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판 소설_간도에서 온 사나이 1편_02화

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by woodolee

제2화 간도 구산마을


여기는 싱그러운 봄기운이 감도는 간도의 구산마을이다.


농촌의 여느 마을처럼 참새들이 소란스럽게 지저귀고 산천이 고요했다.


푸른 하늘에 맑은 시내가 흐르고, 먼발치에 높은 산이 보이는 아늑하고 평탄한 곳이었다.


높은 산은 마치 거북이 등처럼 생겼다. 그래서 거북이 산, 구산(龜山)이라고 불렸다. 마을 이름인 구산마을은 이 산에서 유래했다.


구산마을은 논과 밭을 따라서 길이 쭉 뻗어 있었다. 길을 따라서 삼삼오오 초가집들이 자리를 잡았다.


모두 두 칸 혹은 세 칸 자리 아담한 집들이었다.


오늘은 부드러운 봄바람이 처녀의 가슴을 간지럽히는 그런 한가한 날이었다.


밤에는 제법 추위가 매서웠지만, 날이 밝아오면서 따뜻한 기운이 대지를 달구었다.


구산마을도 다른 마을처럼 수호신이 있었다.


마을 어귀에 수호신인 솟대가 있었다. 솟대는 곧은 소나무 기둥으로 만들었다.


솟대 꼭대기에는 나무를 깎아서 만든 까마귀 세 마리가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다보고 있었다.


까마귀 솟대는 구산마을이 생길 때 세운 유서 깊은 물건이었다.


신령스러운 새가 마을 사람을 대신해 하늘과 이어준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었다.


아울러 마을의 액운을 막아주고 풍년을 기원하는 소중한 신물(神物)이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솟대를 보면서 항상 무병장수와 복이 가득하길 기원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의 기원과 달리 며칠 전 큰일이 생기고 말았다. 솟대가 날벼락을 맞아서 그만 부러지고 말았다.


마을 사람들은 이를 흉조로 여기고 두려워했다. 솟대를 빨리 치우고 새로 세우고 싶었다.


하지만 마을의 경조사를 관장하는 할머니 무당이 “일곱 날 동안 하늘의 뜻을 헤아려야 하니, 부정 타지 않게 근처도 가지 마라!”고 경고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남은 나흘 동안 흉물스럽게 부러진 솟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이제는 해가 제법 떠올라 뜨거워졌다.


남정네들은 모두 일하러 들로 나갔고, 할 일 없는 아이들은 밖에 나가서 놀기에 바빴다.


집 안에는 어린 소녀와 여인들이 있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일을 도맡았다.


마을은 참 한적했다. 그렇게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그때, 방문을 여는 문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초가집이었다.


어떤 여인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마당에 가지런히 놓인 신발을 신었다.


낡고 헌 신발이었지만, 붉은 꽃잎이 그려져 있는 꽃신이었다.


마당으로 나온 여인은 사뿐사뿐 가벼운 걸음으로 사립문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었다.


강한 햇빛에 여인의 비녀가 반짝거리며 빛났다. 비녀에는 옥으로 만든 매화 장신구가 탐스럽게 달려 있었다.


여인은 키가 크고 고운 피부를 가진 곱디고운 젊은 엄마였다. 오뚝한 콧날에 작고 도톰한 입술, 서글서글한 눈매가 참 고왔다.


젊은 엄마는 금방 올 사람이 있는 듯, 고개를 사립문 밖으로 내밀고 계속 두리번거렸다. 고개를 잠시 갸우뚱하다가 중얼거렸다.


“애가 왜 이렇게 안 오지? … 아! 이 녀석, 또 중간에 딴 곳으로 샜구나!”


엄마가 뿔이 났는지 주먹을 야무지게 쥐고 입꼬리를 올렸다. 아이가 돌아오면 그 못된 버릇을 고치겠다는 듯 팔짱을 꼈다.


엄마의 바람과 달리 아이들은 놀기에 바빴다.



