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_1편_08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08화_피묻은 호미와 신발 한짝


“촌장님! 말 좀 해주세요! 내가 독립군과 내통했다니! 그런 터무니없는 소리가 어디 있어요. 전 독립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신우 아빠가 큰 목소리로 촌장에게 외쳤다. 자신이 독립군과 내통했다는 촌장의 말에 기가 막혀서 그에게 강하게 따졌다.


“…….”


촌장은 답이 없었다. 친구인 아빠를 철저히 외면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촌장님, 아니 형님! 우린 어릴 적부터 불알친구였잖아요!

제가 농사일만 하는 일꾼이지 다른 건 전혀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형님은 저를 잘 알잖아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제발 사실대로 말해주세요!”


아빠가 이번에는 촌장에게 간곡히 부탁했지만, 촌장은 그를 피해 1소대장 뒤로 숨어버렸다.


1소대장 뒤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소대장님! 이 사람들은 독립군과 내통했습니다. 분명합니다.”


“좋다! 이놈들도 다 체포해라!”


1소대장이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일본군이 포승줄을 들고 아빠와 엄마에게 다가갔다.


“왜, 왜 이러세요. 우리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다고!”


엄마가 크게 외쳤다. 마치 살려달라는 비명 같았다.


“어, 엄마!”


집 밖에 있던 신우가 엄마의 처절한 비명을 듣고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사립문을 살폈다.


일본군 둘이 사립문 앞에 서 있었다. 둘 중의 하나가 걸음을 옮겼다.


“이때다!”


일본군이 방심하는 사이를 틈타 신우가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때, 신우의 눈앞에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엄마!”


엄마와 아빠가 포승줄에 묶이고 있었다.


그 처참한 모습을 보고 신우가 말을 잇지 못했다.


엄마는 갑자기 나타난 신우를 보고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그녀가 급히 외쳤다.


“신우야! 여기 있으면 안 돼! 빨리 도망쳐! 어서!!”


간절한 외침이었다. 하지만 신우는 놀란 나머지 꼼짝도 못 했다. 어서 도망가라는 엄마의 간절한 외침에도 신우는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1소대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갑작스럽게 집으로 들어온 아이를 보고 촌장에게 말했다.


“이 아이는 누구냐? 저자의 아들인가?”


“맞습니다. 저자의 아들입니다.”


촌장이 아들처럼 아꼈던 신우의 얼굴을 차마 보지 못하고 기어들어 가는 작은 목소리로 답했다.


1소대장이 오른손 검지로 신우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녀석도 같이 묶어라! 내통한 자의 아들이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같은 편이다. 더 갈 필요 없이 여기에서 30명을 채우겠다.”


1소대장의 체포 명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아빠가 크게 외쳤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 내 아들은 건드리지 마라!”


아빠가 격분해서 몸부림쳤다. 그의 격렬한 몸짓에 일본군이 포승줄을 놓치고 말았다.


“신우야!”


아빠가 아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일본군을 힘껏 밀치고 1소대장에게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이놈아! 내 아들은 손대지 마라!”


아빠가 1소대장의 멱살을 두 손으로 꽉 잡았고 흔들어댔다. 이윽고 괴력을 발휘했다. 멱살을 꽉 잡고 그를 번쩍 들어 올렸다. 1소대장의 발이 허공에 붕 떴다.


“으악! 뭐야 이놈이! 감히!”


아빠의 괴력에 1소대장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러댔다. 1소대장이 숨이 막혀서 발을 동동 굴렀다.


“어서 소대장님을 구해라!”


일본군 병사 다섯이 신우 아빠에게 달려들었다. 신우 아빠의 팔과 어깨를 꽉 잡고, 1소대장을 떼어냈다.


이윽고 개머리판으로 신우 아빠의 배를 마구 때렸다. 바닥에 쓰러뜨리고 발로 마구 짓밟았다.


아빠는 두 팔로 몸을 감싸지만, 사방에서 쏟아지는 일본군의 발길질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피를 토하고 말았다.


“안 돼! 제발! 남편을 살려주세요!”


엄마가 1소대장에게 달려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눈물로 사정했다.


“뭐야! 이건.”


1소대장이 신우 엄마를 거세게 뿌리쳤다. 그리고 사립문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신우를 가리키며 병사들에게 호통을 쳤다.


“너희는 이것들을 빨리 끌어내지 않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저 여자와 이 아이를 밖으로 내보내. 난 저놈과 볼 일이 있다.”


