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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로 위 미진 Sep 26. 2024

05.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다."

엄마, 아빠 이제 나는 내 인생을 살아보려고 해(2)

05.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다."


 집에 들어가니 엄마랑 아빠는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셨다. 숨 막히는 그때의 공기가 아직도 선명하다. 무언의 압박이 있었지만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밥도 먹고 강아지랑 놀기도 하였다. 아빠가 점심을 드시면서 나보고 와서 밥을 먹으라고 하셨다. 이미 밥을 먹었지만 점심을 먹고 있는 아빠와 마주 보며 음식을 꾸역꾸역 먹었다. 나는 아빠랑 대화를 하고 싶었다. 물론 말이 통하지 않을 거고 나는 호되게 혼이 날거라 생각을 했다. 그럼 나는 예전처럼 아빠 말을 따르겠지. 그게 내 세상의 법이고 진리이니까.


 아빠가 운을 띄우셨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건데?"라고 물으셨다. 당시 내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생각은 안 난다. 면접을 많이 봤지만 아빠와 전쟁하는 그 순간이 제일 떨리고 긴장되었다. 아빠가 어제처럼 높은 데시벨로 엄청나게 많은 말을 내게 쏟아부었다. 머릿속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해서 그런지 정신이 나가버린 것 같다. 순간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아무 소리를 안 하면 나는 아마 미쳐서 죽을 것만 같았다. 갑자기 내가 소리를 질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쏟아내었다. 평생 살면서 아빠 말을 잘 들어오던 딸이었는데 내가 소리를 지르다니..! 처음이었다. 이렇게 속 시원한 기분, 언성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해방감을 느꼈다. 공무원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나도 이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남들처럼 멋있게 한번 살아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지금은 비록 연봉도 낮고 작은 회사이지만 나는 잘될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렸다. 펑펑 울면서 말할 줄 알았는데 그 말들을 하는 순간에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내 의견을 또박또박 말씀드렸다. 누구보다 이성적이었다. 그러니 아빠가 갑자기 수긍을 하셨다. 처음이었다. 아빠가 내 말을 들어주고 수긍하는 모습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항상 내게 가장 큰 존재였던 아빠가 내 말을 들어주고 인정해 준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무섭기도 하였다. 


 나는 소리를 지르며 사실 조금 분했다. 아빠 때문도 아니고, 공무원을 준비했다는 사실도 아니었다. 내가 여태 나를 모르고 살았다는 생각이 나를 억누르며 생긴 분함이었다. 나는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나를 몰랐을뿐더러 내 주관이 하나도 없었다. 혼자서 내 인생에 대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했다. 항상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고는 하였다. 아마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내가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하려고 그러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정말 바보 같았다. 


 어영부영 아빠와의 전쟁을 끝내고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뭘 해야 할지 집에서 혼자 찾아보는데 아빠가 문자가 왔다. 전화를 하자고 하셨다. 또 마음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하시려고 그러지? 무섭다. 아빠는 전화로 많은 얘기를 해주셨다. 전화를 끊기 전에는 "그동안 공부하느라 고생했다." 이 한마디를 해주셨다. 그 순간 '부모란 뭘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도 자식에게 나를 투영하지 않고 내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아빠의 이 한 마디가 과거에 내게 일어난 일들을 실패가 아닌 경험으로 만들어줬고, 미래의 내가 잘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빠 나도 이제 잘 살아볼게. 아빠도 아빠의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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