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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도 Sep 20. 2024

그 많던 에그 샐러드 3

오버이지 over easy로요

정문으로 손님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윤조는 스탠에게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하고서는 검지손가락으로 화면을 휙휙 넘기며 사진을 확인하고 있는 스탠을 남겨두고 클럽 하우스로 들어갔다. 

 

   "굿모닝! 뭐 드릴까요?"

 

   "커피와 에그 앤 토스트요. 오버이지 over easy로요."

  

  40대로 보이는 남자가 10불짜리 지폐를 주며 잔돈은 됐다고 말했다.

  

  "네, 감사합니다"

  

  윤조 2불 50센트를 포스에서 꺼내어 팁 통에 넣었다. 커피를 먼저 따라주고 호밀빵 두 조각을 토스터에 넣고 그릴에서 달걀 두 개를 앞뒤로 살짝 익혀 접시에 담아 주었다. 오전에 혼자서 재료 준비를 하며 오전 손님 주문을 받는 데에는 이제 익숙해져 있었다. 물론 갑자기 몰리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스탠도 제 자리에 돌아와 조금 전 토스트를 주문 한 손님에게 티잉 그라운드 시작 시각을 알려 주었다. 

  윤조는 냉장고에서 전날 삶아둔 달걀을 담아둔 용기를 꺼냈다. 아침마다 세 종류의 샌드위치를 스무 개씩 만들어야 한다. 에그 샐러드, 로스트비프, 햄 앤 치즈 샌드위치. 도마 위에 큼직한 볼과 에그 슬라이서를 준비해 두고 용기 뚜껑을 열었다. 윤조는 믿을 수 없었다. 삶은 달걀로 가득 차야 했는데 통 안이 휑했다. 세어보니 아홉 개가 모자랐다. 분명히 한판을 삶아놓았는데. 전에도 이런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슬라이스 해 둔 로스트비프나 치즈가 한 뭉텅이가 없어졌는가 하면 접시에 고명으로 올리기 위해 잘라 놓은 허니듀가 반쯤은 사라지기도 했다. '저녁 근무자 중 하나가 퇴근하면서 몰래 가져가는 걸까? 그렇다면 왜 하필? 샌드위치나 햄버거 패티나 빵 한 봉지를 가져가는 게 간편하지 않을까? 달걀이나 슬라이스 된 비프를 가져가려면 손이 더 갈 텐데. 봉투도 준비해야지. 아, 그렇지. 햄버거 패티나 샌드위치는 오픈 주방에 있지만 달걀이나 비프, 즉 윤조가 사용하는 아침 재료는 뒤 주방에 있는 냉장고에 있으니, 은밀히 가져가기에는 으슥한 장소이지 않은가.' 

  윤조는 마치 제 물건을 도둑맞은 양 언짢았다. 입술을 옹졸하게 감쳐물고는 몸을 돌리는데 스탠이 프런트에서 사선으로 비켜선 채 윤조를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요, 조? 뭐 잘못됐나요?"

 

   "아, 아뇨."

 

   조명 때문인가. 날카롭게 빛나는 스탠의 눈빛에 윤조는 괜히 움츠러들었다. 냉장고 채소칸에서 셀러리와 그린 어니언을 꺼내서 상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는 동안에도 스탠은 윤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스탠의 눈빛이 그렇다. 상대방의 뒤통수까지도 뚫을 수 있는 그런 눈빛. 대체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지? 마치 스탠의 두 눈동자가 조명이 되어 윤조의 동작을 따라다니는 것 같았다. 뭐야. 현직 때도 저런 식이었다면, 범인들 제발 제대로 저렸겠는걸. 윤조는 스탠한테 솔직하게 말할 걸 그랬나 하고 후회했다. 어쩌면 스탠은 뭔가를 알고 있을 수도. 아니, 아니지. 스탠이 가져갔을 수도 있잖아. 그래서 지금 윤조 반응을 살피는 것 일 수도. '아, 뭐라도 좀 가져와 봐, 영감.' 하며 헝클어진 흰머리로 식탁에 앉아 시리얼을 오물거리는 나이 든 여자가 스탠을 향해 우유 방울이 떨어지는 스푼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상상했다.


   처음 음식 재료가 없어졌을 때 윤조는 매니저에게 보고해야 할지 고민하다 기회를 놓쳤다. 오늘은 말해야 할 것 같았다.

 

   "헬로, 가이스?"

