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12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12화_팥과 대추나무


신우가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직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듯, 눈빛이 몽롱했다.


사람들은 귀신을 본 듯 도망치기에 바빴다.


신우가 다시 솟대에 앉았다. 그리고 쥐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잠시 후, 혼절했던 촌장이 깨어나 고개를 들었다. 자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신우를 보고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너, 너는 귀신이냐? 사, 사람이냐?”


“…….”


신우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냥 솟대에 앉아만 있었다.


“귀신이다!”


촌장이 다급하게 소리치고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봤다.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도망치고 없었다.


“큰일이다!”


촌장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죽은 신우가 자기를 단죄하러 다시 돌아온 것 같았다. 이에 “걸음아 나 살려라!”를 외치며 꽁지가 빠지게 도망쳤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한 소년이 한동안 솟대에 앉아 있었다.


새들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잠시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불현듯, 뭔가를 깨달은 듯 신우가 오른손을 내려다봤다. 뭔가를 꽉 쥐고 있었다.


그건 엄마의 유품인 비녀였다.


신우가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비녀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열여덟 어린 나이에 엄마가 시집와서 그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던, 엄마의 분신 같은 비녀였다.


비녀가 햇빛을 받자, 찬란한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 빛에 눈이 부신 듯, 신우가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꼭 감았다.


그가 눈을 감자, 어제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누렁이, 마을 사람들 그리고 흙구덩이!



참담한 비극이 다시 떠오르자, 신우의 몸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흙구덩이에서 빠져나와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어제의 비극이 그를 다시 몸서리치게 했다.


“아!”


신우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공터를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그곳은 엄마가 묻힌 곳이었다.


험한 산길을 뛰다가 넘어지고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그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동안 내달린 끝에 공터에 도착했다.


이제는 아무도 없는 평온한 공터였다.


신우가 안간힘을 쓰며 파헤치며 올라온 흙더미만 보일 뿐이었다.


고요했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엄마!”


신우가 엄마를 불렀다. 이곳은 엄마와 이별한 곳이었다.


한발 한발 힘겹게 신우가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엄마가 묻힌 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눈을 감아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긴 끝에 한 곳에 멈췄다.


“…….”


신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이곳 땅속에 엄마가 있었다.


순간, 그의 무릎이 90도로 꺾였다. 폭풍처럼 몰아치는 슬픔을 더는 견딜 수 없는 거 같았다. 이윽고 처절하게 흐느꼈다.


하지만 눈물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눈물샘이 다 말라버린 거 같았다.


속으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듯 어깨가 격하게 흔들렸다.


바람 소리가 들렸다.


근처 산속에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마치 산천초목이 우는 듯했다. 나뭇가지가 마구 흔들렸다.


높은 가지에서 신우를 지켜보던 새들도 복받치는 슬픔을 참을 수 없는지 구슬프게 울기 시작했다.


봄바람이 여느 때와 달리 매섭게 불었다. 마치 칼바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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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살아야 해!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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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우의 귓가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의 마지막 당부였다. 이에 이를 악물고, 두 손을 꽉 쥐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절벽에 핏자국이 보였다.


바로 신우가 뿌렸던 핏자국이었다. 절벽을 기어오르다 어깨에 총을 맞은 흔적이었다. 그 흔적이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가 핏자국을 보면서 생각했다. 엄마의 마지막 말을 되새기고 다짐했다.


“엄마! 반드시 살아남아서 … 복수할게요!”


신우가 비녀를 있는 힘껏 꽉 쥐었다. 손과 비녀가 파르르 떨렸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비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휴우~!”


큰 숨소리와 함께 신우가 몸을 돌렸다.


그는 엄마 곁에 언제나 계속 있고 싶었지만,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태산처럼 마음을 굳게 먹었다.


“돌아간다, 집으로.”


신우가 마을로 향했다. 목적지는 집이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었다.



*



신우가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걸음을 옮겼다.


발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남은 힘을 자아냈다.


그렇게 다시 마을 어귀에 돌아왔다. 인기척이 없어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 황량하고 쓸쓸했다.


신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신나게 뛰어놀던 이 길이 마치 처음 온 길인 양 낯설게 느껴졌다.


