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새로운 날이 밝았다.
신우가 나무 틈으로 쏟아지는 밝은 햇빛을 받으며 잠에서 깼다.
오두막 안이 어두워서 그런지 햇빛이 더욱 밝게 보였다.
동틀녘은 한여름이 아니면 추운 편이었다.
신우가 한기를 느낀 듯 길동이 아빠가 가져다준 솜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무거운 눈을 꾹 감았다.
잠기운이 스며들자, 정신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검둥이가 퍼뜩 떠올랐다.
아침에는 할 일이 있었다. 검둥이한테 쇠죽을 끓여 줘야 했다.
‘아!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데 … 늦잠 자면 엄마한테 혼나는데!’
신우는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가 사방을 돌아다니며 부엌을 찾았다. 하지만 이곳은 정든 집이 아니었다.
익숙한 세간살이도, 누렁이, 검둥이도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어색한 자그마한 오두막만 보일 뿐이었다.
‘아! 그, 그렇지.’
신우가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정신 차렸다. 이윽고 자기의 비참한 처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다리에서 힘이 점점 빠지기 시작했다.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하고 주저앉고 말았다.
언제나 변함없던 일상은 과거의 추억일 뿐이었다. 이제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일상이 기다릴 뿐이었다.
신우가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일어나고 싶었지만, 일어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세상에 혼자 남은 그에게 살아갈 희망은 사치였다. 그렇게 절망의 시간이 지나갔다.
물소리가 들렸다.
오두막 앞에 작은 개울이 있었다. 바람 소리가 잦아지자,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어느 때보다 청아하게 들렸다.
그때 ‘붕어를 잡자!’는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기철이 어제 웃으면서 한 말이었다.
붕어구이를 생각하니 저절로 입맛이 돌았다. 입에 군침이 고였다.
‘그래 붕어를 잡아야지. 맛있게 붕어를 구워 먹어야지!’
신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봤다. 넓고 깊은 하늘을 보면서 다시는 약해지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크게 심호흡을 했다.
“후와!”
신선한 공기가 코를 통해 허파로 들어왔다. 차디찬 공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할 일이 있었다. 반드시 살아남아서 갚아야 할 게 있었다. 그날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야 했다.
밥이 모래알 같더라도 씹어 먹어야 했고, 국이 쓰디쓴 소태라도 들어 켜야 했다.
반드시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 하루를 버텨야 했다.
그렇게 신우가 힘을 내서 개울가로 향했다. 차디찬 개울물로 세수하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맑고 상쾌한 물로 얼굴과 목을 씻으니 기분이 한층 나아졌다. 손과 발을 깨끗이 씻고 오두막으로 돌아갔다. 이불을 개고 어질러진 실내를 정리했다.
시간이 흘러 한낮이 되었다.
신우가 산 밑으로 내려가 친구들을 기다렸다. 오늘은 기철이 맨손 붕어잡이 솜씨를 보여주는 날이었다.
해가 중천에 뜨자, 저 멀리에 친구들이 보였다.
신우가 기쁜 마음에 그들에게 달려갔다. 친구들도 신우를 보고 반가워서 달려왔다.
“잘 잤지? 신우야!”
친구들은 너도나도 신우의 안부를 물었다.
“물론, 잘 잤지. 이제 놀러 갈까!”
한층 밝아진 신우의 모습을 보고 친구들이 안도했다.
“야! 오늘을 나만 믿어!”
맨손 붕어 잡이, 명수인 기철이 자신만만하게 나섰다.
“그물을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맨손으로 얼마나 잡겠어. 나 많이 먹는 거 알잖아? 그냥 그물을 쓰자.”
언제나 배고픈 덕대가 그물을 사용하자고 기철에게 졸라댔다. 붕어를 배불리 먹고 싶다며 졸라댔다.
기철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깐! 오늘 바구니 가득 붕어를 잡을 테니, 덕대 너는 배부르다고 칭얼거리지나 마라!”
기철이 호언장담하자, 덕대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다 붕어를 맛있게 구워 먹을 생각에 군침이 돌았다.
신우와 아이들이 기철을 앞세워서 마을 냇가로 갔다. 냇가의 물이 탁해서인지 물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
“괜찮겠어? 기철아! 물이 너무 흐린데.”
“걱정하지 마라! 다 요령이 있어.”
기철이 자신만만하게 외치고 소매와 바지를 걷어붙였다.
