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누나나 여동생을 ‘시누이’라고 지칭하고, 남편의 누나는 ‘형님’이라고 호칭하고, 남편의 여동생은 ‘아가씨’라고 호칭한다. 남편의 남동생은 ‘시동생’이라고 지칭하고, ‘도련님’이라고 호칭한다. 남편의 여동생은 ‘시동생’이 될 수 없는 운명?! 이건 약과다. 진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남편의 누이면 남편의 누이지, 시누이는 뭔가? 시는 '시집' 전체를 아우르는 말이다. 그런데, 시댁 온식구가 남편의 누나나 여동생을 '누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뜬금없이 왜 '시' 자를 붙이는 거지? 남편의 남동생, 여동생이면 몰라도 시동생/도련님, 아가씨는 또 뭔가?
도련님, 아가씨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이는 여론이 형성되니까 2018년에는 부남, 부제라는 말이 후보로 오르고 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남(男)과 제(弟)? 형(兄)도 있다. 남편의 형이나 남동생은 '남(男)'인데, 왜 남편의 누나는 '형(兄)', 여동생은 '제(弟)'인가? 이미 전적이 있다. 처남(妻男), '처형(妻兄), 처제(妻弟). 정작 아내의 오빠나 남동생은 '형'과 '제'가 들어간 조합이 증발해버렸다. 아내의 오빠나 남동생이 '처남'이면 아내의 언니나 여동생은 '처여'가 돼야 맞다. 처형, 처제를 오빠와 남동생한테 써먹자니 언니와 여동생이 '처여'가 된다. '처남'이냐, '처여'냐 두 개를 놓고 동전 던지기를 했나 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그건 바로, 앞에서 다루었던 '형제자매'가 범인이다. '형제자매'에 '언니+여동생' 이 조합이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남, 부형, 부제는 남편의 형, 남편의 남동생, 남편의 누나, 남편의 여동생이라는 뜻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물론 처남, 처형, 처제도 마찬가지다. 뜻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왜 자꾸 이상한 말만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다. 처남, 처제, 부남, 부제 이런 요상한 말 말고 brother-in-law, sister-in-law처럼 하나로 묶고 각자 이름을 부르면 된다. 그런데, 위냐 아래냐에 목숨거는 문화이니 이걸 할 수가 없다. '법으로 맺어진'에 눈높이를 맞추기 싫으면 '아내의 오빠', '아내의 남동생', '아내의 언니', '아내의 여동생' 이런 뜻이 도출되는 호칭, 지칭을 만들어내든가. 국어사전에 풀이해놓은 형제자매에 입각하면 처형, 처제, 처자, 처매가 탄생해야되는데, 거 참 이상도 하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중구난방에다 그때그때 땜방식으로 탄생하는 엉터리표 호칭과 지칭을 언제까지 봐야할까.
결혼하지 않은 남편의 여동생을 ‘아가씨’라고 부른다. 결혼하지 않는 남편의 남동생은 ‘도련님’이라고 부른다. 남편은 아내의 결혼하지 않은 남동생이나 여동생을 도련님, 아가씨라고 하지 않는다. 처남, 처형, 처제라고 부른다. 그나마 피차일반이면 덜 억울하기나 하지. 처남, 처형, 처제도 이상한 조합이긴 하나 일단 대비되는 표현이라는 눈높이에서 보자면, 아내는 남편의 형이나 남동생, 남편의 누나나 여동생을 ‘부남’, ‘부형’, ‘부제’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가씨, 도련님이라는 말에서는 남편의 여동생, 남편의 남동생이라는 뜻이 도출되지 않는다. 그 옛날 하인들이 부르던 호칭을 고수한다는 건 남편 집안에서 하인 취급밖에 못 받는다는 얘기다. 아가씨의 유래가 아기의 씨를 가진 말이라고 어디서 읽은 기억도 있다. 물론, 많은 유래들 중 하나인가 보다 하고 넘기지만 난 차마 이래저래 ‘아가씨’라는 말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내쪽과 같은 법칙을 적용하면, '자'와 '매' 이 한자 특성상 오히려 부형, 부제, 부자, 부매가 탄생해야 되는데 얼마나 도련님, 아가씨 소리를 듣고 싶었으면...
영어에서는 '부름을 받는' 사람이 남자냐 여자냐만 주목할 뿐 ‘부르는' 사람이 위냐 아래냐, 남자냐 여자냐를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복잡하지 않다. 우리는 쪼개고 또 쪼개고 더 이상 쪼개지지 않을 때까지 이 모든 걸 따지기 때문에 복잡 그 잡채다. 아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한국인은 눈치 빼면 시체다. 부르는 말이 요로코롬 복잡하니까 각각의 호칭에 맞추느라 이 눈치 저 눈치 보게 되고, 덕분에 눈치 문화 하나는 끝내주게 발달했다. sister-in-law, brother-in-law처럼 아내와 남편쪽을 똑같이 놓고 ‘법으로 맺어진’ 관계를 주목하면 되는데, 그렇게는 못 하시겠단다.
남편의 형이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남편의 형을 아주버니/시아주버니라고 한다. 아내 집안쪽으로는 ‘아주버니’라고 부를 일이 없으니까 굳이 ‘시’ 자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데, 시 자를 넣어서 시아주버니라고 지칭하고, 아주버님이라고 호칭한다.
결혼을 했건 안 했건 남편의 누나는 ‘형님’이라고 부른다. 아기가 태어나면 남편의 누나나 여동생에게 아기의 호칭을 빌려서 ‘고모’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애 안 낳고 사는 아내들을 생각하면 이건 반칙이다. 뭐가 문제인지 전체적인 판을 보지 못하니까 그냥 그때그때 땜방식으로 하나씩 뚝딱뚝딱 만들어낸다. 돌려막기는 카드값, 대출이자, 채권 이런 데 써먹는 거 아니었나? 그런데, 따지면 그렇게 못 부를 것도 없다. '나이가 많은 여자'라는 사실은 부르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바뀌는 사실이 아니다. 부르는 사람이 애를 낳았냐 못 낳았냐는 상대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는 사실과 별개다. 고로, 누구나 '고모'라고 부를 수 있다.
남편의 누나나 여동생이나 똑같이 결혼하지 않았어도 남편의 누나는 '아가씨'가 아니라 '형님'이라고 부른다. 물론, 어르신들은 '큰아가씨' 심지어 '큰애기씨'라고까지도 부르시긴 한다. 똑같이 결혼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형은 아주버니라고 한다. 아내에겐 남편의 형, 남편의 누나인 사람들인데 아주버니, 형님이라는 호칭에 ‘남편의 형’, ‘남편의 누나’라는 뜻은 출타 중이다.
시누이, 시동생, 아가씨, 도련님, 시아주버니, 형님까지 남편의 형, 남동생, 누나, 여동생을 부르는 말에서 어떤 일관성도 찾아볼 수 없다. 왜 우리는 ‘법으로 맺어진’, ‘남편의/아내의 형, 오빠, 언니, 누나, 남동생, 여동생’ 이 각각의 관계를 반영한 호칭에 시선이 닿지 않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