“네, 알겠습니다.”


병사들이 신우와 엄마를 꽉 잡고 밖으로 끌고 갔다. 사립문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이윽고 살벌한 목소리가 들렸다.


“감히 대일본군 장교에게 하찮은 조선인이 대들다니! 저놈을 당장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겠다.”


1소대장이 분기를 참을 수 없는 듯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 멱살 잡혀 흐트러진 옷깃을 정리하더니 권총집으로 손을 가져갔다.


“엄마 괜찮아요?”


신우가 흙투성이가 된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가 신우를 꼭 껴안고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그녀는 집에 홀로 남겨진 남편을 보기 위해 사립문으로 달려갔지만, 일본군이 총칼로 앞을 막아섰다.


집 안에는 일본군 대여섯 명과 1소대장, 바닥에 쓰러진 아빠만 있었다.


담 너머로 남편을 애타게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여보! 싸우면 안 돼요! 제발!”


1소대장이 권총집에서 총을 꺼냈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피를 토하는 아빠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차가운 살기가 아빠를 향해 다가왔다.


차디찬 총구가 아빠의 머리를 향했다.


일촉즉발의 순간이었다.


아빠가 소매로 피를 닦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에 새카만 총구가 보였다.


“그래, 좋다! 한 번 해보자!”


아빠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리고 이를 꽉 깨물었다. 그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호미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대략 두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아빠가 누렁이처럼 네발로 기어가 호미를 잡았다.


“미친놈이구나! 그깟 호미로 나를 대적하겠다는 거냐? 하하하!”


1소대장이 매우 가소롭다는 듯이 아빠를 조롱했다. 다른 일본군들도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아빠가 한 손에 호미를 꽉 쥐고 힘겹게 일어났다.


그의 육신은 인정사정없는 구타로 멍들었지만, 눈빛만큼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호랑이처럼 빛나기 시작했다.


1소대장이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그의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젠 끝장이다. 잘 가라!”


바로 그때


“야앗!!”


신우 아빠가 기합을 넣으며 질풍처럼 1소대장에게 달려들었다.


흡사 분노한 호랑이가 먹이를 향해 덮치는 것 같았다.


그의 맹렬한 기세에 1소대장의 손가락이 방아쇠 앞에서 굳어버렸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빠가 1소대장의 정수리를 호미로 힘껏 내리찍었다.


퍽!


“악!”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1소대장이 호미를 피하지도 총을 쏘지도 못하고 일격을 맞고 고목처럼 쓰러졌다.


“헉!”


1소대장 옆에 있던 일본군들이 깜짝 놀랐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1소대장의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겼다.


“소대장님!”


피냄새에 일본군들이 정신 차렸다. 피 냄새에 흥분한 그들이 일제히 신우 아빠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아빠의 두 팔을 붙잡고 제압하려 했지만 성난 황소와 같은 아빠를 막을 수 없었다.


아빠가 일본군들을 한 명씩 붙잡고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집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쿵쾅!



싸릿대 울타리가 무너지며 일본군들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아이고!”


“허리가 끊어졌어!”


“아, 아니, 세상에!”


이 광경을 보고 신우와 엄마가 깜짝 놀랐다.


바닥에 나뒹굴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일본군들이 처참한 비명을 계속 질러댔다.



탕! 탕! 탕!



그때 총소리가 다시 들렸다.


신우가 놀이터에서 들었던 총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마치 고막에다 정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


“아야!”


신우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적으로 고막이 터질 것 같았다.


총소리가 끝났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엄마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그녀가 사태를 직감했다.


“여보!”


엄마가 앞을 막아서는 일본군을 뿌리치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 마당에는 1소대장과 신우 아빠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일본군 대여섯이 호미에 맞아 정신을 잃은 1소대장을 지혈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그 근처에 신우 아빠가 바닥에 쓰려져 있었다. 피 묻은 호미를 손에 꼭 쥔 채 검붉은 선혈을 바닥에 분수처럼 내뿜으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


“여 …여 여보!”


그 처참한 광경에 엄마가 더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의 눈동자와 입술이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경련을 일으켰다.



컹컹! 컹컹!



그때 부엌에 숨어있던 누렁이가 밖으로 나왔다. 송곳니를 드러내며 맹렬하게 짖기 시작했다.


누렁이는 갑작스러운 일본군의 침입에 놀라서 부엌으로 들어가 숨어있었다.


그러다 자기 주인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뛰쳐나왔다.


