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이 무대 위를 살며시 지나가면 풀냄새 옅은 향이 일렁인다.
봄햇살 가득한 오후를 닮은 조명이 켜지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무대 앞으로 나온다.
뒤 배경에는 온갖 꽃이 가득 핀 공원이 보인다.
시어머니는 지팡이를 짚고도 며느리의 부축을 받고 있다 힘겹게 무대 중앙에 있는 벤치에 앉는다.
시어머니의 거동을 돕고 옆자리에 앉은 며느리는 시어머니 모르게 자신의 허리를 콩콩 두드린다.
며느리가 들고 있던 가방에서 음료수 병을 꺼내 뚜껑을 열어 시어머니에게 건넨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가방에서 자신의 몫도 꺼내는 것을 본 후 목을 축인다.
두 사람의 모양새가 고부라기보다는 모녀 같다.
-어머니, 저기 저쪽 좀 보세요. 진달래가 피었어요.
-진달래가? 워디? (눈에 힘을 잔뜩 주며 멀리 바라보다) 그러네, 얼마 만에 보는 진달래다냐?
-그러게요. 오랜만에 봐서 그런가 진짜 곱네요.
-야야, 니 처음 우리집에 왔을 때 저런 옷 입었더랬나?
-모르겠네요. 신혼여행 다녀와서 입었던 한복이 진분홍색이었던 것 같은데.
-그때 참 고왔더랬지.
-그랬어요, 어머니?
시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며느리를 본다. 앳된 기가 남아있던 얼굴에는 이제 주름살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도 곱던 얼굴선은 여전히 그대로다.
-니를 개가를 시켜야했는디. 난중에 애비 보면 혼날 거 같어야.
-어이구, 애비가 뭐라하면 제가 혼꾸녕을 내줘야죠. 무정하게 혼자 가버린 사람이 무슨 염치로 어머니 타박하냐고요.
-저승서도 보게야? 딴 남자 만나랑게. 지금도 안 늦었어야. 너 아직도 고와야.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조금 커지더니 이내 색색 힘든 숨이 나온다.
-호호호, 어머니. 누가 들으면 웃어요. 나이 육십 넘어 누가 팔자를 고쳐요.
며느리가 말하는 동안 기침이 터진 시어머니는 힘겹게 숨을 고르다 주스를 한모금 삼키려 하지만 다시 터진 기침에 주스를 조금 뿜는다.
며느리는 급하게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시어머니의 얼굴과 버린 옷을 닦는다.
그 사이 시어머니는 에구, 에구 힘든 신음을 한다.
숨을 고르느라 힘든 시어머니.
다시 한번 지나는 바람에 꽃잎이 날린다.
시어머니의 머리에 붙은 벚꽃잎 하나를 며느리가 손으로 떼낸다.
-저 시집 보낼 생각하지 마시고 어머니가 오래오래 사셔요.
-영범이가 자리를 잡고 의지처가 돼주면 더없을틴디, 영범이 처로도 딱 너 같은 며느리 들어와 맴적으로 의지가 되면 좋은틴디.
-세상이 마음같기만 한가요, 어디.
-다시 오는 봄처럼 우리 며느리 청춘도 다시 오면 좋겄써야.
-다시 온다고 같은 봄이겠어요, 어머니?
-그라니까 다시 오면 지금이랑은 다르게 살라고. 이런 늙은 애미 기대고 살지 말고 서방 온기에 기대서 편하게 살아 봐야지. 니 혼자 남는다 생각하면 내 마음이 시려야.
해마다 부쩍 느는 시어머니의 걱정에 며느리는 마음이 무겁다.
-어머니, 그런 말 계속 하시면 나 울어요. 아픈 데가 있음 병원에 미리 가고 잘 해서 나랑 더, 큼, 있어야지. 큼, 꼭 어딜 갈, 큼, 사람처럼
며느리는 중간중간 목이 메어와 헛기침을 하며 어렵게 말을 끝낸다.
-늙은이 건강이 이 봄날 같어야. 언제 어떻게 변할지, 어디서 끝날지 워찌 알어야. 갈 때 되면 쉽게 가야 니 고생 안 시킬틴디, 요즘 소원은 그거 뿐인디
시어머니의 휴-,하는 짧은 한숨을 이어 바람이 분다.
바람에 티라도 눈에 들어간 것처럼 며느리는 가방을 뒤적이며 연신 훌쩍이며 눈가를 훔친다.
-피는 꽃도 애닯고 지는 꽃도 애닯구나
며느리는 자신에게 엄마의 정을 알려 준 시어머니의 손을 슬며시 잡는다.
내년에도 시어머니와 봄을 맞이하길 기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