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조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을 떴다. 머리맡을 더듬거려 실눈으로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침 5시 40분이었다. 화면을 스크롤해 5시 50분에 맞춰진 알람 끄기 버튼을 눌렀다. 고작 10분이 이럴 땐 꿀 같다. 느긋하게 기지개를 켜고 나서 몸을 돌려 옆자리를 더듬었다. 온기가 없다. 윤조는 벌떡 일어나 불을 켰다. '설마 오늘도?' 계단을 내려가 베란다 커튼 한쪽을 걷고 문을 열었다. 더운 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커튼을 밀치고 들어왔다. 트리도 윤조가 다가오는 기척을 들었는지 유리문에 두 손과 얼굴을 바짝 대고 안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이내 야옹 대며 폴짝 뛰어 들어와 밥그릇 앞에 가 앉았다. 품새가 어지간히 배고픈 모양이다.
"뭐야, 트리? 어제도 외박한 거야?"
빙 둘러싸인 타운 하우스 가운데에 조그만 놀이터가 있다. 트리는 그곳을 꽤 좋아한다. 동네 아이들이 저녁 먹으라는 제 엄마들 부르는 소리에 들어가고 어둑해지면 놀이터는 트리 차지가 되어 늦은 밤까지 무얼 하는지 몇 번을 불러야 들어오곤 한다. 언제부터인가 마지막으로 자는 사람이 트리를 들여보내는 게 습관이 되었는데, 가끔은 기다리다 지치거나 깜박 잊거나 한다. 윤조는 팬트리에서 캔과 사료를 꺼내어 섞어주었다. 정신없이 먹는 트리를 뒤로한 채 출근 준비를 했다.
"배고팠구나? 그러니까 언니들이 부르면 바로 들어와야지."
욕실에서 나오니 트리는 어느새 밥그릇을 비우고는 그루밍에 집중했다. 윤조는 다시 2층으로 올라가서 작은 방문을 살짝 열었다. 수연이 실눈을 뜨다가 다시 감으며 몸을 뒤척였다. 가만히 이불을 끌어다 수연의 허리께까지 올렸다. 다른 쪽 침대에서 유진의 쌔근대는 숨소리를 확인하고 방문을 살짝 닫았다.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와 냉장고를 열었다. 전날 준비해 둔 수연과 유진 그리고 윤조의 도시락이 나란히 놓여있다. 고등학생 수연과 중학생 유진은 여름방학이지만, 엄마 없이 아침을 부실하게 먹을까 봐 윤조는 늘 하던 대로 다음날 도시락을 준비한다. 그중 하나를 챙겨 6시에 집을 나섰다.
윤조는 집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골프장 클럽 하우스에서 쿡으로 일한다. 봄이 시작되는 5월부터 여름이 끝나는 9월까지 한 철 일 하는 시즈널 잡이다. 위니펙의 겨울은 강한 돌풍과 눈이 많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한 5월만 해도 6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지만 같은 일을 한 달째 하고 보니 몸이 적응하기 시작했다. 타운하우스 단지를 빠져나와 주도로를 5분 정도 달려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밤새 가라앉은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5분 정도 달리면 골프장 진입을 막는 차단기가 나온다. 윤조는 차에서 내렸다. 차단기를 한쪽으로 밀기 위해 쇠사슬을 풀었다. 오늘따라 쇠사슬이 촘촘히 묶여 있다. 어젯밤에 누가 마지막으로 퇴근했을까. 꼼꼼한 에릭일 수도. 차단기 끝을 밀어 길 한쪽으로 비켜 놓고 윤조는 서서히 골프장으로 진입했다. 잔디 담당팀이 이틀이 멀다고 깎아대는 잔디가 까슬까슬하게 서 있다.
윤조는 클럽하우스 주차장에 차를 댔다. 문을 열고 오른쪽 벽에 있는 스위치를 전부 올렸다. 아직 동쪽 끝자락에 걸려있는 희끔한 햇살과 실내조명이 어우러져 클럽하우스 실내를 은은히 밝혔다. 손을 씻고 앞치마를 매고 머리를 묶고 모자를 쓰며 주방을 주욱 둘러보았다. 오픈 주방에는 카운터의 포스 옆으로 커피머신이 있고 간단한 음식을 위한 작업대가 설치되어 있다. 맞은편에는 식재료를 채운 냉장고와 오븐, 그릴, 튀김기가 배치되어 있다. 작업자의 동선이 잘 고려된 공간이다. 깔끔하게 정리가 된 모습 뒤로 전날 저녁 분주하게 일했을 직원들의 바쁜 손놀림이 겹쳐 보였다. 매주 목요일 5시부터는 레이디스나잇 이벤트가 진행된다. 여성들에게 제공하는 특별 할인 행사로 골프장 이용권에 클럽하우스 저녁 식사까지 포함된 패키지 상품이다. 여름 해가 길어 저녁 9시 넘어서까지도 훤한 위니펙 특성을 살린 마케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