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보내다, 장가보내다, 결혼시키다
여자가 결혼한다는 말을 ‘시집간다’고 하지 ‘시댁간다’, ‘시가간다’고는 하지 않는다. 집, 가, 댁은 같은 뜻을 가진 말인데 높이냐, 낮추냐, 한자냐, 한글이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쓰인다. 남자가 결혼한다는 말을 ‘장가(丈家)간다’고 한다. 왜 남자들의 결혼은 ‘처집간다’고 표현하지 않을까? 물론, 이 말도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여자는 시집을 가는데 남자는 처집을 가면 쓰나! 여자도 '부집'을 가야지. 부질없다. 한자 풀이나 하자.
丈家 → 어른 장 + 집 가
'집안의 어른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어른이 있는 집에 간다'는 뜻이란다. 뜻이 뭐가 됐든 남자의 결혼이 ‘장가’라면 여자의 결혼도 ‘장가’이긴 마찬가지인데 왜 여자의 결혼은 ‘시집가는’ 거고, 남자의 결혼만 ‘장가가는’ 일이 될까? 옛날에는 '장가'가 아니고 '입장가(入丈家)'라고 했다는 글도 오래전 어딘가에서 읽었다. 여자도 어른 집에 가는데 왜 '시집간다'로 처리했는지 모르겠지만, 뭐 옛날엔 그랬다 치자.
옛날엔 '혼인'을 했다면 오늘날은 '결혼'을 한다. ‘결혼’은 남녀가 성인이 되어 각자의 부모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일이다. 우리는 성인인 남녀가 결혼을 주체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들을/딸을 결혼‘시키는’, 장가‘보내는’, ‘시집‘보내는’ 일이라고 여긴다. 결혼이 ‘하는’ 일이 되지 못하고, ‘시키고’ ‘보내는’ 일이 되어버린 건 혼수를 비롯해 부모가 경제적 부담을 감당하면서까지 아들, 딸의 결혼을 부모들 인생의 숙제로 여기는 현실이 만들어낸 한국형 단어이고, 부모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이다.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는 건 그렇다치고, 결혼을 ‘시킨다’는 발상은 이제 거두어야할 때가 되었다. 아무리 부모라도 성인을 자신의 뜻에 반해 결혼‘시키는’ 건 위험한 발상 아닌가. 결혼은 가고, 오고, 시키고, 보내는 일이 아니다. 결혼은 당사자들이 ‘하는’ 거다. '결혼' 말고 '결혼식'에 대해서도 유감이 참 많지만, 논점 이탈은 위험(?)하니까 입꾹하고 전진!
우리는 ‘시집가다’라는 말과 ‘결혼하다’라는 말을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데, 이거 구렁이 담넘어가는 소리다. 결혼을 해야 ‘시집’이 생겨서 ‘시집’에 가는 거 아닌가. 결혼도 안 한 여자가 시집이 어디 있어서 시집에 가는가. 이제 이런 악담은 거두어야 한다. 뭐 나혼자 우긴다고 될 일은 아니다만.
시집가다, 장가가다라는 말이 아직도 통용된다는 건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결혼이라는 개념이 서있지 않다는 반증이다. 아직도 여자의 결혼을 남편 집안으로 들어가는 일로 여기는 건, 결혼이 젊은 남녀가 양가 부모로부터 독립해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일이라는 사실과 배치된다. 아직도 여자가 생각하는 결혼과 남자가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전엔 결혼이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었지만, 오늘날은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는' 일이니까 시집가고, 장가간다는 한쪽 성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이땅에서는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형식은 시집/장가가는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하는’ 것도 아닌 어설픈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옛날처럼 남자가 장가를 갔다가 여자가 시집에 오는 형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100% 서구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결혼이라는 ‘형식’은 서구의 모습을 복사하고 있지만, 사는 형태를 들여다보면 그 옛날 장가가고 시집가던 시대를 구현하고 있다. 시집가다 장가가다 이런 말이 안녕을 고하고 결혼시키고 시집보내고 장가보내는 일을 내려놓는다면 집나간 결혼이 돌아오겠지.
