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어제는 자치기 시합이 있었다. 오늘은 콩 튀기 회식하는 날이다.
신우와 동네 아이들이 아침밥을 빨리 먹고 동네 공터에 다시 모였다.
아이들이 빠짐없이 다 모이자, 다음 차례는 불 피우기였다.
마석편 아이들이 콩을 바닥에 내려놓고, 불 피울 준비를 했다.
“야! 빨리 나뭇가지 가져와서 불 피워라! 배고프단 말이야!”
덕대가 승자의 여유를 부리며 마석 편 아이들을 재촉했다.
“저놈은 항상 배고프다고 난리야!”
덕대의 재촉에 마석 편 아이들이 입이 삐죽 튀어나와서 투덜거렸다.
“어서 가자!”
하지만 대장인 마석의 말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마른 가지를 구하러 산속으로 들어갔다.
“배가 출출해지네.”
신우가 중얼거렸다. 그는 아침밥을 먹었지만, 급하게 산 중턱까지 올라오느라 약간의 허기짐을 느꼈다. 먹어도 먹어도 배고플 나이였다.
“우리는 좀 쉬자.”
신우 편 아이들이 편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들은 마석 편 아이들이 콩 튀기를 준비하는 동안 한숨 늘어지게 잘 요량으로 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맑은 하늘에 구름이 한 점도 없었다. 좋은 날씨였다.
“자! 이제 불을 붙이자.”
산에 들어간 아이들이 나뭇가지를 수북하게 갖고 오자, 마석이 불을 착 붙였다. 그런데 불이 타오르는 대신 연기만 펄펄 났다.
“콜록, 콜록”
매콤한 연기가 자욱했다. 마른 가지에 불을 붙여야 하는데 산에 들어간 아이들이 물기가 많은 생가지를 잔뜩 들고 왔다.
생가지에 불을 붙이자 연기가 사정없이 피어올랐다.
“아이고!”
마석 편 아이들이 연기에 눈이 매운지 눈이 빨개졌다. 그리고 연신 기침을 해댔다.
이를 본 신우 편 아이들이 고소하다는 듯이 깔깔 웃었다.
“야! 마른 가지를 가지고 와야지. 생가지를 가지고 오면 어떡해!”
마석이 신경질이 나서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다.
“다시 가져와!”
“알았어.”
아이들이 다시 산속으로 들어가 이번에는 마른 가지를 잔뜩 주어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간신히 불을 피웠다.
신우 편 아이들은 마석 편 아이들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면서 한참 웃다가, 누구나 할 것 없이 스르륵 눈이 감겼다.
잠시 후, 쿨쿨 자고 있던 신우가 움찔했다. 갑자기 얼굴에 간지러웠다. 이에 슬며시 한쪽 눈을 떴다.
마석 편 아이 중 하나가 불 피운 숯으로 신우의 얼굴에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아이가 쿡쿡 웃으며 장난을 즐겼다. 다른 아이들도 소리를 죽이며 웃음을 참았다.
아이들의 장난에 신우가 화를 참지 못했다.
“이놈들이!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신우가 버럭 화를 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장난치는 아이를 힘껏 밀었다.
“아이고!”
신우의 억센 힘에 아이가 그만 뒤로 밀려 나가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뒤로 한 바퀴 돌아서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뒤이어 신우가 그 아이에게 달려가 멱살을 꽉 잡았다. 그때 누가 그의 손을 힘껏 때렸다.
마석이었다. 마석이 신우의 앞을 가로막았다.
“왜 이래. 장난이잖아!”
마석이 별일도 아닌데 왜 호들갑이냐며 신우를 막아섰다.
신우가 크게 소리쳤다.
“아무리 장난이래도. 내 얼굴에 손대는 것을 싫단 말이야!”
신우의 말에 마석이 비아냥거렸다.
“네 얼굴에 무슨 금이라도 둘렀냐?”
마석이 실실 웃으며 신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가 말을 이었다.
“야! 눈 옆에 있는 숯검정이 복점 같은데. 복이 절로 굴러오겠어! 하하하!”
마석이 손뼉을 치며 웃었다. 신우 얼굴에 그려진 커다란 그을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복점이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이 자식이!”
신우는 외모를 조롱하는 마석에게 분을 참지 못했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소매로 얼굴을 닦고, 마석에게 다가갔다. 그가 외쳤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 건방진 자식아!”
신우가 화가 나서 일갈했다.
“그래서 나랑 한 판 붙어 보자는 거냐? 그런 거야?”
마석이 소매를 착착 접으며 도발했다.
“와아! 둘이 싸우겠다.”