여기는 마을 뒷산이다. 산 중턱에 넓은 공터가 있었다.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오늘은 남자아이들이 모여서 자치기(작대기로 돌을 쳐서 멀리 보내는 놀이)하는 날이었다. 벌써 두 시간째 놀이에 몰두했다.


아이들의 나이는 대략 열네, 열다섯 살쯤 되었다.


그들은 ‘신우’라는 소년과 ‘마석’이라는 소년을 필두로 콩 튀기 내기 시합을 하고 있었다.


신우라는 아이는 탄탄한 몸매에 먼 산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을 가졌다. 짙은 눈썹에 콧날이 오뚝했고 입술은 굳게 닫혀있었다.


평상시는 다소 느리게 행동했지만, 뭔가에 몰두할 때는 누구보다 재빨랐고 눈에 생기가 돌았다.


마석은 이 동네 촌장의 아들로 키가 크고 말랐다. 쭉 찢어진 눈매에 갸름한 얼굴형이었다.


평상시 장난기가 가득했고 상대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자주 짓곤 했다.

어릴 때부터 머리가 좋아서 소학교에서 반장을 하는 등 운동보다는 글공부를 잘하는 영리한 소년이었다.


자치기 놀이를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신우 편과 마석 편은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박빙의 승부를 펼치고 있었다.


이제는 놀이가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이제 마지막 회가 되었다. 마석 편이 공격하고, 신우 편이 이를 막아야 했다.


자치기는 마지막 회 결과가 승부를 결정했다. 양편에서 날린 돌 중 가장 앞선 돌이 승자였다.


현재 신우 편의 돌이 마석 편의 돌보다 약간 앞서있었다.


신우 편은 마석 편이 날리는 돌을 어떻게든 몸으로 막아야 했다. 마석 편은 정반대였다. 어떻게든 신우 편의 돌보다 더 멀리 보내야 했다.


각 편의 아이들이 서로 모여서 마지막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저번에 우리가 져서 … 콩 튀기 하느라 눈이 매워 죽는 줄 알았어. 이번에는 우리가 반드시 이겨서 저놈들한테도 매운 연기 맛을 보여 줘야 해.”


신우 편에서 덩치가 크고 눈이 작은 아이인 덕대가 결의를 다지며 말했다.


그는 이 동네에서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먹거리를 싸 들고 다녔다.


후덕한 성격에 동네 아이들과 두루 잘 지내는 편이었다. 하지만 고집도 세서 한번 고집을 부리면 막을 사람이 없었다.


“맞아! 맞아! 이번만 잘 막으면 돼.”


딴 아이들도 이구동성으로 결의를 다졌다.


“난 그것보다도 마석 그 녀석이 자기 아버지가 촌장이라고 거들먹거리는 꼴은 더는 못 보겠어. 이번 기회에 그 녀석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


수다쟁이며, 동네 소식통인 명호가 마석에게 한이 맺힌 듯 울분을 토했다. 짱구 머리를 한 명호는 탁월한 기억력을 가진 소년이었다.


명석한 머리로 동네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숟가락, 젓가락 개수까지 다 기억했다. 하지만,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삼촌에게 의탁하며 눈칫밥을 먹고 있었다.


신우는 부모가 없는 명호가 불쌍해서 잘 챙겨주었지만, 마석은 부모 없는 아이라고 업신여기고 놀렸다.


그럴 때마다 신우는 명호를 위해 앞장서서 마석과 싸웠다. 명호는 신우의 의리에 감복했다.


“자! 자! 흥분하지 말고 내 말을 잘 들어!”


무리의 대장인 신우가 차분하게 말을 시작했다.


“덕대는 뒤에 있고, 명호는 오른쪽, 기철은 왼쪽으로 가 있어. 난 앞을 막을 테니. 저번에는 멀리 보냈으니 … 이번에는 짧게 보내서 우리의 허를 찌를 수 있어.

마석 패거리에게 또 당할 수는 없잖아! 자! 마지막이니까 힘을 내자!”


