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중대장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냈다. 두꺼운 책을 뚫을 거 같은 송곳니였다. 그가 큰소리로 촌장에게 외쳤다.
“나는 … 너 같은 교활한 조선인의 말을 전혀 믿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독립군에 협조하는 불령선인의 이름을 대라. 그렇지 않으면 이 마을 전체를 다 처단하겠다. 허언이 아니다!”
“네에? 이, 이게 대체!”
중대장의 터무니없는 말에 촌장이 기가 막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어디에서 황당한 거짓말을 듣고 구산마을을 오해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야만 했다.
예전에 들은 소문이 있었다. 일본군이 한국인 서너 명을 처형했다는 소문이었다. 죄명은 독립군과 내통이었다.
그때는 그냥 지나가는 풍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지어낸 얘기가 아니었다. 그걸 지금 분명히 깨달았다.
촌장이 급히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제발 대장님! 그건 모함입니다. 우리 마을은 독립군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독립군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누구를 고발합니까? 그리고 설령 있다고 한들 제가 그들이 누구인지 어찌 알겠습니까?”
촌장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중대장에게 간곡하게 호소했다.
하지만 중대장은 요지부동이었다. 촌장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네가 협조하지 않으면 너의 가족부터 먼저 처단할 것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네가 이 자리에서 아무도 불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이 마을을 이 잡듯이 뒤지겠다. 티끌만큼이라도 독립군과 내통한 흔적이 나온다면 마을 전체를 모조리 다 불살라 버리겠다.”
중대장의 무시무시한 엄포에 촌장이 무릎으로 기기 시작했다. 중대장 바로 앞에서 울면서 사정했다.
“정말입니다. 우리 마을은 독립군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제발 믿어주십시오. 제발!”
쓴웃음을 짓던 중대장이 1소대장에게 명령을 내렸다.
“헛소리하지 마라! 1소대장! 촌장의 가족을 모두 잡아 와라!”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다.
촌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1소대장이 우렁차게 대답하고 걸음을 옮겼다.
결국, 촌장이 굴복하고 말았다. 그가 급히 말했다.
“제발! 용서해주세요,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수상한 놈들을 몇 명 본 적이 있습니다.”
촌장이 거짓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가족을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진작에 이렇게 나올 것이지. 그럼, 그자들이 누구냐?”
중대장이 맛있는 먹잇감을 찾은 듯 입맛을 다시고 촌장을 다그쳤다.
“그게. 그자들이 금방 사라졌습니다. 위 마을에 사는 외지인 같습니다.”
촌장이 위 마을 사람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그렇게 대충 둘러대며 위기를 모면하려 했다.
“흐흐흐!”
중대장이 비웃음을 흘렸다. 중대장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얕은수가 통할 리 없었다. 그가 크게 외쳤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감히 나를 속이려 하더니 … 어디에서 잔머리를 굴려! 이 자리에서 당장 실토하지 않으면 너를 즉각 처형하겠다.”
중대장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권총집에서 총을 꺼내 들었다.
권총의 총구가 햇빛에 반짝거렸다.
중대장이 총을 촌장의 머리에 겨누었다. 중대장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양을 사로잡은 늑대의 눈빛 같았다.
“헉!”
촌장이 너무 놀란 나머지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차디찬 총구가 그의 관자놀이에 닿았다.
그때!
“아, 아아~!”
촌장이 입에 게거품을 물고 정신 줄을 놓고 말았다. 공포심에 의식이 빨려갔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다.
찬물이 어딘가에서 날아왔다. 촌장의 얼굴에 찬물이 촤악! 하며 뿌려졌다.
“어서, 일어나!”
“아, 아이고.”
촌장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이마에 차가운 냉기를 느끼고 눈을 크게 떴다.
병사들이 촌장의 이마에 총을 겨누고 있었다. 그가 깨어나자 방아쇠에 손가락이 걸렸다. 여차하면 쏠 기세였다.
촌장의 눈이 풀렸다.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그가 간신히 말했다.
“아 … 알겠습니다. 대장님. 사실대로 말하겠습니다.”
촌장이 겨우 몸을 일으키고 무릎을 꿇었다. 거칠게 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날품팔이하는 건양이가 수상한 짓을 하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이제야 실토를 하는구나! 좋다. 계속 말해라!”
