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구덩이 속에 파묻혔던 한 소년이 기를 쓰며 땅 위로 기어올랐다.
흙이 사방에서 무너져 내렸지만, 결코, 굴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기어올랐다.
두 손으로 흙을 꽉 움켜쥐고 두 발로 땅을 찍으며 위로 올라왔다.
꽉 움켜쥔 흙들이 손가락 사이로 계속해서 빠져나갔지만, 이에 개의치 않고 단 한 톨의 모래라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소년은 검은 흙투성이였다. 흙뿐만 아니라 피범벅이었다.
안간힘을 쓸수록 입이 크게 벌어졌고 그만큼 흙과 먼지가 입안으로 쏟아졌지만, 살기 위해 … 구덩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손이 나오고 팔이 나오고 머리가 나왔다. 그리고 몸통도 죽음의 구덩이에서 나왔다.
온몸을 버둥거리며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한 손에는 매화가 달린 비녀가 있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것만을 놓지 않겠다는 듯 꽉 쥐고 있었다.
5분 후
10여 분의 사투 끝에 소년의 손이 드디어 단단한 땅을 잡았다. 단단한 땅을 잡자, 열 손가락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으아아아!”
커다란 고함과 함께 소년이 마침내 땅 위로 올라왔다.
구덩이에서 벗어난 소년이 기진맥진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발자국을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쓰러지고 말았다. 온몸의 힘을 다 쓴 탓인지 그 자리에 맥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완전히 기진맥진했다.
그렇게 한 참이 지났다.
소년이 마치 죽은 듯 꼼짝도 못 하고 누워있을 때, 그때 갑자기 푸른 빛이 몸에서 감돌기 시작했다.
푸른 빛이 온몸을 감싸더니 그 빛이 점점 강해졌다.
한동안, 강렬한 빛이 불타오르더니 차츰 빛이 약해졌다. 이내 완전히 사라졌다.
따사로운 햇살이 그를 비췄지만, 그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멀리서 보면 죽은 것 같았지만, 간신히 숨을 쉬고 있었다.
*
시간이 점점 흘러갔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공터에서 피 냄새가 풍기자, 수풀이 바스락거렸다.
들짐승 여러 마리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그중에서 한 마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소년 곁으로 다가갔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듯, 송곳니에 침이 고였다.
한발 한발 들짐승이 소년 곁에 다다랐을 때,
거친 숨소리를 들은 듯 깜짝 놀라서 도망쳤다.
한편 그 시각, 마을 어귀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제 밤을 꼬박 새운 사람들이었다. 원통하게 죽은 이들이 마음에 걸려서 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당장이라도 공터로 달려가 죽은 이들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일본군 대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포악하고 뻔뻔한 얼굴이 떠오르자, 엄청난 두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문을 꼭 닫아걸고 문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 길동이 아빠를 비롯한 10여 명의 마을 사람이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빌었다는 소식을 듣고 점심밥이 모래알처럼 느껴져 넘어가지 않았다.
날이 밝고 다시 세상이 평온해지자, 두려움에 빠졌던 사람들이 용기를 내어 삼삼오오 모였다.
사람들이 마을 어귀로 모인다는 소문을 들은 촌장은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는 죽은 이들을 다시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부인에게 위 마을에 급한 용무가 있다고 둘러대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마을 어귀에 수십 명이 모이자, 조촐하게 제사상을 준비하고 공터로 향했다. 비통한 표정으로 한참을 걸은 후, 공터에 다다랐다.
공터 앞에서 그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죽은 이들이 왜 늦게 왔냐며, 박대할까 봐 두려움 느꼈다.
그때 한 사람이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저기에 웬 사람이 누워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소리를 친 사람의 손가락으로 향했다.
그곳엔 한 소년이 죽은 듯 누워있었다.
“사, 살아남은 사람이 있었나?”
“대체 누구야?”
모인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한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을 확인해야 했다.
사람들이 서로 눈치만 보고 있을 때, 한 사람이 용기를 내어 정체불명의 소년을 향해 걸어갔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이었다.
“우리도 따라가죠.”
나머지 사람들도 앞선 사람을 따라갔다.
잠시 후 소년이 명확하게 보였다.
소년은 피투성이였다. 몸에서 솟구친 피가 먼지와 뒤엉켜 얼굴과 옷에 착 달라붙었다. 핏자국이 낭자했다.
“헉!”
“세상에!”
처참한 몰골의 소년이었다.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그래서 그 소년에게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공터에 정적이 감돌았을 때, 한목소리가 들렸다.
“신우다. 덕수 아들 신우예요!”
대장장이 철구가 크게 소리쳤다.