신우가 마치 어른인 양 의젓하게 지휘했다.


“그래, 신우 말을 잘 따르자! 신우는 우리 대장이잖아!”


붕어잡이 명수인 기철이 신우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기철은 맨손 붕어잡이의 고수였다. 비가 와서 냇가의 물이 불으면 동네 어른들이 그를 너도나도 불렀다. 따끈하고 얼큰한 매운탕 생각에 맛있는 엿가락을 주고 붕어잡이를 시키곤 했다.


마석은 자기편 아이들과 함께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작전을 짰다. 작대기를 들고 땅바닥에 작전계획을 그리며 상대방의 의표를 찌를 계획을 세웠다.


작전을 짜는데도 신우와 마석은 그 양상이 달랐다.


마석은 힘으로 윽박지르기보다는 영리한 머리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작전을 좋아했고, 반면 신우는 잔머리보다는 정공법을 고수했다.


모든 회의가 끝났다.


마석 편의 마지막 공격이 시작되었다. 신우 편이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수비 대형이었다. 마석 편 돌이 날아올 방향을 예측하고 자리를 잡았다. 학익진을 펼쳤다.


상대편 대장인 마석이 마지막 선수로 나섰다.


마석이 자리를 잡았다. 그가 잠시 신우를 노려보다가 막대기를 높이 쳐들었다.


양편이 타오르는 긴장감에 침을 꿀컥 삼켰다.


공터에 침묵이 흘렀다.


신우를 노려보던 마석이 씩 웃었다.


신우는 기분 나쁜 마석의 웃음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생각했다.


‘저 녀석이 기분 나쁘게 웃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 아니야?’


“하하하!”


마석이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갑자기 폭소를 터트렸다. 그러자 마석편 아이들도 같이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낄낄낄!”


마석 편 아이들의 난데없는 웃음소리에, 신우 편 아이들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집중력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쟤들 왜 저래?”


“대체 무슨 일이야?”


“아! 저놈이!!”


순간! 신우가 마석의 잔머리를 알아채고, 두 눈에 불이 타올랐다. 또 마석이 얄팍한 꼼수를 부리기 시작했다.


“이때다!”


마석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돌을 재빨리 허공으로 올렸다. 돌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자, 힘껏 작대기로 내리쳤다.


“탁!”


기습이었다. 마석의 작전에 신우 편 아이들 몸이 굳어버렸다.


이는 상대방의 집중력을 흩트리는 얄팍한 수였지만, 긴장된 순간에서는 효과가 좋았다.


그러나 예외는 있었다. 한 명이 이에 대비했다. 바로 신우였다. 신우가 공중에 높이 떠 오른 돌을 향해 잽싸게 몸을 날렸다.


돌이 예상보다 멀리 나가지 않았다. 마석이 타석에서 팔을 힘껏 휘둘렀지만, 그것도 속임수였다. 마치 멀리 보내는 것처럼 연기했다.


일부러 돌의 밑을 때려서, 빗맞은 돌이 신우 편의 돌보다 조금 앞서게 떨어지게 요량이었다.


신우의 예상이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신우가 속으로 ‘옳다구나!’를 외치며 앞으로 잽싸게 뛰어 들어갔다. 눈빛이 번뜩였다. 동작이 재빨랐다. 마치 먹잇감을 포착한 한 마리의 매처럼 날렵했다.


빗맞은 돌이 포물선을 그리다가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돌이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차내야 했다. 이제 시간이 없었다.


“야아!”


신우가 고함을 지르며 땅바닥을 향해 몸을 내던졌다.


몸이 바닥에서 미끄러지자,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신우가 먼지를 헤치며 떨어지는 돌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갔다.


떨어지는 돌이 신우 편 돌보다 앞서 있었다. 반드시 걷어차서 멀리 보내야 했다.


1초 후


돌이 바닥에 떨어지려는 순간! 신우의 왼발이 돌을 간신히 찼다. 그것도 엄지발가락 끝에 겨우 맞았다.


