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에서 온 사나이_피빛 운석과 복수의 화신
1920년, 간도 봄.
스산한 어둠에 별빛이 숨을 죽였고 차가운 바람에 달빛이 얼어붙었다. 어둠과 냉기가 지배하는 북방의 밤이 장장 11시간 동안 지속됐다.
이제 어둠이 물러갈 때가 되었다. 그 누구도 세상의 이치는 거스를 수 없었다.
점차 어둠의 힘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긴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켰다.
아침이 밝아왔다.
저 멀리 산 능선에서 빛의 향연이 펼쳐졌다. 찬란하게 빛나는 해가 어둠을 헤치며 천천히 솟아올랐다.
해가 뜨자, 밝고 따뜻한 기운이 세상을 적시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했다.
여기는 탁 트인 벌판이다. 허허벌판에 변변한 나무조차 없었다. 누런 흙 천지에 간간이 잡초만이 보일 뿐이었다.
저 멀리에 높은 산들이 보였지만, 너무 멀어서 그 위세가 초라했다.
이 황량한 벌판에 일본제국 관동군소속 제4중대가 지친 몸을 이끌고 어제저녁 늦게 이곳에 도착했다.
녹초가 된 병사들은 한시라도 빨리 허기짐과 피곤함을 달래야 했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급하게 저녁밥을 준비하고 천막을 쳤다.
잠시 후 취사 당번들이 따뜻한 밥과 국을 가져오자, 누구라 할 것 없이 게눈 감추듯 밥을 해치웠다.
해가 완전히 사라지자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별빛이 반짝거렸다.
밤 8시 30분에 중대장의 취침 명령이 떨어졌다. 다른 명령과 달리 기쁜 소식이었다.
병사들이 서둘러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하루의 일과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밤새 벌판은 북극과 같았다.
세찬 바람이 계속 불어왔다. 바람 소리와 함께 땅바닥도 차디차게 식어갔다. 냉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병사들은 얼음을 베고 자는 것처럼 등이 시렸지만 몹시 노곤한 탓에 잠자리에 들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간혹 세찬 바람이 불어와 천막이 삐거덕거리며 흔들거렸지만, 코 고는 소리와 잠꼬대 소리만 들릴 뿐 잠을 설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4중대는 어제 점심때 한인 마을을 급습했었다. 일본제국에 반역하는 불령선인을 색출하기 위해 마을 곳곳을 이 잡듯이 들쑤시고 다녔다. 총구에서 불을 뿜어냈다.
한낮에 인정사정없이 불을 뿜었던 총구가 밤이 되자, 북방의 냉기를 이기지 못하고 차갑게 식어갔다. 반면 총구에서 흩어졌던 매콤한 화약 냄새는 긴 생명력 탓인지, 아직도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동이 트자 보초가 나팔수를 깨우러 천막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나팔수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왔다. 허리춤에 분신인 나팔이 매달려 있었다. 오랜 세월 전쟁터를 누빈 듯 낡은 나팔이었다. 그 특유의 광택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팔수가 사방을 둘러봤다. 나팔을 불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이리저리 사방을 돌아다니다가, 군영을 한눈에 바라다볼 수 있는 커다란 바위 위로 올라갔다.
“됐다.”
나팔수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나팔을 가슴에 품었다. 마치 아기 다루듯, 정성껏 소매로 닦기 시작했다.
아무리 닦아도 나팔의 광택을 되살릴 수는 없었지만, 연신 나팔을 닦으며 매일 아침 반복되는 의식을 준비했다.
이제 준비가 다 끝났다.
나팔수가 크게 숨을 내쉬고 나팔꼭지에 입술을 대고 언제나 그러하듯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했다.
“빰 빠 빰!”
기상나팔이 우렁차게 울렸다. 보초들이 큰소리로 “기상!”을 외치며 병사들을 깨웠다.
3소대 보초인 마에다 이병이 소대 천막으로 들어가 동료와 고참을 깨웠다.
“일어나십시오! 기상 시간입니다!”
마에다가 큰소리로 기상을 외치며 돌아다녔다. 이에, 곤히 자고 있던 고참 여럿이 짜증을 내며 구시렁거렸다.
“마에다, 저놈은 왜 이리 목청이 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냐?”
