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_1편_10화

by woodolee

10화_생과 사의 갈림길에 눈을 감다


총알이 심장을 관통했다.


엄마의 긴 머리카락이 심하게 흔들렸다. 마지막 힘이 다하는 순간이었다.


엄마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뒤로 쓰러졌다. 가려린 몸이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헉!”


절벽을 오르던 신우가 단발의 총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구덩이로 떨어지는 엄마의 가냘픈 손가락이 보였다. 순간, 몸이 굳어졌다. 미동조차 할 수 없었다.


중대장의 총구가 이제는 신우를 겨눌 차례였다.



철컥!



“더는 … 안돼!”


마에다가 몸을 부르르 떨면서 말했다.


그는 중대장의 만행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다. 중대장은 인간의 탈을 쓴 악마였다.


“아이고!”


쿠시로가 바닥에서 뒹굴며 기어 다녔다. 마에다 눈에 실핏줄이 터졌다.


중대장이 총을 다시 들어 올렸다. 바로 신우를 겨냥했다.


“이젠 끝이다. 어린놈!”


중대장이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마에다가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중대장님! 그만하십시오!”


마에다가 크게 외치고 중대장에 달려들어 총을 뺏으려 했다.

“이놈은 뭐야!”


“탕!”


총알 한 발이 발사됐다. 허공을 향해 발사됐다.

“가, 감히 이놈이!”


중대장은 분기탱천했다. 자기를 가로막는 마에다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지 두 눈을 크게 부라렸다.


마에다는 생살여탈권을 쥔 중대장과 목숨을 걸고 맞섰다. 꽉 잡은 총을 놓지 않았다.


신우가 총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이를 꽉 깨물었다. 지금 당장 구덩이에 빠진 엄마에게 달려가고 싶었지만, 엄마의 마지막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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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반드시 살아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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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위로 올라갔다. 비녀로 흙을 찧으며 위로 올라갔다.


“저놈을 당장 떼어내!”


병사 대여섯 명이 마에다를 향해 달려왔다.


강한 완력으로 마에다 어깨를 꽉 붙잡고 끌어냈다.


“하극상!”


큰 소리와 함께 마에다의 머리를 향해 개머리판이 날아왔다.


“악!”


마에다가 비명을 질렀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그만 앞으로 꼬꾸라졌다.


이윽고 병사들이 발을 높이 쳐들었다. 쓰러진 마에다를 마구 구타하기 시작했다.


“휴우~!”


중대장은 급한 숨을 몰아쉬며 정신 차렸다.


몰매를 맞는 마에다를 보고 쓴웃음을 짓더니 이내 신우를 다시 겨냥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신우가 안간힘을 썼다. 조금만 더 위로 올라가면 울창한 수풀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길 수 있었다.


바로 그때



탕!


총성이 울렸다. 총알이 목표를 향해 빛의 속도로 날아갔다.


“악!”


신우가 비명을 질렀다. 불덩이 같은 총알이 그의 어깨를 관통했다. 선혈이 절벽에 뿌려졌다.


어깨가 산산 조각날 거 같은 고통이었다. 온몸의 힘이 쭉 빠졌다. 이내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엄마가 빠졌던 구덩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곧 정신을 잃었다.



**




한참이 지났다.


피비린내와 탄 냄새가 물씬 풍기는 흙구덩이 속에서 …신우가 겨우 정신 차렸다.


그가 힘들게 고개를 들고 사방을 살폈다.


사방은 온통 검은 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별똥에 탄 흔적이었다.


저 멀리에 엄마가 보였다. 엄마의 몸에서 선혈이 줄줄 흘러나왔다.


“어, 엄마!”


신우가 기어가기 시작했다. 아픈 어깨를 한 손으로 꽉 쥐고 엉금엉금 기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이내 천천히 굳어갔다.


“엄마!”


신우는 간절하게 엄마를 외쳤다.

조금만 더 가면 신우의 손이 엄마의 옷자락에 닿을 것 같았다.


