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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Oct 12. 2024

아들과 딸의 차이(눈칫밥)

아들은 밥, 딸은 눈치

아들은 단순하다. 단순한 아들은 그저 배가 고프면 기분이 나쁜 초등학교 1학년이다. 


-아들-

신나게 태권도를 마치고 집에 오면 배가 무지 고프다. '신발은 제자리에', '가방은 어디 둬라'라는 엄마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다 귀찮고, 너무 피곤하고 일단 밥부터 먹고 싶은데 밥은 없다. 지난번 할머니 집으로 갔을 때, 할머니는 내가 오자마자 식탁에 밥을 척척하고 내줬는데.. 엄마는 퇴근 후에도 부엌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다. 밥을 먹기 위해선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짜증이 난다.


아들은.. 오로지 밥이다. 


딸은 아들에 비해 조금 복잡하다. 복잡하다는 것은 좋게 보면 섬세하지만 또 세상 예민하기도 하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은 귀가 밝아 어른들이 하는 말, 이야기, 분위기를 세심하게 살펴보곤 눈치껏 움직인다. 


-딸-

'세상은 눈치가 반 이상'이리는 아빠의 말이 아니라도 내 귀에는 정말 많은 것이 들린다. 엄마 아빠가 나 몰래 할아버지에 대해 소곤거리는 소리, 선생님이 전화기 너머로 하는 이야기, 친구들이 떠드는 소리가 내 귀에는 정말 잘 들린다. '괜찮아?'로 시작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주는 것이 좋다. 어떻게 하면 남이 나를 좋아할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런 것이 아빠가 말하는 '눈치'인가 보다.


딸은.. 오로지 '눈치'다.


그렇게 단순한 아들은 '밥', 복잡한 딸은 '눈치'다. 그래서 나는 아들이 집에 오기 전에 얼른 밥솥에 밥을 안치고, 부엌에서 미리 부산한 척 그릇을 옮기고 설거지 준비를 미리 한다. 한때 딸이었던 눈치 빠른 와이프는 부엌에서 바쁜 나를 보면서 자기도 뭔가 해야 할 것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렇게 아들에게 중요한 '밥'을 준비한다. 


딸은 엄마아빠가 바빠서 될 일이 아니다. 딸의 하교는 학원 앞에서 이루어지는데 나는 딸을 만나자마자 제일 먼저 꼭 안아준다. 안아주면서 나는 섬세하게 딸의 느낌을 파악한다. 딸의 눈치를 본다. 하루하루가 다르기 때문이다. 딸은 나에게 정신없이 웃으며 달려와서 한없이 안길 때가 있는 반면, 어떤 날은 힘없이 털썩 안긴다. 한때 아들이었던 나는 그 눈치를 파악하기 정말 힘들지만 최대한 집중해서 이 말로 시작한다. "어이구 우리 공주님, 오늘도 수고했어." 책가방과 신발가방을 건네받고 등을 토닥여준다. 아이는 그렇게 하루 스트레스를 그렇게 나한테 기댄다. 


딸과 아들은 이렇게 다르다. 때로는 밥만 좋아하는 아들이 편하지만 때론, 눈치 있는 딸이 정스럽다. 


'밥'과 '눈치', '눈치'와 '밥' 그렇게 아빠는 오늘도 '눈칫밥'으로 배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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