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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다행

- 하루를 마무리하며

by 준 원 규 수

1.

할인행사를 하는 의류 매장의 매대에

프린트 된 그림이 마음에 드는 티셔츠가 보였다.

하나를 집어들었는데 짧았다.

요즘 크롭이 유행이라더니...

판매원이 왼쪽에는 크롭이, 오른쪽에는 캐쥬얼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건 왼쪽에 자리한 후드티였다.

크롭이어도 길이에는 차이가 있으니 혹시하는 마음에 집어 들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생각보다 길이가 아동복처럼 짧았고,

판매원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더니 내가 내려놓은 옷을 착착 개켜서 정리했다.

그 손길이 어찌나 쌀쌀맞던지 다른 옷을 구경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온몸으로 축객의지를 내보이더니 직원은 안쪽으로 가 버렸다.

미안하다,는 인사에 돌아보지도 않았다.

쫓겨나듯 매대 앞을 벗어나는데 몇 걸음 걷고 나니 기분이 나빴다.

억울했다.

이미 흐트러져 있는 옷들을 펼쳐 봤을 뿐인데

-나는 개켜져 있는 옷들은 잘 펼쳐 보지 않는다.

내가 매대의 모든 옷을 헝클어놓은 듯 행동하는 그 판매원의 태도가 너무 기분 나빴다.

잘 정리해 놓은 옷을 건드렸다면 쌍욕 들었을 듯...

일진이 나쁜 날인가 싶었다.

2.

피곤한 오후였다.

한번 나빠진 기분은 계속 저조했고, 할 일들을 해나가는 동안 피로가 누적됐다.

그런데...

며칠 전 주문한 장미가 배송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네 가지 색의 장미를 화병에 꽂고 나니

마음이 장미향으로 가득해진 것 같았다.

고작 만 원 정도의 돈이면 이렇게 내 마음이 화사해지는데

왜 나를 위해 이 정도의 호사를 누리는 일에 그렇게 인색했던가.

어쩌면 내게 가장 야박한 사람은 나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3.

차가워졌던 날씨가 다시 봄다워지고 오랜만에 나선 저녁 산책...

노을의 여운은 사라지고 있고

밤으로 채워진 하늘에는 손톱달이 떴다.

호수에서 깃을 치는 오리들의 소리가 들리고,

아직 빈 가지로 밤을 맞이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불빛들...


다행이다!

나쁜 기분으로 하루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서.

기분 좋은 하루라고 기억하며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어서.



다른 이가 내게 던진 불쾌함을

이렇게 털어버릴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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