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도 무섭지 않아

신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해도

by 나긍

죽음은 처참한 전쟁처럼 우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죽음이 지나간 자리엔 집채 만한 슬픔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박은 폐허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전의를 완전히 잃어버린 패잔병처럼. 그때 박의 나이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나이와 같다. 박의 나이는 너무 어렸고, 몸집은 너무 작았고, 그래서 연약했고, 숨을 쉬는 것조차 힘에 겨웠을 것이다. 마땅히 원망할 대상을 찾지 못했을 그녀는, 죽은 언니를 제외한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박의 생활이 점차 안정되었고 그녀는 잃어버렸던 사랑을 조금씩 되찾아갔다. 그럴 때쯤 그녀의 시어머니는 치매에 걸렸다. 그녀는 일상을 포기하고 치매 걸린 노인을 지켜야 했다. 노인은 때때로 제정신이었지만 남은 시간은 방금 식사했다는 사실을 잊고 개 사료를 먹거나, 방문을 두드리거나, 자주 외로워했다. 사무치는 노인의 외로움은 박에게 고스란히 옮아갔다. 박은 매우 과민했고, 자주 우울해졌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그녀의 삶을 이해하게 됐다.


내가 아빠와 크게 싸우고, 화를 참지 못한 아빠가 그릇을 깼다. 그릇의 파편이 박에게 튀었다. 아빠는 놀란 듯했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캐리어에 짐을 챙겼다. 박에게 협박하듯 말했다. 깨진 그릇을 박이 치우면 나는 집을 나갈 거라고. 박은 주저앉아 울며 깨진 그릇을 치웠다. 어린 나는 타인의 책임도 자신의 것처럼 수습하는 박이 불쌍했다. 왜 치매 걸린 노인을 자식이 아닌 박이 보살피지? 왜 아빠가 깬 그릇을 당연한 듯 그녀가 치우지? 연민의 감정을 잘 알지 못했던 나는 그냥 그런 그녀가 미련해 보였다. 내가 박의 집을 떠나기로 결심했을 때, 박은 주차장까지 맨발로 쫓아와 울면서 나를 붙잡았다. 자기 잘못이 아닌데도. 그때 박은 “네가 없는 집에서는 살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 순간 나는 나도, 박도 서로에게서 독립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차 문을 열었다. 내가 주차장을 나갈 때까지 박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비친 박의 몸집은 너무 작았고, 연약해 보였다.

박의 우려와는 다르게 그 후 우리는 서로에게서 비교적 잘 독립해 나갔다.

사실 독립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게, 내가 얻은 집은 박이 살고 있는 집과 걸어서 10분 거리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지은 지 40년은 더 넘은 그 아파트에는 엘리베이터가 없고 바퀴벌레가 많았다. 나는 직업 특성상 주로 밤에 퇴근했다. 퇴근할 때면 계단이나 복도에 멈춰 있는 바퀴벌레를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1년 넘게 살았어도 도저히 면역이 생기지를 않았다. 어느 날 현관문 귀퉁이에서 거짓말 안 치고 내 손가락 하나 만 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울 것 같은 마음으로 편의점으로 달려가 살충제와 키친타월, 고무장갑을 사서 돌아갔다. 다행히 바퀴벌레는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비장한 전사처럼 고무장갑을 끼고, 살충제를 살포했다. 벽면에서 떨어져 발버둥 치는 바퀴벌레가 움직임을 멈출 때까지 기다렸다. 키친타월로 집어 창밖에 던졌다. 도저히 집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무사히 집으로 들어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박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또 바퀴벌레를 죽였어. 내일 출근길에 1층에서 그 바퀴벌레를 마주치면 어떡하지? 나 너무 무서워.

박은 웃었고, 바퀴벌레 꿈은 꾸지 말고 푹 자라고 말했다.