신우와 마석의 갈등이 고조되자, 아이들이 신우와 마석에게 달려왔다.
신우 편 아이들이 숯 검정이로 더러워진 신우의 얼굴을 보고 분을 참지 못했다.
“이 녀석들이 어디에서 장난질이야! 아직도 얘냐?”
“그래, 얘다. 그래서 뭐?”
“한번 해보겠다는 거야!”
신우 편 아이들과 마석 편 아이들의 갈등이 고조되었다. 그들은 서로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바로 그때!
“탁! 탁! 탁!”
콩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애타게 기다리던 콩이 다 구워졌다.
콩이 맛나게 구워진 소리가 들리자, 신우와 마석은 급히 고개를 돌렸다.
둘은 언제 시비가 붙었냐는 듯, 같이 모닥불로 달려갔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콩이 노릇하게 적당하게 잘 익었다. 이젠 신나게 먹을 때가 되었다. 아이들은 서로서로 콩 꼬투리를 잡고 콩을 까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앗! 뜨거워!”
덕대가 너무 급했는지 맨손으로 꼬투리를 잡다가 너무 뜨거운 나머지 꼬투리를 놓치고 말았다.
“하하하!”
“먹을 때가 제일 빨라!”
아이들은 그런 덕대를 보면서 깔깔거리며 웃었다.
풋콩을 모닥불에 구워 먹는 콩 튀기는 이 동네 아이들의 최고 간식이었다.
고소한 콩 맛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신우와 마석은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아까의 일을 싹 다 잊어버렸다.
콩을 먹느라 누구라 할 것 없이 입에 숯검정이 묻었다. 그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낄낄거리며 웃었다.
20분 남짓의 맛있는 콩 튀기 회식이 끝났다. 아이들이 소매로 입을 닦고 각자 편하게 누웠다.
“양이 부족한데, 조금 더 먹었으면 좋겠는데.”
덕대가 입맛을 다시며 계속 푸념을 했다.
“아이고! 네가 제일 많이 먹었잖아!”
아이들이 어처구니가 없는지 이구동성으로 소리쳤다.
“이것들이!”
덕대가 소리를 내질렀지만, 민망한지 입을 꾹 닫았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이 불어왔다.
아이들은 배가 부르자, 곧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 동안의 꿀잠을 자다가 따가운 햇빛에 깨어나 큰 나무가 드리우는 시원한 그늘로 자리를 옮겼다.
“내일은 뭐 하고 놀까?”
신우가 자리에 털썩 앉으며 아이들에게 말을 걸었다.
“내일은 붕어나 잡으러 갈까? 내가 붕어를 잘 잡아서 별명이 붕어잖아!”
동네에서 붕어를 잘 잡기로 소문난 기철이 입을 열었다.
붕어 얘기에 아이들이 입맛을 다셨다. 달콤하고 고소한 붕어탕과 붕어구이 생각에 입에 침이 고였다.
“난 산딸기가 먹고 싶은데.”
기철 옆에 있던 덕대가 입맛을 다시며 쑥 끼어들었다.
“그래 그것도 좋은 생각이다. 산에 가서 산딸기를 따자!”
신우가 맞장구를 쳤다.
“난! 내일 집에 꼭 붙어있어야 해. 오늘도 작은어머니 몰래 나왔거든. 물도 길어야 하고 할 일이 많아.”
삼촌 집에 더부살이하는 명호가 말을 흐렸다.
그는 눈칫밥을 먹지 않으려 삼촌네 농사일을 열심히 거들었다.
이 말을 들은 신우가 뜨끔했다. 엄마가 찾을 것 같아 내심 걱정이 됐다. 그도 사실, 엄마 몰래 나왔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할 때가 되었다. 신우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때!
“탕! 탕! 탕!”
천둥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쩌렁쩌렁 울리는 괴성에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콩 튀기 소리인가?”
“그거겠지. 날은 아주 맑아. 천둥소리는 아니야.”
아이들은 갑자기 들린 큰 소리를 콩 튀기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콩은 예전에 다 먹고 없었다. 모닥불도 다 꺼졌다.
명호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입을 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다른 데서 콩 튀기 하나?”
마석이 말을 받았다.
“콩 튀기 소리치고는 너무 큰 것 같은데?”
“혹, 총소리 아니야? 예전에 이모 댁에 놀러 갔다가 독립군들이 사격 연습하는 것을 본 적이 있거든. 이 소리와 비슷해.”
기철이의 말에 아이들이 깜짝 놀랐다.
“뭐! 총소리라고!”
