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_1편_09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09화_넌 반드시 살아야 해


“빨리빨리 움직여!”


1소대장이 마을 사람들을 재촉했다.


1소대는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 빨리 2소대에 불령선인을 인계하고 점심 먹으러 가야 했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자, 2소대가 보였다. 1소대장이 2소대장에게 달려가 끌고 왔던 마을 사람들을 넘겼다.


“잘 감시해! 2소대장! 산 중턱 공터에 중대장님이 기다리신다.”


“알았어! 이따 보자고. 1소대장”


1소대가 점심 먹으러 가자, 2소대장이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산 중턱에 있는 공터로 향했다.


“빨리 가라! 시간이 없다! 꾸물거리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


2소대장의 호통에 마을 사람들이 몸을 벌벌 떨었다. 2소대장도 1소대장과 별다르지 않은 인간이었다.


점심 취사 당번들이 열심히 주먹밥을 만들었다. 그중에 마에다와 쿠시로 이병도 있었다.


해가 중천에 뜬지 오래지만, 1소대는 불령선인 체포 작전을 하느라, 점심을 아직 먹지 못했다.


취사 당번들이 1소대가 먹을 주먹밥을 솥에 담았을 때, 1소대가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도착했다.


1소대가 차려진 밥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곧 식사 시작 명령이 떨어져다. 그러자 허겁지겁 식사를 시작했다.


마에다와 쿠시로는 나머지 정리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1소대는 수고했다. 여기에서 1시간 동안 휴식을 취한다. 휴식 후에 공터로 이동한다.”


식사를 마친 1소대장이 소대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3소대는 나를 따라 형장으로 이동한다.”


3소대장이 소대원에게 명령을 내렸다.


“출동이야. 쿠시로!”


마에다가 쿠시로에게 말했다.


“왜? 우리까지 가야 해? 정리할 게 아직 많은데 ….”


“소대장님이 전원 집합하라고 하셨어. 빨리 가자.”


이에 쿠시로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에다와 쿠시로가 총을 들고 대열에 합류했다.


“소대 전체 이동한다. 앞으로!”


3소대장의 명령에 따라 3소대가 공터를 향해 출발했다.


한편 마을 사람들은 가야 할 곳조차 모른 채 일본군에게 끌려갔다.


그들은 일본군의 날카로운 총칼과 무거운 침묵 속에서 바람의 등불 같은 자기들의 운명을 직감했다.


목적지는 며칠 전 큰 별똥이 떨어졌던 산이었다.


이곳은 길이 험했다. 예전부터 사람이 다니지 않는 길이었다.


그 탓에, 한쪽 신발을 잃어버린 엄마의 버선발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엄마가 절뚝거리기 시작했다.


“엄마! 엄마! 괜찮아요?”


엄마의 버선발이 붉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고 신우가 애타게 외쳤다.


아들의 애타는 목소리에 엄마가 고개를 뒤로 돌려 신우를 쳐다봤다.


그때 아들 뒤에 있는 일본군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엄마가 고개를 계속 가로 저었다. 신우에게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타일렀다.


엄마의 표정을 본 신우가 움찔했다. 순간, 뒤가 뜨끔했다. 조심스럽게 뒤를 돌아다보니, 일본군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다 보고 있었다.


신우가 화들짝 놀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



목적지에 다다랐다. 산 중턱에 있는 공터였다. 저 멀리에 절벽이 보였다. 초목이 무성한 절벽이 있었다. 앞에는 간간이 풀이 있는 평지였다.


이 공터에 커다란 별똥이 떨어졌었다. 커다란 별똥이 땅과 충돌하면서 엄청난 소리가 났었다.


그때 벌어진 일인 듯 깊게 파인 구덩이가 길쭉하게 뻗어 있었다. 별똥이 땅을 따라서 미끄러진 거 같았다.


구덩이 깊이는 성인 남성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별똥이 땅과 충돌할 때 엄청난 열기가 발산한 듯 구덩이 옆에 있던 초목들이 모두 새까맣게 타버리고 말았다.


정작 별똥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엄청난 힘으로 땅을 파헤치며 땅속 깊이 파묻힌 것 같았다.


저 앞에 중대장과 촌장이 보였다. 둘이 구덩이 앞에 서서 2소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뒤이어 3소대도 도착했다.


중대장과 촌장이 구덩이 안을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눴다.


흡족한 표정을 짓던 중대장이 고개를 끄떡였다. 29명 불령선인과 2소대와 3소대가 모두 도착한 것을 확인했다.


“흐흐흐!”


중대장이 29명의 마을 사람들을 보고 씩 웃음을 지었다. 악마의 웃음이었다.


