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보이지 않는 끝없는 연결고리
"그냥 닥치는 대로 되는 대로 읽고 산다."
이제는 작가님인 유시민 작가의 말이다. 문득 이 말만 듣고 보면 그가 아무 '연관성' 없이 책을 마구 읽어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게 책을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니, 그럴 수 없다. 작가님 역시 덧붙이는 말로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자연스럽게 '연결'이 된다고 했다. 나 또한 그 경험을 충분히 하고 있고 나는 그 맛에 책을 읽는다.
가만히 보면 책은 텍스트로 쓰인 '종이뭉텅이' 일 뿐이다. 들고 다니기 번거롭고 잠시 한눈을 팔면 어디를 읽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으며 고개를 숙이고 책을 읽다 보면 목과 허리가 아프다. 하지만 '뭉텅이'의 힘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매력적이다. 종이에 적어둔 텍스트는 작가의 삶을, 결국은 반복되는 우리네 삶을 심혈을 기울여 적어둔 것이기 때문이다.
'뭉텅이'에는 작가의 인생이 들어있다. 독자는 그렇게 작가의 인생을 받아먹고 독자의 방식으로 자신을 한번 더 돌아볼 기회를 가진다. 작가의 책은 하나지만 그 책을 읽고 해석하는 독자의 책은 셀 수 없다. 그렇게 독자는 작가의 인생을 나만의 방식으로 한번 더 살아봄으로서 같은 부분을 공감하고 느끼며 '연결됨'을 깨닫는다. 그래서 책은 한번 읽으면 끊을 수 없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과 같다. 빠져들면 무섭게 빠져든다.
도대체 책은 무엇일까? 왜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을까? 왜 책은 끈질기게 연결이 되는지 생각해보자.
책은 시간과 시간을 잇는다. 책은 타임머신이다. 나는 우연히 동네 도서관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오래된 책 한 권을 보게 되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책을 두고 프랑스, 똘레랑스, 그리고 택시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종종 듯곤 했다. 그때 국민학생인(나는 국민학교 졸업생이다.) 나는 파리를 '빠리'라고 부르는 것이 신기했고, 표지에 그려진 뾰족한 탑이 재미있었고, 외국에 산다는 그가 막연히 부러웠다. 부모님은 나에게 그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했지만 당연히 다 읽지 못했다. 몇 줄 살펴보다 책과 나는 멀어졌다.
그렇게 내 무의식 속에 30년이나 잠들었던 책이 이제와 나이 마흔에 나에게 다가왔다. 책등에 적힌 '빠리'라는 글자가 나를 한번 불렀고, 기억 속 부모님의 대화가 다시 나를 일깨웠다. 나도 모르게 손이 반응하여 책을 뽑았고, 앞표지의 뾰족한 탑은 중년의 나를 다시 국민학교 5학년으로 돌려놓았다. 책은 그렇게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그렇게 '연결'되었고 만날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었다.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기억이 어렴풋하다. 어떤 책을 계기로 읽게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를 산다'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 이름은 '마흔세살에 다시 시작하다.' 구본형 작가의 책이다. 변화경영, 자기혁신을 주제로 산다는 책이었고 마흔을 맞는 나에게 특별하게 느껴진 폼나게 적힌 책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겉멋 들듯 '나'에 대해 이상하게 끌릴 때,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이 나를 불렀다. 최진석 교수님의 '나를 향해 걷는 열 걸음'이 바로 그것이다. 책은 항상 이렇게 나를 불렀다.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제목과 책들이 그때그때 내가 읽고 있는 책에 따라 새롭게 반짝였다.
하지만 이 책은 조금 부담(?)스럽게도 열 걸음 자체가 10권의 책을 리뷰한 내용이었고 그렇게 나에게 10권의 꼬리를 전해줬다. 그 중 읽어 본 책들은 작가님과 나의 생각을 비교해 가며 다시 읽었고 읽지 않은 책들은 다시 도서관을 뒤지는 꼬리 찾기 게임을 했다.
10권 중 읽지 않은 책, 루쉰의 '아Q정전'에 빠져 '아이들을 위한 아Q정전', 소설 '아Q정전', '아Q정전 해설집'까지 총 3권을 욕심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생각 없이 지나쳤던 문구 하나 단어 하나도 해설집을 보면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고,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고개를 든다. 머릿속에 '아Q'와 작가 '루쉰'이 떠오른다. 의사가 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루쉰, 우연히 러일전쟁에서 동포인 중국인이 사형 당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이후 루쉰은 죽어라 책만 읽는데 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친구 첸세엔동이 그를 찾아가 설득하고 루쉰은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렇게 베이징 신문, '신보부간'에 연재된 소설이 '아Q정전'이다. "내 생각엔 자네가 글을 좀 썼으면 해" 이 한마디에 중국 14억 인구의 머리를 때리는 명작이 탄생했다.
책은 모든 것과 연결된다. 저녁 먹기 전 와이프가 우연히 아이들에게 한 말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겠네"라는 말이 그날 저녁 아이들과 침대에서 펼쳐든 산문 제목이기도 하고, 그렇게 살펴본 류시화 작가님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라는 책에서 앙드레 지드의 '지상을 양식'을 찾아 읽게 되었으며, 지상의 양식에서는 다시 류시화 작가의 책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나타나엘이여 나는 이제 더 이상 죄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라는 문구에서 나는 작가를 마주한다. 확실하다. 류시화작가님은 '지상의 양식'에서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만들었을 것이다. 이러한 발견에는 흥분으로 몸이 떨린다.
비단 책뿐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구본형 작가님의 책에서 나온 문구 '가난은 냄새로부터 온다.'는 영화 '기생충'에서 송강호 가족의 몸에서 나는 쿰쿰한 가난의 냄새를 연상케 한다. 밥을 먹을 때 그것 하나에 오롯이 집중하여 행복하게 먹는 강아지 이야기에서 '시대예보, 핵개인의 시대' 작가인 송길영 작가님의 '개처럼 살고 싶다.'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하며 소설 데미안에서 '내 안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볼 때마다 이제는 조금은 식상한 고명환 작가님의 영상이 생각난다.
이렇게 책은 시간과 시간을 잇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세상 모든 것과 연결된다. 서로 다른 방향의 씨실과 날실이 정신없이 꼬이지만 결국 우리 머리속에선 멋진 옷이 완성되는것과 같은 원리다. 책을 읽는다는 건 신기한 만남의 연속이며 끝없는 연결이다. 이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어디 있을까?
오늘도 나는 이 맛에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