철구는 호미와 쟁기를 만드는 대장장이였다. 신우 아빠가 1소대장을 내리찍고 죽는 순간까지 꽉 잡고 있었던, 그 호미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신우 아빠는 억센 손아귀 힘 탓에 농기구를 걸핏하며 부러트렸고 그래서 철구네를 자주 찾았다.
철구네를 찾을 때, 신우도 따라가곤 했다.
철구는 나날이 튼튼하게 성장하는 신우를 보고 대견스러워했었다.
철구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이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들은 어제 일본군에게 끌려가는 신우를 똑똑히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다.
촌장이 어제 분명히 말했었다. 끌려간 사람들은 모두 죽었고, 공터에 매장되었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신우는 땅속에 파묻혀 있어야 했다. 반드시 그래야 했다.
그때, 신우의 몸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를 본 사람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귀신이다!”
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크게 소리쳤다.
“헉!”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사람들이 꼼짝도 못 했다. 정신이 멍해졌다. 한동안 아무런 말도 못 한 채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귀신이라면 …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라면!”
예부터 내려오는 말이 있었다.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그 복수를 하기 위해 돌아온다는 속설이었다. 원혼의 복수였다.
원혼을 차단하는 건 솟대의 역할이었다. 하늘 높이 솟은 솟대가 원혼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준다고 사람들은 굳게 믿었었다.
그렇게 중요한 솟대가 며칠 전 날벼락을 맞아 부러졌고 설상가상으로 일본군한테 짓밟혔다. 마을 지켜 줄 수호신은 어디에도 없었다.
“으악!”
“사람 살려!”
커다란 비명이 들렸다.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너나 할 거 없이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너무 급한 나머지 신발 두 짝이 모두 벗겨진 사람도 있었다.
마을로 돌아온 사람들이 이 소식을 다른 사람에게 알렸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지만, 증인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에 마을의 책임자인 촌장을 찾기로 하고, 걸음이 빠른 철구가 위 마을로 급히 달려갔다.
촌장은 마을 사람들을 피해 위 마을로 왔지만,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이에 주점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위 마을로 올라온 철구가 촌장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찾다가, 주점에 있다는 말을 듣고 주점으로 달려갔다.
주점 문을 황급히 열었을 때, 두부 안주에 막걸리로 목을 축이는 촌장을 발견했다.
철구가 촌장에게 급히 소리쳤다.
“촌장님! 큰일 났습니다.”
“뭐라고? 자네가 여기까지 어인 일인가?”
촌장이 철구를 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찾는 거 같아 뜨끔했다.
철구가 몸을 떨며 말했다.
“지금 신우 귀신이 나타났어요!”
“뭐라고? 귀, 귀신이라고?”
신우 귀신이 나타났다는 말에 촌장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그럴 리가! 신우는 어제 죽었어. 내 눈으로 똑똑히 봤어.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어!”
촌장이 헛소리하지 말라고 일축했다.
“아니에요. 신우가 맞아요. 공터에 쓰러져 있었어요. 피투성인 채로! ”
“절대 그럴 리가 없어! … 억!”
촌장이 갑자기 한 손으로 목을 꽉 잡았다. 목이 갑자기 메기 시작했다. 막걸리 한 병을 뚝딱 해치우고 또 한 병을 반이나 마셨는데 이렇게 갑자기 목이 멜 리 없었다.
“젠장!”
촌장이 거칠게 말을 내뱉고 막걸리를 병을 꽉 잡았다. 이내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병을 깨끗이 비우고 말했다.
“귀신이라니! 그냥 가게나! 헛소리 말고.”
촌장의 단호한 말에도 철구는 요지부동이었다.
촌장이 술을 다 마시고 두부를 입에 넣었다. 마치 모래알을 씹는 것 같았다.
술기운으로 잊고 있었던 어제의 일이 자꾸 생각이 났다. 양심을 속일 수 없는지, 오른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촌장의 벌벌 떠는 손을 보던 철구가 간절히 말했다.
“촌장님!”
철구의 간절한 목소리가 들렸다.
촌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가 말했다.
“알았어! 그래 가보자고. 원혼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긴 하지. 동네 어른들과 얘기를 나눠야겠어.”
촌장이 일부러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는 속으로 떨고 있었다. 자기가 지목해서 죽은 사람들이 구천을 떠돌다, 원혼이 돼서 자기한테 해코지하지 않을까 내심 두려웠다.
특히, 신우라면 둘도 없는 친구였던 덕수의 아들이었다.
촌장과 신우 아빠인 덕수, 길동이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형제 같은 사이였다. 그런 덕수의 아들인 신우가 원혼이 돼서 나타났다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촌장이 철구와 함께 마을로 돌아와 동네 어른들을 집으로 모셨다.
사랑방에 동네 어르신, 촌장, 촌장 부인, 철구를 비롯한 목격자 셋이 자리 잡았다.