그때, 위에서 흙더미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본군이 삽을 들고 구덩이로 흙을 던졌다. 마을 사람들 매장해야 했다.


신우의 머리를 향해 흙이 마구 쏟아졌다.


흙더미가 장대비처럼 쏟아졌다. 쏟아지는 흙을 피해야 했다.


신우가 이를 악물고 구덩이 벽으로 기어가 벽에 몸을 기댔다.


흙이 점점 쌓여갔다. 발목이 흙에 잠겼다.


신우가 위를 올려다봤다. 점점 흙이 쌓이는 구덩이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이에 구덩이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구덩이는 너무나도 높았다. 아울러 한쪽 어깨도 문제였다. 오른 어깨가 망가져 오른팔을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제아무리 성한 팔로 발버둥 쳐도 구덩이의 높은 벽은 넘을 수는 없었다.


결국, 신우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흙더미를 온몸으로 맞으며 삶의 마지막 길목이라는 극한의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15살 소년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신우가 몸을 바르르 떨기 시작했다. 극한의 두려움과 혼자라는 외로움 속에서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러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차마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눈을 뜰 수조차 없었다.


그의 옆에 엄마가 있었지만, 이미 숨이 끊어졌고,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흙이 점점 쌓여만 갔다. 신우의 무릎까지 흙이 올라왔다.


바로 그때!


신우 주변의 흙이 갑자기 꺼지기 시작했다.


땅 꺼짐이 갑자기 심해지더니 신우가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치 누가 땅속에서 잡아당기는 거 같았다.


“악!”


비명이 들렸다.


신우가 속수무책으로 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성한 손으로 흙을 붙잡았지만, 무너지는 흙을 잡을 수는 없었다.


마치 땅 밑에 커다란 동굴이 있는 듯 깊은 땅속으로 추락했다.


“안돼!”


신우가 비명을 질러댔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소년을 빨아들인 구멍은 곧 흙으로 메꿔졌다.


“빨리 서둘러라! 일이 끝나야 쉴 수 있다.”


뒤늦게 도착한 1소대장이 구덩이를 빨리 메꾸라고 재촉했다.


중대장이 손목시계를 보고 크게 외쳤다.


“중대 병력을 전부 동원해서 빨리 끝내라!”


중대장의 추상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이에 중대 병력 전체가 일거에 모여서 일사천리로 일을 끝냈다.


며칠 전 별똥이 만들었던 흙구덩이는 이젠 평지가 되었다. 흙구덩이에서 진동했던 피비린내도 흙에 파묻혀 버렸다.


“네가 군인이냐? 감히 중대장님께 대들고, 명을 거역하다니!”


나가시마 일병이 몽둥이를 들고 마에다와 쿠시로를 구타했다. 가혹한 매질에 마에다와 쿠시로가 비명을 지르고 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사실 너희들은 사형감이다. 하지만, 중대장님이 관용을 베풀어 이렇게 매질로 끝나는 거다. 알겠냐!”


나가시마가 앙갚음하는 듯 마에다를 향해 있는 힘껏 몽둥이를 휘둘렀다.


“윽!”


“글을 배웠다는 자식이 고작 하는 짓이 하늘 같은 상관에게 대들고 가르치는 거냐? 대학에서 그딴 거나 배웠냐?”


나가시마의 모진 매질에 마에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마에다가 의식을 잃고 뻗자, 쿠시로가 눈물을 흘리며 기어왔다. 엉금엉금 기어와 친구를 흔들어 깨웠다.


“마에다 정신 차려! 마에다!”


“나 때문에. 미안해 마에다! 마에다!”


쿠시로가 울음보를 터뜨렸다.


“바보 자식!”


이를 보고 헛웃음을 치던 나가시마가 이내 바닥에 침을 탁 뱉고, 몽둥이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고 자리를 떴다.


10분 후


일본군이 다시 모였다. 다시 마을 어귀로 향했다. 1소대장이 촌장에게 말했다.


“마을 사람들을 모두 마을 어귀로 모아라. 중대장님 훈시가 있다. 통역을 잘 부탁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당장 사람들을 모으겠습니다.”


