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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급자족 Nov 21. 2024

칭찬

오늘아침, 출근해서 커피 한잔마시고 있었다.

50대 남자 상사분께서 밝게 웃으시며, 한마디 건네신다. 덕분에 지하층의 커피숍이 밝아졌고, 회의실에 곰팡이 냄새가 없어졌단다. 곰팡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 사실이 없다. 개인적으로 곰팡이 없애는 일에 관심이 없다.


직장생활을 오랫동안 하고 있지만, 지금 함께 근무하는 상사와 동료들은 칭찬에 후하다. 어느 날은 출장을 다녀오겠다고 보고를 드리니 아래와 같이 기관 아침회의 내용을 전달해 주셨다.


웃음 표시를 하면서 부하직원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상사는 처음이다. 작년과 올해 변한 중에 내가 기획한 내용이 기관에 도움이 되었다고 하신다.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이니, 도움이 되어 다행이다.



직급이 가장 높은 상사는 내가 운영하는 작은 프로그램에 본인의 개인적인 일로 참여하지 못했다고 메시지를 보내셨다. 프로그램에 그 상사를 초대할 생각이 없었는데, 참여하지 못해서 아쉬웠다는 말은 인사치레로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잠깐 인생 최대의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한꺼번에 실망을 하고서는 '강가에 돌멩이'로 살기로 했다. 슬럼프에 빠져본 적이 없었는데, 딱 한 번에 너무도 세게 왔었다.


심해로 쑥~~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내려가도 발바닥이 심해의 바닥에 닿지 않는 경험을 했다.
조그마한 돌멩이라도 있다면 엄지발가락으로 톡! 치고 반동으로 올라오겠는데,
그 작은 돌멩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물기둥 속에서 발버둥을 칠수록 심해로 계속해서 빨려 들어갔다.
누구라도 머리채를 휘어잡고 꺼내줬으면 했다.


항상 제자리를 묵묵히 지키던 남편과 우리 집 아이들의 도움으로 겨우 빠져나왔다. 심해 속의 느낌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누군가가 같은 심해에 빠져있다면, 이제는 과감히 머리채를 휘어잡고 꺼내 줄 수 있다.


슬럼프의 원인과 발현시기를 생각해 보니, 정직과 노력이 배반당할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직장에서 최선을 다한 프로젝트를 직장 동료가 승진을 위해 자신의 실적에 넣는 걸 본 적이 있다. 퇴근해서 집에서 쉬고 있는데 문서를 훔쳐서 이미 썼노라며 다음에 밥이나 한 끼 하자는 카톡을 받은 적이 있다. 상도덕도 이런 상도덕은 없다는 생각이 스쳤다.


한편으로는 승진에 관심이 없으니, 남에게 도움이 되면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다음날부터 내 실적으로 작성한 타인의 실적 문서를 직접 면하게 되었다. 진심을 가지고 기획했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걸 느꼈다.


오랜 의뢰자가 있다. 발표 PPT,  정책 보고서, 정책 평가,  칼럼, 정분야 승진 문제 출제, 기관 자문의견서 등을 의뢰한다. 직장인이기에 퇴근하고 의뢰자의 부탁 업무를 한다. 도전 중인 과업과 육아, 직장생활 등 복잡한 일이 산재하지만, 의뢰자의 일 먼저 해서 보내야 한다. 몇 년 하니, 의지 상관없이 생활 자유를 박탈당하는 것. 이것 역시 슬럼프의 요인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위의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 슬픈 일이다. 강가에서 찰싹찰싹 물따귀를 맞더라도 돌멩이로 살고 싶은 이유이다.


어느 날부터 직장에 올인하지 않기로 했다.

"뭣이 중헌디, 내 가족과 내 재테크 공부가 중허다."


아침에 단정한 옷을 입고 아르바이트하러 잠시 다녀온다는 생각을 하며 출근한다.

그 어떠한 칭찬을 하던, 인정에 올인하지 않는다. 웃으며 포커페이스를 할 뿐이다.


내 자유 의지대로 살기로 했다.

오늘도 퇴근하고, 소를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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