“더는 없습니다. 그자만 수상한 자입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촌장이 고개를 푹 숙이고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건양이는 몇 년 전 외지에서 온 청년이었다.
처녀들에게 수작을 부리는 등 평상시 행동거지가 좋지 못했다. 그래서 촌장이 몇 번 혼을 냈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고작 한 명뿐이라고. 하하하! 네놈이 나를 가지고 노는구나.”
중대장이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놈과 왕래한 자들이 있을 것 아니냐? 그자들이 불령선인이 아니라고 어찌 단정할 수 있느냐?”
촌장이 고개를 연신 가로 저으며 더는 모른다며 울먹거렸다.
중대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외쳤다.
“독립군에 협조한 30명의 이름을 대라!”
“네에? 3, 30명이요?”
중대장의 터무니 없는 요구에 촌장의 숨이 멎은 듯 꼼짝도 못했다.
중대장이 말을 이었다.
“대일본제국에 반역하는 독립군의 뿌리를 뽑기 위해서는 … 이런 작은 마을 하나 정도는 없어져도 아무 문제가 없다.
혹, 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독립군한테 협조할지 누가 알겠느냐?
오늘 나는 조선인들에게 일본제국에 반역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그 본보기를 세우기 위해 이곳에 왔다.
이 마을을 초토화할 수도 있지만, 본보기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불령선인 30명만 처단하겠다.
30명의 희생으로 이 마을은 대일본제국의 보호를 받을 것이다.”
“…….”
중대장의 어처구니없는 요구에 촌장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혼자서 울 뿐이었다.
“30명 정도 죽어야 이 마을이 정신을 바짝 차릴 거 같다. 그래야 독립군 놈들이 와도 그 누구도 협조하지 않을 테니까 …. 하하하! 어서 불어라! 시간이 없다!”
중대장의 불호령에 촌장이 겨우 말했다.
“30명은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어떻게 30명씩이나 알겠습니까?”
“30명을 채우지 못한다면, 50명을 색출해서 처단하겠다. 네가 마음을 곱게 먹고 우리에게 협조한다면 그 공을 높이 사겠다.
불령선인의 재산을 관리할 권한을 주겠다. 30명의 재산이라면 너에게 떨어지는 몫도 적지 않을 것이다.”
중대장의 말에 촌장의 마음이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현재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었다. 마을 사람 여럿에게 큰돈을 빌렸지만, 원금은커녕 이자도 몇 달째 못 갚고 있었다.
앞으로도 상황이 좋아질 여지가 없었다. 한번 떨어진 구리 값이 급등할 리 없었다. 그래서 재산이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귀를 쫑긋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고한 마을 사람들을 고발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촌장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머뭇거리자, 중대장이 촌장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촌장이 벌벌 떨면서 중대장에게 가까이 갔다. 중대장이 촌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평상시에 꼴 보기 싫은 놈들이 있을 거 아니냐! 그놈들을 이번 기회에 싹 다 불어라! 아주 좋은 기회잖아. … 흐흐흐!”
중대장의 귓속말에 촌장이 깜짝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고막을 울린 소리가 심장을 마구 때렸다. 양심을 죽이는 소리였다.
중대장이 한쪽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웃고 있었다. 놀란 촌장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거 같았다.
반면 촌장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서 꼼작할 수조차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옷깃을 여몄다. 오늘따라 봄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그들은 촌장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잠시 후 촌장이 1소대장과 함께 나왔다. 촌장이 앞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촌장님!”
“촌장님, 왜 그러세요? 말은 잘 나누셨어요?”
“대체 무슨 일이죠? 군량이 부족한가요?”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
촌장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런 답을 하지 않는 촌장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곧 그들도 입을 다물었다.
“앞장서라!”
1소대장이 거칠게 외치고 촌장의 어깨를 세게 밀었다.
“아이고!”
촌장이 뒤에서 미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나동그라졌다.
“어서 일어나!”
1소대장이 외침에 촌장이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붙잡고 겨우 일어났다. 주변에 있는 마을 사람들을 힘없이 쳐다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서 중무장한 일본군 소대가 뒤를 이었다.
촌장과 일본군 소대가 사라지자, 마을 어귀에 스산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일단 집으로 갑시다.”