1소대장의 요구에 촌장이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잘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마을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마을 사람이 마을 어귀에 모였다. 대략 칠십 명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이자, 중대장이 고개를 끄떡이고 걸음을 옮겼다. 부러진 솟대 위에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그가 굵은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대일본제국에 거역한 불령선인 30여 명을 처형했다.

너희들은 지금 깨달았을 것이다. 독립군과 내통하는 짓이 이렇게 큰 죄라는 것을 … 지금 뼈저리게 깨달았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이 또다시 독립군과 내통한다는 첩보가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다시 달려와 오늘처럼 처단하겠다.”


엄포였다.


중대장의 서슬 퍼런 엄포에 마을 사람들의 간이 좁쌀처럼 쪼그라들었다. 다리가 마구 후들거렸다.


중대장이 말을 이었다.


“오늘, 촌장이 협조를 잘 해주었다. 그에게 감사를 표한다. 앞으로도 촌장의 지시를 잘 따라주기 바란다. 그의 말이 일본제국을 대변한다고 생각해라.”


놀라운 말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촌장을 바라봤다.


“어험!”


촌장이 헛기침했다. 생살여탈권을 쥔 중대장이 자기를 치켜세우자 순간, 우쭐해져서 목에 힘이 들어갔다. 촌장이 말했다.


“이건 분명, 중대장님 말씀이오. 내가 꾸민 게 아니오! 난 중대장님 말씀을 그대로 전했소.”


마을 사람들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촌장을 쳐다봤다.


촌장의 말이 일본제국을 대변한다는 건 촌장 뒤에 일본군이 있다는 말과 같았다. 그 누구도 촌장의 말에 거스를 수 없다는 뜻과 같았다.


“불령선인의 모든 재산은 촌장의 책임하에 군이 압수할 것이다. 촌장은 이를 잘 처리하길 바란다.”


중대장이 일장 연설을 마치고 솟대에서 내려왔다.


중대장의 후안무치한 연설에 마을 사람들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일본군의 총칼 앞에 감히 대들 수가 없었다. 그들이 커다란 좌절감에 고개를 푹 숙였다.


반면 촌장은 어깨를 쫙 펴고 눈에 힘이 들어갔다. 중대장의 추켜세움에 내심 든든했다. 하지만 눈빛은 흔들렸다.


혹 사람들이 자기를 일본 앞잡이라 욕할까 두려웠다.


마을 사람들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촌장이 급히 사람들을 다시 모았다.


“왜 그러세요? 촌장님.”


사람들이 원망하는 눈빛으로 촌장을 쳐다봤다. 그들은 덕망이 높았던 촌장이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할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촌장은 예사롭지 않은 사람들의 시선에 내심 겁이 났지만, 그의 뒤에는 일본군이 있었다. 그들의 총칼이 든든했다.


그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일을 참으로 유감이외다. 하지만 이렇게 끝난 게 다행이오.

까닥 잘못했다간 우리, 모두가 화를 당할 뻔했소. 오늘 화를 입는 자들은 사실 독립군과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소.

그동안 내가 말을 못 했지만, 그들은 모두 일본에 거역하는 자들이었소. 그들 때문에 우리, 모두가 죽을 수는 없잖소!”


촌장이 새빨간 거짓말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자기 합리화였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수군거렸다. 한 사람이 따지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이 독립군과 내통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나요. 형님!”


신우 아빠의 절친인 길동이 아빠가 촌장에게 울먹이며 큰소리로 따졌다.


길동이 아빠와 촌장, 신우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절친이었다. 셋 중에서 촌장은 큰형으로 대우받았다.


이에 촌장이 발끈했다.


“동생! 어떻게 그런 말을! 내 말이 거짓이라면 중대장님을 다시 불러오겠소. 중대장님과 함께 시시비비를 따집시다.”


저승사자와 같은 중대장을 다시 불러오겠다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기겁했다.


길동이 아빠가 열불이 나서 더 따지려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그를 말렸다.


“그만 하세요. 제발!”