아이들이 모두 벌떡 일어났다.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서로 쳐다보다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마을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동네에 독립군과 일본군이 서로 싸운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최근에 독립군이 일본군을 격파해 죽은 일본군이 부지기수라고 어른들이 말했었다.
산중턱에서 내려온 아이들이 각자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여기는 널찍한 마을 길이다. 이 길을 따라서 촌장이 일본군을 데리고 다녔다.
촌장이 집에 가까이 가면 사람들이 불안감에 다리를 떨었다. 그러다 지나치면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렇게 촌장은 일본군과 함께 여러 집을 돌아다니며 불령선인을 지목했다.
1소대장은 아직 숫자가 부족하다며 촌장을 재촉했고, 그는 갈 곳이 더는 없는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촌장! 이것이 다인가? 부족한 숫자는 네 가족으로 채우겠다.”
1소대장의 엄포에 촌장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크게 한숨만 내쉬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촌장은 결국, 뭔가를 결심한 듯 무거운 발걸음 옮겼다. 어깨에 커다란 쌀자루를 맸는지 등을 제대로 펴지 못했다.
“여보! 밖을 좀 보고 올게.”
신우 아빠가 엄마의 손을 꼭 잡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뗐다.
“그럼, 조심해서 다녀오셔야 해요.”
엄마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며 답했다.
아빠는 홀로 남겨진 엄마를 뒤로 한 채 내기치 않은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는 밖으로 나가는 아빠를 떨리는 눈으로 지켜봤다. 그가 사라지자 사립문을 꼭 닫았다.
“별일 없는 것 같은데.”
잠시 동네를 돌아다니며 상황을 살피던 아빠가 동네가 조용한 것을 보고 안도했다. 그는 일본군이 왔다가 그냥 갔으리라 생각하며 불안감을 달랬다.
하지만 멀리서 발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일련의 낯선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점점 다가왔다. 총과 군복, 군화가 보였다. 일본군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본군 앞에 촌장이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아빠가 깜짝 놀라서 옆에 있는 큰 나무에 몸을 숨겼다.
잠시 후, 촌장과 일본군이 아빠가 숨은 큰 나무로 다가왔다. 이에 아빠는 더욱 몸을 움츠려 나무 뒤에 완전히 숨었다.
촌장과 1소대장은 꼭꼭 숨어버린 신우 아빠를 알아채지 못하고 그냥 지나쳤다.
“휴 우~.”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뒤이어 수십 명의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의 삼엄한 경계 속에 포승줄에 묶여 끌려가고 있었다. 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아빠가 소스라치게 놀란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 소리가 크지 않아서 일본군이 알아채지 못했다. 그가 다시 나무 뒤로 몸을 꼭꼭 숨겼다.
‘마을 사람들이 일본군에 끌려가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아빠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몸서리를 쳤다.
그런데 하필 일본군과 촌장이 가는 방향이 그의 집 방향이었다. 이에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설마, 우리 집으로?”
점점 커져만 가는 불안감에 아빠의 침이 바짝 말라 버렸다. 머릿속에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본군의 총칼이 두려웠지만, 이 자리에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빠가 마음을 굳게 먹고 일본군의 뒤를 몰래 쫓기 시작했다.
일본군의 행렬이 점점 그의 집으로 향했다. 아빠는 불길한 예감이 맞을까 봐 점점 두려움에 휩싸였다.
“우리 집은 아니겠지. 우리 집은 그냥 지나치겠지!”
아빠가 속으로 이렇게 자기를 위로하면서 무거운 발걸음을 재촉했다.
“여기입니다.”
촌장의 말소리와 함께 일본군이 걸음을 멈췄다. 그곳은 신우네였다. 촌장이 손가락으로 신우네를 가리키자 일본군이 총칼을 앞세워 집으로 들이닥쳤다.
먼발치에서 촌장과 일본군을 주시하던 아빠가 불길한 예감이 적중하자, 뒤통수를 쇠망치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이런!!”
집에는 안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신우도 집에 왔을지도 몰랐다.
아빠는 아내와 아들 걱정에 일본군에 대한 두려움도 잊은 채, 정신없이 집을 향해 내달렸다. 그는 집을 포위한 일본군을 제치고 급하게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편 신우도 집을 향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가 생각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우리 집이다. 엄마에게 총소리를 물어봐야지. 이번에 독립군과 일본군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신우는 궁금한 게 참으로 많았다. 그렇게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군인들이 집 앞을 지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가 자기로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저건 총인데. 일본군이잖아!”
갑작스러운 일본군의 등장에 신우가 걸음을 멈췄다. 이윽고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에 신우가 어쩔 줄을 몰라서 그 자리에 얼음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