“원혼이라면 큰일이네. 빨리 넋을 달래는 제사를 해야 하네!”
“대낮에 귀신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네.”
어르신들이 흰 수염이 쓰다듬으며 갑론을박을 벌였다.
“신우는 분명히 엄마와 함께 죽었습니다.”
참상의 유일한 목격자인 촌장이 말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분명, 다른 사람을 보고 이 사람들이 지레 겁을 먹고 헛소리하는 겁니다.”
촌장 옆에 있던 부인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간혹가다 낯짝 두꺼운 비렁뱅이가 마을에 타고나곤 하잖아요.”
“아니에요! 신우는 어렸을 때부터 줄곧 봐오던 아이인데 제가 헷갈릴 리가 없어요.”
원혼이 신우가 맞는다고 철구가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자 나머지 둘도 철구의 말에 맞장구쳤다.
자기들은 신우가 태어나 열다섯 살까지 자라는 걸 쭉 보아 온 사람들인데, 그의 얼굴과 체격을 몰라볼 리 없다고 강하게 항변했다.
“그래. 그러면 한 번 확인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목격자들이 굽히지 않자, 일부 어르신들이 한번 확인해 보자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자 촌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한번 가보도록 하죠.”
촌장이 목격자 셋을 번갈아 보다가 말했다.
“자네들 명심하게. 공터에 있는 사람이 신우가 아니라면 어르신들이 헛걸음하게 하는 거야. 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걸세.”
촌장이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렇게 촌장과 마을 어르신들은 신우라고 추정되는 그 소년을 보기 위해 목격자들과 함께 공터로 향했다.
철구를 비롯한 목격자들이 공터 근처에 이르자, 커다란 두려움을 느꼈는지 너도나도 촌장과 어르신 뒤에 숨기 바빴다.
그들은 처참한 몰골의 신우를 본 후, 자기들을 해코지하러 온 원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앞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허! 참. 자네들. 어르신들을 앞장세우다니. 고약한지고.”
“됐네. 그냥 가게나. 가보면 알겠지.”
촌장과 어르신들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며 혀를 차며 길을 재촉했다.
일행이 공터 입구에 다다랐을 때, 촌장이 철구를 지목하고 말했다.
“어이! 철구. 자네가 먼저 가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네에? 제, 제가요. 다른 사람이 하면 안 될까요?”
“예끼! 이 사람아. 다 큰 어른이 왜 이리 칭얼대나! 어서 가게나!”
촌장의 호통과 어르신들의 탐탁지 않은 표정에 철구가 울상을 지었다. 그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벌벌 떨면 공터로 향했다.
철구가 공터로 들어가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바람도 불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일행이 초조한 표정으로 철구를 기다렸다.
그때, 철구가 무척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가 크게 말했다.
“아무것도 없어요. 분명히 있었는데.”
철구의 말에 사람들이 급히 공터로 달려갔다.
공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사람들이 공터 이곳저곳을 뒤졌지만, 신우를 찾을 수는 없었다.
완전히 허탕이었다.
“예끼! 이 사람들아! 헛것을 보고 어르신과 나를 이 고생시키나!”
촌장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분명 있었는데 … 우리가 헛것을 봤나?”
“그러게 말이에요. 분명 신우가 있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우리가 몸이 허해서 헛것을 본 거 같아.”
목격자들이 헛것을 봤다고 허탈해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억울하게 죽은 신우의 원혼이 자기들에게 해코지할까 걱정했었는데, 실은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마을로 돌아갑시다.”
“그럼 그렇지. 대낮에 귀신이 어디에 있어!”
촌장과 어르신들, 마을 사람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을로 향하였다.
그들이 마을 어귀 근처에 다다랐을 때, 한 사람이 보였다. 소년이었다.
부러진 솟대 위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다.
마을의 수호신인 솟대에 앉은 소년을 보고 촌장이 두 눈을 부라렸다. 그가 화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아니, 저런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다 있어!”
촌장이 소년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놈아! 감히 솟대에 앉다니 네가 제정신이냐!”
촌장이 큰소리를 치며 소년을 향해 달려갔다.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솟대에 앉아서 정처 없이 먼 산을 바라보던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달려오는 촌장을 쳐다봤다.
그는 신우였다.
저고리와 바지가 온통 검붉었고 얼굴에는 검은 흙투성이였다.
신우가 똑바로 촌장을 쳐다봤다.
“악! 신우!”
신우의 얼굴을 보고 촌장이 너무나도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서 까무러쳤다.
“촌장님!”
촌장이 갑자기 쓰러지자 마을 사람들이 급히 달려왔다.
그들 앞에 신우가 담담히 서 있었다. 그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귀신이다!”
커다란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윽고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