“와아!”


“도, 돌이 떴다!”


돌이 공중에 다시 떠올랐다. 2미터 이상 올라가 정점을 찍더니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눈이 돌의 궤적을 따라서 숨 가쁘게 움직였다.


돌이 바닥에 톡 하며 떨어졌다. 신우 편 돌보다 1미터 아래에 있었다. 이 상태라면 신우 편의 승리였다.


그런데 신우 편의 바람과 달리 바닥에 떨어진 돌이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신우 편의 돌을 향해 굴러갔다.


모두의 이목이 쏠리는 순간이었다.


돌이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앞에 있는 신우 편의 돌을 맞고 두 돌이 그만 뒤엉켜버렸다.


“가서 결과를 확인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가 마지막 결과를 확인했다.


승부가 결정이 났다.


한쪽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반대쪽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새끼손톱만큼 차이로 신우 편의 돌이 마석 편의 돌보다 위에 있었다.


신우가 몸을 털고 일어났다. 같은 편 아이들이 그에게 달려왔다.


승리의 순간이었다.


신우 편이 함께 모여서 승리를 만끽했다. 짜릿한 마지막 승부에 아이들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상대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꼼짝도 못 했다.


“야! 너희들 내일 콩 가져오고, 불 피울 마른 가지 싹 다 준비해, 한번 맛나게 콩을 튀겨보자!”

덕대가 신이 나서 마석 편 아이들에게 소리쳤다.


마석 편 아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인 양 아무런 말도 못 하고 풀이 죽어버렸다.


마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분을 삭였다. ‘이놈들 다음에 두고 보자!’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했다. 겉으로 애써 태연한 척하며 자기편 아이들을 달랬다.


“그냥 쟤네들이 운이 좋았던 거야! 힘내자!”


마석의 위로에도 아이들은 말이 없었다. 매콤한 연기를 참으며 콩을 튀기는 건 무척 하기 힘든 일이었다.



*



벌써 해가 중천에 걸렸다. 햇볕이 따갑게 쏟아졌다.


놀이가 끝나자, 풀밭에 누워서 쉬던 신우가 갑자기 아차! 했다. 엄마와의 약속이 생각났다.


‘아이고!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흐르다니!’


신우가 속으로 뜨악했다.


“얘들아! 내일 보자!”


신우가 아이들에게 큰소리로 작별을 고하고 급하게 자리를 떴다. 엄마에게 혼날 걸 생각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에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신우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의아해했다. 하지만, 명호가 시합 전 신우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맞아! 신우가 점심때 엄마와 약속이 있다고 했어. 시합을 빨리 끝내야 한다고 했잖아!”


명호의 말에 아이들이 고개를 끄떡이고 저 멀리 사라져가는 신우를 다 같이 쳐다봤다.


그들은 “엄마에게 혼나지 않게 빨리 가라!”고 외치며 오늘 하루 신우와의 작별을 고했다.


신우는 아이들의 큰소리에 한 손을 흔들며 화답하고 정신없이 내달렸다.


잠시 후


산길을 급하게 내려온 신우가 마을로 들어가는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마을 어귀에는 저번에 벼락을 맞아 부러진 솟대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불길한 징조라며 혀를 찼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제는 큰 별똥이 우리 마을로 떨어졌었다. 동네 어른들이 놀라서 이것이 길조인가, 흉조인가 하며 왈가왈부했었다.


신우는 “부러진 솟대를 반드시 피하라!”는 엄마의 당부가 떠올랐다. 그래서 솟대 근처를 피하려고 마을 어귀를 약간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그는 ‘제발 엄마가 화가 덜 나시길….’ 이렇게 속으로 빌면서 집 앞까지 내달렸다.


하늘에서 까마귀 소리가 들렸다.


까마귀 여러 마리가 “까악! 까악!” 소리를 지르며 날아올랐다. 새들이 신우의 뒤를 따랐다.


마치 부러진 솟대 대신 그를 보호하는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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