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엄마! 학교 다녀올게요!”
“그래 우리 아들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엄마가 믿는다.”
“아이~, 걱정하지 마세요.”
촌장 아들, 마석이 아침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위 마을에 있는 소학교로 가려면 20리(7.85km) 길을 걸어야 했다. 먼 길을 가야 했기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공기 좋다.”
마석이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터벅터벅 20리 길을 걸었다. 그렇게 1시간 반 만에 소학교에 도착했다.
이 근방에 소학교는 여기 밖에 없었다. 주변 동네에서 형편이 좋고 똑똑한 아이들만 소학교에 입학했다.
마석은 아침마다 산길을 걷고 또 걸어야 했지만, 한 자라도 더 배우기 위해 아침 산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대여섯 살 때부터 신동 소리를 들었다. 암기력이 좋았고, 이해 능력이 뛰어났다. 특히 수학과 과학 쪽에 성적이 좋았다,
나중에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기대에 보답하려는 듯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다.
특히, 아들을 철석같이 믿는 어머니의 바람을 배신할 수 없었다.
교사들도 공부를 꽤 잘하는 마석에게 큰 관심과 애정을 보였다.
그러던 중 촌장이 장터 근처에 주둔한 헌병대의 명령을 대리한다는 소문이 학교까지 쫙 퍼졌다. 일본군의 신임을 받는다는 말이었다.
그 소문 이후, 마석은 특별 대우를 받게 되었다. 교사나 학생 중에서 그를 나무라거나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예전에는 그에게 간혹 시비를 거는 얘들이 있었다. 그의 호리호리한 몸을 깔보고 덤비는 얘들이었다. 지금을 찾아볼 수 없는 일이었다.
교사와 학생들이 너도나도 마석을 떠받들기 시작하자, 교만함이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한층 높아진 위상에 취해 어깨가 들썩였고, 목에 힘이 들어갔다.
같은 반 아이들이나 상급반 선배들, 아니 교사조차도 우습게 보였다.
마석이 복도를 걸어가면 누구나 할 거 없이 길을 비켜줬다.
그렇게 마석은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자, 일본군의 비호를 받는 실력자의 아들로 위풍당당하게 학교를 다녔다.
종이 울리고 수업이 끝났다.
마석이 가방을 챙겨 학교 밖으로 나섰다.
오늘은 어머니 심부름이 있었다. 그래서 위 마을 장터로 가야 했다.
어머니가 아침부터 투덜거렸다. 머리에 바를 기름이 없다며 입이 삐쭉 나왔다.
이에 마석이 어머니에게 말했다. 하굣길에 머릿기름을 사 오겠다고 자청했다.
이에 어머니가 “우리 아들!” 하며 기름값과 아울러 거울도 사 오라며 돈을 넉넉히 줬다.
“빨리 가자.”
마석이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학교에서 장터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았다. 30분 정도만 걸어가면 당도할 수 있었다.
“흐흐흐, 뭘 먹을까?”
마석이 콧노래를 불렀다. 남은 돈으로 군것질할 생각에 신이 났다.
위 마을은 오일장이 열릴 정도로 이 근방에서 꽤 번화한 곳이었다. 자작나무가 많아 백화(白樺) 마을이라 불렸다.
번화한 만큼 사건 사고도 잦았다.
밤늦게까지 영업하는 주점이 있어, 그 앞에서 취객과 건달이 심심찮게 싸웠다.
치안도 불안한 편이었다. 늦은 밤 혼자서 돌아다니면 장터에서 놀고먹는 왈패들에게 걸려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다.
마석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서너 달 전에 동수라는 왈패에게 걸려 봉변을 당했었다.
단지 시건방지다고 이유로 돈을 빼앗기고, 따귀까지 맞았었다.
이에 촌장이 동수를 찾아내 혼내준 적이 있었다.
“아! 저기다.”
마석이 머릿기름과 손거울을 파는 가게를 찾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머릿기름 한병하고 손거울 하나 주세요.”
“그래, 잠시만 기다려.”
주인이 머릿기름 한 병과 손거울을 건넸다.
기름병은 꽤 묵직했고 손거울은 손때가 하나도 없었다. 옻칠한 손잡이는 반질거렸다. 거울은 아주 미끄러워서 내려앉은 파리가 미끄러질 거 같았다.
머릿기름과 거울을 챙긴 마석이 가벼운 마음으로 장터를 거닐었다.
이제 맛난 간식으로 군것질할 요량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마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이게 누구야? 마석 아니야!”
자기 이름이 들리자, 마석이 궁금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이! 마석아. 나야!”
키가 크고 껄렁껄렁한 청년이 마석에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 옆에는 덩치 큰 청년 여러 명이 있었다. 모두 험상궂은 인상이었다.
“에이! 누구라고 … 동수형 아니에요!”
마석이 약간 화가 난 듯, 키가 큰 청년을 째려보며 말했다.
“마석아! 저번에 내가 미안해서 그래. 한턱낼 테니까 …저기 가서 뭐라도 먹자, 만두 좋아하니?”
키가 큰 청년이 살살거리며 말했다. 그는 예전에 마석을 때렸던 동수였다.