누렁이는 주인의 피 냄새에 흥분한 나머지 일본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누렁이가 일본군의 바짓가랑이를 꽉 물고 늘어졌다.


“아이고! 이 개 좀 어떻게 해봐!”


일본군이 동료에게 살려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철컥! 철컥!



일본군들이 노리쇠를 당겼다. 그리고 누렁이를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탕!



다시 총소리가 들렸다.


“악!”


연이은 들리는 총소리에 신우가 비명을 다시 질렀다. 너무나도 두려운 나머지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총알을 날아오자, 누렁이가 담을 뛰어넘었다. 저 앞에 보이는 논밭을 쏜살같이 가로지르더니 산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 엄마! 엄마! 아빠!”


신우는 엄마와 아빠만을 간신히 부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집 밖에 있던 일본군이 신우 집으로 들어갔다.


“저 여자를 끄집어내!”


일본군 둘이 죽어가는 남편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는 엄마를 강제로 끌어냈다. 그녀는 끌려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지만, 허사였다.


그 와중에 신발 한 짝이 마당에 떨어졌다. 낡은 신발 한 짝이었다.


엄마는 구산 절벽에서 아빠가 선물한 꽃신을 신기가 아까웠다. 그래서 장에 고이 모셔 놓았다.


마당에는 엄마의 낡은 신발 한 짝과 죽어가는 아빠만 놓여 있었다.


“촌장님! 제발 우리를 살려주세요! 촌장님!”

엄마가 촌장에게 간절히 말했다.


촌장은 1소대장이 총을 뽑자, 집 밖으로 도망쳤었다. 친구의 죽음을 차마 눈앞에서 볼 수 없었다. 그가 몸을 떨었다.


“으으으!”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식은땀만 줄줄 흘리던 촌장이 집 밖으로 나온 일본군에게 말했다.


“소, 소대장님은 괜찮으세요?”


촌장은 신우 엄마를 철저히 외면하고 1소대장의 상태만 물어봤다.


“엄마!”


신우가 엄마를 보고 간신히 말했다.


밖으로 끌려 나온 엄마가 신우를 보고 부둥켜안았다.


“너는 살아야 한다. 반드시!”


엄마의 애타는 목소리에 신우가 몸을 덜덜 떨었다.


“아빠는 어디에 있어요! 총소리는 뭐예요? 아빠가 총에 맞았어요?”


신우가 엄마를 부둥켜안고 돌아오지 않는 아빠를 애타게 물어봤다.


엄마가 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곧 일본군이 들이닥쳐 엄마와 신우를 포승줄로 단단히 묶었다.


“제발, 아이는 풀어주세요!”


엄마가 신우만은 풀어달라고 사정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소총의 개머리판뿐이었다. 엄마의 이마에 핏방울이 맺혔다.


1소대장이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붕대로 커다란 상처를 지혈하고 부하들의 부축을 받았다.


“독한 조선인 놈들! 내 이놈들을 반드시 요절내고 말겠다! 아이고 아파!”


그가 고통을 참을 수 없는지 이마를 꽉 잡았다. 그가 크게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출발시켜! 중대장님이 기다리신다.”


1소대장이 씩씩거리며 다시 소리를 질러댔다. 하지만 상처가 계속 아픈지 오만상을 다 지었다.


불령선인 30명이 다 채워졌다. 그 중에서 한 명은 이미 죽고 말았다.


“어서 출발해!”


29명이 다시 길을 떠났다.


엄마가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며 뒤따라오는 신우를 계속해서 쳐다봤다.


신우는 한쪽 신발을 잃어버린 엄마의 버선발을 보면서 그저 그 뒤를 따라갈 뿐이었다.


그렇게 불령선인으로 지목된 29명이 마을 어귀에 도달했다.


어귀에는 나머지 마을 사람들이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서 있었다.


아빠의 절친인 길동이 아빠도 서 있었다. 그는 친구의 죽음에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아울러, 신우의 친구인 덕대, 기철, 명호도 서 있었다.


신우가 끌려가면서 친구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덕대야! 기철아! 명호야!”


하지만, 덕대도 기철도 명호도 신우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이 안타까움에 발을 동동 굴릴 뿐이었다.


일본군이 촌장을 앞세워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해가 중천에서 떨어지고 늦은 오후가 되었다. 따사롭던 햇살도 이제 빛을 잃어서 그늘에서는 자못 한기가 느껴졌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8화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