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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쿠키 Oct 26. 2024

복자씨의 별사탕

신발찾기놀이_은수와 은석의 이야기 9

은수의 할머니는 은수가 혼자 노는 걸 안쓰러워했다. 은수를 데리고 또래 친구들이 있는 윗뜸 마을로 마실이라도 가고 싶었지만 은수의 할아버지가 병석에 누워계신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윗뜸이라야 걸어서 15분 이쪽저쪽의 가까운 거리지만 그렇다고 어린 은수를 혼자 놀러 보낼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은석이 이사를 오면서 은수의 할머니가 은석을 유독 살갑게 대한 데에는 이런 이유도 한 몫했다. 은석이 은수와 나이가 같은 사내아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할머니의 욕심이라고 할머니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토요일 오후, 오전 수업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경애와 종숙이의 목소리가 씩씩하다. "얼른 밥 먹고, 우리 또 놀자!" 둘이 약속을 다짐한다. 마침 외출준비를 하던 할머니는 경애가 돌아오자 옳거니 싶게 반갑다. 할머니는 윗뜸의 재일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보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 '일손을 보태주진 못하더라도 얼굴이라도 비춰야 하는데.. ' 혼자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경애가 오니 잘 되었다 싶어 부지런히 경애와 은수에게 점심을 먹이고, 샘가에서 설거지를 시작한다.


종숙이 골목길부터 경애를 부른다. 경애는 종숙이와 은석을 바라보며 얼른 오라고 손짓한다. 경애는 종숙이 이사 온그날부터 단짝이 되어 등교를 하고, 하교를 하였으며 늘 함께 놀았다.

 

종숙이와 경애, 그리고 은석이와 은수는 무엇을 하고 놀지 의견이 분분하다. 종숙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하자고 했고, 경애는 신발찾기놀이를 하자고 했다.


종숙이와 경애, 은수와 은석이 신발찾기놀이를 시작했다. 가위바위보를 한다. 경애가 술래다. 종숙이와 은수, 은석이 각자 신발 한 짝 싹을 숨기기 위해 후다닥 뒤꼍으로 부엌으로 흩어진다. 아이들 사이에 신발찾기놀이의 규칙은 하나뿐이다. 방 안에 그리고 삽짝문 밖으로만 신발을 숨기지 않으면 된다. 경애가 감나무에 기대듯 서서 두 손을 포개고 그 위에 눈을 감은 얼굴을 얹고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셋..."


뒤꼍으로 가다 되돌아온 은석이 샘가에서 설거지를 하고 일어서는 할머니의 손을 이끌더니 빨랫줄 바지랑대 곁에 세우고 귓속말을 한다.


"스물일곱 스물여덟 스물아홉 서~른. 다 숨겼지? 찾는다!" 경애가 뒤로 돌아선다.

한쪽 발에만 신발을 신은 종숙이와 은수, 은석이 평상에 나란히 앉아 경애의 동선에 신경을 곤두세우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고 웃고 있다.


경애가 익숙하게 장독대 주위를 뺑 돈다. 아무것도 없다. 경애가 부엌으로 들어간다. 은수가 긴장이 되는지 손바닥을 바지에 문지른다.

경애가 소리친다. "찾았다."

은수의 입이 삐죽인다. 경애가 고무신 한 짝을 은수에게 던져준다.


경애가 부엌을 샅샅이 살피다가 이번엔 뒤꼍으로 간다. 뒤꼍에 놓아 든 농기구 사이를 살피고 자질구레한 물건들 사이를 헤집는다. 엎어둔 삼태기를 들추고 밑에 깔린 가마니를 들어 올리더니 다시 한번 소리친다. "찾았다!"

경애는 신이 나서 종숙의 신발도 힘컷 던져준다. 이제 은석이의 신발만 남았다. 경애는 평상아래며 마룻바닥 아래를 살핀다. 다시 부엌과 앞뒷마당을 꼼꼼히 살펴본다. 경애가 은근히 부아가 치미는지 은석에게 따지듯 묻는다. " 너 우리 집 바깥에 신발 숨긴 거 아니지?"


옆에서 할머니가 웃으며 대답한다. "아니다. 은석이 울(울타리) 안에 신발 숨겼다."

경애가 약이 올라 "할머니는 맨날 은수랑 은석이 편만 들어!" 쌩하니 불평을 한다.

"편은 무슨.." 할머니가 무안한 지 말끝을 흐린다.


"나, 은석이 신발은 못 찾겠다. 니네 둘이 가위바위보해서 술래 정해." 경애가 종숙이와 은수에게 말한다.

종숙이와 은수가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번엔 은수가 술래다.

할머니가 빨랫줄에서 바짝 마른 옷가지와 함께 걷은 은석의 신발을 은석에게 가만히 건넨다. 그리고 할머니는 할아버지 방을 한 번 살펴보고 마당을 나서며 경애와 종숙에게 당부한다.

"얘들아, 동생들이랑 잘 놀고 있어. 할머니 재일이네 할아버지 상 당해서 잠깐 얼굴만 비치고 금방 올 테니까. 알았지?"

"네." 종숙이와 경애가 한 목소리로 똑같이 대답한다. 할머니는 은수와 은석에게도 어디 가지 말고 누나들 말 잘 듣고 누나들과 꼭 함께 놀라고 당부한다.


할머니가 집을 나서고 경애가 말한다. "우리 신발찾기 놀이 그만하고 숨바꼭질하자!"  순간 양쪽 신발을 모두 신고 있는 은석을 바라보고 의아한 듯 쳐다보다가 이내 "은수야, 열까지 두 번만 천천히 세. 알았지?"라고 말한다.

은수가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고, 아이들이 후다닥 흩어진다. 은석이 장독대 큰 옹기 항아리 뒤에 몸을 숨기고 숨을 죽일 때 경애가 종숙의 손을 끌고 발소리를 죽여가며 사리문 밖으로 사라진다. 은석이 언니들을 부르려다가 말았다.


"여덟 아홉 열. 찾는다?!" 아무도 대답이 없다. 대답을 해 줄리 없다. 대답을 하면 자신의 위치를 드러낼 게 뻔한데 대답을 할리가 없다는 걸 아는 은수는 대답이 없음을 다들 숨었다는 뜻으로 알고 눈을 뜨면서 고개를 돌린다. 은석이 장독대에서 몸을 일으켜 힘없이 걸어 나오며 말한다.

"오빠, 언니들 우리 떼놓고 도망갔어.."


은수와 은석은 기운이 빠진다. 언니들은 은석이와 은수와 함께 놀다가도 저희들끼리 달아나곤 했다. 은수는 은석이와 함께 누나들을 찾아 나설까 하다가 그만둔다. 할머니가 안 계신상황에서 할아버지를 혼자 두고 밖에 나가 놀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은수와 은석은 서로를 바라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독대 옆으로 가 소꿉들을 펼친다. 은수와 은석의 표정 위로 맑고 투명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난다. 금세 둘만의 놀이가 시작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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