남편의 부모를 아내는 ‘시부모’, 각각을 가리킬 때는 시아버지, 시어머니라고 지칭하고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호칭한다. 남편은 아내의 부모를 합쳐서 ‘처부모(妻父母)’라고 하지 않는다. 아내도 남편 부모님을 ‘부부모(夫父母)’라고 하지 않는다. 남편은 아내의 아버지를 장인(丈人), 아내의 어머니를 장모(丈母)라고 지칭하고, 장인어른, 장모님 혹은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호칭한다. 아내의 아버지는 ‘어른인 사람(丈人)’이고, 아내의 어머니는 ‘어른인 엄마(丈母)’다. 사람과 엄마! 사람=남자, 사람≠여자? 말을 말자. 아내의 엄마가 ‘장모’이면 아내의 아빠는 ‘장부’가 되어야 맞는데, 어째서 남편의 아빠는 ‘사람’이고, 남편의 엄마는 그저 ‘엄마’인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탈락이다. 오로지 아내의 아버지만 '人'이란다.
남편의 아버지, 남편의 어머니, 아내의 아버지, 아내의 어머니를 ‘장인(丈人)’이라는 범주에 묶어놓고, 각각의 명칭이라도 이치에 맞게 부여했다면 그나마 이해가 될텐데, 이건 도대체 기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장모(丈母) 즉, 어른인 엄마인데 아내의 엄마가 남편한테 장모(丈母)라면 같은 이치로 남편의 엄마도 아내한테 장모(丈母)여야 맞다. 아내의 엄마가 장모(丈母)이니 아내의 아버지도 장부(丈父)가 되어야 맞다. 아내의 아버지가 장부(丈父)이면 남편의 아버지도 장부(丈父)가 되어야 했다.
여기서 영어권으로 눈을 돌려보자. 영어권에서는 남편이나 아내나 상대방의 부모를 ‘parents-in-law(법으로 맺어진 부모, 법의 테두리 안에서 부모, 법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부모)’라고 말하고, 각자 상대방의 아버지에 대해 'father-in-law', 각자 상대방의 어머니에 대해 'mother-in-law’ 이렇게 지칭한다. 결혼하고 혼인신고를 해서 가정을 갖게 되었고, 상대방의 가족은 ‘법으로 맺어진 관계’가 되었다. 시아버지, 시어머니, 장인어른, 장모라는 말에서 우리는 어떤 일관성을 찾아볼 수 있을까? 그렇다고, 각 단어에서 ‘남편의 아버지’, ‘남편의 어머니’, ‘아내의 아버지’, ‘아내의 어머니’라는 뜻이 도출되는 것도 아니다. 영어에서처럼 ‘법으로 맺어진’이라는 일관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집안에 대해 사용하는 말은 웬만하면 ‘시’라는 타이틀이 달린다. ‘시(媤)’라는 한자는 원래 있지도 않은 글자를 이 땅에서 만들어내 쓰고 있는 한자이다. 이 '시'자가 남편과 아내를 ‘부처(夫妻)’가 아닌 ‘부부(夫婦)’로 만들어버렸다. 백번 양보해서 시부모 입장에서 ‘부부(夫婦)’라고 칭하는 건 그렇다쳐도 최소한 당사자들은, 적어도 여성 자신은, ‘부부(夫婦)’라는 말에 억울함을 토로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남편도 아내를 대등한 존재로 본다면 ‘부부(夫婦)’가 아닌 ‘부처(夫妻)’라고 우겨야 되는 거 아닌가! 한자가 없는 석가모니랑 헷갈릴 일도 없는데 왜 정답을 두고 오답을 고집하는가! 내 아내인데 '남편+며느리' 조합으로 같이 사는 건 억울하잖아! 나는 아내니까 '남편+아내' 조합으로 살아야 되잖아! ‘부부(夫婦)’가 ‘부처(夫妻)’가 되는 날, 이나라 여자들은 남편과 결혼해 놓고 며느리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는 삶에서 해방을 맛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