마에다가 묵묵히 돌아다녔다. 아직도 바닥에서 뒹구는 고참을 깨우느라 분주히 움직였다.
“나가시마 일병님. 그만 일어나십시오.”
마에다가 큰소리를 외쳤다. 모포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버티고 있는 나가시마 일병을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마지막 보초의 임무는 기상 시간에 맞춰 고참을 깨우는 일이었다. 간혹가다 성질 나쁜 고참에게 걸리면 얻어맞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게으른 고참을 계속 자게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만약, 일직하사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이 광경을 본다면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 뻔했다.
마지막 보초는 졸병인 이병들이 하기 힘든 임무였다.
“이런!”
마에다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질 더러운 고참인 나가시마를 더욱 세차게 흔들며 큰 소리로 깨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그의 귀에 입을 대고 큰소리로 외쳤다.
“나가시마 일병님! 기상 시간입니다. 일어나셔야 합니다!”
“알았어, 알았다니깐!”
나가시마가 신경질을 부리며 벌떡 일어났다. 두 눈을 호랑이처럼 부라리더니 옆에 있는 베개를 꽉 잡았다. 베개를 마에다의 얼굴에 냅다 던지더니 일갈했다.
“한 번만 말하면 됐지, 왜 계속 잔소리야? 지금 나를 가르치려는 거냐? 네놈이 그 잘난 대학 나왔다고, 하늘 같은 고참인 나를 깔보는 거야? 나도 방금 일어나려고 그랬어.”
베개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마에다가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무안함에 얼굴과 귀가 새빨개졌다.
마에다는 나가시마의 갑작스러운 호통에 깜짝 놀라서 아무런 대꾸도 못 하고 전봇대처럼 서 있었다.
“이 자식은 우리 고참을 항상 우습게 보고 가르치려고 한단 말이야. 아주 시건방진 놈이야. XX”
나가시마가 마에다를 노려보며 그동안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했다. 이에 다른 고참이 그의 심기를 달랬다.
“제가 원래 좀 뻣뻣하잖아. 네가 좀 참아라. 고참이 넓은 마음으로 참아야지. 어쩌겠어. 쟤가 건방진 게 하루 이틀이냐.”
“대학물 먹은 놈이 건방지긴 하지. 그래도 틀린 말은 아니잖아. 빨리 일어나야지, 나가시마. 해가 떴어.”
고참 하나가 마에다에게 어서 밖으로 나가라고 손짓했다. 나가시마가 더 역정 내기 전에 자리를 뜨라는 신호였다.
“알겠습니다.”
마에다가 풀이 죽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천막 밖으로 나왔다. 뒤이어 그의 동기인 쿠시로 이병이 밖으로 나왔다. 쿠시로가 마에다에게 말했다.
“마에다. 괜찮아?”
쿠시로가 걱정 어린 얼굴로 마에다를 유심히 살폈다.
쿠시로는 넉넉한 체격에 달 덩어리 같은 얼굴이었다. 반면 마에다는 큰 키에 마른 체격이었고, 가냘픈 얼굴에 두꺼운 안경을 썼다.
“쿠시로, 괜찮아. 한두 번 당하는 것도 아닌데 …. 그건 그렇고 여기 있으면 어떡해! 어서 고참들 시중들어야지!”
마에다가 말을 마치고, 쿠시로한테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아! 참 그렇지. 내, 내가 여기 있으면 안 되지!”
쿠시로가 화들짝 놀라서 급하게 천막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냄새나는 신발 한 짝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
취사 당번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큰 솥을 어깨에 메고 천막 앞에 자리를 잡았다. 커다란 밥솥과 국솥을 바닥에 내려놓고 잠깐이나마 가쁜 숨을 몰아쉬며 숨을 돌렸다.
숨을 돌리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숟가락과 반합을 높이 쳐들고 서로를 쳐다봤다. 한 명이 눈짓하자, 누구라 할 거 없이 반합을 숟가락으로 힘차게 두들겼다.
“챙! 챙! 챙!”
“집합! 아침밥이 준비됐다! 1소대부터 식사를 시작한다.”
취사 당번들이 일제히 식사 집합을 외쳤다.
“우와! 아침밥이다!”
