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 안에 있다.
나는 일요일 아침을 기타 소리로 치환하여 감각하고 기억한다. '일요일 아침'이라고 읊조려 보면, 머릿속엔 아주 밝은 햇살과 기타 소리를 잔뜩 끌어안은 따뜻한 집이 떠오른다. 생생하게, 마치 실제로 그 소리가 당장이라도 울려 퍼질 것처럼.
곽은 음악을 사랑하고, 글쓰기를 사랑하고, 노원에서 광화문까지 걸어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낭만을 사랑한다. 그뿐만 아니라, 열심히 수영을 배워 한강을 횡단하는 성취를 사랑하고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자신의 끈기를 사랑하고 언젠가는 철인 삼종 경기에 나가겠다고 꿈을 꾸는 자신을 사랑한다. 그렇게 많은 것을 사랑한 까닭에 불로장생하는 것이 소원인 곽은 그 많은 사랑하는 것들 중에서도 특히 '기타'를 몹시 사랑한다.
곽은 일요일 아침이면 늘 기타 꺼내 들고 연주를 하곤 했다. 'shape of my heart', 'dust in the wind', 이것저것 김광석 노래 같은 것들을. 몇 십 년째 같은 노래를 반복해 연주하지만, 그는 언제나 마치 처음 연주하는 곡인 것처럼, 처음 불러보는 노래인 것처럼 진심을 다해 연주하고 노래한다. 그 연주는 나를 짜증 나게도, 평화롭게도, 불안하게도, 때로는 안심되게도 했다. 곽의 존재가 나에게 그러하듯 말이다.
어른이 되고 좀처럼 이해할 수 없던 곽을 이해하게 되고, 그 많은 것들을 사랑하는(물론 종종 미워하는 것도 있어 보이지만) 그의 삶을 조금 더 긍정적인 시선으로 관조하며 어느 순간 나도 기타를 치고 싶어졌다. 그와 같이 삶을 사랑하고 싶어 져서.
나는 기타를 꼭 낙원상가에서 사고 싶었고, 첫 기타는 꼭 곽과 함께 고르고 싶었다. 20년이 훨씬 더 된 옛날에 한 손에는 곽의 손을, 또 한 손에는 박의 손을 잡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노빈손 살아남기 시리즈'를 샀다. 서른둘의 나는 낙원상가로 향하며 내가 사랑하는 건 무조건 함께 사랑해 주는 그들이 참 고맙다고 생각했다. 낙원상가로 가는 길엔 비가 내렸고,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만 그날은 비가 오는 것도 꼭 낭만적인 행운 같았다.
곽이 고른 가게는 상가의 메인 자리가 아닌 조금 구석에 위치한 조그만 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가 집어 든 기타는 상판만 원목으로 제작된 탑 솔리드 기타였고. 곽이 그 무엇보다 신뢰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 딱지가 붙어 있었다. 기타를 시연해 본 그는 그 기타의 소리도, 넉살 좋은 가게 주인도 마음에 든 듯했다. 사실 곽이 고심해서 골라 준 그 기타는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뭐든 시작할 때 장비에 욕심이 많은 나는 코드 하나 잡을 줄 모르면서 그 가격에서 조금 더 보태 측후면까지 원목으로 제작된 올솔리드 기타가 사고 싶었다. 웬만하면 김광석이 기타를 자주 구매했다던 큰 가게에서 말이다. 다른 날이라면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 곽은 늘 그렇듯 마지못한 척 내 의견을 더 존중했겠지만, 그날은 그가 고른 가게에서 그가 골라 준 기타를 샀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곽은 그날 나와 낙원상가에서 만나기 전, 업무 차 마포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와 낙원상가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어가도 일행들이 헤어지지 않자, 그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타고 종로에 와 당구비를 내주고 나를 만났다. 내 기타를 골라주는 것이 그에게는 꽤 중요한 일인 것 같았다. 그런 그를 실망시켜서는 안 됐다.
인간이 자손을 생성하고 번식에 힘을 쓰는 이유는, 자신의 유전자를 이 세상에 남기고 싶어 하는 본능 때문이다. 그리고 그 유전자를 안고 태어난 작은 생명이 사랑이 가득한 세상에서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은 번식 이후의 삶을 이전보다 더 사랑하게 되는 것도 같다. 나를 닮은 그 아이와 더 오래, 함께 사랑하고 싶어서. 그래서 곽에게서 삶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 내가 지금 여기에서 더듬더듬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곽과 나의 합주는 가끔 들어 주기 힘들 만큼 어긋나기도 하고, 어쩔 때는 아름다운 선율처럼 들리기도 한다. 우리는 자주 서로를 혼내기도 하고 다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사랑한다는 뜻이다.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실 그는 모르겠지만(미워하는 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곽보다 나를 배꼽이 빠지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도록 웃겨 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우리는 태생적으로 코드가 맞는다. 나의 존재 자체가 그와 많은 것을 공유했다는 증거이니까.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내가 곽의 분신이 맞다고 자주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그가 치던 노래들을 연주해 보고 싶다고도 생각한다.
나는 아빠가 사 준 기타의 소리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기타의 이름이 마음에 든다.
God in us. 신은 우리 안에 있다.
어느 우주에는 일생을 노래로만 소통하는 생명체들이 사는 별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언젠가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그 별에서 태어나고 싶다. 우리는 그 별에서 다시 만나기 위한 연습을 하려고 서로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서로의 노래를 들으며 박수를 치고, 결국에는 눈물마저 고이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