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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Sep 14. 2024

빛나는 눈, 나와는 다른 생각

얼마 전 이사를 했다. 지은 지 7년이 지난, 나름 준신축 아파트이긴 하지만 이젠 어느덧 여기저기 낡은 곳도 보이는 아파트였다.  이사 전 집 몇 곳을 살펴볼 때는 조금은 수리가 필요한, '고쳐 살아야겠다.' 싶은 집들도 제법 보였지만   우리는 운 좋게도 신혼부부가 아끼고 아껴 깨끗하게 살던,  새 집 같은.. 무엇보다도 산이 가까운 전망 좋은 집으로 전셋집을 구하게 되었다. 


매일, 어김없이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시원하게 울어대는 닭소리가 시끄럽기도 하다가도 소파에서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창가의 삼분의 이 이상이 푸르다. 창으로는 맑고 시원한, 공기가 들어와 조금은 춥다가도 멍한 내 정신을 깨운다.  


이 집의 또 하나의 장점이라면 바로 집 앞 풋살장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들에게는 딱인 이 공간, 아직은 낯을 많이 가려 아빠와 함께 아니면 절대 나가지 않겠다는 그래서  '고마운 아들'과 '나'는 틈틈이 밖에서 공을 찬다.


9월, 늦은 저녁이라도 아직은 한여름의 열기가 남아있는 밤. 어떻게 공을 찼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는 늦어  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되면 매번 아들과의 작은 다툼이 생기기 마련이다. 조금 더 '공을 차고 싶은 아들'과, '피곤하고 지루한 아빠'가 서로  '조금만 더',  '이때까지만'을 연발하며 팽팽하게 싸운다. 결국은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하며 겨우 아들을 달래 집으로 들어오지만 아들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하고 뭔가 퉁명스럽다.  


단순한 두 수컷들.. 집으로 돌아오는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 둘만의 공간에서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아들은 그저 아쉬움이 남고 기분이 나쁘다. 아빠는 그저 생각 없이 뿌듯하고 '나는 좋은  아빠'라고 착각을 한다.  "아들 재미있었어?" 아빠는 웃지만 아들은 입이 튀어나오고 답이 없다.


지새끼란 이런 걸까? 웃지도 않고, 퉁명스레 대답만 하는 아들의 모습이.. 얼굴이.. 아빠가 보기에는 너무 예쁘다.  '어쩜 이리도 예쁠 수 있을까?' 땀으로 촉촉이 젖은 머리카락과 발그레 올라온 두 볼은 광이 난다. 귀엽다. 이마 위 기분 나쁜 주름은 여전하지만 두 눈은 빛이 난다. 아빠는 다시금 아들에게 무장해제 되고 뽀뽀를 간청해 보지만 아들은 겨우 고개만 끄덕, 아빠는 허리를 낮추어 아들의 입에 정신없이 두세 번 뽀뽀를 한다.  


사실 아빠의 마음은 애가 탄다. 언제부턴가 아들이 입을 잘 맞춰주지 않는 것이다. '쪽' 하고 함께 입을 맞춰주는 그 짧은, 찰싹하고 달라붙는 찰기는 1도 없고, 그저 밋밋한 입만 내어주는 뽀뽀가 태반이다. 아빠의 '사랑해'라는 말에 항상 답으로 내뱉던 '사랑해'라는 답도 이제는 무슨 이유에선지 사라지고  그저 '사랑'이라는 짧은 명사로 나를 괴롭힌다. '사랑'과 '사랑해'는 많이 다르다. '해' 하나가 들어가면서 명사가 동사로 바뀌고 명확한 주체가 생기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들이, 초등학생 1학년이 '동사'나 '주체'를 알지는 못하겠지만 아빠에게는 짧은 음절하나가 집 앞 산보다 크다. 


그러다 다시금 쐐기를 박는 아들의 말 "아빠 입에 침이 너무 많아 더러워" 


그렇게 아들은 건조한 입을 열고, 아빠는 침 많은 입을 닫고.. 둘 다 아무렇지 않은 듯 올라가는 엘리베이서 숫자만 바라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22층까지 올라가는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 왜 그리고 애달프고 또 슬펐을까? 알고 보면 아들인 나도 예전에는 그렇게 했다. "아빤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빤 왜 그리 눈치가 없어" 생각 없이 건조한 입을 내뱉던 아들이 이제는 그대로 다 돌려받고 있다. 


슬프면서도 또 행복한 지금, 내 볼에 찰기 넘치는 뽀뽀로 아침을 깨워주던 아들이 이렇게 자라 기쁘고, 내 아버지가 느낀 아쉬움을 변함없이 되돌려 받는 시간이..  '삶'이 재미있다. 


아들의 뽀뽀 하나면 행복하고, 아니어도 기쁘다. 이렇게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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