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길었던 2024년의 2월, 북쪽에서 불어오는 시베리아 기단의 칼바람은 2월의 막바지에 접어들면서도 잦아들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하늘은 계속해서 의미 없는 진눈깨비 섞인 부슬비만 근 한 달 가까이 쏟아냈다. 회색 하늘은커녕 우중충하다 못해 검회색빛의 하늘이 2주 연속으로 끼는 바람에 집안에서 키우던 화초마저도 볕을 기다리다 지쳐 시들시들해져 갔다. 연옥 같은 집안 분위기, 우리 가족에게 2월은 끝날 기미가 없어 보이던 그해 가장 축축한 달이었다.
갈등은 2024년 첫 명절인 설을 기점으로 시작되었는데, 동생이 명절 전날 친구들과 한 과음으로 인해 명절 당일 차례를 지내러 집에 오지 못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경상도 남자의 표본인 아빠는 당연히 노발대발하였고 그렇게 집안의 분위기는 파국을 향해갔다. 지금은 지나간 일이 되었지만, 당시엔 아빠의 갱년기와 계속되는 우중충한 날씨까지 합세하면서 집안의 갈등은 한겨울 서리맞은 바위와 같이 꽁꽁 얼어 풀릴 기미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와중에 엄마는 오래전 이미 친구분들과 약속한 호주 해외여행을 가야 했기에 일주일간 집을 비워야 했다. 2주일 연속으로 하루에 세 병 넘게 소주를 마시며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둔 아빠와 해외여행을 가야 한다는 엄마, 그리고 이미 따로 살고 있는 분란의 원인이었던 동생. 그 상황에서 온갖 피해란 피해는 다 받고 있던 나와 고양이 두 마리. 한마디로 집안 꼴 잘 돌아간다는 소리가 나오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 사건을 겪으며 나 스스로 다짐한 것이 있다. 바로 ‘하지 않을 일’이다.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주는 피해 범위를 좁힐 수 있다. 첫 번째는 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지 않는 일이다. 적어도 내 가족은 밉고 화나고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이성적으로 명확히 짚어주되, 감정은 내가 한 번 참고 말지 하는 심정으로 덮어주는 것. 즉, 감정을 앞세워 그대로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부정적인 감정은 오히려 내 가족에게 더 많이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 됐든 비빌 언덕은 가족밖에 없는데, 그 가족을 감정을 앞세움으로써 적으로 둘 이유는 없으니까. 두 번째는 내 기준으로만 생각하고 섣불리 말을 내뱉지 않는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그것도 내가 생각지도 못한 수준으로 빠르게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보는 관점과 사람들의 잣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내 기준이 영원히 맞고 반드시 옳은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또는 그때는 맞았으나 지금은 아닐 수가 있다. 그렇기에 내 기준과 내 생각이 그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스스로와의 의심을 계속해야 한다. 자기검열을 거친 끝에 곱씹고 곱씹어서 말을 꺼내야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그 말이 필요한지? 그 말이 따뜻한 말인지를. 이성적이고 바른말에는 힘이 있다. 감정적으로 내뱉은 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더 큰 힘이 있다.
아빠와 동생의 화해는 무려 한 달의 냉전 상태를 보낸 후, 그해 3월 9일에 이루어졌다. 그날은 대구에 첫 매화가 핀 날이었는데,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볕이 개운하게 기지개를 피고, 지지부진하게 내리던 진눈깨비가 영원한 안녕을 고한 것 같은 날씨였다. 놀랍게도 단 며칠 만에 거짓말처럼 따스한 봄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와 당시 남자친구의 권유로 바람을 쐬러 매화가 유명하다는 집성촌에 갔다. 유독 빨간 매화가 정말 탐스럽게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마치 너의 봄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해주듯이.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필요했던 건, 봄바람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였을지도 모른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듯 사람도 서로를 향한 말에서 봄기운이 가득 묻어 나올 때 비로소 새싹이 돋는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진다고, 그렇게 부슬비 내리던 지긋지긋한 2월이 가고 매화꽃이 피던 춘삼월, 나의 결혼 준비가 시작됐다. 그때의 따스함과 시작의 설렘을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봄이 움트는 삼월의 쾌청한 날씨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