천막 안을 정리하던 병사들이 모두 벌떡 일어났다. 식사 집합 소리에 이내 허기진 배를 꽉 움켜잡고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먹는 거였다. 그건 사냥개도 마찬가지였다.
1소대 병사들이 누구라 할 것 없이 천막에서 뛰쳐나왔다. 고참이 먼저 줄을 섰고 신참이 그 뒤를 이어서 길게 줄을 섰다.
주먹밥에 된장국밖에 없는 초라한 식사였지만, 병사들은 밤새 텅 비어있는 위장을 어서 채워야 했다. 크게 벌린 입안으로 주먹밥을 쑤셔 넣기에 바빴다.
“빨리빨리 서둘러라! 30분 후에 중대장님 훈시가 있다. 훈시가 끝나며 바로 출발한다!”
미리 식사를 마친 하사관들이 병사들을 둘러보며 고압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병사들은 하사관들의 살벌한 표정에 주눅이 들었지만, 숟가락만큼은 바삐 움직였다.
1소대, 2소대 배급이 끝나고
3소대 배급 차례가 되었다. 마에다와 쿠시로가 길게 늘어선 줄의 맨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았다.
앞줄에 서 있던 나가시마가 자기 차례가 되자, 배가 고프다며 취사 당번에게 밥을 더 덜라고 칭얼거렸다. 이에 취사 당번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에이! 하며 주먹밥 하나를 더 주었다.
“히히히! 난 두덩이다!”
나가시마가 주먹밥 두 덩이를 보며 시시덕거렸다. 그 모습을 본 마에다가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잠시 후 마에다와 쿠시로가 배급을 받고 근처에 있는 야트막한 바위에 털썩 앉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쿠시로가 주먹밥을 크게 베어 물었다. 배가 무척 고픈지 주먹밥을 퍼먹고 국을 쭉 들이켰다.
“휴우~!”
마에다는 주먹밥을 먹다가, 한숨을 절로 쉬었다. 군에 끌려와 생고생하는 신세가 참 서러운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왜 그래? 마에다. 어디 아파?”
쿠시로가 밥을 먹다가, 마에다의 수심 어린 얼굴을 보고 그의 기색을 살폈다.
“아니야. 그냥, 답답해서. … 쿠시로, 시간이 빨리 가겠지.”
“그럼, 우리도 1년 뒤에는 일병이 돼서 시중받으며 살 수 있을 거야.”
쿠시로의 말에 마에다가 허탈한 미소를 지었다.
쿠시로가 국을 다 먹고, 주먹밥에 목이 메는지 마에다의 국을 힐긋 쳐다봤다. 마에다의 국이 반쯤 남았다.
쿠시로가 말했다.
“국이 좀 짜지?”
마에다가 씩 미소를 짓고 국그릇을 쿠시로에게 건넸다. 쿠시로가 함빡 웃으며 국그릇을 받고 쭉 들이켰다.
모든 병사가 식사를 마쳤다. 곧바로 행군 준비에 착수했다. 천막을 접고, 군장을 싸고 모포를 동여매고, 신발 끈을 조였다.
“각 소대별로 집합!”
하사관들이 칼 같은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병사들이 군장과 소총을 어깨에 들쳐 매고 자기 자리를 찾아서 뛰어갔다.
마에다와 쿠시로도 자기 자리를 찾아서 정신없이 뛰었다. 그때 쿠시로의 총이 어깨에서 흘러내리더니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쿵!”
뭔가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급한 나머지 쿠시로는 자기 총이 바닥에 떨어진 줄도 몰랐다.
반면 마에다는 갑자기 들리는 큰소리에 뒤를 돌아다봤다. 바닥에 쿠시로의 총이 떨어져 있었다.
“쿠시로. 네 총이 떨어졌어.”
“뭐, 뭐라고? 총이?”
쿠시로가 황급히 오른쪽 어깨를 살폈다. 어깨에 총이 없었다. 그가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를 돌아다봤다. 저 멀리에 총이 떨어져 있었다.
“아, 아이고 큰일이다!”
쿠시로가 부리나케 자기 총을 향해 달려갔다. 쿠시로가 총을 잡으려는 순간, 하사관의 반짝이는 군화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쿠시로! 감히 목숨과 같은 총을 바닥에 내팽개치다니. 이 바보 자식아.”
