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도 안 자고 현관문만 쳐다보고 있어.” 밤 9시 반, 유치원 자체 연수가 끝나갈 무렵 친정엄마로부터 부재중 전화 여러 통이 와 있어 서둘러 전화를 드렸더니 들은 말이다. 고열로 온종일 시달렸을 텐데, 자야 할 시간인데 현관문을 바라보고 있을 30개월 아이의 그 모습이 그려져 목부터 가슴께가 뻐근해졌다.
그날 새벽, 뒤척이는 아이의 이마를 짚어 보았더니 불덩이였다. 옷을 벗기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몸을 닦이고 해열제를 먹였다. 열이 조금 떨어졌고 아이는 다시 잠들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아침에 해야 할 일이 밀려온다. '몇 시쯤 나가서 병원 앞에 줄 서야 덜 기다릴까?', '내일 아침 등원 차량 지도인데 누구에게 바꿔 달라고 하지?' '일단 원감 선생님께 전화 드리고, 메이트 교사에게 전화해서 오후수업으로 바꿔 달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가장 큰 걱정,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질문, ‘병원 갔다 누구에게 맡기지?’
한번 열이 오르면 3~4일은 잘 떨어지지 않는다. 축 늘어져 있을 거고 구토도 할 텐데 어린이집에 보낼 수는 없다. 남편 직장은 아이가 아파서 늦는다거나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란다(대체 그놈의 분위기는 언제 바뀌는 건지). 시댁은 한 시간 반이 넘게 걸리는 위치에 있고 시어머니는 출근하신다. 친정은 30분 거리지만 좌골신경통으로 걷는게 불편하신 엄마께 맡기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전업주부인 동생이 있지만 그 집도 연년생 아기가 둘이다.
“엄마, 오늘 딱 한 번만 봐줘. 아니 한 2, 3일만. 근데 오늘 야근이야. 미안해.” 짧은 문장들을 쉬지 않고 말해버리는데,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힘이 들어간 줄 몰랐는데 힘이 풀어지는 걸 느끼고는 알았다. 어쩔 수 없이 엄마에게, 엄마니까 또 부탁했다. 근데 이게 언제까지냐고 묻는다면 대책이 없다. 딱 한 번이라고 시작하는 부탁은 언제나 반복된다.
아이를 친정에 내려주며 말했다. “엄마는 형아, 누나들 잘 돌보고 올 테니까 ㅇㅇ는 할머니랑 잘 지내고 있어. 알았지?”. “….” 대답이 없다. 기력이 없어서 대답하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거면 어쩌지? ‘나도 돌봐줘. 엄마.’ 눈가에 뜨거움이 차올라 아이를 토닥여 주고 급히 돌아섰다.
내 직업이 이래서 더 미안한 걸까? 이 시기 부모와의 애착의 중요성을 잘 알아서 죄책감이 더 드는 걸까? 누구보다 내 아이 잘 키우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눈만 뜨 떠올려지는 이 질문들은 점점 무게를 부풀려 가슴을 짓누른다.
퇴근길, 후배가 물었다. “이번 주말 출근하시죠?” “응 해야지. 다음 주 참여 수업인데.” “ㅇㅇ는요?” “ㅇㅇ는 맡겨야지. 빨리 알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