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30여 년 전 아기를 업은 한 남자가 큰 강을 건너 간도 구산마을에 정착했다. 그는 신우 할아버지였다. 아직 아기였던 아빠를 등에 업고 이 마을에 정착했다.
소작농이었던 할아버지는 자기만의 비옥한 농토를 갖고 싶었다. 이에 고향인 함경도를 떠나 간도로 와서 황무지를 개척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비록 넓지는 않았지만 둘이 살기에 부족함이 없는 논과 밭을 갖게 되었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 평생소원을 이룬 그는 자기 땅을 바라보며 유명을 달리했다.
양지바른 곳에 할아버지를 묻은 아빠는 땅을 지키라는 유언에 따라 농부가 되었다. 농부가 돼서 물려받은 땅을 누구보다 풍요롭게 가꾸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외롭게 살던 아빠가 장터로 향했다. 필요한 농기구를 사고 위 마을에 사는 친구도 만날 요량이었다.
그가 장터에 들러 물건을 고르고 흥정할 때 그의 시선이 한 사람한테 고정됐다.
그 사람은 건넛마을에 사는 처자였다.
마을에 역병이 돌아 일가족을 모두 잃은 불쌍한 여자였다. 장터에서 빗과 비녀를 노상에서 팔고 있었다. 열여덟 살 파릇파릇한 나이였지만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음!”
아빠가 먼발치에서 처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러다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떡이더니 그녀에게 다가가 빗 하나를 고르고 말했다.
“빗 하나에 얼마죠?”
갑자기 나타난 청년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처자가 깜짝 놀랐다. 얼굴이 빨개져서 아무런 말도 못 했다.
늠름하고 잘생긴 청년의 모습에 가슴이 사정없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어이 총각! 홍순이는 불쌍한 아이여. 희롱하면 안 돼!”
처자 옆에서 소쿠리를 파는 노파가 아빠한테 핀잔을 줬다.
“희롱이라뇨? 그런 거 아닙니다, 어르신.”
아빠가 노파에게 말하고 처자의 눈을 바라봤다. 맑고 깊은 눈이었다.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들불처럼 번졌다.
“어~?”
처자가 깜짝 놀랐다. 자기를 보고 환하게 웃는 총각을 보고 어쩔 줄 몰라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렇게 신우 아빠가 엄마를 처음 만났다. 여러 달이 흐른 후, 둘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날 좋은 날을 받아서 조촐하지만, 행복한 혼례를 치렀다.
열 달 후, 엄마가 아들을 순산했다. 그 아이가 바로 신우였다. 신우네는 두 칸 자리 초가였지만, 세 식구가 사는 데 부족함이 전혀 없었다.
아이가 생기자, 아빠와 엄마가 더 열심히 일했다. 신우도 이에 보답하듯 무럭무럭 자랐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쏜살같이 흘러갔다.
신우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소년으로서 꿈을 크게 꾸고 있을 때!
예기치 못한 불행이 닥치고 말았다. 소중한 일상이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갑자기 등장한 일본군이 그의 부모를 빼앗아갔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그렇게 그는 졸지에 피붙이 하나 없는 천애 고아가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독립군과 내통했다는 오해까지 받고 마을에서 쫓겨나 산속 오두막에서 누렁이와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부모님과 친했던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 있는 커다란 슬픔은 감출 수도 없었고, 그 누구도 속일 수 없었다.
종종 부모님 생각이 날 때면, 그의 걸음이 바빠졌다. 정신없이 산 위로 올랐다. 산 중턱 전망 좋은 곳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며 안정을 되찾았다. 여유롭고 한가한 풍경 속에서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어린 시절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엄마랑 냇가에서 물놀이하고, 아빠가 목말 태워주던 그 날들을 떠올리며 슬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마냥 슬퍼할 수만은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했고, 돈이 필요했다.
이에 아침 일찍 일어나 땔감으로 쓸 나무를 열심히 주웠다.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나무를 모아서 지게에 담았다.
곧 지게에 나무가 가득 찼다. 차서 넘칠 정도였다.
“으싸!”
신우가 지게를 짊어지고 마을 근처로 내려갔다. 가파른 산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큰길에 다다랐다.
길에 명호가 있었다. 빈 지게를 땅에 내려놓고 신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명호야!”
“신우야!”
둘이 반갑게 서로를 맞이했다. 땀을 식히러 그늘로 들어갔다.
