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쉬고 왔더니 일이 산더미다. 바뀐 수업은 수업대로 해야 하고, 축제에 내걸 시화전 준비하랴, 학생들 백일장 출품 작품 손보랴 아침부터 몸을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교사란 직업은 이렇게 내가 해야 할 일을 남한테 맡길 수가 없는 게 많아서 자리를 비우면 내 몸이 고단해진다. 열심히 코를 박고 일을 하는데, 교무실 유리문 밖에서 서성대는 아이 하나가 보인다. ‘얘가 왜 왔지?’ 하고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1학년 아이다. 한 학기가 지났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나는 녀석이다. 쭈뼛거리며 들어온 아이가 한마디 한다.
“선생님, 어제 진도 어디까지 나갔어요?”
갑자기 왠 진도? 무슨 대회에 나간다고 들었었는데, 그게 어제였나 보다. 나도 수업을 안했지만, 얘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나를 찾아와서 진도를 물어본다고? 그냥 옆자리 친구한테 물어보면 되지 않나? 그래도 찾아온 게 기특해서 어제 선생님도 휴가라 수업을 안했다고, 그 전 시간에 했던 데를 이어서 준비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하던 아이는 알겠다고 하면서 등 뒤에 감춰진 것을 내밀었다. 불투명한 플라스틱 용기다.
“이거, 선생님 드세요.”하고 말하더니 아이는 내 대답도 제대로 듣지 않고 꽁무니를 뺐다. 뚜껑을 열어보니 깍둑썰기한 복숭아가 담겨 있다. 수업 진도를 물어본다고 오긴 했지만, 결국 목적은 그게 아니라 복숭아를 선생님한테 주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차마 그걸 앞에 내세우지 못하고 어려운 발걸음을 한 것이다.
아마도 아침에 엄마가 복숭아를 썰어서 아들한테 먹으라고 주었을 것이다. 아들은 선생님 생각이 나서 그걸 가져왔을 것이고. 대단한 게 아니니까 생색을 내기도 어려웠을 테고, 그저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을 게다. 나중에 제 엄마가 이걸 알았다면 타박을 했을 거다. 너 먹으라고 대충 썰어준 걸 선생님께 드렸다고, 그럴 줄 알았으면 더 예쁘게, 더 많이 담아 줬을 거라고.
평소에도 눈을 반짝거리며 수업에 열심히 참가하는 아이였다. 성적이 높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고, 선생님과 눈을 맞추칠 때마다 수줍은 듯한 미소를 보이던 아이였다. 한 번은 국어 수업 시간에 소개해 주었던 책을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에 가서 빌렸다고 이야기하길래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던 기억이 있다.
가끔씩은 이렇게 수줍어하는 아이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선생님에게 다가온다. 그럴 때마다 다정하게 대해주려고 노력은 하는데, 늘 그 마음이 표현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렵게 선생님을 찾아왔을 아이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뭔가 내게 다가가고 싶은 핑계를 찾고 싶어서, 괜히 말 한마디를 던지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 마음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게 고맙다.
수업을 마치고 복도로 나오니 뒷문으로 나온 녀석들이 슬슬 장난을 걸면서 따라온다. 선생님의 흰머리를 보니 팔십 살은 됐을 거라고 어이없는 말을 한다. 괜히 몸을 부딪치면서 친한 척을 하기도 한다. 선생님이 어디에 사는지도 궁금해하고, 왜 어제는 학교에 안 왔는지를 묻는다. 화장실을 가는 내 앞을 가로막고 주저리주저리 떠들어서 나를 급하게 하기도 한다. 완전 호기심 천국이다.
중국 신화에 따르면 복숭아는 옥황상제가 먹는 과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집에 복숭아가 있으면 귀신이 찾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제사상에도 올리지 않는다. 오늘 내게 온 복숭아는 아마도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천사가 아이의 몸으로 변신을 해서 나누어준 것이 아닐까? 이런 천사가 준 복숭아니 내가 영험한 신이 된 듯하다. 하기야 아직 영글지 않은 아이들을 성숙한 존재로 키워나간다는 면에서 선생님은 충분히 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게 괜찮은 신인지, 아니면 잡신인지는 다 아이들이 판단할 것이다. 복숭아와 함께 시작한 오늘 하루는 제법 어깨에 힘을 주고, 더 근엄한 척을 해봐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선생님, 안 어울려요.”하면?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즐겁게 교사의 하루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