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고기는 세일 품목이 아닌 정상가에 사면 어떨지 제안했다. 오래 진열해 둔 육류는 교체즈음에 세일하는 것 같다고 부연 설명했다. 남편은 바로 사서 해 먹으면 세일된 고기라도 문제없다고 한다. 우리 집 주방권은 남편이 가지고 있으니 그냥 따를 뿐이다.
아이들이 먹을 고기분량을 개별 접시에 담아줬다. 고기 한점 먹을 때마다 루꼴라 야채도 함께 먹으라고 했다. 중학생 아들이 루꼴라에서 토끼풀맛이 난다고 한다. 반항심리에서 그러는지루꼴라를 우구적 우구적 씹으며 나를 쳐다본다.
남은 소불고기는 냉장고에 잘 보관하여 퇴근 후 저녁식사로 데워먹으면 되겠다.
오늘 직장 점심 도시락은 생고구마 스틱과 귤이다. 저녁 스터디카페 도시락은 밥과 냉장고 반찬이다. 요즘 퇴근 후 스터디카페에 가서 자정에 돌아오곤 한다. 어제도 23만원을 지불하고스터디카페 200시간 이용권을 구입했다. 아마 200시간 이용권을 20번은 더 구입하고 있는 듯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평생 공부 중이다.
퇴근 후 내 것에 몰입하면 좋겠지만, 타인으로부터 의뢰받은 일을 하고 있다. 정부기관에서 설명할 100장짜리 PPT를 작성하는 일이다. 무보수다. 의뢰자는 항상 말한다. 네가 이걸 해주면 해당 직무분야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아이러니한 건 나는 해당 직무분야의 사람이 아니다. 해당 직무분야의 사람으로 빙의해서 특정 주제에 대해 A부터 Z까지 공부해서 작업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오더를 받아서 어떤 주제든 두렵지는 않다.
다만, 귓속말로 속삭이고 싶다.
"저기.. 저는 해당 직무분야의 발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제게 중요한 건 우리 아이들 시험 예상문제 하나 더 찍어줄 시간확보예요. 더 이상 성장하고 싶지 않고, 강가에 돌멩이로 쉬고 싶습니다."
강제 성장 중이다.
어쩔 수 없다. 가스라이팅이란 단어도 검색해 보고 점집도 가봤다. 진짜 어쩔 수 없어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일단 최선을 다해 오늘 제출해야겠다. 제출을 끝내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텃밭에 가서 올해 마지막 고추를 수확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