“맞아. 그럽시다.”
어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자기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촌장이 큰길에 접어들었다.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집들을 확인하다가 크게 숨을 내쉬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한 초가집에 걸음을 멈추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이 집에 사는 자들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불령선인을 체포해라!”
1소대장의 명령에 일본군 서너 명이 집으로 쳐들어가 사람들을 끌고 나왔다. 그들 모두 즉각 포승줄에 묶였다.
토끼 사냥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이 동네 사냥개의 도움으로 일이 아주 수월하게 진행됐다.
촌장이 마을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지목했다.
불령선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은 남녀노소 상관없이 사로잡혀 포승줄에 묶여 연행됐다.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차 없는 폭력이 행해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에요? 촌장님!”
“말 좀 해주세요. 우리는 아무런 죄가 없어요!”
“촌장님! 제 아내만큼을 제발 풀어주세요!”
촌장에게 지목된 사람들은 자기의 무고함을 항변하며 그에게 따져 물었다. 하지만 촌장은 입을 꾹 다문 채 초췌한 표정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고개를 획 뒤로 돌렸다. 그렇게 사람들의 애타는 시선을 무시했다.
“헉! 헉!”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신우 아빠가 집을 향해 급하게 뛰어갔다.
길동이네에서 보습을 고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한 사람을 만났다. 마을 어귀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한테서 마을에 변고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집을 향해 정신없이 뛰는 중이었다.
아빠가 생각했다.
‘그래, 별일 없을 거야. 일본군은 군량미 때문에 온 거야. 모아 둔 쌀과 잡곡을 주면 돼!’
그렇게 떨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아빠가 발길을 재촉했다.
저 앞에 느티나무가 보였다. 곧 자기 집에 다다랐다.
아빠가 사립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인기척을 살폈다. 별일이 없는 거 같았다. 이에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 일도 없구나.”
아빠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안사람을 찾았다.
“여보! 여보! 안에 있어?”
아빠가 큰 소리로 아내를 불렀다. 부엌에서 채소를 씻으며 점심을 준비하던 엄마가 아빠의 소리를 듣고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엄마가 한 손에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바구니를 엉겁결에 들고 나왔다. 안에는 먹음직한 봄나물이 가득했다.
“어! 여보! 일찍 오셨네요!”
엄마가 활짝 웃으며 아빠를 살갑게 맞이했다.
“다행히 집에 있었네. 그나저나 신우는 어디에 있지?”
아빠가 신우의 거취를 물었다.
“그새 또, 놀러 갔나 봐요. 하여간 무슨 일만 시키려 하면 없어진다니까!”
엄마가 괘씸하다는 듯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별, 별일은 없지?”
아빠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물어봤다.
“별일이라뇨?, 무슨 일이 있겠어요, 아무 일도 없지. 아! 촌장님을 급하게 가는 걸 보긴 했어요. 혹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아니. 뭐 별일은 아닌데 ….”
아빠가 말을 얼버무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엄마가 걱정할 거 같았다. 하지만 사실을 숨길 수는 없었다. 엄마도 사실을 알아야 했다.
“그게, 놀라지 마. 일본군이 마을에 왔다고 하더라고 ….”
아빠가 말을 흐렸다.
“예?”
엄마가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바구니를 떨어트렸다. 바구니가 땅바닥에 엎어지면서 깨끗이 씻은 채소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수십 명 사람이 일본군에게 끌려가고 있었다.
“우리는 독립군과 전혀 관계가 없소!”
“독립군을 본 적도 없는데 왜 우리는 잡아가는 게요!”
“연로한 아버님과 어머님은 제발 풀어주세요!”
끌려가는 사람들이 무고함을 계속 항변했지만, 일본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소리치며 저항하는 사람들을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팼다.
항변하던 사람들은 개머리판의 무지막지한 쇠뭉치를 얻어맞고, 피를 철철 흘렸다. 결국, 그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일본군의 총칼에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누구라도 나서서 일본군을 막기 바랐지만, 아무도 나설 수가 없었다.
촌장이 앞장서서 걸으며 일본군을 다음 집으로 인도했다. 낯선 이의 방문에 놀란 개들이 크게 짖기 시작했다. 군화 소리와 개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며 조용했던 마을이 이젠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