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술쟁이와 마술사는 우리를 진정으로 속이는 사람이 아니다. 속이지 않음으로써 속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들을 볼 때 속아 줄 준비를 단단히 한다. 그래서 속지 않음으로써 속는다. 스스로 숨기지 않는다.
정말로 속이는 사람은 사기꾼이다. 노름꾼이다. 그러나 그들은 진정으로 숨길 줄은 모른다. 표층에서만 속일 따름이다. 임시적으로, 잠정적으로 속일 수 있을 뿐이다. 그들의 속임은 멀리 가지 못하고 곧 들통이 나고 만다.
점쟁이와 주술사는 우리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조각을 꺼내서 우리 앞에서 보여 주는 사람이다. 따라서 속임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주술사들, 무당들, 심령술사들은 인간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자연의 이미지를 길들여 통제해왔고, 화가들과 같은 역할을 했다. 화가 역시 날 것으로서의 이미지가 뿜어내는 혼돈의 기운을 길들여 아름다움의 한계 내부로 그들을 가두려 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스스로를 숨길 때 자신을 가장 진실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리의 현현 방식과 일치한다.
'에드거 알랜 포'의 단편 소설 "도둑 맞은 편지"에는 편지 한 통을 둘러 싸고 누구는 숨기고 또 누구는 찾는 이야기가 나온다. 독자들의 예상과는 달리 이 편지는 두 번이나 매우 허술한 곳에 숨겨져 있다. 숨겨져 있다기 보다 방치되어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아무렇게나 놓아져 있다. 찾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예상 못하는 곳이다. 한 번은(왕비의 입장) 탁자 위에 다른 편지와 함께, 또 한 번은 (장관의 입장) 편지 꽂이에 다른 편지와 함께 있는 것이다. 중요한 편지라면 도저히 그런 곳에 놓아 둘 리가 없다고 생각되는 곳이다.
소설에서는 편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그러나 매우 중요한 내용이라는 것은 곳곳에 암시되고 있다.
중요한 것일 수록 자기 수중에 넣어야 권력이 생기는 법이다. 중요한 것일 수록 남들이 찾기 어려운 곳에 보관하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다. 철통 보안이 가능한 곳을 선택하고자 마음 먹는다. 권력자에게는 매우 크고 매우 튼튼한 철제 금고가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편지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어느 곳에 있든지 현전하며 동시에 어디에서도 부재한다. 말하자면 편지는 하나의 기표이다. 언제나 결핍된 존재로서의 떠도는(부유하는) 기표이다. 주체는 이 상징계의 기표에 구속되어 있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