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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체발광 Oct 18. 2024

주부(2)

주부도 다 같은 주부가 아니었다

가정주부 -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도 주부가 존재한다는 말일까? 굳이 필요도 없는 '가정'은 왜 붙였을까?

전업주부 - '전업'과 '주부'는 어떤 인연이 있을까? 평소 고민이 없었던 사람이라면 '뭐가 문제지?' 이러는 사람도 있을 거 같다.


주부(主婦)는 두 가지 뜻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주인 주 + 며느리 부'이니까     

1. 주인인 며느리

2. 주인의 며느리

라는 뜻이 도출된다.     


왜 한남자의 아내가 '며느리'로 부각되며, 남편에게는 '주인인 사위', '주인의 사위'에 해당하는 말이 존재하지 않을까? 결혼한 남자는 '주서(主壻)'라고 하지 않는데, 왜 결혼한 여자는 '주부'라고 할까?     


이래놓고 여기에 '전업', ‘가정’은 왜 붙였는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직장에 다니는 아내는 집에 오면 주부라는 알바라도 뛴다는 말일까? 전업주부! (직딩)주부! 이 둘은 왜 구분되어야 했으며 누가 구분한 걸까? 전업주부, 영어로는 full-time housewife일테니까 직장에 다니는 주부는 part-time housewife가 되겠다. 이렇게 보니까 ‘알바’하는 거 맞네! 우리말로는 직딩맘을 '비전업주부'라고 할 수도 없고, 독일어를 빌려서 '알바주부'라고 해야되나? 정규직 주부, 비정규직 주부 가르는 것도 아니고 점점 요상해진다. 왜 쓸데없는 단어를 만들어 놔가지고 이렇게 새끼를 치게 만드는지 짜증이 다 난다.         


복잡하니까 정리부터 한 번 하자.


결혼하고 직장에 다니는 여자 : 주부 + 직딩

결혼은 했지만 직장은 다니지 않는 여자 : 주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직장에 다니는 여자 : 직딩

결혼도 하지 않았고, 직장에도 다니지 않는 여자 : 무직     


결혼하고 직장에 다니는 남자 : 직딩

결혼은 했지만 직장에 다니지 않는 남자 : 무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직장에 다니는 남자 : 직딩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직장에 다니지 않는 남자 : 무직          


왜 결혼한 남자 직장인은 타이틀이 하나일까? 물론, 요즘은 결혼을 하고 직장에 다니지 않고 살림하고 육아하는 남자를 슬그머니 '주부'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부라고 다 같은 주부가 아니다. 主婦와 主夫. 한자가 달라지긴 하지만 말할 때는 그냥 똑같이 '주부'이기 때문에 특별히 다르게 와닿지는 않는다. 그런데, 사람들이 主夫한테도 '專業'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專業主夫를 탄생시킬까? 主夫가 등장한 세월이 있으니 멀리 나가면 다칠지도 모른다. 主夫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국어사전에 올라와 있지도 않았다. 일본어 사전에는 올라와 있다. 일본어에 원래 존재하는 말인지 일본어에도 최근에 등장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다음] 사전에는 지금까지도 올라와 있지 않다.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목하게 되는 건 왜 굳이 전업이냐 아니냐를 가르는지 그게 궁금해서다.          


主婦의 상대어 主夫가 '주인의 지아비'는 아닐테니 主夫는 '주인인 지아비'라고 봐야한다. 그런데, 主婦는 1번보다 2번의 뜻이 더 자연스럽게 와닿는다. 며느리 눈높이에서 의미를 부여했다면 主夫처럼 '주인인 아내(主妻)' 정도는 되어야지 왜 굳이 '며느리(主婦)'에 시선이 멈추었을까? 당사자의 눈높이가 아닌 당사자를 바라보는 사람이 부르는 말인데 왜 그 당사자인 오늘날의 아내, 며느리들은 이걸 직업이라고 운명처럼 받아들일까? 앞에 글 <주부(1)>의 국어사전 풀이에도 분명 '주인인 부인'이라고 설명을 해놓았다. '주인인 아내'라고 하지 않았다.   


주인인 며느리, 주인인 아내, 주인인 남편, 주인인 시아버지, 주인인 시어머니, 주인인 엄마, 주인인 아빠, 주인인 고모, 주인인 이모 등 모든 지칭에 '주인(主)'이 붙을 수 있는데, 왜 굳이 '며느리'만 호출해서 '주부(主婦)'인가! '전업'도 마찬가지다. '지칭'에 '전업'이라는 말을 붙이는 발상도 부자연스럽거니와 그나마도 모든 지칭에 가능해야 되는데, 며느리만 당첨돼서 주부(主婦)라는 말이 탄생했다. 그것도 아내, 엄마, 딸, 며느리 중에 '며느리'라는 정체성만 쏙 뽑아냈다. 한 사람의 특정 정체성만 뽑아낸 말을 직업이라고 우기기 위해 단어 형태는 그대로 두고 뜻만 살림하는 존재로 탈바꿈시켰다. 개떡같은 말을 찰떡같이 풀이하는 언어의 마술? 사전의 능력?

        

전업주부, 가정주부, 알뜰주부까지 여자를 길들이는 표현은 참 많기도 하다. 정작 필요한 말은 부재하고, 없어도 되는 말은 이렇게나 많다.     


부부도 그렇고, 주부도 그렇고, 여자는 아무리 발버둥쳐봤자 '며느리'일 뿐 '아내'로 대접받지 못하는 운명을 가졌는데, 오늘날 발생하는 남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은 '아내'를 아내가 아닌 '며느리'로 바라보는 시선이 낳은 예정된 후유증 아니었을까?           


아내든 며느리든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전제부터가 틀린 말이었기에 지금까지 이렇게 길게 쓸 것도 없었다. 누군가를 부를 때 주인을 집어넣어야 성립하는 호칭/지칭이라는 건 사람을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말 아닌가! '주부'라는 말은 그래서 실격이다. 전업이 어쩌고, 살림이 어쩌고를 따질 게 아니라 "왜 하필 그따위 한자를 골랐냐?"를 물어야 한다. '주인의 며느리'가 '살림하는 여자'로 변신한 과정을 들여다 봐야 한다. 婦자를 써놓고 妻라고 우기는 건 눈가리고 아웅이고, 언어도단이고, 모욕이다. '주부'는 직업이면서 직업이 아니었던 거다. 



(같은 여자끼리도 '전업주부'는 집안일을 도맡아 하는 존재니까 남편이 안 도와준다고 불평하지 말라는 댓글이 주르르 달리는 거 보고 경악해서 이번 명절연휴에 부산 바닥 어느 숙소 방안에서 새벽에 잠이 깨서 끄적인 다음, 글을 저장해놓으려고 브런치스토리에 접속을 시도했는데 아이디랑 비번이 다르다고 계속 뜸. 집에 와서 올리려고 보니까 이미 관련 글을 써 놓은 게 있어서 1탄, 2탄으로 붙여서 같이 올리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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