공터에 엄마가 있다면 마을에는 아빠의 시신이 있었다.


그는 아빠의 마지막을 보지 못했다. 그날 엄마에게 애타게 물어봤지만, 엄마는 말없이 눈물만 흘릴 뿐 어떤 말도 해주지 않았다.


잠시 마을 어귀에서 망설이던 신우가 이내 결심한 듯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마을 안도 마을 어귀처럼 인기척이 없었다.


간혹 무심하게 지나다니는 동네 개들만 보일 뿐이었다.


한마디로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혼자서 길을 걷던 신우가 집 앞에 다다랐다.


그날의 총성과 함께 누렁이가 짖는 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했다.


아울러 사립대 밖으로 날아갔던 일본군들이 다시 보이는 듯했다.


신우 아빠는 천하장사였다. 신우도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아빠한테 쌀 한 가마니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쌀 두 가마니를 어깨에 짊어지고 어린 신우를 목말까지 태웠다.


신우가 환호성을 질렀다. 아빠의 대단한 힘에 신이 난 듯 두 팔을 높이 쳐들고 환성을 질러댔다.


아빠만 있으면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었다. 그렇게 든든했던 아빠가 지금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세 발의 총소리만 남긴 채 사라졌다.


신우가 사립문 앞에서 머뭇거렸다. 아빠의 피 냄새가 풍기는 거 같았다.


그가 한동안 망설이다가 마당으로 들어갔다.


신우가 사방을 둘러봤다.


내 집이지만 내 집 같지 않았다. 어제까지 있었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아빠가 애지중지 키우던 검둥이가 보이지 않았고 엄마가 열심히 쓸고 닦았던 세간살이가 보이지 않았다.


신우 집은 마치 어제 이사 간 듯 텅 비어 있었다.


남은 것이라곤 … 엄마의 낡은 신발 한 짝과 피 묻은 호미 하나만 바닥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신우가 걸음을 옮겼다. 몸을 숙여 두 물건을 잡았다.


한 손으로 엄마의 신발 한 짝을 꼭 쥐고 다른 손으로는 피 묻은 호미를 꽉 잡았다.


호미는 엄마의 농기구였다. 감자나 고구마를 캘 때 늘 사용하던 물건이었다.


호미가 있던 자리에 핏자국이 있었다. 핏줄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신우가 눈을 감았다. 아빠의 결기와 고통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아빠가 이 자리에 홀로 서서 신우와 엄마를 지키기 위해 일본군과 싸웠다는 사실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마당에 잠시 서 있던 신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와 아빠의 흔적이 사라진 이 집에서 더는 있고 싶지 않았다. 그가 힘없이 집 밖으로 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신우가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는 어딘가로 가고 싶었지만, 나침반 없이 표류하는 선박처럼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립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시간이 얼마쯤 흘렀을 때,


어디선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신우 집으로 몰려왔다.


“이게 무슨 일이고!”


“대낮에 귀신이라니!”


그들은 다름 아닌 마을 사람들이었다.


“아! 저분들은 ….”


신우가 마을 사람들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반가움에 그들에게 달려갔다.


“귀신이다!”


신우가 달려오자, 사람들이 기겁하고 한 사람의 뒤로 물러섰다.


맨 앞에 선 사람은 할머니였다. 색동옷을 입고 구슬을 들고 서 있었다.


그녀는 이 마을의 중대사를 관장하는 할머니 무당이었다.


“무당님! 어떻게 해보세요! 제발.”


“쟤가 신우예요? 귀신이에요?”


마을 사람들이 몸을 벌벌 떨며 말했다. 그들은 사지에서 돌아온 신우를 보고 두려워했다.


할머니 무당이 구슬을 흔들며 앞으로 나왔다.


쩌렁! 쩌렁!

낭랑한 구슬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할머니 무당이 구슬을 흔들며 신우에게 소리쳤다.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너는 귀신이나? 사람이냐? 귀신이면 어찌 대낮에 사람 탈을 쓰고 인간 행세를 하느냐? 어서 그 탈을 벗어라. 내가 네 혼을 위로해서 구천으로 보내주마!”


