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은 뜻을 가진 말인데, 같은 뜻으로 쓰이지 않는다. 사전을 찾아보면 ‘시댁’은 ‘시집’을 높여부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시가’를 높여부르는 말이라고는 나와 있지 않다. ‘시가’나 ‘시집’이나 한자냐(家) 아니냐(집)의 차이일 뿐인데 이 둘은 쓰임이 다르다. ‘시집가라’라고는 해도 ‘시가가라’라고는 하지 않는다. 시집가라는 말은 결혼하라는 말이니까 ‘시댁’은 ‘시집’을 높여 부른다기보다 ‘시가’를 높여 부른다는 말이 되겠다. 사전에 나온대로 ‘시댁’이 ‘시집’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면 같은 말을 한글로 쓰면 낮춘 말이 되고, 한자로 표현하면 높임말이 된다?
‘시(媤)’자를 [다음] 한자사전에서 찾아보면 ‘시집 시’라고 나와 있고, 한국식 한자라고 나와 있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라는 얘기다. 사전에서 '시집'이라는 말을 정의할 때 아직 '시집'의 개념이 서기 전인데 단어에 이미 '시집 시'자를 써버렸다. ‘시집’이라는 말의 뜻을 찾고 싶은데, 이미 글자에 ‘시집’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이걸 ‘엉터리 뜻풀이’라는 말 말고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시집가라'는 말은 '결혼하라'는 말로 통한다. 남자한테는 결혼하라는 말로 '처집가라'고 하지 않는다. 여자의 결혼과 남자의 결혼은 이렇게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가(家)'는 '집'을 말하는 한자이고, '댁(宅)'은 남의 집을 높여부르는 한자이다. 더구나, [다음] 한자사전에는 '댁(집 택X)'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한자라고 나와 있다. 사람을 높이는 건 그렇다치고, 일본말도 아니면서 내집이든 남의 집이든 왜 ‘집’까지 높여야 할까?
집, 댁, 가! 똑같은 뜻을 가진 말이 높여 쓰냐, 낮춰 쓰냐, 한자로 쓰냐, 한글로 쓰냐에 따라 다른 뜻을 가진다는 건 코미디다. 무엇보다, 엄격히 말해서 남편 부모님 집에 가는 건데 실체도 없는 '시(媤)'자를 붙여서 남편쪽 집안에만 이런 추상적인 표현을 쓰는 게 이상하다. '시댁'이라고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남편 부모님 댁'인 거고, '처가'라고 하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아내 부모님 댁'을 말한다. '남편 부모님 댁', '아내 부모님 댁' 이 뻔한 사실을 꼭꼭 숨겨두고 왜 실체도 없는 말을 고수할까? 그나마 '부댁', '처댁' 아니면 '부가', '처가'라고 하면 될 걸 왜 '시댁', '처가댁' 이런 엉터리 말을 만들어냈을까?
남편이 아내의 부모님 집에 갈 때는 ‘처가’에 간다고 하지 남편 집안처럼 하나로 뭉뚱그려 놓은 표현을 쓰지 않는다. 애초에 아내쪽 집안에는 남편쪽 집안에 붙는 ‘시’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아내는 ‘시집’이 있는데 남편은 ‘처집’은 없고, ‘처가’, ‘처갓집’만 있다. 더구나, ‘가’와 ‘댁’이 의미가 겹치니까 ‘처댁’이라고 해야 의미가 성립하는데, 사전에는 ‘처갓집’, ‘처가댁’은 나와 있어도 ‘처댁’이라고는 나와 있지 않으니까 참 난처하다. '처가', '처댁' 이면 끝날 걸 '아내 처 + 집 가 + 집', '아내 처 + 집 가 + ㅅ + 댁 댁' 까지 어법에 맞지도 않게 쓰면서도 지적하면 어떻게 쓰든 뜻만 통하면 되는 거란다.
시댁과 처가! 이건 균형이 맞는 조합이 아니다. 명절이면 언론 기사에 단골로 오르내리는 ‘댁’과 ‘가’라는 높이고 낮추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내 부모님 집이 '처가'이면 남편 부모님 집은 '부가'가 되어야 한다. 남편 부모님 집이 '시댁'이면 아내 부모님 집도 그에 상응하는 표현이 존재해야 한다. 결혼한 여자를 아내로 인정하지 않고 며느리로 바라본 배경에는 ‘부가’가 아닌 억지로 만든 한자 하나 집어넣어서 탄생한 이 ‘시가’라는 말이 있었던 거다. 이건 며느리인 여자에게만 불행한 일이 아니다. 아들조차 독립된 존재로 보아주지 않고 아들의 가정을 독립된 온전한 가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발상이라 아들 또한 희생자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초가를 ‘초가집’이라고 하고, 역전을 ‘역전앞’이라고 하고, ‘동해’를 ‘동해바다’라고 실수하는 것처럼 ‘처가’라는 말을 그냥 ‘처갓집’이라고 하는 것도 모자라, 높여준다고 ‘처가댁’이라고 하는데 초가집에 집이 두 번 들어있고, 역전앞에 앞이 두 번 들어있고, ‘동해바다’에 ‘바다’가 두 번 들어있는 것처럼 처가댁이나 처갓집은 ‘집’이라는 말이 두 번 들어있다. 그냥 ‘처가’라고만 하면 되고, 높여줄 때는 ‘처댁’이라고 하면 된다. 처갓집은 양념통닭 주문할 때만 찾으면 된다.
아내의 부모님 집은 ‘처가(妻家)’라고 하지만, 아내가 남편의 부모님 집을 말할 때는 ‘부가(夫家)’라고 하지 않고 ‘시댁(媤宅)’이라고 한다. 남편이 아내의 부모님 집을 ‘처가(妻家)/처댁(妻宅)’이라고 하듯이 왜 아내는 남편의 부모님 집을 말할 때 ‘부가(夫家)/부댁(夫宅)’이라고 하지 않는지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시'에 대응하는 말이 부재하다는 걸 인정하는 순간 대혼란 예약이라 모른척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관심이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