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프에게는 말할 기회를 놓쳤더라도 에릭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1시에 출근해서 마감까지 주방을 담당하는 에릭은 적어도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조, 사실 나도 그것 때문에 돌아버리겠어요. 햄버거 패티, 스테이크, 심지어는 감자튀김까지 싹쓸이해 간다니까요. 우리가 힘들게 프렙 해놓은걸요. 말이 돼요? 조! 우리 힘내서 좀도둑 놈들을 잡자고요!' 에릭이 결의에 차서 자신의 이니셜을 새긴 칼날을 조명에 비추어 보며 윤조에게 말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상상은 상상일 뿐. 포드 머스탱의 요란한 8 기통 엔진 소리는 클럽 하우스 안에서도 에릭이 도착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오, 에릭이 오는군요!"
말할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미아가 내뱉었다. 엔진 소리가 멎고 클럽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에릭의 모습은 윤조의 시선을 끌었다. 검은 부츠에 검은 스키니진과 셔츠. 온통 검은 데다 검은 야구 모자까지 푹 눌러써 눈까지 가려진 한결같은 에릭의 모습은 그날따라 윤조에게는 낯설었다. 아니, 오히려 아주 낯익은 모습이었다. 그 가방 때문에 더욱. 한쪽 어깨에 큼직한 검은색 가방을 메고 들어오는 에릭은 마치 범죄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서브 주인공 같은 모습이었다. 에릭은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는 가방을 벗어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걸어 놓았다. 에릭은 앞치마를 두르며 미아와 수다를 떨고 윤조는 가방을 주시했다. 기다랗게 걸려있는 홀쭉한 가방이 에릭이 퇴근하면서 빵빵해진다. 유난히 더 묵직해진 가방을 드느라 균형을 잠깐 잃은 에릭이 예의 이 십 대 남자애들이 말 어간 어미에 붙이는 욕설을 내뱉으며 마지막으로 클럽 하우스 불을 끄고 나온다. 머스탱의 굉음이 겨우 자려고 누운 먼지를 죄다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빠져나간다.
"그러니까 엄마는 에릭이 제일 의심스럽다는 거지?"
유진이 허니 갈릭 소스가 묻은 손가락을 물티슈로 닦으며 말했다. 저녁으로 허니 갈릭 오븐 로스트 닭고기와 브로콜리를 만들어 셋은 막 식사를 끝마쳤다.
"아무래도 제일 늦게 퇴근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말하면서도 윤조는 에릭에게 미안했다. 윤조가 로스트 비프를 자르고 난 후엔 언제나 뒤주방으로 와서는 칼날이 위험해 다칠 수 있다며 슬라이서를 분해해서 새니타이저로 꼼꼼히 닦는 에릭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솔직히 스탠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그 아저씨는 왜 항상 엄마를 그렇게 쳐다보는 걸까요?"
스탠의 눈빛이 부담스럽다는 윤조의 말을 몇 차례 들었던 수연이 지적했다.
"가끔 백인들은 아시아인들이 뭐 하나 하고 쳐다본다니까. 진짜 이상해."
유진이 투덜댔다.
"엄마, 그냥 매니저한테 다 말해. 진짜 누구인지 꼭 밝혀내야 해. 근데, 언니? 뭐 해? 설거지 안 도와줄 거야?"
유진이 그릇을 개수대로 옮기면서 발끈했다.
"놔둬. 몇 개나 된다고."
윤조는 접시에 남아 있는 음식물을 대충 제거하고 식기 세척기에 넣기를 반복했다.
"엄마, 이거 보세요."
투덜대는 유진의 잔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까부터 노트북을 보고 있는 수연이 다급하게 외쳤다.
"구글에 검색하니 바로 뜨네요. 식당 직원들이 훔치는 일이 많대요."
윤조와 유진의 손놀림이 동시에 멈췄다.
"진짜? 으레 그렇다는 거야?"
식기 세척기 문을 열어둔 채 윤조는 잽싸게 수연 곁으로 다가갔다.
"와아. 이럴 수가! 레스토랑 직원의 75퍼센트 이상이 한 번쯤 재료를 훔치거나 신용카드 조작을 하거나 일한 시간을 거짓으로 올린다는 거예요."
"어머머. 75퍼센트나?"
윤조와 유진은 수연 옆에 고개를 나란히 하고 노트북 화면을 응시했다.
"근데 시간을 거짓으로 올린다는 게 뭐야, 언니?"
"만약 A라는 종업원이 오전 10시부터 일했는데 뭐 9시부터 일했다고 조작한다던가 반대로 저녁 7시에 끝났는데 8시에 끝난 것처럼 한다는 거지. 그럼 앞뒤로 두 시간이면 최저임금만 계산해도 한 달이면 꽤 큰 금액이고."
수연의 설명을 듣자, 윤조는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머. 그러고 보니까 저녁에 근무했을 때 서버들 출근 시간이 좀 다르게 적혀 있어 이상하다고 했는데, 그것도 그런 거였네."
그날은 오후 직원 대신 저녁 근무를 했을 때였다. 파트타임 서버들은 게시판에 자신의 출근 시각을 적곤 하는데, 몇몇이 시간을 훨씬 이르게 적어놓아서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다.
"엄마, 보세요. 오죽하면 그런 손실을 방지하기 위해 레스토랑 경영인을 위한 세미나도 있네요."
"'레스토랑에서 사기와 도난을 잡는 7가지 모범사례'."
수연이 스크롤하며 화면을 내리자 유진이 볼드체로 된 문장을 읽었다.
"엄마. 제 생각엔 굳이 매니저한테 얘기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 정도면 분명 매니저도 알고 있을 텐데요. 전 괜히 엄마가 곤란해질까 봐요."
수연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한두 해 운영해 본 매니저도 아니고 어쩌면 그런 손실도 예산에 들어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여름철에만 운영하는 골프장이다 보니 한 철만 일하는 직원 수가 더 많다. 일반 레스토랑에서도 그렇다는데 이런 시즈널 잡에서야. 윤조는 매니저에게 보고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