신우의 눈빛에 황당함이 서렸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무녀님! 쟤가 귀신입니까? 사람입니까? 귀신이 이렇게 밝은 대낮에 돌아다닐 수 있습니까?”


마을 사람 하나가 할머니 무당에게 물었다.


“귀신이 맞아! 쟤는 어제 분명히 죽었어!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촌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부인 뒤에 숨어서 두려운 눈으로 신우를 쳐다봤다.


신우의 시선이 촌장으로 향했다. 그러자 촌장이 깜짝 놀란 듯 부인의 등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음, 겉보기에는 사람으로 보이는데.”


할머니 무당이 고개를 한번 갸우뚱하고 신우 주변을 맴돌았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 무당만 쳐다봤다. 무슨 대처를 하기만을 바랐다.


“왜 이러세요. 저 신우예요. 귀신이 아니에요!”


신우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크게 소리쳤다. 그가 말을 이었다.


“어제 땅에 파묻혀 죽는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어쩐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살았어요.”


신우가 기운을 차리고 똑 떨어지는 목소리로 항변했다.


“어라?”


사람들이 긴가민가한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귀신이라고 생각했던 신우가 또박또박 말을 잘하자, 경계심을 풀기 시작했다. 일부는 신우가 살아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보아도 귀신이 아닌 것 같아요!”,


“신우가 맞아요. 귀신은 그림자 없다고 했잖아요. 저기 그림자가 있어요!”


“맞네! 그림자가 있네. 그런데 … 어떻게 살았지?”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 무당만 쳐다봤다. 어서 답을 달라고 조르는 거 같았다.


“무당님! 답을 주세요. 저 아이가 귀신인지 사람인지 가르쳐주세요!”


할머니 무당이 고개를 끄떡이고 말했다.


“그러면 저 물건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알 방법이 있다. 팥과 대추나무를 가져와라!”


할머니 무당의 말에 몇몇이 팥과 대추나무를 가져왔다.


“에험!”


할머니 무당이 한번 헛기침하더니 팥을 한 움큼 쥐었다. 신우 앞에 팥을 쫙 뿌리고 말했다.


“이놈아, 바닥에 있는 팥을 밟고 나에게 와라!”


신우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의 의심을 풀려면 무당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팥을 밟고 무당을 향해 걸어갔다.


“우와!”


“아무 이상이 없네! 팥은 귀신을 쫓잖아!”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할머니 무당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우의 당당한 행보에 짐짓 놀란 듯했다. 그녀가 입맛을 다셨다.


손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손에 침을 묻혔다. 대추나무로 만든 방망이를 꽉 잡더니 높이 쳐들었다.


“어?”


할머니 무당이 대추나무 방망이를 높이 쳐올리자, 신우가 이게 대체 무슨 일 인가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 방망이로 대체 무엇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할머니 무당이 신우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그러다 갑자기 신우의 머리를 내리쳤다.


딱!


“아야!”


갑작스러운 봉변에 신우가 비명을 질렀다. 노란 별이 보이고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주 단단한 대추나무 방망이가 톡! 하고 부러졌다.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할머니 무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쪽이 된 대추나무 방망이를 내려다봤다. 대추나무는 귀신을 쫓는데 특효약이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할머니 무당이 침을 꿀컥 삼키고 고개를 들었다. 신우를 자세히 살폈다.


신우는 아주 멀쩡했다.


“그렇군.”


할머니 무당이 뭔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연신 끄떡였다. 그러다 마을 사람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쟤 사람이야! 귀신 아니야!”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환호성이 들렸다.


“우와!”


“신우가 진짜로 돌아왔구나!”


마을 사람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신우에게 달려들었다.


“어떻게 살아 돌아왔어?”


“몸은 괜찮아?”


마을 사람들의 환대에 신우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다 서러움이 복받쳐 흐느꼈다.


“울지 마! 신우야!”


사람들이 신우를 다독여주었다. 낙심하지 말라고 어깨도 두드려주었다.


어른들의 뒤에는 신우의 친구인 덕대, 기철, 명호가 서 있었다.


넷은 신우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두 팔을 벌리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신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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