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몸과 마음 풀어내기, 아도무카스바나아사나
누구나 다양한 형태로 이별 후유증을 겪겠지만 나의 경우 그 크기가 매우 크고 복잡하다. 슬픔은 물론이고 천불이 났다가 명치가 녹아내리길 반복한다. 가장 힘든 감정은 ‘화’. 화가 나면 에너지의 방향이 제대로 돌지 않아 몸과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다 또 슬픔이 몰려오면 똑바로 서있어도 영혼은 분리되어 발 밑에 깔려있는 기분이 든다.
우리의 마지막 싸움의 원인은 고작 에어프라이어 선반 하나 때문이었다. 같이 살자며 본인만 믿고 따라오라던 엑스(전 남자친구)는 모든 것이 자기 마음대로였다. 하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나는 딱히 취향도 욕심도 없는 사람이라 그가 하는 대로 따랐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스스로 채우면 그만이었다. 집을 예쁘게 꾸며야 한다는 엑스는 상의 없이 여러 소품들에 돈을 지출하면서도 내가 사는 물건은 반가워하지 않았다. 요리를 위한 에어프라이어와 그것을 둘 선반이 필요했는데 엑스는 굳이 필요하냐며 불만 투성이었다.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나는 요리를 좋아하니까 에어프라이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5룸의 좁은 집에서 네가 좋아하는 삼겹살을 프라이팬에 구워 먹기 힘들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런데 무엇이 그를 그렇게 화나게 한 걸까? 에어프라이어의 크기부터 선반의 모양까지 투덜대던 엑스에게 서운함을 내비치자마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별 통보를 했다. 엑스는 헤어지면서 나에게 어떠한 설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그의 기분과 감정을 맞추는 것에 아무리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함께 살 집을 구해 들어가기로 한 전날 갑자기 헤어지자는 엑스를 이해하긴 힘들었다. 내가 산 물건 값을 넉넉하게 쳐서 받았지만 억울하고 분한 생각이 들었다. 더위를 많이 타는 엑스를 위해 나는 미리 가서 환기를 시키는 동안 땀 흘리며 냉장고를 닦다가 그가 오기 직전 에어컨을 틀어놓고 시원한 물을 사러 나갔던 날이 떠올라 화가 났다. 각종 양념을 소분한 유리병에 하나하나 스티커를 붙여 정리하고 뿌듯했던 기억이 불난 마음에 부채질을 했다.
다운독이라는 영어 이름으로 많이 알고 있는 아도무카스바나아사나는 이별 후 내가 좋아하게 된 아사나 중 하나다. 한동안 힘들이지 않고 대충 완성하던 아사나였는데 스트레스 때문에 굳어버린 몸으로 자세를 잡으려니 힘이 들었다. 하지만 곧 막혀있던 기운이 점점 풀리면서 상하체가 매우 시원하게 느껴졌고 뒷목을 툭 내려놓는 하타식 다운독으로 이어갈 땐 겸손한 마음까지 생겨났다. 손바닥과 발바닥에서 올라온 기분 좋은 에너지가 다시 발바닥과 손바닥으로 흐르며 빠르게 원래의 컨디션으로 돌아오게 만들어 준다. 신체가 준비되면 깨워진 의식이 말을 건넨다. '쓸데없는 감정은 치워버리고 어서 요가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