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04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04화_꽃신과 학자금


구산마을을 가로지르는 큰길을 따라가면 작은 시내가 있었다. 이 냇가를 건너면 작은 오르막이 나왔다.


이 오르막을 따라서 올라가면 정상에 초가집이 있었다. 널찍한 마당에 튼튼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3칸짜리 집이었다.


다른 집과 달리 사랑방이 있는 큰 집이었다. 사랑방 문을 열면 마을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집이었다.


이 집은 마을의 대소사를 관장하는 촌장댁이었다.


촌장은 선대부터 이곳에 살아온 중년의 신사였다.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었다. 인상도 참 좋았다. 항상 웃는 낯으로 사람을 대해 평판이 좋았다. 어른에게 공손했고 이웃에게 잘 베풀었다.


그는 벌써 10년째 마을의 촌장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동안 무탈하게 마을을 잘 이끌어왔다.


하지만, 3년 전부터 광물 사업을 시작한 이후, 요즘은 여러모로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갑자기 구리를 비롯한 광물 값이 많이 뛰어올랐다. 이를 미리 대처하지 못해 자금난에 빠지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얼굴 한편에 수심이 드리워지는 날이 많았다.


“아이고, 빨리 가야겠다.”


신우 아빠가 촌장 집 사립문으로 걸어갔다.


그는 구산 정상에서 자기를 기다릴 처자식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촌장에게 서둘러 작별 인사를 해야 했다.


그가 급하게 촌장을 불렀다. 큰 목소리였다.

“형님! 이제 가보겠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촌장이 사랑방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왔다.


“아니! 벌써 가게?”


촌장이 미소를 지으며 신우 아빠를 말했다.


신우 아빠와 촌장은 나이 차이가 좀 났지만, 어릴 때부터 막역한 사이였다.


선대인 촌장 아버지와 신우 할아버지도 막역한 사이였다. 둘은 왕래가 잦았고 서로 친하게 지냈었다. 한마디로 이웃사촌이었다.


촌장 집안은 함경도 일대에서 잘 사는 집안이었다. 그러다 탐욕스러운 관리의 수탈을 피해 간도로 이주했다.


촌장 아버지는 물려받은 재력과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간도에서 넓은 땅을 소유한 유지가 되었다. 그 덕택에 촌장은 서당에 가서 글공부할 수 있었다.


반면 신우 아빠는 가난한 빈농의 자식이었다. 그도 막역한 사이인 촌장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 어릴 적부터 고된 농사일을 해야만 했다.


두 집안이 간도 구산마을에 정착한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꼬마였던 신우 아빠는 넓은 어깨와 강한 턱을 가진 청년으로 성장했다. 이 근방에서 힘이 세기로 유명했고, 동네에서는 성실한 일꾼으로 통했다.


항상 과묵했지만, 한 번 힘을 썼다 하면 장정 서너 명의 일을 거뜬히 해냈다.


신우 아빠가 촌장에게 정중히 말했다.


“형님! 오후에 안사람과 신우하고 소풍 가기로 약속했어요. 일도 이제 다 끝났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그럼, 가봐야지. 참! 잠깐만 기다려봐.”


촌장이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말을 멈췄다. 고개를 돌리더니 부엌에 있는 부인을 불렀다.


“여보! 남은 떡 좀 가져와 봐. 신우 아빠가 오늘 소풍 간다네. 빈손으로 보낼 순 없잖아!”

“알았어요! 잠깐 기다리라고 하세요!”


부엌에서 일하던 촌장 부인은 크게 외쳤다.


촌장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남은 떡이 좀 있어서 …. 가져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형님.”


신우 아빠가 깍듯이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했다.


잠시 후, 촌장 부인이 부엌에서 나왔다. 신우 아빠를 향해 총총 걸어왔다.


그녀는 후덕한 인상의 중년 여인이었다. 짤막한 키에 통통한 몸매였다. 신우 아빠를 반갑게 부르더니 떡 한 봉지를 건넸다.