신우가 명호의 얼굴을 자세히 봤다. 그가 말했다.
“명호야, 얼굴에 멍이 있는데 누구랑 싸웠어?”
“별거 아니야 마석하고 한 판 붙었지. 내가 그놈을 보기 좋게 때려눕혔어! 하하하!”
명호가 멍든 얼굴을 만지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그런 일이 있었어?”
신우는 별일 아니라는 명호의 말에 안도했지만, 멍든 얼굴이 안쓰러웠다.
“명호야, 마석이 맘에 안 드는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싸우지는 말자. 서로 다치는 일이야.”
신우의 말에 명호가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그러다 신우가 갖고 온 나무를 쳐다봤다. 이윽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와! 나무 양이 엄청난데! 이걸 어떻게 산에서 메고 내려왔어? 이 많은 걸 혼자서 다 들었다고?”
“응, 별로 무겁지 않던데.”
“저게 별로 무겁지 않다고? 무게가 쌀 한 가마니는 충분히 넘을 거 같은데 ….”
신우가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다 너희들이 맛있는 반찬을 가져와서 그렇지, 뭐. 예전보다는 힘이 세진 것 같기는 해. 하하하!”
신우가 호탕하게 웃자 명호도 기분이 좋은 듯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명호가 아차! 하며 급히 말했다.
“아 참! 너에게 줄 게 있어.”
명호가 말을 마치고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가 말을 이었다.
“소금이야! 숙모님한테 혼날까 봐 많이 가져오지는 못했어!”
“와! 이렇게 귀한 것을 주다니! 정말 고맙다.”
신우가 소금을 받고 반색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둘이 재미있는 얘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한 참의 시간이 흘렀다.
명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명호가 신우에게 할 말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희 집 검둥이가 촌장네에 있더라.”
“뭐라고! 검둥이는 일본군이 끌고 간 것 아니었어? 일본군이 우리 집 재산을 다 강탈했잖아!”
신우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답했다. 그가 벌떡 일어났다.
“우리도 그런 줄 알았는데 … 검둥이가 촌장네에 진짜로 있더라고. 내가 매일같이 보던 검둥이를 몰라볼 리가 없잖아.
그런데 검둥이만 있는 게 아니었어. 그날 돌아가신 분들의 재산이 촌장네에 많다는 말도 들었어.”
명호가 착잡한지 말을 흐렸다.
“예전부터 촌장 어른이 우리 집 검둥이를 탐내긴 했는데 ….”
신우가 촌장을 떠올렸다.
촌장이 검둥이를 볼 때마다 힘이 좋다고 하면서 칭찬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
“삼촌이 그러는데, 지금 촌장 어른이 꽤 부자가 됐대, 전에는 빚에 쪼들리는 사람이 이젠 고리대까지 한대.
일본말도 잘하고 일도 잘 처리해서 일본군의 신임을 얻고 있고 …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근처 마을 사람들도 촌장 어른만 보면 쩔쩔맨다고 들었어.”
동네 소식통답게 명호가 그날 이후, 갑자기 부자가 된 촌장의 근황을 숨김없이 말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없었다. 그날 희생된 사람들이 촌장하고 악연이 있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이 얘기는 아직은 소문에 불과했고 신우가 이 말을 들으면 큰 상처를 받을 것만 같았다.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신우가 분을 참을 수 없었다. 너무 화가 나서, 촌장에게 당장 달려가 따지고 싶었다.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재산을 몰래 빼돌리고, 게다가 원수인 일본군에게 아부하는 촌장을 생각하니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날, 그렇게 친하게 지냈던 엄마, 아빠와 자신을 외면하던 그 뻔뻔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신우가 분노에 몸을 떨었지만, 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을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
신우가 잠시 아무런 말 없이 서 있었다.
명호가 수심에 잠긴 신우를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잠시 후 신우가 침묵을 깨고 명호에게 물었다.
“촌장 어른이 언제 마을 밖으로 나오지?”
“그건 … 아, 요즘 오후 늦게 마을을 나서는 모습을 많이 봤어. 건넛마을에 일본군 헌병대가 있대. 헌병대에 자주 보고하러 나간다고 들었어.”
신우가 잘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떡였다.
이제 헤어져야 할 시간이었다.
신우와 명호가 지게를 바꿔 맸다. 신우 지게는 빈 지게였고 명호 지게는 나무가 한가득이었다.