동수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 자기보다 한참 어린 마석에게 굽신거리며 비위를 맞추기 시작했다.
“에이 씨.”
마석이 싫은 표정을 지었다. 예전에 당했던 봉변이 생각나 내키지 않았다. 그렇지만 평상시에 좋아하는 만두를 사 준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그가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알았어요. 비싼 만두를 사 준다니, 고맙게 먹어야죠.”
이에 청년들과 함께 만두를 파는 가게로 들어갔다.
“아줌마! 여기 왕만두 두 접시 주세요!”
동수가 큰소리로 왕만두를 시키고 마석에게 말했다.
“아이고, 동생. 저번에 한 대 때려서 미안해. 내가 좀 욱하는 성질이 있잖아. 만두 먹고 다 잊어. 알았지?”
동수가 말을 마치고 왕만두에 간장을 뿌렸다. 간장을 골고루 뿌리고 만두 접시를 마석쪽으로 밀었다.
“뭐, 다 잊었어요. 별로 아프지도 않던데요.”
마석이 건성으로 답하고 왕만두를 한입 베어 물었다.
육즙이 터지며 고소한 향기가 코에 맴돌았다. 오랜만에 먹는 장터 왕만두였다. 그 맛이 꿀맛이었다.
마석의 두 눈에 생기가 돌았다. 곧 왕만두를 게걸스럽게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동수가 기쁜 나머지 손뼉을 짝 쳤다. 그가 말했다.
“야! 다행이다! 잘 됐다. 동수가 왕만두를 좋아하는구나, …… 그건 그렇고 촌장 어른은 잘 계시니?”
동수가 마석의 아버지인 촌장의 안부를 물었다. 그의 본심이 드러났다.
“아버지야 잘 계시죠. 오늘도 일본 헌병대에 가셨어요. 헌병 대장하고 저녁 식사를 같이하고, 술도 한잔하신다고 하셨어요.”
마석이 왕만두를 오물거리며 답했다. 입안에 있던 만두를 꿀컥 삼키더니 다른 왕만두를 젓가락으로 집었다.
“와! 헌병 대장님하고 저녁 식사까지! 촌장님이 정말 대단하시구나. 그래서 말인데, 혹 촌장님께서 일손이 필요하시면 … 우리를 추천해 줄래. 잘 좀 말해 줘.”
동수가 비굴한 표정으로 마석에게 부탁했다. 자기 패거리를 써달라고 사정했다.
“알았어요. 형님 하는 것 봐서 말씀드릴게요.”
마석이 귀찮은 듯 대충 답했다.
“오! 그래 정말 잘 됐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다 말해. 내가 다 사 줄 테니. 호떡도 먹을래?”
그렇게 마석은 동수 패거리한테 후한 대접을 받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집에 잘 들어가! 마석아.”
“촌장님한테도 안부 전하고.”
동수 패거리가 마석에게 연신 굽신거리며 작별 인사를 했다.
“젠장, 늦었다.”
마석이 빨리 걷기 시작했다. 다시 먼 길을 걸어서 집으로 가야 했다. 장터에서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산길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런 아랫배가 아프네.”
마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런지 아랫배가 댕겼다. 걷기가 힘들었다.
“제기랄, 젠장!”
다리가 아프고 배도 아픈 나머지 마석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속으로 ‘동수 패거리를 무시하고 그냥 갔어야 했는데.’라고 생각하며 아픈 다리를 끌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래도 간식은 참 맛있었다. 만두, 호떡, 구운 옥수수가 꿀맛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마을이 보일 거 같았다.
그때 무슨 소리가 들렸다. 저 앞 산길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몇몇 사람이 보였다. 산길에 서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일은 신우하고 뭐 하고 놀까?”
“매일매일 재미있게 놀아야지. 그래야 신우 기분을 풀지. 좀 신이 나는 게 없을까?”
그들은 신우 친구인 덕대, 기철, 명호였다. 신우에게 떡과 나물을 주고 빈 그릇을 들고 있었다.
“저것들이!”
마석이 인상을 찌푸렸다. 신우 친구들을 보고 괘씸한 듯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가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 달려갔다.
“야!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이에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마석이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화가 잔뜩 난 마석의 얼굴을 본 아이들이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화가 슬금슬금 난 기철이 마석을 매섭게 쏘아붙였다.
“우리가 뭐 하는지 네가 알아서 뭐하게?”
마석이 화를 버럭 내며 말했다.
“너희들 또 신우 놈에게 갔구나! 그놈 집안은 독립군하고 내통해서 부모가 모두 처형당하고 마을에서 쫓겨난 놈이야!
제발 정신 좀 차려라!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일 셈이야!”
마석이 신우의 피맺힌 한을 들먹였다. 이건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덕대가 성큼 앞으로 나왔다. 마석의 어처구니없는 말에 분을 참을 수 없는지 기를 쓰고 소리쳤다.
“신우가 독립군하고 내통했다고?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신우하고 그동안 같이 놀았는데, 독립군은 커녕 외지인도 본 적이 없어.”
“뭐, 뭐라고?”