“신우 아빠, 자 받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형수님.”

신우 아빠가 떡 봉지를 가슴에 품고 촌장 부부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다.


“별거 아니야. 어서 가봐. 제수씨하고 신우가 기다리잖아.”


“맞아요. 신우 아빠, 어서 가세요.”


촌장 부부가 별일 아니라며 그를 배웅했다.


“빨리 가야겠다.”


신우 아빠가 구산 절벽을 향해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자기를 기다리는 처자식을 빨리 보고 싶었다. 이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자, 구산 정상이 한눈에 보였다. 이에 기쁜 나머지 안사람과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여보! 나 왔어요. 신우야! 아빠 왔다!”


“이 소리는?”


“아빠가 온 거 같아요.”


멀리서 들리는 아빠의 소리를 듣고 엄마와 신우가 부리나케 마중하러 나갔다.


신우 아빠가 정상을 향해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엄마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아빠는 아내와 아들을 어서 보고 싶은지 쏜살같이 정상으로 올라왔다.


“여보! 이제 오면 어떡해요!”


엄마가 아빠에게 삐진 듯 등을 돌리며 새침하게 말했다.


“이런 많이 기다렸지, 늦어서 미안해.”


아빠가 멋쩍게 웃으며 손으로 머리를 긁었다.


엄마는 아빠의 말에 화가 풀린 듯 고개를 돌려 아빠의 얼굴을 다정하게 바라봤다.


아빠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혀 있었다.


“아이고! 이 땀 좀 봐!”


엄마가 소매를 들어서 아빠의 땀을 정성스럽게 닦았다. 섬세한 손길이었다.


잠시 후


아빠와 엄마, 신우가 나란히 앉았다. 맛있는 점심 식사가 펼쳐진 야트막한 바위 근처에 모여 앉았다.


“아! 잠깐, 줄 게 있어. 좀 기다려봐.”


아빠가 말을 마치고 품에서 커다란 봉지 두 개를 꺼냈다. 한 봉지는 신우에게 건네고, 다른 봉지는 엄마에게 건넸다.


“이게 뭐예요? 아빠?”


신우가 무척 궁금한 표정으로 봉지를 열었다. 안에 촌장댁에서 받아온 맛있는 떡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우와! 떡이다.”


신우가 맛난 떡들을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촌장님이 수고했다고 주신 떡이야. 신우가 떡을 참 좋아하잖아.”


“그렇군요. 촌장님한테 또 신세를 지네요.”


엄마가 환히 웃으며 답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말했다.


“어서 봉지를 열어봐.”


“네, 알겠어요.”


엄마가 미소를 짓고 커다란 봉지를 열었다.


봉지에 예쁜 새 신이 들어있었다.


신발 앞코에 매화 두 송이가 은은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얀 바탕에 붉은 꽃이었다. 설산에 고고하게 피어 있는 매화 같았다.


“어머! 정말 이뻐라!”


엄마가 새 신을 보고 기뻐서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당신 비녀에 매화 장식이 있잖아. 그래서 깔 맞춤했지. 하하하!”


아빠가 엄마의 비녀를 보며 말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너무 이쁘다! 한번 신어볼게요.”


엄마가 새 신을 조심스럽게 신었다. 치마를 살짝 들어 올려 그 고운 자태를 남편과 신우에게 뽐냈다.


그렇게 신우 가족이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이제 식사를 시작해야 했다. 점심 먹기에 좀 늦은 시간이었다. 어서 서둘러야 했다.


신우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서 맛있게 점심을 먹기 시작했다.


신우는 쌀밥에 김치, 전, 과일, 떡을 먹으니 ‘오늘이 잔칫날인가?’ 하고 착각할 정도였다.


맛있는 음식에 너도나도 젓가락이 바삐 움직였다.


맛있는 점심 식사 후, 단란한 가족은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편하게 앉았다.