명호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와! 이건 엄청 무겁네. 나무를 이렇게까지 많이 할 필요 없어. 좀 쉬엄쉬엄해, 그러다 탈 나겠어.”
신우가 빙그레 웃었다.
지게를 짊어진 명호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지 낑낑거리며 마을로 돌아갔다.
해가 중천에 걸려 있다. 늦은 오후가 되려면 꽤 기다려야 했다.
“누렁이는 잘 있겠지?”
신우가 누렁이를 생각했다. 오두막에 홀로 남은 누렁이가 자기를 기다릴 것 같아 마음이 걸렸다. 하지만 촌장을 꼭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마을 어귀로 가서 그를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날이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점점 더워졌다.
나무 그루터기 앉아서 기다리던 신우가 몸이 나른한지 꾸벅꾸벅 졸고 말았다.
한참을 졸고 있는 신우 곁으로 웬 사람들이 다가왔다.
그들이 만든 차가운 그늘에 신우가 잠에서 깼다.
“야, 이 녀석아,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동네 대장장이인 철구였다. 철구가 험상궂은 표정으로 신우를 노려봤다.
“너는 마을로 들어오면 안 되는 것을 몰라! 그만 썩 나가!”
철구가 호되게 신우를 질책했다.
“죄송합니다. 그만 잠깐 졸아서.”
신우는 고개 숙여 철구에게 사과하고 자리를 피했다. 그때, 철구 뒤에 서 있는 촌장을 봤다.
촌장은 대장장이인 철구와 함께 일본군 헌병대로 갔다가 마을 어귀에서 졸고 있는 신우를 보고 그를 내쫓기 위해 그의 곁으로 서둘러 왔다.
“촌장님!”
신우가 크게 소리 질렀다.
“이놈아! 귀 떨어진다. 조용히 못 해.”
신우의 시선을 피하고 있던 촌장이 성질이 나서 소리쳤다.
“우리 집 검둥이가 촌장님 집에 있다면서요!”
신우가 자초지종을 묻지도 않고 촌장에게 따졌다.
“뭐? … 그, 그걸. 어떻게 알았어?”
신우의 송곳 같은 질문에 촌장이 거짓말조차 못 하고 사실을 실토하고 말았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 재산도 많이 갖고 있다면서요!”
신우가 촌장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갔다. 그렇게 압박했다.
“그, 그건, 내가 일본군에게 받은 거야. 수고했다면서 수고비 조로.”
촌장이 깜짝 놀라서 변명하기 바빴다. 그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날, 엄마와 나를 왜 외면했어요? 엄마가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쳤는데!”
“아이고, 그, 그게 ….”
“어서 말해봐요!!”
“헉!”
신우의 천둥 같은 호통에 촌장의 넋이 나가버렸다.
“아니! 이놈이 촌장님한테 무례하게.”
철구가 화를 버럭 냈다. 촌장에게 다가오는 신우를 막아섰다. 크고 두꺼운 손바닥으로 신우의 이마를 힘껏 눌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신우가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철구가 뒤로 밀렸다. 그는 대장장이로 수십 년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힘이라면 누구보다 자신 있었는데 열다섯 밖에 안 되는 소년에게 힘으로 밀리니 깜짝 놀라서 당황하고 말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철구가 화가 나서 신우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짝! 소리가 크게 들렸다.
큰 소리에도 불구하고 신우는 끄떡없었다. 오히려 철구의 손바닥에 불이 났다.
“아야!”
철구가 아픈 손바닥을 다른 손으로 부여잡고 폴짝폴짝 제자리에서 뛰었다.
“이, 이게 대체!”
이 광경을 지켜보던 촌장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간이 콩알만 해졌다.
요즘, 밤마다 죽은 혼령들이 나타나 잠을 설치고 있었다. 자기를 옥죄여오는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재산과 권력에 나날이 빠져들었다.
권력과 재산만 있다면 영험한 무당도 부를 수 있고, 그러면 귀신도 자기를 어찌할 수 없겠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하지만, 신우의 괴력을 보고 죽은 신우 아빠가 자기를 벌하려고 저승에서 돌아온 것만 같아 다리가 후들거렸다.
“아이고!”
촌장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쳐 버렸다. 촌장이 도망치자, 철구도 “촌장님 같이 가요!라고 외치며 도망쳤다.
신우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도망치는 그들을 보면서 입을 꽉 다물고, 두 손을 터질 듯이 꽉 쥐었다. 그의 눈빛에 분노가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