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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복수 Sep 26. 2024

바보아빠와 총량의 법칙

일, 가정, 그리고 삶 속에서의 균형

사실 저는 아직도 총량의 법칙을 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일과 가정 그리고 제 삶 속에서의 총량을 말이죠. 


진작에 알았어야 했는데.. 바보같은 저는 이렇게 몇번씩 번아웃이 오는 저의 총량에 지쳐 맘 상하고, 쪽팔리고,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쯤에야.. 말 그대로.. 갈 곳 없이 꼴아박고 나서야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쉬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죠. 


얼마전의 일이었어요. 전 짧은 2년간의 해외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간 미루어 두었던 대학원에 다니게 됩니다. 바보같이.. 심하게 열심히 다녔죠. 


가족과의 해외생활은 제 인생에서 어느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추억과 경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때의 저는 제 직장생활에 있어 함께 출발한 직장 동기들보다 2년 더 뒤쳐지는 생활이라 생각했습니다. 충분히 즐겨야 했을 그때는 마음이 가빴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조바심이 났습니다. 바보가 따로 없었죠.  


6살 딸아이와 4살 아들을 둔 아빠가 낮에는 직장생활에 저녁엔 대학원, 그리고 스스로 벌린 많은 일들까지 모두 다 감당하려니 힘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전 힘이 들어도 당연히 그게 '잘 사는것'인 줄 알았고 그런 직장에서, 대학원에서는 또 열심히 웃었습니다. 속은 울고 있었지만 말이죠.

 

어느 날, 퇴근 후 딸아이를 씻길 때였어요. 아이를 욕조에 세워 마주보고 선 다음,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겨주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작은 아이를 위해 허리를 굽히고, 물이 튀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씻기는 것이 아직은 쉽지 않았어요. 허리가 아팠죠. 그런데 유독 예민하던 딸아이가 갑자기 짜증을 냅니다. 제 실수로 아이 눈에 샴푸가 들어갔거든요. 아이는 아빠에게 짜증을 내고 고함을 지릅니다. 


그때.. '찰싹'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굳은 제 표정엔 변화가 없었지만 사실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아빠 너무 힘들어" 라는 변명섞인 말이 제 입에서 나왔죠. 멍청한 저는.. 아이를 씻기는 것이 힘든건지, 그동안의 일이 힘에 부친건지.. 사실 굳은 표정의 저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네.. 저도 모르게 아이 엉덩이를 때렸죠. 처음이었어요. 아이는 미안해서인지 혹은 무서워서인지.. 발가벗겨진 조그만 녀석이 할 수 있는게 그것밖에 없었는지.. 아빠한테 이야기합니다.  


"아빠 사랑해" 


아빠 마음이 무너집니다. 바보아빠인 저는 저의 총량을 모르고 웃으며 일을 몰아붙이다 정작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결국 화를 내게 됩니다. 남들보다 뒤쳐지지 않는 것, 일을 잘 하는 것,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것, 논문 하나 잘 쓰는것.. 이것들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어요. 


무너진 날, 멍청하고 바보같은 나를 날카롭게 자릅니다. 잘 잘라 나눠봅니다. 제일 큰 덩어리는 가족으로.. 다음 덩어리는 나, 그 다음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정작 하고 싶었던 '나를 찾을 수 있는 것들'에게 말이죠. 그렇게 자르고 자른 나머지.. 갈 곳 없는 덩어리와 가루를 모아 하고있는 일에 배분 합니다. 그렇게 나의 총량을 처음부터 잘 나누어야 했던 것인데 저는 그저 열심히만 하면 다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 정말 바보, 멍청이가 따로 없습니다. 


날 나누는 것, 총량을 아는 것, 우선순위를 지키는 것 또한 노력이 들어가야 한다는것을 드디어 알았습니다. 총량은 의지나 체력, 그리고 남의 눈으로 되는것이 아님을.. 저는 이제야.. 바보아빠가 되어서야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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