엄마는 모처럼 나온 소풍에 새 신까지 신으니 기분이 날아갈 거 같았다. 이에 자기 장기인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구슬픈 가락에 청아한 목소리가 옥구슬 굴러가듯 사방에 퍼져나갔다.


“역시 꾀꼬리가 따로 없어. 명창이야!”


아빠가 연신 손뼉을 치며 엄마에게 명창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는 아빠의 응원에 힘입어 한 곡조를 더 불렀다.


엄마의 노래를 가만히 듣던 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구석으로 가서 자치기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신우는 엄마의 노래보다는 자치기가 더 좋았다. 열심히 놀고 싶을 때였다. 그가 작대기를 들고 돌을 연신 멀리 쳐 냈다.


해가 점점 저물어갔다. 즐거운 소풍도 파할 때가 되었다.


엄마와 아빠가 가파른 절벽 위에 서서 마을을 내려다봤다.


조용하고 평안한 정경이었다.


잠시 뒤, 엄마가 아빠에게 말했다.


“여보! 신우가 소학교 갈 때가 지나도 한참 지났잖아요. 올해에는 반드시 소학교를 가야 해요.”


아빠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건 나도 잘 알지. 그런데 아직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서 ….”


아빠가 속이 상한지 말을 맺지 못했다.


“여보! 촌장님한테 예전에 빌려준 돈이 있잖아요. 그 돈을 돌려받으면 안 될까요?”


엄마가 촌장한테 빌려준 돈 얘기를 꺼내자 아빠의 안색이 갑자기 하얗게 변했다.


“형님께서 …알아서 주시겠지. 내가 어떻게 돈을 달라고 재촉을 해. 그건 못해.”


아빠가 주저하며 말했다.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당신처럼 하다간 평생 돈 못 받아요. 신우를 생각해서 내키지 않더라도 촌장님을 찾아가세요.”


엄마가 정색하며 아빠를 다그쳤다. 엄마의 단호한 표정에 아빠가 뜨끔했다. 아내의 눈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빠가 잠시 입을 열지 못하다가, 어렵게 입을 뗐다.


“아 알았어. 당연히 받아야지. 신우를 나처럼 까막눈으로 키울 수는 없지. 그건 돌아가신 아버지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신우를 어떻게든 학교에 보내라고 하셨어.”


아빠가 할아버지의 유언을 떠올리며 말했다.


해가 서쪽으로 떨어지자 노을이 점점 짙어져만 갔다. 붉은빛 노을에 신우 가족의 얼굴도 모두 붉게 물들었다.


이제 정상에서 내려가야 할 시간이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신우 가족이 짐을 챙겼다. 서둘러 짐을 챙겨서 하산했다.


집으로 돌아갈 때도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엄마의 낭랑한 목소리에 숲속의 새들도 귀 기울이는 듯 조용했다.


날이 완전히 저물었다.


신우 아빠가 길목에서 처자식과 헤어지고, 홀로 촌장 집으로 향했다.


그는 너무 늦게 방문하면 실례라고 생각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걸은 끝에 촌장 집 앞에 다다랐다.


“이거 참!”


신우 아빠는 사립문 앞에서 잠깐 서성였다. 그러다 이내 결심을 하고 촌장을 불렀다.


“형님! 저예요. 신우 아빠예요.”


“어? 이 소리는?”


방에서 쉬고 있던 촌장이 친구의 부름에 한달음에 나왔다. 동생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이 동생! 늦은 시간에 어쩐 일이야?”


촌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늦은 시간에 방문한 친구의 용무가 자못 궁금했다.


“저어, 형님! 죄송하지만 ….”


신우 아빠가 머뭇거렸다. 촌장이 궁금한 지 두 눈을 크게 떴다. 신우 아빠가 힘들게 말을 이었다.


“제가 예전에 형님께 빌려준 돈이 있잖아요. 조만간에 갚을 수 있나요?”


“조, 조만간에 갚으라고?”


촌장이 의외란 듯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님, 신우가 올해에는 소학교에 꼭 가야 해서 이렇게 부탁합니다.”