평상시 조용했던 기철이 이때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만만하고 적극적이었다. 물속으로 들어가더니 붕어가 있을 만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첨벙첨벙 물속을 걸어 다니며 한참 동안 물속을 살피던 기철이 고개를 끄떡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기철이 밖으로 나왔다.
“얘들아! 물속으로 들어가 수풀 속에 발자국을 내라!”
“알았어.”
아이들이 물속에 들어가 신나게 발자국을 남기며 놀았다.
“됐어! 이제 올라와!”
기철의 말에 아이들이 다시 물 밖으로 나왔다.
잠시 후, 물이 잠잠해졌다.
기철이 이제 됐다는 표정을 짓고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냇가에서 붕어가 숨을 만한 곳을 찾더니, 그 반대편으로 손을 쑥 집어넣었다.
바위 밑에 숨어있던 붕어가 깜짝 놀라서 바위틈에서 나왔다. 바로 그때! 기철이 붕어의 머리를 꽉 잡았다.
한 손으로는 붕어의 눈을 가리고, 다른 손으로는 꼬리를 잡았다.
사로잡힌 붕어가 놀라서 계속 파닥거렸다. 아이들은 신나서 크게 외쳤다.
“야! 잡았다. 월척이다!”
“나만 믿으라니깐!”
기철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잡은 붕어를 바구니를 향해 힘껏 던졌다.
붕어가 바닥에서 파닥거리자, 아이들이 붕어를 잡겠다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렇게 기철이 능수능란한 솜씨로 바위틈에 숨어있던 붕어 여러 마리를 잡아 올렸다.
그런 다음, 수풀 속 아이들이 낸 발자국에 숨어있던 붕어까지 싹 다 잡아 올렸다.
커다란 바구니가 금세 붕어로 가득 찼다.
“야! 기철이 최고다!”
덕대가 신이 나서 크게 소리쳤다. 붕어를 원 없이 구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방방 뛰었다.
다음은 맛있는 식사 시간이었다.
모닥불을 탁탁 피우고 붕어를 꼬챙이 끼워서 노릇노릇하게 구웠다.
아이들이 잘 익은 붕어를 들고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여러 마리를 해치우고 이내 배가 부른 듯 자리에 편하게 누웠다.
“오늘 기철 덕택에 포식했다. 하하하!”
신우가 크게 웃었다. 신우가 기뻐하자, 아이들도 같이 웃으며 즐거워했다.
“역시 기철은 붕어 잡을 때 최고야!”
“맞아! 따라올 자가 없어.”
덕대와 명호가 기철의 탁월한 붕어 잡기 솜씨에 감탄해서 그를 아낌없이 칭찬했다.
기철은 평상시 매사에 자신감이 없었고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붕어 잡기만큼은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자기 장기를 알아주는 친구들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다.
“야! 저기에 청솔모가 있다.!”
명호가 나무에 오르는 청솔모를 보고 크게 소리쳤다.
“잡으러 가자!”
아이들은 모두 벌떡 일어나 청솔모를 향해 달려갔다.
청솔모가 발소리에 놀란 듯, 아주 빠르게 나무 위로 올라갔다.
신우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만하자! 얘들아. 쟤도 놀랐을 거야.”
정신없이 도망가는 청솔모를 보고 신우가 힘없이 말했다. 청솔모도 자기처럼 불쌍한 신세인 것 같았다. 그가 힘을 내어 말했다.
“우리 그냥 … 비석 치기나 하자!”
“그래! 그게 좋겠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비석 치기 놀이하며 신이 나게 놀았다.
시간이 점점 흘러 날이 저물어갔다.
“이제 너희들은 집으로 가야지.”
신우가 아쉽지만, 먼저 입을 열었다.
아이들은 혼자 남은 신우가 불쌍했지만, 집으로 가야 했다.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 내일 또 재미있게 놀자! 자치기나 할까?”
“내가 제사하고 남은 음식 좀 갖고 올게.”
덕대가 역시 먹는 얘기를 했다.
“그래, 그래. 정말 고맙다.”
신우의 두 눈에 눈물이 맺혔다. 자기를 챙겨주는 친구들이 정말 고마웠다.
“신우야! 우리가 있잖아, 걱정하지마. 나중에 어른이 되면 바깥세상 구경이나 하자! 난 큰돈을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고 싶어!”
명호가 씩 웃으며 신우에게 말했다.
신우가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신우와 명호는 통하는 게 있었다. 바로 둘 다 고아였다.
