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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Oct 09. 2024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 후속편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라는 주제로 글을 올린 지 1주일이 지난 시점, 조회 수가 10,000을 넘었다. 내가 올린 글에서 독보적인 조회 수이다. 브런치에서 첫 글은 올린 것이 9월 3일, 브런치 작자로 글을 쓴지 1달이 지났다.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의 조회 수가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해보았다. 주제가 특이해서? 글자 그대로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고 믿어 호기심으로 내 글을 접했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한들, 아들이 어찌 사돈이 되겠는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밖으로 유출한 것이라 추측해 본다. 그리고 읽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로.


내 사정이 나에 국한된 특수 경우가 아니라 많은 엄마들에게 적용되는 게 아닐까? 아들이건 딸이건간에 사돈처럼 소원해져 버린 경우가 많지 않을까? 그래서 이 글에 동감이 되어 전하고 전해져서 내 글이 많은 사람을 만난 게 아닐까?




어제는 강의 시간에 쪽지 시험을 본 후 30명의 학생에게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라는 글을 독해의 글로 읽게 했다. 3편의 글 속에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읽고 싶은 걸 골라 읽었다. 3편의 글 중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글을 고른 학생은 반 수 이상이었다. 글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왜 아들이 사돈이 되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을까요?"라는 첫번째 질문을 했다.


이 글 속의 주인공인 아들과 동갑인 대학 2학년 학생들이다. 1년간 공부한 한국어로 이 문장을 이해할까 테스트도 되었다.
"아들이 엄마에게 연락 안 해요." 걱정과는 달리 첫번째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해주었다. 개괄적인 내용이 파악된 듯했다. 이어서 두 번째 과제로 이 글을 읽고 느낀 소감을 말하라고 했다.




"이 아들이 나빠요!" 한 남학생이 흥분한 고조로 마이크를 잡고 말한다. 

"(내 아들이야!) 그래요? 그렇게 전할게요."라고 내가 말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엄마가 너무 슬퍼요!"라고 한 여학생이 슬픈 표정으로 말한다. (마음 속에서 슬픔의 감정이 꿈틀거리려 한다.) 그리고 이어 말했다.

"저는 부모님께 자주 전화해요." 이런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나도 모르게 부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게 된다.


"저도 이 아들과 같아요. 저도 엄마에게 연락하지 않아요." 한 여학생이 다소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왜요?" 내가 물었다.

"엄마랑 할 말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일이 없으면 전화하지 않아요." 

그렇구나, 할 말이 없구나! 우리 아들도 할 말이 없어 전화를 하지 않나? 잊지 않을 만큼 내 앞에 나타나고는 그래도 학교 일이랑 여자 친구 얘기랑 꺼내는 걸 보면 할 말은 있는 것 같다.


"엄마가 아들을 매우 사랑한다는 걸 느꼈어요. 이 글을 읽고 반성했어요. 오늘부터 엄마에게 전화 자주 할게요." 내게 위로와 안심을 주는 말이었다. 단 한 명이라도 이 글을 읽고 생각이 바뀐다면 그것으로 기쁘다. 남의 생각을 바꾼다는 것. 행동으로 실천하게 한다는 것은 쉽지 않기에 말이다. 




이상의 학생들의 소리를 들으며 내 나름 결론을 내려 본다.


첫째,부모에게 연락을 잘 안 하는 건 아들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그래서 아들 키우는 부모들은 너무 슬퍼할 필요가 없으며, 딸 키우는 부모들은 죄송하지만 너무 안심하지 말하는 가벼운 조언을 하고 싶다. 


둘째,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게 반드시 나쁘지 않지 않은가. (자가 위로?!)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지 않는가. 큰 어려움없이 하루하루 정신없이 즐겁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자.


셋째, 자식이 성장했다는 증거이다. 곁에 있을 때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품을 떠난 후에는 자식에게로 향했던 사랑을 과감히 자신에게 쏟으며 살자. 잃어버렸던 나를 되찾아 아름답게 다듬어가며 제2의 인생을 보내고, 멀리서 성장한 자식을 응원하자.


넷째, 연락 안 하는 자식에게 감사하자. 잘 살아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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