다음 날 출근을 하려고 나섰다. 1층 공동현관 옆 길목에 박이 서 있었다. 박은 내 출근 시간에 맞춰 1층에 내가 던진 (바퀴벌레를 죽인) 휴지 뭉치가 있는지 찾으러 왔다고 했다. 그냥 호들갑 떤 거였는데, 박은 죽은 작은 바퀴벌레에게서조차 나를 지키려고 애를 썼다. 출근이 늦어져 고맙다는 인사도 못하고 차에 올라탔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또 박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이드미러로 비친 박의 몸집은 작았지만, 그리 연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박은 나와 헤어질 때마다 나를 먼저 보낸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박은 내가 사라질 때까지 헤어진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보고 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뒤에는 나는 웬만하면 박을 먼저 보내려고 한다.

엄마 먼저 가. 빨리 가.

네가 먼저 가.

아냐 엄마가 먼저 가.

약간의 실랑이 끝에 박은 돌아서지만 몇 걸음 걷다 뒤를 돌아본다. 내가 손을 흔들어 주면 다시 걷는다. 그리고는 몇 걸음 안 가 또 돌아본다. 뒤돌아도 서로가 보이지 않는 모퉁이를 지날 때까지 반복이다.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박과 마트에 다녀오는 길에 슈퍼문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계속 사진을 찍고 싶어 했는데, 렌즈를 들이밀 때마다 건물이 달을 가려 계속 실패했다. 사진을 찍지 못해 한숨 쉬는 나를 보며 박은 나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박과 헤어지고 얼마 후에 박에게서 여러 장의 달 사진이 전송되었다. 나를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갓길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은 것 같았다.

박은 식초인 줄 알고 음식에 맛술을 계속 뿌렸다며, 나중에 시어머니처럼 치매로 고생할 것 같다고 장 보는 내내 걱정했다. 나는 박에게 두뇌에 좋다는 네모네모 로직을 추천했고, 숙제 검사를 할 거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박이 나에게 해주던 일을 하나하나 반대로 되갚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는 내가 멀어지는 박을 바라본다. 이제는 박의 짐을 내가 들어준다. 내가 박의 어깨를 감싸고 걷는다. 가끔은 이것저것 잔소리도 한다.

박은 아무 목적도 갖지 않고 해 준 일들을 나는 의도를 가지고 한다는 게 다르다. 그녀가 천천히 늙어야 그녀를 사랑하는 내가 천천히 슬픔을 떠안게 될 테니까. 그녀는 나에게 항상 맹목적이고, 나는 다분히 의도적이어서 아마 사랑의 정도에 있어서 나는 언제나 그녀를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어느 날 엄마가 내 손을 잡고 오랫동안 주물럭댔다. 이렇게 손가락이, 손목이 얇아서 어떻게 하냐고. 눈물을 글썽였다. 고등학생 땐 내가 오랜만에 손을 잡아 준다고, 대학생 땐 내가 조그만 한 손으로 만든 음식이 맛있어서 신기하다고, 취직해선 칠판이랑 마찰돼 굳은살이 배기고 피 나는 손이 불쌍하다고 내 손을 잡고 울먹거린다. 나는 엄마의 손을 봤고, 엄마 손의 주름이 너무 깊어서 눈물이 날 뻔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겨우 손을 보고도 울음을 참지 못하는 그런 사랑은 어떤 사랑인지 나는 가늠도 못한다. 사랑하는 이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엄마는 뭐든 견디고, 뭐든 해낸다. 아빠가 깬 그릇을 치우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일 거다. 미련한 엄마의 사랑은 늘 그런 방식으로, 맹목적으로 지속된다.


나에게도 신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들이 종종 찾아올 것이다. 신이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고 해도, 엄마가 옆에 있다면 나는 견딜 수 있다. 엄마의 그 모든 고통을 견디게 한 것이 어린 나의 존재 그 자체이듯이. 엄마만 곁에 있다면, 혹시 엄마가 나를 먼저 떠나게 되더라도 우두커니 서서 나를 지켜봐 주던, 내 손을 꼭 잡으며 눈물짓던 엄마의 모습을 내가 기억한다면. 내가 누군가에게는 그런 존재였다는 우리에게 새겨진 그 역사가 사라지지 않는 한은. 인간만큼 큰 바퀴랑 맞짱을 떠도 나는 무조건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생긴다.


가끔은 기억이 물질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달이 뜨는 이곳에서 설령 모두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우리가 서로 열렬히 사랑한 이 기억이 원자로 남아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