신우 아빠가 몸을 숙이며 간절하게 사정하기 시작했다.


“그건, 좀 곤란한데. 지금은 그런 큰돈이 나올 데가 없어.”


촌장이 신우 아빠의 청을 거절했다. 그의 얼굴이 굳어졌다.


신우 아빠가 재차 사정했다.


“형님, 꼭 부탁드립니다. 작년 여름까지는 꼭 갚는다고 하셨잖아요.

형님 아들, 마석은 학교에 다니잖아요. 신우를 저와 같은 까막눈으로 키울 수는 없습니다.”


신우 아빠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을 마치고 촌장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꽉 붙잡았다.


“이거 왜 이래?”


촌장이 아연실색했다. 신우 아빠의 간절한 청이 부담스러운지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그렇게 둘이 아무런 말 없이 한동안 서 있었다.


둘 다 괴로운 순간이었다.


언덕 위 초가집에 정적이 흘렀다.


밤이라 어느 때보다도 고요했다.


“손을 놔!”


촌장이 인상을 쓰며 말했다. 신우 아빠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자기 손을 신우 아빠의 손에서 빼내고 싶었다. 하지만 강한 완력 때문에 빼낼 수가 없었다.


‘젠장!’


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신우 아빠가 확답을 들을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 같았다.


“휴우~!”


결국, 촌장이 크게 숨을 내쉬고 성질을 내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주면 되잖아!”


짤막하고 퉁명스럽게 답이었다.


촌장의 말에 신우 아빠가 안도하고 손을 풀었다.


“아이고 아파라!”


촌장이 잡혔던 손을 계속 어루만졌다. 꽤 아팠던 거 같았다.


신우 아빠가 연신 고개를 숙이며 크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이번 달 말까지는 꼭 부탁합니다.”


“알았어!”


촌장이 말을 마치고 기분이 상한 듯 뒤로 획 돌아섰다.


“혹 기분이 상하셨어요?”


신우 아빠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촌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친한 형인 촌장이 기분이 상한 게 분명했다.


“이런!”


신우 아빠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잠시 무안한 표정을 짓다가 촌장한테 넙죽 인사하고 집 밖으로 황급히 나갔다.


조심스럽게 사립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신우 아빠의 발걸음 소리가 점점 사그라들었다.


촌장이 슬그머니 고개를 돌려 신우 아빠를 찾았다.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신우 아빠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일자무식이 어때서! 너처럼 일만 잘하면 됐지!”


촌장이 기분이 몹시 상했는지 큰 소리로 비아냥거렸다.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안방에서 다리미질하며 둘 사이의 대화를 엿듣던 촌장 부인이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부인이 등장하자, 촌장이 하소연하는 듯,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촌장 부인이 인상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외쳤다.


“학교야 나중에 가면 되지, 우리가 쟤네들한테 어떻게 했는데 어쩜 이럴 수가 있어요! 돈밖에 모르는 사람들이네요. 그만 기분 풀어요.”


촌장 부인이 촌장보다 한술 더 떠서 신우네를 힐난했다.


촌장은 부인의 역성에 힘을 얻었는지 목에 힘을 딱주고 일갈했다.


“옛말에 사람은 모름지기 배워야 그 구실을 한다고 했어.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면 좀 가만히 있지.

차분하게 기다리면 내가 다 알아서 해줄 텐데, 뭐가 그리 급해! 요즘 돈이 딸려 죽겠는데 이젠 친한 동생까지 닦달하네. 이거 참!”


촌장이 혀를 세게 차고, 뒷짐을 지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부인도 그 뒤를 따랐다. 방문이 ”쾅“하며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달이 떠오르며 밤이 점점 깊어졌다.


밤의 전령인 소쩍새의 울음소리도 점점 커져만 갔다.


오늘따라 별빛이 더욱 빛났다. 낮 동안 햇빛에 가려서 억울했는지 더욱 빛을 발했다.


마치 오늘만 빛나고 사그라질 것인 양.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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