하사관이 불같이 화를 내며 쿠시로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냅다 후려쳤다.
“아이고!”
쿠시로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며 별이 보였다. 그러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멀리서 쿠시로를 지켜보던 마에다가 그에게 급히 달려왔다.
“죄송합니다. 저랑 부딪쳐서 총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마에다가 친구 대신 변명하고 쿠시로의 총을 주워들었다. 그리고 주저앉은 쿠시로를 부축해서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XXXX!”
뒤에서 쿠시로를 욕하는 하사관의 거친 소리가 맴돌았다.
“오와 열을 맞춰라!”
선임 하사가 앞에서 병사들을 지휘했다. 뒤늦게 도착한 마에다와 쿠시로가 숨을 헐떡이며 겨우 자기 자리에 들어갔다.
“꿈 뜨기는 …. 쿠시로 저 녀석은 항상 문제야.”
“저놈 때문에 우리 소대가 항상 꼴찌야. 일병들, 저놈 교육 제대로 안 할 거야!”
소대 고참과 내무반장이 쿠시로를 보며 화를 냈다.
“으이고, 쿠시로 저놈은 항상 문제야.”
“저놈 때문에 우리가 괜히 피 보잖아.”
“아이고!”
쿠시로가 고개를 떨구었다. 고참과 동기들이 자기를 한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너나 할 거 없이 비수 같은 말에 내뱉자, 가슴이 콩알처럼 쪼그라들었다.
“아니야, 괜찮아. 그냥 실수야.”
마에다가 작은 목소리로 쿠시로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의 소매를 꼭 잡아주었다. 순간, 쿠시로의 두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선임 하사의 지휘에 병사들이 칼처럼 오와 열을 맞췄다. 이윽고 소대장들이 긴 칼을 차고 나타났다.
소대장들이 모여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자기 소대로 흩어졌다. 소대 점검 시간이었다.
위압적인 긴 칼이 병사들의 허리춤을 스쳤다.
소대장들이 날카로운 눈매로 부하들의 정신 상태와 무장 상태를 살폈다.
병사들이 긴장감에 침을 꿀컥 삼켰다. 코앞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숨결에 더욱 턱을 당기고 허리를 쭉 펴고 총의 멜빵을 세게 잡아당겼다.
모든 점검이 끝나자, 소대장들이 소대의 맨 앞에 자리를 잡았다. 이에 준위가 중대장을 부르러 자리를 떴다.
중대장은 중대원의 생살여탈권을 쥔 자였다. 한마디로 왕(王)이었다. 그가 명령을 내리면 누구라도 복종해야 했다.
선임 소대장은 중대장 바로 아래 계급인 중위였지만 그도 중대장의 말에 절대복종해야 했다.
긴장된 시간이 흘렀다. 중대장의 등장은 항상 긴장감이 돌기 마련이었다.
잠시 후, 사각 턱에 위풍당당한 체구를 가진, 한 사나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춤에 긴 칼이 매달려 있었다. 정성스럽게 기름칠한 긴 칼이 햇빛을 받아서 번쩍거렸다.
중대장이 절도 있는 걸음걸이로 병사들 앞에 섰다. 몸에서 냉혈(冷血)이 흐르는 듯, 차디차고 살벌한 기운이 몸 밖으로 퍼져 나왔다.
“흐흐흐!”
부하를 살피던 중대장이 살벌한 미소를 흘렸다. 흰자위가 햇빛을 받아서 번들거렸다. 살기가 가득한 눈빛이었다. 언제라도 다른 사람을 잡아먹을 거 같았다.
“아이고!”
중대장의 살벌한 냉기에 병사들이 그만 주눅이 들고 말았다. 덩달아 입술도 바짝 말라 갔다.
범상치 않은 기운과 외모를 가진 같은 이 사나이는 제4중대 사령관인 다나카 테츠야 대위였다.
다나카 대위는 매와 같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부하들을 쭉 둘러보더니 고개를 끄떡였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더니 앞에 있는 단으로 올라갔다.
중대장이 단에 올라가 자리를 잡자, 소대장들이 그에게 보고했다. 병력과 장비가 이상 없음을 차례대로 보고했다.