“자네! 우리를 다 죽이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간곡한 만류에 길동이 아빠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의 눈에 평생의 절친을 잃은 슬픔이 가득했다.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천근만근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마을 사람들이 흩어지자, 촌장은 그동안 참았던 긴장감 토해냈다. 그리고 엄청난 갈증을 느낀 듯 물을 급히 찾았다.


뭐가 그리 급한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마시더니 결국, 사레가 들려 고통을 호소했다.


“컥! 컥! 아이고! 죽겠다.”


한참의 기침 끝에 촌장이 겨우 진정했다. 소매로 입을 닦고 잠시 서 있었다. 그러다 이제 긴장이 확 풀렸는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젠 다 끝났어. 그럼, 그렇고말고.”


촌장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자기가 한 짓을 아무도 모를 거라며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늦은 오후가 되자, 일본군이 마을을 떠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사해서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러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 문을 꼭 걸어 잠갔다. 그리고 한동안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대부분 마을 사람이 몸을 사렸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10여 명이 마을 어귀에 다시 모여서 길을 떠났다.


그들은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명복을 기리기 위해 공터로 향했다. 산길을 걷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길동이 아빠가 일행의 맨 앞에 있었다. 손에 소주병이 들려있었다. 그 술은 오늘 저녁 신우 아빠와 거하게 한잔하려고 장터에서 사 온 술이었다.


한동안 이어진 침묵의 끝에 사람들이 공터에 도착했다.


10여 명이 너무나도 슬픈 현실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여러분 … 고인의 명복을 빕시다.”


길동이 아빠가 무척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공터 곳곳에 술을 뿌리며 고인의 명복을 달랬다.


나머지 사람들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통곡했다.


어제와 오늘 그들과 함께했던 이웃, 친구, 친척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일행의 끝에 신우의 친구인 덕대, 기철, 명호도 있었다.


오전에 콩 튀기 하며 놀던 기억이 생생한데 신우가 죽었다는 소식에 기가 막혀서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울음을 삼켰다.


“신우가 … 절대로 죽었을 리가 없어!”


덕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시, 신우야! 안돼!”


기철이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가 너무나도 서럽게 울었다. 명호가 기철을 안아주며 위로했다.


“기철아! 울지 마. 신우는 좋은 곳에 갔을 거야. 그리고 만약, 살아있다면 반드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거야!”


명호가 기철의 눈물을 닦아주고 앞에 있는 절벽을 바라봤다. 절벽에 붉은 피가 뿌려져 있었다. 신우가 뿌린 피였다.


선명한 핏자국을 보던 명호가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간절히 기도했다.


신우가 제발 사지에서 도망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신우야! 살아있다면 다시 돌아와야 해!’


해가 점점 저물어갔다. 붉은 노을이 산천을 물들였다. 명복을 빌던 사람들도 슬픔을 삼키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공터에는 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들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자, 깊은 어둠이 내렸다.


하늘 높은 곳에 초승달이 떴지만, 짙은 구름에 가려 달빛이 어느 때보다도 약했다.


29명이 영혼이 잠든 공터는 다른 곳보다 더 어두웠다. 컴컴한 어둠과 쓸쓸함을 달래는 새 소리만 간혹가다가 들릴 뿐이었다.


밤이 점점 깊어만 갔다.


그러다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날이 시작되었다.


새벽녘, 아침을 알리는 촉촉한 이슬이 산천을 적시자, 잎사귀에 구슬 같은 이슬이 맺혔다.


이제 광명의 시간이었다. 해가 천천히 떠올랐다.


햇빛이 사방으로 퍼지자, 잎사귀에 맺힌 이슬이 밝게 타오르는 햇빛을 받아서 영롱하게 빛났다.


그렇게 새로운 아침이 시작되었다.


어제와 다른 새로운 아침이었다.


공터에 따뜻한 기운이 맴돌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인기척도, 들짐승도 없는 공터에서 땅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땅의 흔들림은 점차 커졌다.


순간! 검은 흙더미 속에서 한 손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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