신우는 명호를 보면서 그동안 부모 없는 설움이 얼마나 서러운지 알 거 같았고 명호는 자기보다 더 처량한 신세인 신우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다.
“안녕! 내일 보자.”
“내일 봐!”
친구들이 신우에게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내일 만날 것을 기약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산속이라 해가 금방 떨어졌다. 어둠이 오두막으로 내려앉았다.
혼자 남은 신우가 저녁을 준비했다. 덕대가 가져다준 밥과 김치를 꺼냈다.
산속이라 바람이 예사롭지 않았다. 낮에는 포근했지만,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
신우가 김치를 밥에 척 올려, 한술을 뜨려는 순간, 저 멀리서 들짐승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이곳은 들짐승들이 출몰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곳을 택해서 오두막을 지었다. 그런데 들짐승의 눈빛이 보였다.
“이런!”
신우가 번쩍이는 눈빛에 놀라서 옆에 있는 나무 막대기를 서둘러 들었다.
사각사각 발소리가 들렸다.
정체불명의 들짐승이 계속 다가왔다.
“젠장!”
신우는 긴장감에 침을 꿀컥 삼켰다. 들짐승이 배가 고파서 왔다면 밥을 주면 그만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한판 붙을 수밖에 없었다.
들짐승이 방향을 틀지 않고 신우를 향해 계속 다가왔다.
긴장된 순간이었다.
신우가 막대기를 더욱 꽉 잡았을 때!
그 순간, 들짐승이 신우에게 달려들었다.
신우는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짐승의 얼굴을 냅다 후려치려고 막대기를 힘껏 들어 올렸다.
“컹! 컹!”
숲 속에서 개소리가 울려퍼졌다.
들짐승의 정체는 누렁이였다. 신우가 아침마다 같이 놀고 밥을 주던 누렁이였다.
누렁이는 일본군들과 싸우다 총소리에 놀라서 마을에서 멀리 도망쳤었다. 깊은 숲속에 숨어있다가 날이 저물자 집에 돌아왔지만,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인의 피 냄새만 풍길 뿐이었다.
이후 누렁이는 집을 떠나 산속에서 홀로 지냈다. 그러다 오늘, 정처 없이 먹이를 찾아서 산속을 헤매다 오두막에서 풍기는 음식 냄새를 맡고 신우를 찾아온 거였다.
“누렁아!”
“컹! 컹!”
신우와 누렁이가 서로를 알아보고 부둥켜안았다.
“아이고, 간지러워.”
누렁이가 신우의 얼굴을 연신 핥았다. 오랜만에 찾은 어린 주인이었다.
“자, 막대기 물어와.”
신우가 잡고 있던 막대기를 멀리 던졌다. 그러자 언제나 그렇듯 누렁이가 저 멀리 떨어진 막대기를 물어서 돌아왔다.
꼬리를 연신 흔들고 반갑다며 주인에게 달려들었다.
“아이고, 배가 고팠구나.”
신우가 안타까움에 혀를 찼다. 한동안 굶었는지 누렁의 갈비뼈가 앙상하게 드러났다. 이에 남은 붕어구이를 누렁이에게 주었다.
누렁이가 붕어 냄새를 맡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입맛을 다셨다. 붕어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신우는 깡마른 누렁이를 보면서 자기처럼 고생한 것 같아, 눈물이 핑 돌았다. 누렁이가 한층 안쓰러웠다.
그는 돌아가신 엄마, 아빠가 누렁이를 보내줬다고 생각했다. 이에 더욱 힘을 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잘 먹고 잘 커서 엄마, 아빠를 죽게 만든 원흉을 반드시 찾아서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울러 억울하게 죽어간 마을 사람들의 원혼도 달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작고, 힘이 없었다. 빨리 어른이 돼서 아빠처럼 힘이 세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이제 깊은 밤이 되었다.
신우와 누렁이가 고개를 높이 들고 밤하늘을 쳐다봤다.
짙푸른 밤하늘이 어느 때보다 아름다웠다. 은하수가 펼쳐지자, 알록달록 무지개색 빛이 화려했다.
“오늘은 외롭지 않게 밤을 보낼 수 있겠네. 너도 그렇지?”
신우가 누렁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었다.
“컹! 컹!”
누렁이가 신우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연신 짖어댔다.
“알았어. 그만 짖어.”
조용한 숲속에 평화가 찾아왔다.
신우와 누렁이가 서로를 위로하며 오랜만에 깊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