보고를 받은 다나카 대위가 목청을 가다듬고 굵고 낮은 목소리로 훈시를 시작했다.
“제군들. 고된 행군과 작전으로 무척 힘들 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때 병사 중 하나가 아직 잠에서 덜 깼는지 자기도 모르게 하품을 했다.
“응? 저것이!”
이 모습을 본 다나카 대위가 말을 멈추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났다.
하품한 병사가 중대장의 섬뜩한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몰려오는 두려움에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다리만 후들후들 떨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중대장을 제외한 모든 병력이 사시나무 떨듯이 떨었다.
순간, 다나카 대위가 우레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제군들! 정신 차려라!!”
벼락같은 호통이었다. 눈에서 서슬 퍼런 독기가 뿜어나왔다. 그가 쩌렁쩌렁 목소리로 외쳤다.
“오늘 우리는 독립군에 협조하는 불령선인을 색출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그들은 양민의 탈을 쓰고 있지만 언제라도 우리 대일본 제국에게 반역할 수 있는 역도들이다.
그들을 남김없이 색출하고 처단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이러한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철통같은 군인정신으로 중무장해야 한다.
하나 지금 제군들의 눈빛은 섞은 동태 눈깔이다. 이런 정신 상태로 어떻게 뱀처럼 교활한 조선인들을 상대하겠는가!”
다나카 대위가 불같이 화를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병력을 책임지는 소대장들을 무섭게 쳐다보기 시작했다. 무언의 질책이었다.
소대장들이 눈을 내리깔았다. 중대장의 불호령에 두 눈을 들 수 없었다. 그들의 얼굴이 시멘트처럼 굳어갔다.
준위가 소대장들에게 중대장의 명령을 전했다.
얼차려의 시간이 시작됐다. 중대장의 명령에 따라서 소대장들이 얼차려를 돌리기 시작했다.
“전원 현 상태에서 엎드려뻗쳐!”
병사들이 곡 소리를 내며 엎드려 뻗쳤다. 무거운 군장과 총을 멘 채 얼차려를 받았다.
중무장한 상태에서 엎드려뻗쳐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쓰러지는 병사가 속출했다.
그럴 때마다 더욱 가혹한 욕설이 쏟아졌다. 대략 30분 남짓의 호된 얼차려에 병사들의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전체 차렷!”
선임 소대장의 쩌렁쩌렁한 구령에 병사들이 급히 일어났다. 일사불란하게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이마에서 땀방울이 줄줄 흘러내렸다. 얼차려 덕분인지 병사들이 바짝 긴장했다. 졸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다나카 대위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병사들의 얼굴에 군기가 바짝 들었다.
“그래! 바로 이거지. 흐흐흐, 이래야 토끼 사냥을 하지.”
다나카 대위가 만족한 듯 실실 웃었다. 자세를 고쳐잡고 훈시를 다시 시작했다.
10분 동안의 훈시가 끝나자, 중대장이 출동 명령을 내리기 위해 한 손을 높이 쳐들었다.
“제1소대로부터 행군을 시작한다!”
중대장의 우렁찬 구령에 소대장들이 뒤를 돌아 각 소대에 행군 명령을 하달했다.
병사들은 분대장들의 지휘에 따라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일본군의 행렬이 꼬리에 꼬리를 물 듯 길게 이어졌다. 그들의 거침없는 행보에 들짐승들도 겁을 먹었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조용한 아침을 깨우는 일본군의 군화 소리가 점점 커져만 갔다. 아침의 찬 공기를 데우는 그들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져만 갔다.
“총을 더 높이 쳐들어라!”
중대장의 서슬 퍼런 명령이 떨어졌다. 하사관들이 중대장의 명령을 복창했다.
“1소대 총을 더 높이 쳐들어라!”
“2소대 총을 더 높이 쳐들어라!”.
병사들이 소총의 멜빵을 꽉 잡아당겼다. 그렇게 총을 더 곧추세웠다. 높이 쳐든 소총은 마치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로웠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지만, 땅은 먼지가 자욱했다. 군홧발이 만드는 먼지였다. 그렇게 관동군 제4중대가 먼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한인들이 사는 간도 마을이었다.
토끼 사냥의 시작이었다.
불행은 언제나 예고 없이 닥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