아니에요!”
맴매라는 말에 신우의 입이 쑥 들어갔다.
“자. 술 한잔하지.”
“좋습니다. 술 한잔 먹고 다음 판 하죠. 다음엔 제가 이깁니다.”
술잔이 정겹게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와 촌장이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술 한잔을 마신 후, 소매로 입을 닦고 새로운 판을 시작했다.
신우가 숨을 헐떡이며 사립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누렁이가 신우를 보고 반갑게 꼬리를 흔들며 마중 나왔다.
누렁이는 신우네에서 키우는 개였다.
아담한 덩치에 다리가 짧은 발발이었다. 털빛이 누런색이어서 아빠가 별생각 없이 누렁이라고 이름 지었다.
누렁이가 팔짝팔짝 뛰면서 신우에게 안겼다.
“흐흐흐! 우리 누렁이!”
누렁이의 환대에 신우의 기분이 좋아졌다. 집으로 달려오면서 걱정했던 일을 금세 잊어버렸다. 엄마가 화낼지도 모른다는 염려였다.
“엄마! 저 왔어요.”
신우가 엄마를 찾으며 낭랑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놈 새끼! 왜 이제야 왔어.”
엄마가 부엌에서 나오면서 역정을 냈다.
“엄마가 시간을 지키라고 했잖아! 아빠가 기다리시면 어떡할 뻔했어?”
엄마의 불호령에 놀란 나머지, 신우의 어깨가 자라처럼 움츠러들었다.
“아빠한테 갑자기 일이 생겨서 … 좀 늦게 오신다고 연락이 왔기에 망정이지.”
한 시간 전, 아빠 절친인 길동이 아빠가 신우네를 찾아왔다. 신우 아빠가 좀 늦는다고 엄마에게 소식을 전했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테니, 다행인 줄 알아.”
화가 난 엄마의 눈치만 보던 신우가 이번은 봐준다는 말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자기 품에 안기는 누렁이와 눈을 마주치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다정한 목소리였다.
“참 다행이다. 누렁아!”
이에 화답하는 듯, 누렁이는 초롱초롱한 큰 눈망울로 신우를 쳐다보며 연신 꼬리를 흔들어 댔다.
엄마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서 도시락을 챙겼다. 부뚜막에 쌓여 있는 음식들을 차례차례 보자기에 넣고 꽁꽁 싸서 묶었다.
신우는 그동안 누렁이와 막대기 잡기 놀이를 했다.
신우가 누렁이 보고 “옜다!”하고 막대기를 던지면 누렁이가 신나게 달려가서 막대기를 물어왔다.
잠시나마 둘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신이 나게 놀았다. 누렁이는 그동안 신우가 없어서 심심했던 모양인지 사방팔방 신나게 뛰어다녔다.
잠시 후, 엄마가 짐을 다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철없는 아들이 누렁이를 잡으려고 마당을 어지럽게 뛰어다니고 있었다.
“신우야! 그만!”
엄마가 신우를 보고 크게 소리쳤다. 엄마의 큰 소리에 신우가 놀라서 동작을 멈췄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가 양손에 큰 짐을 들고 있었다. 짐을 든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신우에게 고갯짓했다.
“네! 엄마.”
신우가 잽싸게 엄마에게 달려가 짐을 받았다. 짐이 꽤 묵직했다. 안에서 고소한 냄새가 났다.
“이 냄새는!”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이 영 궁금한지 신우의 입에서 군침이 흘러나왔다.
누렁이는 더 놀고 싶은지 연신 꼬리를 흔들며 그에게 뛰어올랐다.
“누렁아, 오늘은 이만하자.”
신우가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독여 주었다.
엄마는 비어있는 한 손으로 아들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은 다정하게 길을 나섰다.
누렁이는 멀어져 가는 둘을 바라보면서 잘 다녀오라는 듯 꼬리를 열심히 흔들어 댔다.
따사롭고 한가한 봄날이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엄마가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은지 연신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걸음이 나비처럼 가벼웠다.
신우는 엄마의 마음이 봄바람에 녹는 고드름처럼 사르르 풀린 것을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모자가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었다.