2소대장과 3소대장이 중대장에게 급히 달려왔다.


중대장이 2소대장과 3소대장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조선인들을 구덩이 뒤에 배치하고 사격 대열을 갖춰라!”


중대장의 지시에 따라 일본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먼저 마을 사람들을 2개 조로 나눴다. 앞선 조 15명을 구덩이 쪽으로 이동했다. 신우와 엄마는 두 번째 조였다.


“엄마 괜찮아요? 버선발에 피가!”


“괜찮아! 걱정하지마. 하나도 안 아파!”


엄마가 괜찮다며, 걱정하지 말라며 신우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엄마의 따뜻한 손길에 신우는 약간이나마 안도가 되었다.


일본군이 첫 번째 조 15명을 구덩이 뒤에 일렬로 배치했다.


구덩이 앞에는 2소대가 사격을 준비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엄마가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곧, 자신과 아들에게 닥칠 운명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깨달았다. 마치 뒤통수를 쇠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남편의 억울한 죽음뿐만 아니라 자신과 아들에게 다가올 가혹한 운명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전염병에 허무하게 죽어간 부모님, 언니, 동생이 생각났다.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 옆에는 어린 아들 신우가 있었다.


신우는 그녀와 남편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아이만은 지켜야 했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렸다. 설령 이 자리에서 죽는다 해도 반드시 아이만을 살려야 했다. 아이를 살리고 저승에서 가족과 남편을 만나야 했다.


엄마가 급하게 일어나 사방을 살폈다. 무엇을 찾는 듯,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엄마?”


엄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신우가 의아해했다.


이윽고, 엄마가 무언 가를 결심한 듯, 윗니로 아랫입술을 꼭 깨물었다. 그녀의 시선이 절벽을 향했다.


절벽을 뚫어지게 보던 엄마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너무나도 슬픈 미소였다. 그리고 아주 창백한 얼굴로 신우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신우야, 아들아. 착하지, 엄마가 시키는 대로 꼭 해야 한다. 반드시!”


엄마의 떨리는 음성에 신우가 긴장감을 느꼈다.


“엄마! 무슨 일인데요?”


“약속해 반드시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빨리!”


“알았어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신우가 다시 물었지만,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윗니로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신우의 눈동자를 구슬프게 쳐다볼 뿐이었다.


결국, 운명의 시간에 도달했다.


첫 번째 조 사람들이 최후를 직감한 듯 서로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했다.


서로 말을 나누지는 못했지만, 눈빛으로 서로 인사했다. 생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동반자 같았다.


2소대가 사격 준비를 마치고 일렬횡대로 배치됐다.



철컥, 철컥



소총 노리쇠를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사격 준비!”


중대장의 구령에 총구가 마을 사람들을 향했다. 마을 사람들은 억울함에 눈을 감을 수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우, 우리도 총을 쏴야 하는 거야?”


쿠시로의 말에 마에다가 답을 하지 못했다. 둘이 긴장감에 몸을 마구 떨었다. 그들은 다음 조를 처리해야 했다.


둘은 민간인에게 총을 쏴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신병이라 열외였다. 하지만, 이제는 방아쇠를 당겨야 할 처지가 되고 말았다.


긴장이 점점 고조되었다.


엄마는 아들에게 이 참상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이에 신우를 품에 꼭 껴안고, 손으로 그의 두 귀를 꼭 막았다.


“사격!”



타 타 타 타 탕!



순식간에 수많은 총알이 발사됐다.


총구에서 자욱한 연기와 매콤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산천초목을 뒤흔드는 소리에 새들이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 높이 올라갔다.


단 몇 초의 사격이 끝난 후


2소대가 구덩이로 향했다.


총에 맞아 바닥에 쓰러졌지만,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을 가차 없이 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의식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도 역시 구덩이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다음 조 이동!“


중대장의 카랑카랑 명령이 들렸다.


일본군이 두 번째 조를 일으켜 세웠다. 목적지는 첫 번째 조와 같았다. 구덩이 바로 앞이었다.


엄마가 신우의 손을 꼭 잡고 걸어갔다. 구덩이 근처로 가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신우가 너무 놀란 나머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가 신우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그녀의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뒤에 있던 3소대가 사격 준비를 했다.


2조 14명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니,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끌려갔다.


2조가 사형장에 배치되었다. 엄마의 걸음이 멈췄다.


엄마가 신우의 어깨를 꼭 잡았다. 그리고 간절히 말했다.


“엄마가 달리라고 외치면 무조건 뒤로 돌아서 뛰어야 해!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네에?”


신우가 깜짝 놀라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죽을힘을 다해 절벽 위로 올라가서 도망쳐! 알았지! 넌 반드시 살아야 해!”