 

   마침, 매니저 제프가 들어선다. 그린 어니언을 송송 썰면서 윤조는 잘됐다고 생각했다. 기회 봐서 알려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탠과 얘기를 마친 제프가 주방으로 들어섰다. 마요네즈를 넣고 소금과 후추를 친 에그 샐러드를 주걱으로 섞고 있는데 제프가 끼어들었다. 평소보다 목소리가 떠 있다. 

  

  "오! 조. 에그 샐러드 만들고 있군요? 와우! 에그설런트(excellent를 eggcellent로 발음)!

  

  이쯤 되면 말장난까지 하며 기분이 좋은 그에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말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제프. 너무 과장(exagerating을 eggagerating로 발음) 하는 거 아녜요?"

  

  바로 대꾸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윤조는 제프의 이런 말장난에 예민했다. 인종 차별을 공식적으로 반대하는 캐나다에서 은근히 대놓고 차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영어 실력이다. 이민자들은 으레 영어 발음과 억양에 약하기 때문에 종종 저평가되는 경우가 있다는 주제로 어느 한 이민자의 테드 톡스를 들었을 때 윤조는 매우 공감했었다. 

  제프가 '어이쿠!' 하며 어깨를 으쓱하자, 멀리서 스탠이 웃었다. 윤조도 따라 웃었다.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젠 말할 기회를 날린 것 같다.

  

  "조. 오늘부터는 미아가 9시부터 올 거예요. 맥주나 음료수 찾는 손님이 늘어나서 조 혼자 포스까지 보기에는 바쁘잖아요."  

 

  "헬로, 마이 프렌즈?"

  

  "저기 악마가 오네요."

  

  검은 단발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미아가 들어선다. 달뜬 목소리로 누구에게나 '헬로 마이 프렌즈!'를 남발하며 잠시도 입을 쉬지 않아 같이 일하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게 만드는 미아. 

  

  "안녕하세요, 조?"

  

  "어서 와요, 미아." 

  

  바로 그런 점이 어떤 때는 윤조를 정신없게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어젯밤에 얼마나 바빴는지 조는 상상도 못 할 거예요. 정말 바빠서 벙커에 누가 빠져 죽었더라도 몰랐을걸요. 하하. 물론 진짜 누가 빠졌다는 건 아니고요. 하하. 그러니까......"

  

  미아가 백색소음처럼 수다를 잔잔하게 깔아주고 포스부터 서빙까지 척척 해내는 통에 윤조는 샌드위치 만들기를 좀 더 일찍 끝낼 수 있었다. 물론 사라진 달걀 덕분에 몇 개 덜 만들었기도 했지만. 10시 30분이 되자 윤조는 점심을 먹기로 했다. 가져온 도시락을 레인지에 이 분 돌리는 동안 커피와 물을 준비했다.

  

   "와아, 냄새 좋은데요. 혹시 팟타이 아녜요?"

  

  윙 소리가 일 분 정도 계속되자 레인지 뒤에서 냄새가 퍼져 나왔다.

  

  "맞아요. 슈림프 팟타이요."

  

  윤조가 웃으며 미아에게 대답했다.

  

  "음, 조 도시락은 언제나 냄새가 좋아요. 아, 난 오늘 뭘 먹어야 하나?"

  

  이것도 미아의 립서비스이다. 윤조는 도시락으로 샐러드를 가져오는 경우가 더 많다.

  

  "참, 오늘은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는 안 돼요. 개수가 부족하니 다른 걸 주문해요."

   

  직원들은 40퍼센트 할인 가격으로 클럽 하우스 메뉴를 주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점심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퇴근하면서 포장해 가기도 한다. 물론 윤조도 처음에는 토스트나 샌드위치, 햄버거 등을 사 먹곤 했다. 금방 물리기도 했지만, 볼록했던 아랫배가 불룩해지는 걸 보고 도시락을 싸 오기로 했다.

  

  "헹, 에그 샐러드 샌드위치 맛있는데."

  

  미아가 흰자위가 보이게 눈알을 위로 치켜뜨며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그러게요. 그런데 왜 모자라는지 알아요?"

  

  "네? 저야 모르죠. 하하."

  

  예의 영혼 없는 웃음을 내뱉고는 서둘러 음료수 팩을 가지러 창고로 가버리는 미아를 보며 윤조는 아차 싶었다. 만약 수다쟁이 미아가 진지하게 왜냐고 물어봤다면 어쩌려고. 윤조는 고개를 저으며 도시락을 레인지에서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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