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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왜 하세요?

결혼 시리즈 그 궁극의 마지막

by 현주영

얼마 전, 친한 동생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나 역시 아직 결혼한 지 1년도 안된 새댁이긴 하지만, 동생의 결혼식을 보며 "그래, 우리도 이랬었지."하고 마치 결혼한 지 몇 십 년 된 사람처럼 잠깐 그날을 회상했었다. 막 들어오는 손님들로 부산스러운 홀 한쪽에 한껏 꾸며진 포토테이블을 보며 "생화 장식 저것도 결국 다 추가금이었어."하고 남편과 함께 시니컬한 웃음을 껄껄거리기도 했다. 결혼한 이후로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몇 번 참석하긴 했지만, 대학 때부터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할 때까지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동기이자 동생의 결혼이었던 터라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싱숭생숭한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리숙한 연애놀음에 서로 피폐해져 있던 날들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그 원숭이들이 시간이 흘러 어느덧 각자 가정을 이루다니 말이다.




결혼 전엔 '결혼을 해야 할까?'라는 의문에 사로잡혀 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물음은 잘못된 물음에 가깝다. 결혼을 하냐 마냐 보다 결혼을 왜 하는가에 더 초점을 두고 고민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가 마는가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니깐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왜 하느냐 묻는다면 좀 더 근원적인 고민에 가까워진다. 나이에 쫓겨서 혹은 갑자기 주변에서 우르르하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혹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을 오래 만났으니까, 너무 외로우니까 등등의 갖은 이유가 있겠지만 이런 표면적인 이유보다는 한 번쯤은 무엇인가 그럴듯한 철학적인 이유가 필요할 것만 같다. 어쩌면 이것이 훗날 결혼생활을 지탱해 줄 수 있는 뿌리가 될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나의 경우, 어느 날 회사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다가 내가 여기서 혼자 늙어 죽는다면 이 세상에 내 유전자를 하나도 남기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또 나를 그리워하고 사랑해 주며 기억해 줄 이가 내 대에서 끝이 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고는 처음 느껴보는 생경하고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해 와 소름이 끼쳤다. 그렇다면 나는 여기서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인가? 결과론적으로 늙어 죽으나 지금 죽으나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다 끝 아닌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 건지, 이런 삶이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단 말인지... 그렇다고 내가 혼자 잘 먹고 잘 살다가 간 억만장자거나 한 시대를 풍미한 연예인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귀감을 준 훌륭한 종교인이거나 교육자도 아닌데 말이다. 그냥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의 발에 밟혀 죽은 수많은 일개미 중 한 마리의 그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며 이어질 때쯤 내린 결론이 퇴직하면 평생 모은 돈과 함께 수녀원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웃기지도 않는 망상이다. 모든 삶이 의미가 있듯 어떠한 삶도 의미가 있을 테지만, 이 당시 나는 연애를 하더라도 결혼까지 가고 싶을 정도의 진지한 사람도 없었고 더욱이 새벽 감성의 멜랑꼴리가 더해져 허무주의에까지 빠져 버린 경지에 이르렀었다.




나는 나를 추억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굉장히 오랜 세월 동안 날 지켜보며 나도 알지 못했던 내 자신의 모든 모습을 평생을 공들여 예쁘게 추억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방식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도 있을 테지만, 나의 경우 운 좋게도 나를 가장 잘 알아봐 주고 예뻐해 줄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왜 결혼을 했느냐'라고 물으면, 날 가장 아름답게 추억해 줄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적어도 그때까지는 날 따뜻했던 기억으로 추억해 줄 사람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 나에게 있어서 결혼생활은 대충 얼떨결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어떤 결정이든지 혹은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라든지 대충 결정하고 아무렇게나 대하며 살아가지 말아야 할 일이다.


모두가 당연하듯이 살아가고 있는 이 사이클은 어쩌면 한순간에 일어난 기적처럼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 한때는 나도 때가 되면 다 제짝을 만난다는 어른들 말씀에 '아예, 지당하시네요.'하고 콧방귀나 뀌었지만, 지금은 모든 인연은 내 인생에서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합한 모습으로 찾아와 준다는 말을 믿는다.


그러니 동기야, 소중하게 지켜온 너의 단짝과 앞으로 걸어 나갈 이 길이 행복하고 즐거웠으면 한다.
간혹 그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맹세했던 너희의 자세가 흐트러지려는 것이 보인다면,
그것을 경계할 수 있게끔 언제든 세메를 날릴 수 있는 따끔한 중단세를 지키며 서 있을게!


KakaoTalk_20250916_153740470.jpg 여름 끝물, 가을의 첫 시작에_250906_by.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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