엄마의 간곡한 외침에 신우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는 가파른 절벽이었다. 하지만 곳곳에 작은 나무가 있어, 뿌리나 가지를 잡고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럼, 엄마는요?”


신우가 엄마의 소매를 꼭 잡고 말했다.


엄마가 대답 대신에 손을 머리로 가져갔다. 그녀의 분신과 같은 비녀를 꼭 잡았다.


비녀를 머리에서 뽑자, 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풀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때 산속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써늘한 바람이었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 신우가 쳐다봤다. 허리 근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을 보면서 언제나 그리운 엄마의 체취를 느꼈다.


“꼭 간직해야 해! 넌 엄마와 아빠의 유일한 희망이야.”


엄마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신우의 한 손에 비녀를 꼭 쥐여줬다.


신우가 대답 대신에 엄마의 두 눈을 보면서 고개를 끄떡였다. 엄마 역시 신우의 두 눈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둘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 같았다.



철컥, 철컥



다시금 소총 노리쇠를 뒤로 당기는 소리가 들렸다.


중대장이 준비 상태를 확인하고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사격 준비”


중대장의 구호에 일본군이 방아쇠에 검지를 걸었다.


곧 총이 불을 뿜을 거 같았다.


두 손을 바들바들 떠는 마에다 앞에 나이든 할머니가 있었다. 그는 도저히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쿠시로 앞에는 신우와 엄마가 있었다. 열다섯 살쯤 되는 아이였다. 쿠시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이야 달려! 신우야!!”


엄마가 신우에게 외쳤다.


이윽고 뒤를 획 돌았다. 팔을 쫙 벌리고 총구를 막았다.


엄마의 처절한 외침에 신우가 이를 꽉 깨물고 절벽으로 내달렸다.


“사격!”



타 타 타 타 타 타 탕!



자욱한 연기와 함께 총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가혹한 운명의 순간, 마에다는 허공을 향해 총을 발사했고, 쿠시로는 아예 쏘지도 못했다.


사격이 끝나자, 군인들의 거친 숨소리만 들렸다.


자욱한 연기가 걷히자, 한 여인이 보였다. 한 여인이 홀로 서 있었다.


한 여인이 피를 철철 흘리며 서 있었다. 뒤로는 한 아이가 절벽을 향해 내달렸다.


총에 맞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더니 하나둘씩 구덩이로 떨어졌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구덩이로 빨려 들어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저 여자를 쏴버려!”


중대장이 화가 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의 명령에 총구에서 다시 불을 뿜었다.


타 타 타 타 탕!


“윽!”


수십 발의 총탄이 엄마의 몸을 관통했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두 팔을 벌린 채 서 있었다.


비록, 등에 많은 총알을 맞았지만, 신우가 절벽을 다 오를 때까지 버티기 위해 죽을힘을 다했다.


등에는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사지를 꿰뚫은 날카로운 고통에 정신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엄마는 마지막 힘을 다해 버텼다.


신우를 낳던 기쁨을 생각하며 아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며 행복했던 그 날을 회상하며 제 자리에 우뚝 썼다.


마에다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너무나도 처참한 현실에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쿠시로는 쏘지도 못한 총을 몸으로 감싼 채 울고만 있었다. 그의 울음소리가 빈 공터에 크게 울려 퍼졌다.


신우는 고막이 터질 것 같은 총소리에도 결코,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엄마의 마지막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그는 절벽을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엄마가 준 비녀로 흙을 찍으며 가파른 절벽을 간신히 기어올랐다.


한 엄마가 총에 맞아 옷을 붉게 물들이면서도 아이를 지키기 위해 팔 벌려 서있었다.


“지독한 조선인 놈들!”


중대장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일갈했다. 그가 총을 잡고 울고 있는 쿠시로에게 달려갔다.


“총을 쏘라고! 저 여자를 쏘는 게 네 임무야!”


중대장이 악을 쓰며 호통을 쳤지만 쿠시로는 울면서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


수십 발의 총알이 몸을 관통하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에도 아이를 지키려는 엄마의 초인적 의지에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다.


“야 이! 바보 같은 놈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중대장이 주먹을 쳐들었다. 쿠시로의 머리통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아이고!”


쿠시로가 엄청난 고통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아, 안돼!”


쿠시로의 비명에 마에다의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중대장이 쿠시로의 총을 빼앗아 엄마를 겨눴다.


“철컥”


“탕!”


한 발의 총소리가 더 들렸다.


푸른 하늘이 야속했다. 하늘 아래 처참한 현장을 애써 무시하는 듯 더없이 맑고 푸르렀다. 이따금 지나가는 구름만이 슬픈 잿빛 그림자를 드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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