마석이 움찔거렸다. 덕대의 붉으락푸르락 화난 얼굴에 기가 죽었다. 하지만, 덕대에게 지기 싫은 듯 용을 쓰며 소리쳤다.
“그러면 신우가 어떻게 흙구덩이에서 기어 나왔냐? 사람이 총에 맞고 흙구덩이에 파묻히면 바로 죽어야 하잖아.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다닐 수 있어?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분명, 일본군이 떠나자 근처에 있던 독립군이 신우 놈을 꺼내 준 거야! 그래서 신우는 독립군과 한통속이야. 아주 위험한 놈이야!”
마석의 억지에 아이들은 더는 분을 참을 수 없었다.
“네가 봤냐? 독립군이 신우 꺼내 주는 걸 봤어? 봤냐고?”
명호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마석에게 다가가며 소리쳤다.
“그렇지 않으면 … 그놈이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는지 설명할 길이 없잖아!”
마석이 억울한 듯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나도 신우가 어떻게 마을로 돌아왔는지 그건 알 수 없어. 하지만 신우는 우리의 둘도 없는 친구야.
친구가 부모님을 다 잃고 게다가 마을에서도 쫓겨나서 산속에서 혼자 살고 있는데 … 넌 걔가 불쌍하지도 않냐? 네가 신우 처지라면 어떻겠어?”
덕대가 마석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일갈했다.
마석이 지지 않고 응수했다.
“신우! 그놈은 재수 옴 붙은 놈이야. 그놈과 같이 다니면 무슨 일이 생길 줄 몰라.
너도 독립군하고 내통했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마을에서 쫓겨나고 싶어? 그게 네 소원이야? 네 부모님이 그걸 참 좋아하겠네. 아주 효자 났네.”
마석이 덕대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뭐, 뭐라고? 이 개, 개자식이.”
덕대가 끓어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참을 수 없는지 두 눈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이때 명호가 단호한 표정으로 마석에게 말했다.
“야! 동네에 이런 소문이 돌더라. 일본군한테 끌려간 사람들이 하나같이 촌장 어른께 돈을 꾸어준 사람들이고, 아니면 사이가 나쁜 사람들이라고 동네 어른들이 수군거리더라.
왜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고발했냐고 어른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더라고.”
“뭐, 뭐라고?”
순간, 마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소문은 마석도 잘 알고 있었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동네 어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터무니없는 모함이라 생각했다.
이에 따지러 가자, 어른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마석이 울먹거렸다. 아버지가 당하는 모함이 너무나도 억울한 듯 울먹이며 외쳤다.
“아니야! 그들은 다 독립군하고 내통한 자들이야! 아버지가 돈을 빌린 게 무슨 상관이고, 사이가 나쁜 게 무슨 상관이야!”
명호가 말을 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고. 하필 그 사람들만 독립군하고 내통했냐고!
그리고 일본군이 압수한 재산이 왜 너희 집에 다 있냐? 신우네 검둥이가 왜 너희 집에 있는 거야?”
검둥이가 등장하자, 마석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일본군이 물러가고 다음 날, 촌장이 훤한 표정으로 검둥이를 데려온 일이 떠올랐다.
“개소리하지 마!! 이 자식아!!”
마석이 크게 외치고 명호에게 달려들었다. 성난 황소처럼 돌진했다.
마석의 머리가 명호의 배를 들이받았다. 쾅! 소리가 크게 났다.
“아이고!”
명호가 비명을 질렀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이, 이놈이! 좋다. 한판 붙자! 오늘만 기다렸다.”
명호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고아라고 자기를 항상 무시하던 마석을 이번 기회에 혼내주고 싶었다.
곧 명호와 마석이 뒤엉켜 싸우기 시작했다. 서로 주먹을 날렸다.
“싸, 싸우지 마!”
깜짝 놀란 기철이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굴렀다.
반면 덕대는 명호보고 꼭 이기라고 소리 질렀다.
“저놈 콧대를 납작하게 깔아뭉개라! 명호야!”
아이들의 싸움 소리가 산길에서 크게 울려 퍼졌다.
이때 산길을 터벅터벅 걷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이 모습을 보았다.
“이놈들아! 싸우지 마라!”
어르신이 담뱃대를 허공에다 휘둘렀다. 싸우지 말라고 소리치며 달려왔다.
“피하자! 어서.”
이에 명호와 기철, 덕대가 어르신을 피해 자리를 떴다.
땅바닥에 마석이 쓰러져 있었다. 그가 몸을 일으켰다.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옷은 온통 먼지투성이였다.
“이놈들이. 나를 때리다니 … 가만두지 않겠어!”
마석이 씩씩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뭔가가 품에서 떨어졌다.
반쯤 금이 간 거울이 품에서 떨어졌다.
“쨍그랑!”
거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싸우는 와중에 금이 갔던 거울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두 쪽으로 깨지고 말았다.
“아, 안돼!”
마석이 떨리는 손으로 거울 반쪽을 들어 올렸다. 반쪽짜리 거울을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들!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마석이 몹시나 억울한 듯 몸을 파르르 떨면서 이를 박박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