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n W Oct 11. 2024

또 하나의 터닝 포인트

에세이

   “0 선생님, 금상 축하합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럴 리가요, 농담이시겠지요?”

  “아직 모르고 있었군요? 오늘 아침에 ‘교원예능실기대회’ 결과공문이 왔는데 확인해 보세요.”


  셋째 시간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에 들어섰을 때 느닷없이 교무부장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었다. 2008년 00 중학교에 근무한 지 2년째 되던 해였다. 경상북도 0000면에 있는 작은 학교였다. 전교생이 20명도 채 안 되고 교사 6명, 행정실 직원 2명, 교장선생님 1명, 모두 9명이 전부였다.


  부리나케 ‘NEIS’ 교무업무 프로그램에 접속하여 ‘교원예능실기대회’ 공문을 찾았다. 엑셀파일로 그 결과가 첨부되었다. 금상에는 2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분명히 두 번째로 내 이름이 있는 것이다.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쁨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마치 ‘만약, 복권 1등에 당첨된다면 이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달 전 경주 화랑교육원에서 시를 적을 때의 상황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주어진 제목 중에서 ‘물결’이라는 제목이 제일 만만해 보였다. 그래도 원고지를 받아 들고 제목을 적고 나니 막상 떠오르는 생각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 시간 이상을 끙끙거리고 나서야 겨우 조금씩 써나갔지만 원고지 한 장을 다 채우지 못한 상황이었다. ‘어쩌지, 이대로 제출한다면 너무 성의 없다고 할 거 같은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참을 고민 후, 앞에 쓴 연을 한 번 더 반복하니 겨우 두 번째 원고지 첫 줄까지 채울 수 있었다. 입상할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어서 적어오지도 않았다.        


  ‘교원예능실기대회’란 교원 및 교육 전문직의 교양과 전문성을 제고하고 학생들의 특기, 적성 교육의 활성화에 이바지하고자 1979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문예(운문부, 산문부), 음악, 미술 영역별로 실시된다. 경상북도 교육청 소속 유·초·중·고교 교사, 교감·교육전문직 등 대략 400여 명이 참석하는 편이다. 그중 대략 300여 명가량이 문예부문이다.


  응시자 중 40%는 입상하게 되어있다. 많이 참여할수록 많이 입상하는 것이다. 내가 ‘들러리’가 되면 누군가는 ‘입상자’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출장비’에 ‘유류비’도 나오고 오전에만 참여하면 나머지 시간은 그야말로 ‘경주에서의 자유시간’이 보장되는 셈이다. 00관내 선생님들끼리 서로 ‘품앗이(?)’하듯이 우르르 몰려가서 참여하기도 했었다.      


  2006년, ‘교원 예능대회’ 운문부에 참석하여 처음으로 동상을 받았다. 그때는 주어진 제목 중에서 ‘새벽’이라는 주제로 시를 적었다. 평소 시를 읽을 때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 나름 두 장 정도 적어 제출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시간이 조금 남아 연습장에 적어 오기까지 했다. 나중에 결과를 보니, 동상입상자 명단 끝에서 두 번째로 내 이름이 있었다. 비록 꼴찌 동상이기는 해도 ‘오,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동상 입상을 계기로 ‘시를 제대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시에 대한 책 3권을 구입했다. ‘푸른 사상’ 출판사의 『현대시창작법』(박명용 저), ‘문학사상사’의 ‘이승하교수의 『시 쓰기 교실』(이승하 지음), 시와 시학사의 『시의 길, 시인의 길』(오세영 지음). 그중 『현대시창작법』 위주로 공부하였다.        


  그 이듬해(2007년) 다시 응시, 주어진 제목 중 내가 선택한 것은 ‘갈대’였다. 웬일인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두 시간 동안 끙끙거리다가 결국 제출도 못하고 나와 버렸다. 노력에 비해서 결과가 너무나 초라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이제 다시는 시를 쓰지 말아야지’하는 생각도 했었다.      


  1년 후 2008년, 주위의 선생님들의 권유와 분위기에 휩싸여 다시 참석하기에 이른다. 결과는 정말 뜻밖의 ‘금상’이었던 것이다. 제출했던 시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궁리 끝에 담당 장학사님께 전화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입상작은 공개되지 않는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어쨌든 적어 올 걸’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과학교사가 시부문에서 금상을 탔다고 하니 조금 의외였던 모양이다. 교무실 안이 한동안 떠들썩하였다. 특히 참석을 권유했던 교무부장님께서 마치 자신의 일인 양 무척 기뻐하시며 “0 선생님, 금상을 탔으니 이제 한턱내셔야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럼요, 돼지라도 한 마리 잡아야지요.”라고 대답했다. 너무나 기쁜 나머지 나는 소라도 한 마리 잡을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선생님들을 모시고 00읍내 오리 전문점으로 향했다.      


  회식 자리에 선생님 한분이 참석하지 않았다. 이번 대회에 ‘시부문’에 같이 참석하셨는데 입상하지 못한 국어 선생님이었다. 평소엔 술 좋아하시고 호탕한 분이었는데... 뭔가 참석하기에 불편하셨던 모양이다. 마음 한 곳이 불편해졌다. ‘아하, 내가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보다, 누군가의 즐거운 일이 누군가에게는 곤란한 일이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그렇게 대단한 대회의 상은 아니었지만 ‘시를 읽는 사람’에서 ‘시를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시인이 되겠다’는 목표보다는, 시를 쓰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나의 여생을 풍요롭고 보람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