신우는 산천에 피어있는 알록달록한 꽃과 나무를 보고 이름이 궁금했다. 아울러 뭐가 그리 바쁜지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노란색 나비를 눈으로 뒤쫓으며, 그 이름도 궁금했다.
“엄마! 저 나비 이름이 뭐예요?”
“응, 그건 노랑나비.”
“에이 그러면 파란색 나비는 파란 나비예요?”
“그렇지.”
“엄마는 순 엉터리야!”
“이놈 자식이 엄마에게 못하는 말이 없어!”
“잘못했어요, 엄마,”
그렇게 신우와 엄마가 아옹다옹하며 흥겹게 걸어갔다.
엄마는 나날이 궁금증이 많아지는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이제는 학교에 가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목적지는 이 마을의 명소인 구산 절벽이었다. 절벽은 마을 서쪽, 구산이라 부르는 높은 산에 있었다.
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 구산 정상에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밑으로 기암절벽이 있었다. 이를 구산 절벽이라고 불렀다.
천 길 낭떠러지 절벽 밑으로는 깊은 냇가가 흘렀다. 이 냇가의 물은 언제나 맑고 시원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냇가를 선녀탕이라고 불렀다.
매달 보름달이 뜨면 선녀들이 이곳으로 내려와, 목욕한다고 너스레를 떨곤 했다. 하지만, 목욕하는 선녀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와 신우가 구산으로 올라가는 오솔길에 접어들었다. 한참을 걸어서 구산 정상에 도달했다.
정상에는 열댓 명이 쉴 수 있는 넓은 공터가 있었다. 모자가 공터에 있는 아담한 바위에 걸터앉았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땀을 식혔다.
공터 한가운데는 넓은 식탁 같은 바위가 있었다.
엄마가 그 바위 위에 보자기를 펼치고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쌀밥과 김치, 전, 과일 등 소박하지만 맛깔스러운 음식이 펼쳐졌다.
신우는 엄마의 손길을 따라서 펼쳐지는 음식을 보면서 군침을 삼켰다. 그러다 은근슬쩍 전으로 손을 쑥 내밀었다. 이를 본 엄마가 재빠르게 신우의 손을 내리쳤다.
“짝!”
“아야!”
“아빠가 와야 식사하지. 좀 기다려.”
엄마가 고개를 흔들며 신우를 훈계했다. 신우는 무안한지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픈 손을 어루만지며 아빠가 어서 빨리 오기만을 고대했다.
하늘이 맑고 푸르렀다. 바람은 시원했다. 맑고 화창한 봄기운에 세상의 모든 생명이 즐거운 합창을 하는 것 같았다.
신우에게 오늘은 어떤 날보다 기쁜 날이었다.
평상시 사사건건 대립했던 마석에게 본때를 보여준 날이었다. 아빠 생일도 아닌데 이렇게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마석은 촌장의 아들이었다. 촌장은 신우에게 참 잘해주지만, 촌장 아들인 마석과는 앙숙이었다.
내일도 오늘처럼 기쁜 일이 연속이면 더할 나위가 없었다.
그때 다람쥐가 음식 냄새를 맡고 나무에서 고개를 쑥 내밀었다.
신우는 조그마한 갈색 다람쥐를 보고 신이 나서 뒤쫓아갔다. 다람쥐도 질세라 나무를 신이 나게 타올랐다.
“다람쥐가 어디 갔지?”
신우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람쥐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기웃거렸다. 하지만 다람쥐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도망갔네.”
제풀에 지친 신우가 자리에 풀썩 앉았다.
엄마가 음식을 다 차리고 아빠를 기다렸다. 아침 일찍, 아빠가 한 말이 있었다. 일하러 나갈 때 한 빙그레 웃으며 한 말이었다.
“여보, 좋은 일이 있을 거야.”
“그게 뭐예요?”
엄마는 갑작스러운 아빠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속으로 무슨 일이 생긴 건가 궁금해하며 고개를 갸우뚱했었다.
이제 시간이 훌쩍 지나서 아빠가 올 때가 다 됐다.
‘이제 오시겠지.“
엄마는 궁금증이 곧 풀리리라 생각하며 아빠가 올라올 산길을 하염없이 바라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